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칠원 제씨(漆原 諸氏)는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칠원 제씨 (漆原 諸氏)
관향경상남도 함안군 칠원
시조원조: 갈영(葛嬰)
단성시조: 남양군 제갈홍(諸葛泓)
중시조제문유 (諸文儒)
집성촌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경상남도 고성군
전라남도 보성군 율어면
주요 인물제말, 제홍록, 제만춘, 제경욱, 제정구, 제정부, 제해만, 제종길, 제성호, 제춘모
인구(2015년)20,095명

촉나라 승상 제갈량(諸葛亮)의 18대조 [[갈영]진나라](葛嬰)을 시조로 한다. 원조 갈영의 8세손 제갈풍. 중시조 제문유(諸文儒)는 고려 충선왕 때 벽상일등공신(壁上一等功臣)이 되고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으며 구산부원군(龜山府院君)에 봉해졌다.

기원편집

중국 진나라 갈영(葛嬰) 장군을 시조로 한다. 갈영(葛嬰)의 18세손 제갈량(諸葛亮)이 촉나라 승상을 지냈다.

입국조는 제갈충이다. 제갈량의 증손 제갈충(諸葛忠)이 촉나라가 망하고 아버지와 형이 순절하자 신라 미추왕 때 13세의 나이로 신라로 망명하여 지리산 아래에서 살았다고 한다. 고려 고종갈영(葛嬰)의 34세손 고려 현종 때 제갈홍(諸葛泓)과 제갈형(諸葛瀅) 형제 중 형인 제갈홍은 제씨(諸氏)로 하여 남양군(南陽君)에 봉해지고, 아우 제갈형갈씨(葛氏)로 하여 낭야군에 봉해지면서 성이 나뉘었다.

역사편집

칠원 제씨(漆原諸氏)는 고려시대 제문유(諸文儒)를 중시조로 삼아 기세(起世)하고 있다. 제문유(諸文儒)의 자는 공화(公和), 호는 삼성(三省)이다. 고려 충숙왕 7년 상왕인 충선왕이 토번(吐蕃)(티베트)으로 귀향갈 때 호종(扈從)했다. 상왕이 환국 뒤인 충숙왕 17년에 그 공으로 벽상일등공신(壁上一等功臣)이 되고 평장사(平章事)를 배(排)하였으며, 구산부원군(龜山府院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구산은 칠원(漆原)의 옛 지명이다.(구산현.현재 창원시 구산면이 아닌가 생각함.칠원현이 본현이고, 구산현이 속현이라 본현의 칠원을 관향으로 하지않았나 생각함) 시조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우두산에 있으며, 매년 음력 9월 9일 숙청사(潚淸詞)에서 석채례를 제향한다.

분파편집

판서공파(判書公派). 참봉공파(參奉公派). 찰방공파(察訪公派). 별좌공파(別座公派.) 충의공봉사손장령공파(忠毅公奉祀孫掌令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학포공파(學圃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 판관공파(判官公派). 부사공파(府使公派). 선교랑파(宣敎郞派). 정헌공파(靜軒公派). 만성공파(晩惺公派).

분관편집

  • 고성 제씨(固城 諸氏) 입고성조 제철손. 사실 고성 제씨는 없고 모두 칠원 제씨.

인물편집

  • 제말(諸沫, ? ∼ 1592년) : 고성(固城) 출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웅천(熊川)·김해·정암(鼎巖) 등지에서 대승하였다.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조정에 알려져 성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그 뒤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조 때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 제홍록(諸弘祿, 1558년 ∼ 1597년) : 자는 경행(景行), 호는 고봉(高峰). 아버지는 참판 호(灝)이다. 1581년(조선 선조 14) 무과에 급제, 수문장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성에서 숙부 말(沫)을 따라 의거, 김해·웅천(熊川)·정암(鼎巖) 등지에서 용전, 명성이 이순신(李舜臣)에게 알려져 그 막하가 되었고, 벼슬이 훈련부정에 이르렀다. 그는 충성과 용기가 대단하여 소수의 정예로 많은 적을 격퇴, 이순신의 진중에서 전공을 크게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에 포위된 진주성을 지원하기 위하여 출전 중 불시에 적을 만나 적장을 죽이고 전사하였다. 정조 때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정각을 세워 제사지내도록 하였다.
  • 제만춘(諸萬春) : 고성 출신. 임진왜란 때 경상우수영군교(慶尙右水營軍校)로 우수사 원균(元均)의 명에 의하여 소선(小船)을 타고 노군(櫓軍) 10여명과 함께 웅천(熊川)의 적세를 탐지하고 영등포로 돌아오다가 포로가 되었다. 이듬해 7월 야밤에 성석동(成石同)·박검손(朴檢孫) 등 12명과 모의하여 탈출, 육기도(六岐島 동래를 거쳐 전라우수사 이순신의 진영에 도착, 조정으로부터 죄가 논의되었으나 용서받고 이순신을 도와 적정탐지에 공을 세웠다. 그뒤 대솔군관(帶率軍官)을 이어 군관에 영속되어, 노령에 이르기까지 통영에서 관료(官料)를 받았다.
  • 제경욱(諸景彧, 1761년 1월 5일(음력 1760년 11월 30일) ∼ 1812년 2월 27일(음력 1월 15일)) : 제말(諸沫)의 6세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 운총만호(雲寵萬戶)가 되어 군기(軍器)를 수리하는 등 군비에 만전을 기하였으며, 해서우후(海西虞候)가 되어 군비를 쇄신할 때 군민(軍民)의 폐를 끼치지 않았다.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관서절도영(關西節度營)의 청북소모장(淸北召募將)이 되어 절도사 이해우(李海愚)의 휘하병 200명을 인솔, 청천강을 건너가 많은 군병을 모집하였다. 정주에 이르러 현인복(玄仁福)과 더불어 선봉이 되어 정주성 남문을 포격하는 한편, 큰 도끼를 들고 성문을 찍어 성문이 거의 떨어지게 되었으나, 적이 일제히 포를 쏘며 시석(矢石)을 퍼붓자 관군이 모두 달아나게 되었다. 이 모습을 보고 관군의 기율이 해이한 것을 개탄하면서 되돌아와, 신도진수군첨절제사 겸 방어장(薪島鎭水軍僉節制使兼防禦將)에 임명되어 다시 선봉으로 남문에 육박하였을 때, 홍경래군의 일제사격으로 전사하였다. 삼도수군통제사에 추증되고, 난이 평정된 날에 칠의사사(七義士祠)의 단을 쌓아 제사 지내졌으며, 정주의 오봉산(五峯山)에 표절사(表節祠)를 세워 제향되었다. 이 때 현판이 하사되기도 하였다. 시호는 충양(忠襄)이다.
  • 제정구(諸廷坵. 1944년 ~ 1999년) : 제14·15대 국회의원
  • 제종길(諸淙吉, 1955년 ~ ) : 제17대 국회의원. 제13대 안산시장.
  • 제정부(諸廷富. 1956년 ~ ) : 제28대 법제처장
  • 제춘모(諸春模. 1982년 ~ ) : 야구선수

과거 급제자편집

무과

제말(諸沫) 제몽순(諸夢舜) 제한위(諸漢緯)

생원시

제경창(諸慶昌)

음관

제안국(諸安國) 제한위(諸漢緯)

인구편집

  • 2000년 칠원 제씨 16,818명, 고성 제씨 1,620명
  • 2015년 칠원 제씨 20,095명

족보편집

  • 경진보(순조 20년, 1820년)
  • 경미보(고종 20년, 1883년)
  • 을축보(乙丑譜, 1925년)
  • 정묘보(1987년)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