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2품

종2품(從二品)은 조선시대 18품계 중 제4등급의 품계이다. 오늘날의 차관급에 해당한다.

내용편집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와 무산계를 제정할 때, 종2품 문산계의 상계는 가정대부(嘉靖大夫), 하계는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정하였다. 종2품 이상은 무산계가 없으며 이는 문존무비(文尊武卑)를 나타내는 것으로 무관이 2품 이상 올라갈 때는 문산계를 받았다. 한편, 문산계 상계의 가정대부는 1522년(중종 17) 가의대부(嘉義大夫)로 개칭되었다.[1]

종친계는 1443년(세종 25) 12월 중의대부(中義大夫)·정의대부(正義大夫)가 신설되고, 또 의빈계는 1444년에 자의대부(資義大夫)·순의대부(順義大夫)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종친계의 정의대부는 『속대전』에서 소의대부(昭義大夫)로 개칭되어 수록되었다.[2] 종친계와 의빈계는 1865년(고종 2)부터 문산계 종2품의 품계명을 사용하게 되었다.

한편 종2품 문무관 처의 직명은 정부인(貞夫人), 종친 처의 직명은 현부인(縣夫人)이라 하였다. 그런데 1865년부터 대군과 왕자의 부인을 제외하고는 종친의 처도 문무관의 처의 직명례에 따라 정부인이라고 하였다. 종2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는 군·위(尉)·동지사·참판·좌윤·우윤·대사헌·제조·제학·규장각제학·세자좌부빈객·세자우부빈객·부총관·훈련대장·금위대장·어영대장·수어사·총융사·좌포도대장·우포도대장·유수·관찰사·부윤·병마절도사·통어사·방어사·통제사·개성부관리영사·강화부진무영사·군문중군·금군별장 등이 있다.

종2품관에게는 1438년(세종 20)에 정비된 녹과(祿科)에 의거해 실직(實職)에 따라 일년에 네 차례에 걸쳐 모두 중미(中米) 12석, 조미(糙米) 37석, 전미(田米) 2석, 황두(黃豆) 17석, 소맥 8석, 주(紬) 5필, 정포(正布) 14필, 저화 8장을 지급하였다. 아울러 조선 초기에 과전 105결을 지급하다가 1466년(세조 12) 과전법이 혁파되자 직전 85결을 지급하였다. 그런데 직전법도 1556년(명종 11)에 완전히 폐지되면서, 『속대전』에는 매달 미 1석11두, 황두 1석5두를 지급하도록 규정되었다. 한편, 1894년 7월 갑오경장으로 관제개혁이 이루어질 때, 종2품의 품계는 가선대부로 단일화되었다. 그리고 종2품에서부터 정1품에 이르기까지를 칙임관이라 하였다. 도헌·협판·경무사 등의 종2품관에게는 120원의 월봉이 지급되었다.

품계편집

문관 품계명 : 가의대부, 가선대부

참고문헌편집

  • 태조실록
  • 세종실록
  • 중종실록
  • 고종실록
  • 경국대전
  • 속대전
  • 대전회통
  • 증보문헌비고

각주편집

  1. 당시 중국 명나라의 연호가 가정(嘉靖)이었기 때문에 바꾼 것이다.
  2. 조선 태조 임금의 시호 글자에 '정의(正義)'가 있었기 때문에 명의대부(明義大夫)로 바꾸었다가 효종 임금의 시호에 명의 글자가 들어가면서 다시 소의대부로 바꾼 것이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