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정씨
진주 정씨(晉州 鄭氏)는 경상남도 진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정예(鄭藝), 정자우(鄭子友), 정장(鄭莊), 정헌(鄭櫶) 등 시조를 달리하는 네 계통이 있다.
![]() | |
관향 | 경상남도 진주시 |
---|---|
시조 | 정예(鄭藝), 정자우(鄭子友), 정장(鄭莊), 정헌(鄭櫶) |
집성촌 | 경상남도 진주시·남해군·하동군 전라남도 영광군·화순군·광양시 전라북도 고창군 충청남도 서산시 평안북도 녕변군 |
주요 인물 | 정온, 정이오, 정척, 정분, 정경세, 정일형, 정헌주, 정윤주, 정원식, 정일성, 정철기, 정균환, 정대철, 정홍원, 정화원, 정상용, 정병석, 정헌율, 정성호, 정미경 |
인구(2015년) | 324,521명 |
역사 편집
8정(鄭)을 편의상 크게 나눠 정예(鄭藝), 정자우(鄭子友), 정장(鄭莊), 정헌(鄭櫶)을 시조로 하는 4계통으로 크게 구분하는 것이 통설이다.
- 시조 정예(鄭藝)는 고려 통합 삼한벽상공신 광록대부(光祿大夫)·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 平章事)를 지냈다. 그 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문익공(文翼公) 정시양(鄭時陽)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계대(系代)하고 있다.
- 시조 정자우(鄭子友)는 호장(戶長)을 지냈다. 정자우의 6세손 정신열(鄭臣烈)이 고려 현종 때 진양부원군에 봉해졌고, 정자우의 8세손 정진경(鄭晋卿)은 중랑장을 지냈다.
- 시조 정장(鄭莊)은 고려 말엽에 통종 첨지중추원사를 지냈다. 정장의 4세손 정척(鄭陟)은 조선 태종 때 판윤을 지냈으며, 정장의 5세손 정성근(鄭誠謹)은 성종 때 직제학을 지냈다.
- 시조 정헌(鄭櫶)은 고려 말에 문하시랑 평장사로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정헌의 손자 정택(鄭澤)은 고려말 감찰어사(監察御使)를 지냈다.
본관 편집
진주(晉州)는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명이다. 본래 백제의 거렬성(居烈城)이다. 663년(문무왕 3) 신라에 편입되어 거타주(居陀州)가 설치되었으며, 685년(신문왕 5)에 청주(菁州)를 설치하였다가, 757년(경덕왕 16)에 강주도독부(康州都督府)로 개칭되었다가 혜공왕 때 청주(菁州)로 개칭되었다. 고려 건국 후 940년(태조 23)에 다시 강주로 환원되었고, 983년(성종 2)에 12목의 하나인 진주목으로 개편하였다. 995년(성종 14)에는 정해군(定海軍)이라 하고 절도사(節度使)를 두어 산남도(山南道)에 속하게 하였다. 1012년에 안무사(按撫使)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에 진주목으로 복구되었다. 1392년(태조 1) 조선 건국 후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로 승격하였다가 1402년(태종 2)에 진주목으로 환원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경상도 진주목의 토성(土姓)으로 정(鄭)·하(河)·강(姜)·소(蘇) 4성이 기록되어 있다.[1]
1896년 경상남도 진주군으로 개편되었다. 1939년 진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 진양군이 진주시에 통합되었다.
분파 편집
진주8정(晉州八鄭)으로 불렸던 진주정씨(晉州鄭氏)는 동성동본이면서도 세계를 달리하는 8계통으로 계대(繼代)를 이어왔다.
- 충장공파(忠莊公派) 시조 정예(鄭藝)는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다.
- 은열공파(殷烈公派) 시조 정자우(鄭子友)는 고려 때 호장(戶長)을 지냈다.
- 첨정공파(僉正公派) 시조 정중공(鄭仲문화시주ㅡㅇ 고려 때 첨정(僉正)을 지냈다.
- 공대공파(恭戴公派) 시조 정장(鄭莊)은 고려 때 첨추(僉樞)를 지냈다.
- 우곡공파(愚谷公派) 시조 정온(鄭溫)은 고려 때 대사간(大司諫)을 지냈다.
- 어사공파(御史公派) 시조 정택(鄭澤)은 고려 때 감찰어사(監察御使)를 지냈다.
- 지후공파(祗侯公派) 시조 정신(鄭侁)은 고려 때 지후(祗侯)를 지냈다.
- 내부사공파(內府事公派) 중조 정안교(鄭安校)는 고려 때 판내부사(判內府事)를 지냈다.
인물 편집
집성촌 편집
항렬자 편집
- 충장공파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
영(泳) 중(重) 찬(燦) |
口식(植) 口규(奎) 口감(鑑) |
헌(憲) 종(鍾) 일(一) |
口희(喜) 口원(源) 口인(仁) |
종(鐘) 삼(三) 휴(休) |
口순(淳) 口헌(憲) 口수(壽) |
근(根) 오(五) 길(吉) |
口묵(默) 口진(鎭) |
치(致) 호(浩) |
口선(善)석(碩) 口주(柱) |
해(海) 병(炳)원(元) |
口래(來) 口기(基) |
대(大) 석(錫) |
口태(泰) | 상(相) |
- 충장공 효자공파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
한(漢) 해(海) 제(濟) |
口식(植) 口모(模) 口채(采) |
연(然) 병(炳) 형(炯) |
口기(基) 口효(孝) 口달(達) |
종(鍾) 용(鎔) 진(鎭) |
口태(泰) 口호(浩) 口수(洙) |
상(相) 병(秉) 래(來) |
口현(炫) 口희(熹) 口혁(爀) |
재(在) 규(圭) 채(埰) |
口석(錫) 口호(鎬) 口일(鎰) |
영(永) 순(淳) 택(澤) |
口빈(彬) 口표(杓) 口근(根) |
경(炅) 영(煐) 찬(燦) |
인구 편집
- 2000년 74,777가구, 238,505명
- 2015년 진주 정씨 197,242명 + 진양 정씨 127,279명 = 324,52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