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군
지평군(砥平郡)은 과거 경기도의 동북부에 위치한 행정구역이었다. 1908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근군과 합쳐져 양평군으로 개편되었다. 현재의 양평군 동부 지역인 용문면·지평면·양동면·청운면·단월면 일대에 해당한다. 당시 군의 중심지는 오늘날의 지평면이었다.
지명 유래
편집지평 유래는 이곳이 남한강 유역의 비교적 낮고 넓은 들을 차지하고 칼과 낫 농기구를 갈 수 있는 숫돌이 많이 생산이 데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숫돌 지((砥)넓은 뜰 숫돌 같이 평평한 평(平) 뜰이 있다 하여 지평이라 칭하였다 지평(砥平)
역사
편집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의 영토였다가, 고구려의 남하로 고구려에, 후에는 신라에 속했다.
- 삼국시대 지현현(砥峴縣)으로 칭하였다.
- 757년(신라 경덕왕 16년) 지평현(砥平縣)으로 개칭, 삭주군(朔州郡, 현 춘천시)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 1018년(고려 현종 9년) 광주목(廣州牧)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
- 1378년(고려 우왕 4년) 감무를 파견하였다.
- 1391년(고려 공양왕 3년)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 1413년(조선 태종 13년) 현감을 두었다.
- 1895년(조선 고종 32년) 춘천부 지평군으로 개편되었다.[1]
- 1896년(건양 원년) 경기도 지평군으로 개편되었다.[2]
- 1908년(융희 2년) 양근군과 통합하여 양평군으로 개편되었다.[3] 당시 군내면(郡內面), 남면(南面), 상서면(上西面), 하서면(下西面), 하북면(下北面), 상북면(上北面), 상동면(上東面), 하동면(下東面)의 8개면을 관할했다.
특징
편집고려시대에 이곳의 야별초 출신들이 몽골군을 격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는 평구도(平丘道)에 속하는 전곡역(田谷驛)과 백동역(白冬驛)이 있어 원주를 거쳐 영남지방으로 가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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