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라국(말라얄람어: സെരാർനാട്ടു 체라나드, 타밀어: சேரர்நாடு 체라나두), 약칭 체라(말라얄람어: ചേര, 타밀어: சேரர்)는 남인도의 말라바르 해안서고츠산맥의 여러 지역을 통일한 힌두 상감 시대의 왕조이다.[1][2]

체라국
சேரர்நாடு

기원전 3세기~서기 1102년
수도반치 무투르(전기)
마호다야푸람(후기)
정치
정치체제군주제
벤탄(왕)
105년 ~ 130년
130년 ~ 188년

우티얀 체랄라탄
네둔 체랄라탄
역사
 • 전기 체라기원전 3세기 ~ 서기 2세기
 • 콩구 체라6세기 ~ 9세기
 • 체라 페루말9세기 ~ 11세기
지리
위치타밀라캄
인문
공통어고대 타밀어, 고대 말라얄람어
데모님체라인
민족말라얄리인
코친 유대인
나스라니인
종교
국교힌두교
기타 종교자이나교
유대교
성 토마스 기독교
기타
현재 국가인도의 기 인도

체라국은 지리적으로 광범위한 인도양 해상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었다. 중동 및 그리스-로마 상인들과 향신료, 특히 후추를 교환한 것은 여러 자료에서 입증된다.[3] [4][5] 초기 역사 시대(기원전 2세기 – 기원전 3세기[5])의 체라인들은 케랄라의 쿠타나드에 원래 중심지를 두었으며 인도양 해안(케랄라)의 무치리(무지리스)와 톤디(틴디스)에 항구를 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은 남쪽의 알라푸자와 북쪽의 카사라고드 사이의 말라바르 해안 지역을 통치했다. 코임바토르 주변 지역은 기원전 1세기부터 4세기 사이의 상암 시기에 체라에 의해 지배되었고, 이는 말라바르 해안과 타밀나두 사이의 주요 무역로인 팔라크카드산맥의 동쪽 입구 역할을 했다.[6] 그러나 오늘날 케랄라주의 남부 지역(티루바난타푸람과 남부 알라푸자 사이의 해안 지대)은 마두라이판디아 왕조와 더 관련이 있는 아이 왕조의 지배하에 있었다.[7]

역사적으로 팔라바 이전의 초기 체라 정치는 주로 '목축-농경 겸업'과 '약탈적 정치'에 의해 형성된 '친족 기반 재분배 경제'로 묘사되곤 한다.[5][8] 오래된 타밀 브라흐미 동굴 라벨에 새겨진 일람 카둥고는 페룸 카둔고의 아들이자 이룸포라이 일족의 코 아탄 체랄의 손자로 묘사되어 있다.[9][10] 브라흐미 전설이 새겨진 초상화 동전에는 여러 체라 이름이 나와 있으며,[11] 체라의 상징인 활과 화살이 뒷면에 묘사되어 있다.[11] 초기 상감 문학의 선집은 초기 체라에 대한 정보의 주요 자료이다.[2] 센굿투반은 상감 서사시 실라파티카람의 주요 여성 인물인 칸나키를 둘러싼 전승으로 유명하다.[3] [12] 상감 시대가 끝난 후 기원전 3~5세기경에는 체라족의 세력이 상당히 쇠퇴한 시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3]

콩구나두의 체라 왕조는 중세 초기에 오늘날의 케랄라주 동부와 타밀나두주 서부의 불과 몇 킬로미터를 지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2] 현재 중앙 케랄라와 콩구 체라족은 서기 8~9세기경에 분리되어 체라 페루말 왕국과 콩구 체라 왕국(서기 9~12세기경)을 형성했다.[12] 체라 통치자들의 다양한 분파들 사이의 관계의 정확한 성격은 불분명하다. 그 후, 오늘날의 케랄라주와 콩구나두의 일부 지역은 자치권을 갖게 되었다.[12] 중세 인도 남부의 주요 왕조인 찰루키아, 팔라바, 판디아, 라슈트라쿠타, 촐라 왕조가 콩구 체라를 정복한 것으로 보인다. 콩구 체라는 기원전 10~11세기경에 판디아 정치 체제에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페루말 왕국이 해체된 후에도 왕실 비문과 사원 보조금, 특히 케랄라 외부에서 내려온 비문은 이 나라와 국민을 계속해서 "체라 또는 케랄라"로 지칭했다.[13]

케랄라 남부의 콜람 항구에 기반을 둔 베나드(베나드 체라 또는 쿨라세카라)의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페루말족이라고 주장했다.[13][14] 체라나드는 캘리컷의 자모린 왕국에 있던 옛 지방의 이름이기도 했는데, 오늘날의 티루랑가디와 말라푸람구의 티루르 탈루크들 포함하고 있었다.[15] 나중에 말라바르가 영국령 인도의 지배를 받게 되었을 때 이 지역은 말라바르구의 탈루크가 되었다.[15][16] 체라나드 탈루크의 소재지는 티루랑가디 마을이었다.[15][16] 훗날 체라나드 탈루크는 에라나드 탈루크와 통폐합되었다.[16]

어원 편집

'체라(Chera)' 혹은 그 변형인 '케랄라푸타스(Keralaputas)'는 그와 관련된 통치 가문과 국가를 의미한다.[17]

'체라'의 어원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상당한 추측을 야기하는 논쟁거리이다. 한 학설은 체라가 '체랄(Cheral)'에서 나온 것이며, 체랄은 '산의 내리막길'을 뜻하는 타밀어(Tamil) '차랄(Charal)'의 변형이라고 제시하면서, 케랄라(Kerala)의 산악 지형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18] 다른 학설은 '모래'를 뜻하는 'cher'와 '지역'을 뜻하는 'alam'에서 유래한 'Cheralam', 말그대로 '질퍽한 땅'에서 나왔다고 본다.[18] 이러한 추정 외에도, 역사 연구에서 여러 이론들이 존재한다.[19][18]

고대 타밀 이외의 자료에서, 체라 왕조는 다양한 이름으로 지칭되었다. 체라는 기원전 3세기 작성된 아쇼카왕(Ashoka)의 팔리어(Pali) 칙령에서 '케달라푸토(Kedalaputo)' 혹은 산스크리트어로는 '케랄라푸트라(KeralaPutra)'라고 지칭된다.[20] 대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와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y)는 체라를 각각 '카엘로보트로스(Kaelobotros)'와 '케로보트로스(Kerobottros)'라고 칭했으나, 그리스-로마 교역 지도인 『에리트레아 항해지(Periplus Maris Erythraei)』에서는 체라를 '케프로보트라스(Keprobotras)'라고 했다. 이 모든 그리스-로마 이름은 북인도(northern India)와의 관계를 통해 전해졌을 '케달라푸토(KedalaPuto)/케랄라푸트라(KeralaPutra)'의 변형임이 입증된다.[12][21]

'체랄람디부(Cheralamdivu)' 혹은 '체란 티부(Cheran Tivu)'와 같은 어원인 단어들은 '체라 왕들의 섬(island of the Chera kings)'을 의미하며, 스리랑카(Sri Lanka) 고전 타밀어 이름으로 '체라'에서 유래한 것이다.[22]

역사 편집

기원전 3세기경 건국된 체라는 촐라, 판디아 등의 이웃 왕국들과 자주 충돌하였다. 때로는 결혼 동맹을 맺음으로써 화친을 모색하지만 얼마 안가 다시 적대 관계로 돌아서는 등의 상황이 반복되다 서기 3세기경 칼라브라 왕국에게 멸망했으며, 이후 9세기에 다시 부활했다가 1102년에 완전히 멸망하였다.

각주 편집

  1. Karashima 2014.
  2. Zvelebil 1973.
  3. Thapar 2018.
  4. Edward Balfour 1871.
  5. Gurukkal 2015.
  6. Subramanian, T. S (2007년 1월 28일). “Roman connection in Tamil Nadu”. 《The Hindu》. 2013년 9월 1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10월 28일에 확인함. 
  7. KA Nilakanta Sastri
  8. Gurukkal 2002.
  9. Pletcher 2018.
  10. Veluthat 2018.
  11. Majumdar 2016.
  12. Narayanan 2013.
  13. Menon 2007.
  14. Thapar 2004.
  15. Logan, William (2010). 《Malabar Manual (Volume-I)》. New Delhi: Asian Educational Services. 631–666쪽. ISBN 9788120604476. 
  16. C.A., Innes (1908). 《Madras District Gazetteers: Malabar and Anjengo》. Government Press, Madras. 373쪽. 2020년 9월 30일에 확인함. 
  17. Veluthat 2018, 13–31쪽.
  18. Menon 2007, 21쪽: Citing K. Achyutha Menon, Ancient Kerala: Studies in Its History and Culture, pp. 7
  19. Menon 2011, 15쪽: 메논(Menon)에 의하면, '추가된' 혹은 '수복된' 땅 역시 케랄라 형성에 관한 파라슈라마(Parashurama)의 신화를 보완한다. 그 안에서, 비슈누(Vishnu)의 화신 중 하나인 파라슈라마는 고카르남(Gokarnam)에서 칸야쿠마리(Kanyakumari)로 (혹은 그 반대방향으로) 바다를 가로 질러 도끼를 던졌고, 도끼가 꽂힌 땅까지 물이 물러나면서 케랄라가 생겼다.
  20. Keay 2001.
  21. Caldwell 1998, 92쪽.
  22. Ramachandran 1991, 34쪽: "Sri Lanka was known as "Cerantivu" (island of the Cera kings) in those days. The seal has two lines. The line above contains three signs in Indus script and the line below contains three alphabets in the ancient Tamil script known as Tam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