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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편집

시조 김대유(金大猷)는 신라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예인 장군(將軍) 김순웅(金順雄)의 12세손으로 고려 말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봉해져,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고 관향(貫鄕)을 청풍(淸風)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1]

후손 문정공 김육(金堉)의 신도비에 의하면 선계는 신라에서부터 나왔는데, 신라 말 왕자가 청풍(淸風)으로 피하여 살았는데 이로써 그 후손들이 청풍군(淸風郡) 사람이 되었다고 하였다. 족보 서문에는 여러 차례 환란과 병란(兵亂)을 겪었면서 보첩(譜牒)을 잃어버려 선계를 상세히 알 수가 없다고 하였다.

청풍 김씨는 조선조(朝鮮朝)에서 문묘 종사 대현은 배출하지 못했지만 종묘배향공신을 4명이나 배출하였다. 과거 급제자는 문과 103명(장원 급제자 6명)이다.[2] 이밖에 상신(相臣 : 영의정·좌의정·우의정) 8명, 대제학(大提學) 3명, 왕비(王妃)가 2명이며 부자영상(父子領相,김육, 장남 김좌명(추증), 차남 김우명(추증), 김재로, 김치인)등이 나왔다. 특히 영의정 김육대동법을 창안해 잘못된 공납 제도로 신음하던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했다. 그의 손자 우의정 김석주대동법을 정착시키고 전국적으로 확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군역의 폐단도 시정했으며 스승 송시열과 함께 노론을 창립했다. 아울러 김우명의 딸 명성왕후현종의 정비이며 숙종의 친모이다. 김석주의 사촌이다. 효의왕후정조의 정비였다.

본관편집

청풍(淸風)충청북도 제천시(堤川市) 청풍면 일대의 지명이다. 고구려 때에는 사열이현(沙熱伊縣)이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청풍(淸風)으로 고쳐 내제군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 충주에 속하였다가, 1660년(현종 1) 부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청풍군이 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제천군에 병합시켜 읍내면이라 하였다가, 1917년 청풍면이 되었다.

계파편집

판봉상시사공파(判奉常寺事公派), 청로상장군공파(淸虜上將軍公派),영동정공파(令同正公派) 상위계파와 청평군파, 사재공파, 부사공파, 부위공파, 봉사공파, 지평공파, 현령공파, 목사공파, 평양파, 토산파, 고성파, 판서공파, 집의공파, 동정공파, 포천파, 이천파, 의주파, 영흥파, 만휴공파 등이 있다.

항렬자편집

  • 판봉상시사공파(判奉常時事公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