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종묘 제례악

(종묘제례악에서 넘어옴)

종묘 제례악(한국 한자宗廟祭禮樂, 영어: The Royal Ancestral Ritual in the Jongmyo Shrine and its Music)은 조선왕조 역대 임금과 왕후의 신위(神位)를 모신 종묘에 제사드릴 때 연주하는 기악·노래·무용의 총칭으로 '종묘악'이라고도 한다. 종묘에서 행하는 제향의식으로, 조선시대의 나라제사중 규모가 크고 중요한 제사였기 때문에 종묘대제(宗廟大祭)라고도 한다.[1]

종묘제례(宗廟祭禮) 및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UNESCO-ICH-blue.svg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Royal ancestral ritual in the Jongmyo shrine and its music
2008-Korea-Seoul-Jongmyo jeryeak-06.jpg
종묘제례
국가대한민국 대한민국
영역행위예술
등재번호16
지역아시아태평양
등재 역사
등재연도2001년 (제3차)
목록대표목록(2008년)
종묘제례악
(宗廟祭禮樂)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국가무형문화재
종목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1964년 12월 7일 지정)
전승지서울특별시
종묘 제례악의 일무

종묘 제례 의식에는 각 절차마다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이라는 음악을 중심으로 여러 음악을 연주하며 동시에 〈종묘악장(宗廟樂章)〉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문덕(文德)을 찬양하는 문무(文舞)인 보태평지무(保太平之舞)와 무덕(武德)을 찬양하는 무무(武舞)인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 곧 일무(佾舞)를 춘다.

종묘 제례악은 장엄하고 웅대한 음악이며 500여 전에 전승되던 고취악(鼓吹樂)과 향악(鄕樂)이 제례악으로 승화된 우리 민족의 음악이다.

역사편집

세종 31년(1448년)에 세종이 국초에 여러 곡을 지었는데, 그는 조종(祖宗)의 공덕이 성대함과 초창(草創)의 어려움을 나타내기엔 부족하다 하여 손수〈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를 지었고 한문용비어천가 일부를 사용하여 '여민락'을 그리고 국문 용비어천가 전장(125장)을 사용하여 '치화평 상(1), 중(2), 하(3)'와 '취풍형'을 지었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태조 6대조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이며 《정대업》과 《보태평》은 태조 이전의 4대조에 태조, 태종의 공을 칭송하고 있는 내용이다.

또한 고취악(鼓吹樂)과 향악(鄕樂)을 토대로 보태평· 정대업· 발상(發祥)· 창수곡(創守曲)· 경근곡(敬勤曲)· 봉래의(鳳來儀 - 여민락과 치화평, 취풍형 음악에 궁중무용을 결합시킨 기악·성악·무용이 어우러진 거대편성) 등 새 음악을 창제하였다. 임진왜란·병자호란 등을 거치면서 일부 음악이 분실되었다. 그중 여민락·보태평·정대업은 본래 모두 회례연(會禮宴)의 악무(樂舞)로 쓰였으나 여민락은 임금의 거둥(임금의 나들이) 음악으로 채택되었고, 보태평·정대업은 세조 때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어 오늘에 이른다.

문을 기리는 보태평은 11곡(曲·聲)이며 무를 기리는 정대업은 15곡인데, 여기에 조종의 공덕을 기리는 악장을 얹어 부르게 하고 아악기(雅樂器) 당악기(唐樂器) 향악기(鄕樂器)를 섞어 편성하여 연주하고 문무와 무무를 일무(佾舞)로 추도록 하여 연향(宴享)에서 공연하였다.

1463년 세조 9년에 보태평과 정대업을 개편하여 세조 10년에 처음으로 종묘제향에서 연주되었다. 이 제례악은 선조임진왜란으로 음악이 약화되었으나 광해군 때 점차 복구되었으며, 1626년 인조 4년에 보태평 중 《정명장》(定明章) 다음에 《중광장》(重光章)을 삽입하였으며, 1946년까지 제향에서 연주하였고, 그 후 중단되었다.

1971년부터 다시 시작되어 해마다 5월 첫 일요일에 행하는 종묘대제에서 《종묘 제례악》과 《악장》과 《일무》가 동시에 공연되고 있다.

종묘 제례악은 조선말기까지 《장악원》(掌樂院) 악사(樂士)들에 의하여 전승되었고, 일제 때에는 《구황궁아악부》(舊皇宮雅樂部) 악사에 의하여 전승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국립국악원》 악사들에 의하여 전승되고 있다. 보유자는 김종희 외 여러 명이다.

구성편집

일반적으로 악,가,무 로 구성되는데 악은 음악연주, 가는 노랫가락, 무는 춤을 의미한다.

춤(무)편집

  • 《보태평지무》(保太平之舞) - 문덕(文德)을 찬양하는 문무(文舞)
  •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 - 무공(武功)을 찬양하는 무무(武舞)로 《일무》(佾舞)라고 한다.

음악(악,가)편집

현재 《보태평》은 다음의 11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 희문(熙文)
  • 기명(基命)
  • 귀인(歸仁)
  • 형가(享壽)
  • 집녕(輯寧)
  • 융화(隆化)
  • 현미(顯美)
  • 용광정명(龍光貞明)
  • 중광(重光)
  • 대유(大猷)
  • 역성(繹成)

또한 《정대업》도 아래의 11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 소무(昭武)
  • 독경(篤慶)
  • 탁정(濯征)
  • 선위(宣威)
  • 신정(神定)
  • 분웅(舊雄)
  • 순응(順應)
  • 총유(寵綏)
  • 정세(靖世)
  • 혁정(赫整)
  • 영관(永觀)

보태평은 황종궁평조(黃鐘宮平調)[2]로 되어 있고 정대업은 황종궁계면조(黃種宮界面調)[3]로 되어 있다.

악기편집

 
편경

악기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편성된다.

제례편집

종묘 제례의 《영신례》(迎神禮)와 《전폐례》(奠幣禮)에서 악사들은 〈희문〉이라는 《보태평》 제1곡을 아뢰고, 《초헌례》(初獻禮)에는 보태평을 아뢰며 도창(導唱)은 조종의 문덕을 기리는 악장을 노래부르며 무원(舞員)들은 손에 약(籥)과 적(翟)을 갈라쥐고 문무(文舞)를 팔일무(八佾舞)로 춘다. 《아헌례》(亞獻禮)와 《종헌례》(終獻禮)에서 악사들은 정대업 전곡(全曲)을 아뢰고 도창은 조종의 무공(武功)을 찬양하는 악장을 부르고 무원들은 앞두줄은 목검[4]을 들고 중간 두줄은 목창(木槍)[5], 뒤로 두 줄은 활과 화살을 들고 무무(武舞)를 팔일무로 춘다. 《진찬》(進饌)·《철변두》(徹邊豆)·《송신》례(送神禮)에는 아악곡(雅樂曲)을 아뢰고 악장과 일무(佾舞)는 없다.

보태평과 정대업편집

《보태평》은 선왕의 문덕(文德)을, 《정대업》은 그 무공을 각각 한문으로 칭송한 것이고 음악은 고취악에 기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예를 들면 《정대업》 중의 화태(和泰)와 순응(順應)의 음악은 각각 고려 때의 〈서경별곡〉과 〈만전춘〉의 곡에서 차용된 것이다. 《보태평》 11곡은 모두 임종궁(林鍾宮)의 평조(平調)이고, 《정대업》 15곡은 모두 남려궁(南呂宮)의 계면조(界面調)이다. 원래 《보태평》과 《정대업》은 세종 때 연례(宴禮)에 연주되었는데, 세조 9년(1464)에 이르러 향악이 아악 대신에 종묘제향악으로 채용되었다. 이에 따라서 짧은 제향(祭享) 절차에 맞게 《정대업》 15곡이 《보태평》과 균일하게 11곡으로 감소되었고, 또 각 곡의 가사와 음악도 단축되었다. 그리고 《보태평》의 임종궁 평조와 《정대업》의 남려궁 계면조가 각각 황종궁(黃鍾宮)의 평조와 황종궁 계면조로 고쳐졌다. 이같이 개혁된 《보태평》과 《정대업》의 악보는 《세조실록》에 게재되었다. 이 개혁된 종묘악이 비록 후세에 그 리듬은 변개되었지만 조선 말까지 약 500년간 계속되었다.[6]

각주편집

  1. 국가문화유산포털
  2. C-Sol 선법(旋法)
  3. C-La 선법
  4. 나무칼
  5. 나무창
  6. 한국음악/한국음악/한국음악사/조선 전기의 음악/보태평과 정대업, 《글로벌 세계 대백과》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본 문서에는 서울특별시에서 지식공유 프로젝트를 통해 퍼블릭 도메인으로 공개한 저작물을 기초로 작성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