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남군 (1406년)
생애편집
숙의 이씨 소생으로, 남심의 딸 의령 남씨(宜寧 南氏)와 혼인하여 4남 1녀를 두었다. 1444년(세종 26) 명선대부 진남정(明善大夫鎭南正)에 봉해지고 종학유사(宗學有司)에 임명되었으며, 1453년(단종 1)에 정의(正義)로서 진남군에 봉해졌다. 1455년(세조 1)에 경서대의(經書大義)에 통하였다는 이유로 취학(就學)을 면제받았으며, 특명으로 형 덕천군 후생(厚生)과 더불어 종친례(宗親例)에 의거, 예궐시위(詣闕侍衛)하였다. 1466년, 종실 중에서 최고로 어질다고 하여 특명으로 사옹원·장원서 제조에 임명되었다. 1468년 아들 진례군(進禮君) 형(衡)이 경상좌도절도사가 되었는데 그 아들 여의(如意)가 어머니를 따라 전라도 광주에 가서 병이 났기 때문에 아들이 가서 보살피며 치료할 수 있도록 청하였다. 1470년(성종 1) 연로하여 고기를 먹을 것을 명받았으나[1] 같은 해에 죽으니 예에 따라 조회를 중지하고 예장(禮葬)하였다. 시호는 이간(夷簡)이다.
가족 관계편집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 ↑ 복상 중에는 고기를 먹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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