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 최씨

탐진 최씨(耽津 崔氏)는 전라남도 강진군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탐진 최씨 (耽津 崔氏)
관향전라남도 강진군
시조최사전(崔思全)
집성촌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월동
전라남도 강진군, 담양군,옥천군, 영암군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충청남도 예산군, 청양군
경기도 화성시 우정면
주요 인물최상, 최부, 최홍전, 최흥종, 최은희, 최정기, 최길선, 최순식, 최장현, 최민호, 최성, 최영호, 최진기, 최성용
인구(2015년)92,341명

역사편집

탐진최씨(耽津崔氏)의 시조(始祖)인 최사전(崔思全1067~1139)은 고려 때 상약원직장(尙藥院直長)을 역임한 최철(崔哲)의 손자이며, 장작감(將作監)을 역임한 최정(崔靖)의 아들이다. 최사전은 의술로 조정에 진출하였으나 고려 인종 때 이자겸(李資謙)을 제거한 공을 인정받아 공신에 책록되었고,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낸 후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으로 수태위(守太尉),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랐다.[1]

최사전의 아들 최변(崔弁)과 최열(崔烈) 이후의 기록이 전란에 실전되어 각 파 중시조들의 세거지를 따서 그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분파편집

  • 효종공파(孝宗公派)(金浦)
  • 부호군파(副護軍公派)(莘里)
  • 도정공파(都正公派(三槐)
  • 만호공파(萬戶公派)(新平)
  • 임한공파(臨漢公派)(陽城)
  • 정민공파(貞愍公派)(高陽)
  • 청양예산판서공파
  • 강진금천파(康津錦川派)
  • 강진이본파
  • 보성조내파(寶城兆內派)
  • 광주성서파(光州城西派)
  • 금남파(錦南派)
  • 만경율리파(萬頃栗里派)
  • 일산당산파
  • 보작파
  • 손암공파(遜菴公派)

본관편집

탐진(耽津)은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의 옛 지명이다. 본래 백제의 동음현(冬音縣)이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탐진현으로 고쳐서 양무군(陽武郡)에 예속시켰다. 고려에서 영암(靈岩)에 속하였다가 장흥(長興)으로 이속시켰다. 1417년(태종 17)에 병마도절제사영을 도강현(道康縣) 소재지에 옮기고 두 현을 합쳐 강진(康津)으로 개칭하였고 치소는 탐진으로 정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탐진(耽津)의 성(姓)으로 최(崔)·(曺)·유(兪)·(安)·정(鄭)·하(河) 6성(姓)이 기록되어 있다. 1896년 전라남도 강진군으로 개편하였다.

인물편집

  • 최상(崔尙) : 1035년(고려 정종(靖宗) 1년) 과거에 급제하여 1056년(문종 10) 예부낭중으로 칠도순무사(七道巡撫使)로 파견되었다. 1068년(문종 22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이르렀다.[2]
  • 최부(崔溥, 1454년 ~ 1504년) : 1482년 친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홍문관 부교리 등 여러 관직을 거쳐 전적(典籍)으로 있을 때 《동국통감(東國通鑑)》 편찬에 참여하였다. 1486년 문과중시에 아원(亞元)으로 급제하여 사헌부감찰(監察)·홍문관 부교리(副校理) 등을 지냈다. 1487년 추쇄경차관으로 제주에 갔다가 이듬해 부친상을 당해 돌아오던 중 풍랑으로 명나라 태주부(台州府) 임해현(臨海縣)에 표류했다. 반년 만에 한양에 돌아와 왕명을 받고 《표해록(漂海錄)》를 저술하였다.
  • 최민호(崔旼鎬, 1956년 ~ ) : 제5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제3대 국무총리 비서실장.
  • 최성(崔星, 1963년 ~ ) : 제17대 국회의원. 제8·9대 경기도 고양시장.
  • 최영호(崔榮鎬, 1965년 ~ ) : 제7·8대 광주광역시 남구청장

항렬자편집

  • 강진금천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