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함조

진함조(晉含祚, ? ~ 1030년 8월 28일)는 고려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현종이 국가에 대사(大事)가 있으면 매번 그에게 도참(圖讖)으로 질의(質疑)하였는데 마침내 술수(術數)로 크게 기용되어 관직이 내사시랑(內史侍郞)에 이르렀다.[1]

생애편집

1009년(목종 12) 김치양(金致陽)이 난을 일으켜 천추전(千秋殿)에 불이 났을 때 진함조는 태복(太卜)으로서 태의(太醫) 기정업(奇貞業), 태사(太史) 반희악(潘希渥), 재신(宰臣)인 참지정사(叅知政事) 유진(劉瑨), 중추원사(中樞院使) 최항(崔沆), 급사중(給事中) 채충순(蔡忠順) 등과 함께 은대(銀臺)에서 직숙(直宿)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2]

1018년(현종 9) 음력 8월 3일(양력 9월 14일) 호부상서(戶部尙書)로 임명되었다.[3]

1020년(현종 11) 음력 1월 11일(양력 2월 7일) 우복야 겸 도정사(右僕射 兼 都正使)가 되었다.[4]

1023년(현종 14) 음력 1월 17일(양력 2월 10일) 진함조(晋含祚)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올랐고, 주덕명(朱德明)은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로 임명되었다.[5]

1030년(현종 21) 음력 7월 27일(양력 8월 28일) 내사시랑(內史侍郞) 진함조(晋含祚)가 졸(卒)하였다. 《고려사》에 진함조는 술수(術數)를 익혀서 국가에 일이 있을 때마다 번번이 도참(圖讖)으로 대답하여 마침내 높이 등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6]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