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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회민주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당.

조선사회민주당(朝鮮社會民主黨, Korean Social Democratic Party)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당이다. 소군정 당시에는 우익 정당이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조선로동당의 '우당'(위성정당)으로서 실질적인 당조직을 갖지 못한 채 격하되어 존재한다.

조선사회민주당
朝鮮社會民主黨
Flag of the Social Democratic Party of Korea.png Emblem of Korean Social Democratic Party.svg
당기 로고
상징색 빨강, 분홍
이념 사회주의
스펙트럼 극좌
1945년 11월, 조선민주당 결성대회. 영국의 국기, 미국의 국기, 태극기, 소비에트 연방의 국기, 그리고 중화민국의 국기가 걸려 있다.
1945년 11월, 조선민주당 결성대회. 영국의 국기, 미국의 국기, 태극기, 소비에트 연방의 국기, 그리고 중화민국의 국기가 걸려 있다.
당직자
중앙위원회 의장 김영대
역사
창당 1945년 11월 3일
선행조직 조선민주당
예하 부문
중앙당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국제 부문
자매정당 민주노동당 (~ 2011년)
통합진보당 (~ 2014년)
국내조직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석
최고인민회의
50 / 687

목차

역사편집

창당편집

소군정1945년 10월 14일 조만식에게 조만식을 당수, 김일성을 부당수로 하는 정당을 건설할 것을 제안했다. 조만식은 처음에 분단상태에서 정당을 만드는 것은 남북 분할을 영구화시킬 위험이 있다는 생각에 반대하였으나, 김일성의 계속된 압력으로 인해 1945년 11월 3일 평양에서 '조선민주당'을 창당하게 된다. 주민들의 호응으로 조선민주당은 창당 3개월 만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역에 지부를 구성하였으며, 당원의 수는 30만(김일성의 계산)에서 50만(조선민주당의 집계)에 이르렀다.[1]

김일성 등장 이후편집

독자적인 세력이 없이 소군정의 후원밖에 믿을 수 없던 김일성연안파가 주축인 조선공산당과 조만식의 조선민주당을 적당히 조정하며 자신의 권력을 획득하려는 생각으로 자파인 최용건김책을 각각 서기장과 정치부장으로 추천했다. 이후, 조만식은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하다가 숙청당했으며, 최용건이 당수로 등장해 완전히 조선로동당에 예속되게 되었다. 김일성은 이후 1956년 조선민주당 당수인 최용건을 노동당 부위원장에 앉힘으로써 조민당의 로동당 예속을 완성했다. 하지만 이윤영, 한근조, 김병연, 이종현, 백남홍 등은 이런 행태에 반발, 남쪽으로 넘어와 1946년 1월 본거지를 서울로 이전한다.

1958년 이후 조민당의 지방조직은 점차 해체되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에 이르러 도당조직마저 해체되어 상부조직만 남은 이름뿐인 당이 되었다. 1972년 최용건의 사망 후, 강양욱이 위원장이 되었으며, 1980년 조선로동당 제6차당대회에서 당명이 현재의 '조선사회민주당'으로 개칭되었다. 부주석 강양욱1983년 2월 사망하여 당중앙위원회 위원장이 6년이 넘게 공석으로 남아있다가, 이계백이 1989년 4월 17일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93년 7월 김병식이 위원장에 선출되고, 1998년 8월 김영대가 당중앙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역대 지도부편집

통합진보당과의 교류편집

조선사회민주당은 2003년부터 민주노동당과 자매결연을 맺었는데 통합진보당 창당 후에도 여전히 자매결연을 유지했었다. 2012년 7월 23일 조선사회민주당은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명의로 최근 당 지도부를 새로 선출한 통합진보당에 축전을 보냈다. 그런데 이 축전이 진보신당으로 잘못 전달 되었다. 보내온 축전에는 "우리는 귀당이 새 지도부를 구성한 것과 관련해 축하와 따뜻한 동포애적 인사를 보낸다"며 "귀당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 당내 화합과 단결을 이룩해 당을 보다 대중적이고 영향력 있는 진보정당으로 강화·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란다"고 적혀있다. 그리고 "이 기회에 남북공동선언의 기치 높이 자주, 민주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사업에서 두 당의 연대와 협력이 보다 확대발전되리라는 기대를 표명한다"고 덧붙였다.

각주편집

  1. 조선 말기 때부터 시작해서 일제강점기,군정기 시기때만해도 평양을 비롯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역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릴만큼 기독교 성향이 짙었던 도시였고, 당시 민중들의 조만식 지지도는 매우 높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