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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조지 디펜베이커(영어: John George Diefenbaker, IPA[ˈdiːfənˌbeɪkər], 1895년 9월 18일~1979년 8월 16일)는 1957년부터 1963년까지 제13대 캐나다 총리를 지낸 정치인이다. 1935년 이후 22년 만에 총리직에 오른 우익 인사이다. 총리를 지내기 전인 1940년에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1956년부터 캐나다 진보보수당 대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1967년까지 진보보수당 대표를 유지하였으며, 의원직은 죽을 때까지 유지하였다.

존 디펜베이커
John Diefenbaker
John G. Diefenbaker.jpg
John Diefenbaker Signature-.svg
캐나다의 제13대 총리
임기 1957년 6월 21일~1963년 4월 22일
군주 엘리자베스 2세
총독 빈센트 매시 (1957~1959)
조르주 바니에르 (1959~1963)
전임 루이 생로랑
후임 레스터 B. 피어슨
캐나다 진보보수당의 제3대 대표
임기 1956년 12월 14일~1967년 9월 9일
전임 윌리엄 얼 로 (직무대행)
후임 로버트 스탠필드
캐나다의 하원의원
임기 1940년 5월 16일~1979년 8월 16일
지역구 레이크센터 (1940~1953)
프린스앨버트 (1953~1979)
신상정보
출생일 1895년 9월 18일(1895-09-18)
출생지 캐나다 온타리오주 노이스타트
사망일 1979년 8월 16일(1979-08-16) (83세)
사망지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타와
학력 서스캐처원 대학교 (문학사·문학석사·법학사)
경력 변호사
정당 캐나다 진보보수당
배우자 에드나 브로워 (1929~1951, 사별)
올리브 팔머 (1953~1976, 사별)
자녀 없음
별명 디프(Dief), 추장(The Chief)
군사 경력
군복무 캐나다
복무기간 1916년~1917년
소속 캐나다 육군
최종계급 중위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총리직을 지내는 동안 최초로 여성 장관과 원주민 출신 상원의원을 임명하였으며, 캐나다 권리 장전을 통과시키는 등 인권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또한, 1958년 총선에서 그가 이끈 진보보수당은 208석을 확보하였는데, 이 의석수는 총선 역사상 단일 정당이 얻은 가장 많은 수였으며, 의석수 비율에서는 지금까지도 최대치이다. 그러나 외교 면에서 여러 실책이 나와 곤혹을 치뤘는데, 특히 애로 전투기 연구 취소와 미국 미사일 구입은 여러 사람의 반발을 일으켰으며, 그 결과 1963년 총선에서 패하게 되었다.

생애편집

온타리오주 노이슈타트에서 독일계 아버지와 스코틀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1903년 가족과 함께 서스캐처원주로 이주하였다. 변호사가 될 계획을 세워 서스캐처원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였고, 1919년 서스캐처원 주의 워코(Wakaw)에서 자신의 법률 사무소를 열었다. 주민들은 그의 기술을 방어적 변호사로 주목하였다.

1920년 정계에 입문하여 진보보수당 당수로 1940년 캐나다 하원 의원에 선출되었다. 1957년 6월 21일 13대 총리에 취임하여, 캐나다를 더욱 부유한 국가로 성장시키기 위한 일을 시작하였다. 또한 오대호대서양을 잇는 세인트로렌스 수로를 여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63년 4월 22일에 총리직을 사임하였고, 1967년 진보보수당 당수 직위에서도 물러났다.

1979년 8월 16일 수도인 오타와 근교에서 8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후 1993년 그를 기리기 위해 새스커툰 국제공항이 존 G. 디펜베이커 국제공항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훈편집

외부 링크편집


전임
루이 생로랑
캐나다의 제13대 총리
1957년 6월 21일 ~ 1963년 4월 22일
후임
레스터 피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