주 메뉴 열기

조기숙(趙己淑, 1959년 5월 14일 ~ )은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맡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학자이다. 본관은 양주이며, 동학농민운동을 촉발시킨 탐관오리 조병갑의 증손녀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홍보수석비서관을 지냈다.

목차

학력편집

경력편집

  • 1990년: 이화여자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원
  •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취임사 준비위원회 위원
  • 2004년: 이화여자대학교 국제정보센터 소장 겸 국제대학원 교학부장
  • 2005년 ~ 2006년 2월: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비서관
  • 2006년: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부 국제학 전공 부교수
  •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부 국제학 전공 교수

생애편집

1959년 경기도 안양시에서 태어났다. 1982년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정치학 석사 과정을 거쳐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1] 귀국 후 인천대학교에서 조교수를 지내고, 1997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다.[1]

2004년 4월 열린우리당 창당 정당개혁단장을 지냈다.[2] 노무현 대통령당선자 취임사 준비위원회 위원, 열린우리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 총선기획단 자문위원회 위원장, 정당개혁추진단 단장, 참언론을지지하는모임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고,[1] 2004년 이화여자대학교 국제정보센터 소장 겸 국제대학원 교학부장 등을 지냈다. 2005년 1월 이기준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의 임용에 관련된 인사 파문이 일자, 조기숙은 "김대중 정부의 옷로비 사건을 보는 것 같다. 이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 따라 현 정부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라고 밝혔다.[1]

2005년 2월 17일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비서관으로 발탁되었고,[3][4] 2006년 2월 사퇴하였다.[5][6]

2005년 9월 지역주의에 대한 시각 차이를 놓고 언론학자 강준만과 논쟁을 하였다.[7][8][8] 2005년 11월 자신에 대해 왜곡을 일삼는 일부 언론에 대해서 최소한의 자위권이라도 행사해야 할 상황이라고 발언하였다.[9]

2006년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부 국제학 전공 부교수가 되었다.

2006년 《월간조선》 11월호에 한말에 고부군수를 지낸 조기숙의 증조부 조병갑이 친일파라는 보도가 실리는데,[10][11][12][13] 이에 대해 그는 증조부의 경력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는 해명을 하였다. 또한 "증조부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오류일 수도 있다. 증조부는 역사의 희생양일뿐이다."라는 내용의 논문이 학계에서 발표됐음을 근거로 증조부가 결백할 가능성을 주장한다.[14][15] 조선일보 인터뷰 거부와 중앙일보동아일보에 대한 절필을 선언하였다.[2]

가족 관계편집

조말생의 20대손이며 우의정을 지낸 조태채의 9대손이다.

  • 증조부 : 조병갑(趙秉甲, 1844년 ~ 1911년) : 고부 군수, 고등재판관
  • 조부 : 조강희(趙岡熙, 1889~?) : 일제 강점기 때 경성일보(京城日報)와 매일신보(每日申報)에서 일했으며, 친일신문 동광신문(東光新聞)에서는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냈다.
  • 아버지 : 조중완(趙重完)
  • 남편 : 양형진(梁亨鎭, 1957년~) :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 아들 : 2남

저서편집

공저편집

  • 조기숙·이기정·박준형·손동빈·양형진 외. 《아이를 살리는 교육》. 지식공작소. 2012년. ISBN 978-89-6680-974-5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