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이탈리아어: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karaˈvaddʒo][*], 1573년 9월 29일 – 1610년 7월 18일)는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의 화가이다. 태어난 마을의 이름인 카라바조(Caravaggio)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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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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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사망 | |
직업 | 화가 |
스승 | Simone Peterzano |
후원자 | Francesco Maria del Monte |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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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per at Emmaus, Amor Vincit Omnia, Medusa, Basket of Fruit, The Fortune Teller, The Seven Works of Mercy, Young Sick Bacchus, Bacchus, Annunciation, Judith Beheading Holofernes | |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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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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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은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이며 위험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1600년 로마 미술계에 갑자기 등단했다. 그 이후 그는 어떠한 수입이나 후원자도 없었으나 그는 극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다가 1606년 5월 29일 테니스 경기도중 말다툼 끝에 상대인 젊은 남자를 살해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현상금이 걸린 채 로마를 도망쳐 나왔다. 이후에도 1608년 몰타에서 말다툼에, 1609년에 나폴리에서 또 다른 말다툼에 개입되었다. 이듬 해인 1610년에 그의 10여 년간의 활동을 뒤로한 채 포르토 에콜레(Porto Ecole)에서 사망하였다.
사망 후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20세기에 들어서 재발견되어 거장으로 재평가되었다.[출처 필요]
영향편집
카라바조에서 받은 영향은 그가 로마를 떠난 1607년경에서 1620년경까지, 그 고장에 있으면서 강한 명암의 대비 때문에 테니브러스(tenebrous=暗黑派)라고 불리던 화가들에게 그 자취가 가장 뚜렷이 남아 있어 그 중 독일인 엘스하이머, 프랑스인 발랭탱, 네덜란드인 테르브르흐·혼토르스트 등이 1620년 전후까지 알프스 북쪽에 이 화풍을 이식하였다. 이탈리아인으로서는 로마에 있던 만프레디(1580∼1620), 사라체니(1585∼1652) 특히, 오라치오 젠틸레스키(1565∼1638) 등이 직접 이 화풍을 계승하였다.[1]
주요 작품편집
각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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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카라바조파〉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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