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고려)

추적(秋適, 1246년1317년)은 고려국 민부상서·고려국 예문관 대제학 등을 지낸 고려의 문신, 정치인이다. 본관은 추계(秋溪). 자는 관중(慣中), 호는 노당(露堂)이다.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민부 상서(民部尙書),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시랑(侍郞) 겸 국학 교수(國學敎授)로 재임할 때 《명심보감》을 집필하였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며,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인흥서원(仁興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묘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다.

추적
秋適
고려국 예문관 예하 안동서기
(高麗國 藝文館 隸下 安東書記)
임기 1278년 ~ 1281년
군주 고려 충렬왕
고려국 예문관 예하 직사관
(高麗國 藝文館 隸下 直史館)
임기 1281년 ~ 1282년
군주 고려 충렬왕
고려국 예문관 예하 좌사간
(高麗國 藝文館 隸下 左司諫)
임기 1282년 ~ 1284년
군주 고려 충렬왕
고려국 민부상서
(高麗國 民部尙書)
임기 1301년 ~ 1303년
군주 고려 충렬왕
고려국 예문관 대제학
(高麗國 藝文館 大提學)
임기 1303년 ~ 1308년
군주 고려 충렬왕
고려국 예문관 시랑 겸 국학교수
(高麗國 藝文館 侍郞 兼 國學敎授)
임기 1308년 ~ 1311년
군주 고려 충렬왕
신상정보
출생일 1246년
출생지 고려 양광도 양지현
(現 대한민국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사망일 1317년 (향년 72세)
사망지 고려 개경
본관 추계(秋溪)
경력 문관(文官) 겸 정치인
정당 무소속
부모 아버지 추영수(秋永壽)
자녀 슬하 2남
친인척 조부 추엽(秋饁)
별명 자(字) 관중(慣中)
호(號) 노당(露堂)
시호(諡號) 문헌(文憲)
종교 유교

생애편집

노당(露堂) 추적 선생은 예부 상서, 예문관 대제학, 문하시중을 역임한 추영수(秋永壽)의 아들로 고려 고종 33년(1246년) 양광도에서 태어났다.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추적(秋適)은 성품이 활달하여 얽매임이 없었다고 한다.

추적은 고려 충렬왕 초(1278년) 과거에 급제하여 안동서기(安東書記), 직사관(直史館)을 거쳐 좌사간(左司諫)에 올랐다.

1298년(충렬왕 24) 환관 황석량(黃石良)이 권세를 이용하여, 황석량의 고향인 합덕부곡(合德部曲 : 현재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읍)을 현(縣)으로 승격시키려고 할 때, 추적이 문안에 서명을 거부하자 황석량은 내수(內竪) 석천보(石天補)·김광연(金光衍)과 함께 기회를 노려 추적을 참소하니 왕이 형구를 채워 순마소(巡馬所)에 수감하게 했다. 압송하는 사람이 추적더러, 원한다면 골목길로 갈 수도 있다고 후의를 보였으나 추적은 거절했다. “죄를 저지른 자를 모두 해당 관청으로 보낼 때 대궐에서 형구를 채운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으니 내가 큰 거리를 지나면서 나라 사람들에게 보여야 한다. 간관(諫官)으로서 형구를 차는 것 또한 영광이니 어찌 아녀자가 거리에서 얼굴 가리는 것처럼 행동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추적은 뒤에 풀려나와 시랑으로서 북계 용주(龍州)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충렬왕 말년 안향(安珦)에 의하여 발탁되어 시랑(侍郞) 겸 국학 교수(國學敎授)에 이르러 이성(李晟)·최원충(崔元冲) 등과 함께 7품 이하의 관리, 혹은 생원들에 대한 유학교육을 담당하였다. 안향(安珦)과 더불어 정주학(程朱學)의 도입을 꾀하였다. 시랑 국학교수로 재임할 때 교양서인 《명심보감》을 편찬하였다.

추적은 후에 민부상서(民部尙書),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을 역임하고 치사(致仕)하였다.[1]

상훈과 추모편집

조선 순조 35년(1825년) 10월 팔도 유림(儒林)과 추적의 20대손인 추세문(秋世文)이 뜻을 모아 창건한 대구의 인흥서원(仁興書院)에 배향되었다.[2] 조선 고종 1년(1864년) 홍문관제학을 역임한 조선 후기의 문신 해장 신석우(申錫愚, 1805년~1865년)가 비문을 지어 추적 신도비(秋適神道裨)를 건립하였다.[3]

저서편집

가계편집

추적의 할아버지는 추계 추씨 시조 추엽(秋饁)이다. 그는 중국 남송(南宋) 고종 소흥(紹興) 11년(서기 1141년) 문과에 급제했으며 관직이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고려에 동래하였다. 아버지 추영수는 1209년(고려 희종 5년)에 진사시(進士試)에 장원 급제하고,[4] 1213년(강종 2)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예부 상서, 예문관 대제학, 문하시중에 이르렀다. 손자인 추유(秋濡)가 중국으로 귀환하여 명나라 개국공신이 되고, 벼슬이 호부상서(戶部尙書)에 이르렀다. 추적의 7대손이자 중국 귀주성 오현군(五賢郡) 출신의 추수경(秋水鏡)이 1591년(선조 24) 명나라의 무강자사(武康刺史)가 되었으며,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여송(李如松)의 부장(副將)으로 조선에 파병되어 전공을 세운 후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에 추봉되었다.[5]

  • 할아버지 : 추엽(秋饁)
    • 아버지: 추영수(秋永壽, 1198년 ~ 1259년)
      • 장남 : 추진(秋震, 1296년 ∼ 1368년)
        • 손자 : 추유(秋濡, 1345년 ∼ 1404년)
        • 손자 : 추협(秋浹, 1348년 ∼ 1409년)
      • 차남 : 추뢰(秋雷, 1298년 ∼ 1341년)
        • 손자 : 추형(秋瀅, 1315년 ∼ 1400년)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