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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명(趙一明, 1903년 12월 1일 ~ 1953년 8월 30일)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 공산주의 운동가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치가이다. 일명(一明)은 아호(雅號)이며 본명 조두원(趙斗元)으로도 활동했다.

일명 조두원
一明 趙斗元
조선총독부 대화숙평의회 대표상무평의원
임기 1941년 12월 21일 ~ 1942년 4월 25일
군주 히로히토
섭정 도조 히데키
총독 미나미 지로
총리 도조 히데키
북조선로동당 중앙본부 부총서기
임기 1949년 12월 16일 ~ 1953년 8월 9일
주석 김두봉
부주석 김일성
총리 김일성
부총리 박헌영
홍명희
김책
허가이
최창익
정준택
신상정보
국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생일 1903년 12월 1일
출생지 대한제국 강원도 양양
사망일 1953년 8월 30일(1953-08-30) (49세)
학력 경성 연희전문학교 학사
소련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교 산업학과 학사
경력 조선로동당 문화선전위원
경성 보성전문학교 교수
경성 연희전문학교 강사
정당 조선로동당

생애편집

강원도 양양에서 출생하여 경상남도 함안강원도 삼척에서 각각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고 그 후 강원도 김화에서 성장한 그는 경성 연희전문학교를 학사 학위했다. 1920년대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박헌영, 리승엽, 조봉암, 권오직 등과 함께 화요파 계열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벌였고, 모스크바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같은 모스크바 유학생 출신인 김단야와 함께 조직 활동을 벌이다 투옥되는 등 일찍부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동안 전향하여 친일 단체인 야마토주쿠에 가입했으며 강연 및 교사직 수행 등으로 친일 행위를 했다. 부유한 가정 환경과 친일 경력은 공산주의 운동가로서의 조일명을 두고두고 괴롭혔다. 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간첩 혐의로 사형당한 뒤에도 리승엽과 함께 일제 때부터 전향했던 대표적인 변절자로 비난받았다.

1945년 광복 후 리승엽과 함께 박헌영의 재건파에 가담했고, 조선공산당 기관지인 해방일보의 편집장을 맡는 등 경성콤그룹을 대표하는 남로당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미군정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이후 해방일보에 무기정간 조치를 내리자 월북했다.

북한 내각의 문화선전성 부상까지 지냈으나, 이강국, 이원조, 박승원 등과 함께 오랫동안 박헌영의 지령에 따라 간첩 활동을 해 왔다는 혐의로 1953년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고, 곧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함께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재판소, 〈미제국주의 고용간첩 박헌영 리승엽 도당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 전복음모와 간첩사건 공판 문헌〉, 평양, 1956년.
  • 임경석 (2004년 4월 15일). 〈실각ㆍ재판ㆍ처형〉. 《이정 박헌영 일대기》. 서울: 역사비평사. ISBN 89-7696-801-8.  |id=에 templatestyles stripmarker가 있음(위치 1) (도움말)
  • 반민족문제연구소 (1994년 3월 1일). 〈조일명, 출세를 위해 변절의 길을 간 공산주의자〉. 《청산하지 못한 역사 3》. 서울: 청년사. ISBN 978-89-7278-314-5.  |id=에 templatestyles stripmarker가 있음(위치 1)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