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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군(泰山郡)은 중국의 옛 이다.

전한편집

원래는 전한의 제후국 제나라의 영토로, 제 도혜왕에게 제나라를 봉할 당시에는 제남군제북군의 일부였다. 한서 지리지 주석에서는 고제가 설치했다 하나 왕국유는 《사기》 〈봉선서〉에서 제북왕(당시의 제북왕은 식왕 유호)이 천자에게 봉선을 위해 자기 영내(제북국)의 태산과 그 주변을 바쳤다는 구절[1]을 들어 이때에 비로소 설치됐다고 했다. 주진학도 같은 근거로 원수 원년(기원전 122년)에 봉선을 위해 제북왕에게서 받은 태산 주변 땅과 제남군의 남부를 합쳐 태산군을 신설했다고 했다.[2] 이후 기원전 87년에 제북왕 유관이 난행 때문에 자결을 명받고 제북나라가 폐해지면서 남은 제북나라의 속현을 흡수했다.[3]

연주자사부에 속했다. 원시 2년(2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17만 2816호, 72만 6604명이 있었다. 아래의 속현 목록은 한서 지리지를 따른 것으로 원연 · 수화 지간(기원전 8년)의 현황으로 여겨진다. 치소는 봉고현으로 한서 〈지리지〉의 일반적 서술 경향과 《강수주》로 입증된다. 오늘날의 타이안 시 중부·동부 일대를 중심으로 하며 지난 시 서남, 라이우 시, 쯔보 시 이위안 현 근처, 린이 시 멍인 현 근처 일대도 포함한다.

현명 한자 대략적 위치 비고
봉고현 奉高縣 타이안시 무제원봉 2년(기원전 109년)에 조성한 명당(明堂)이 있다. 공관(工官)이 있다.
박현 博縣 타이안시 남동 태산묘(泰山廟)가 있고, 서북에 대산(岱山)이 있다.
치현 茬縣 지난시 창칭구 남동 응소에 따르면 치산(茬山)이 동북에 있다.
노현 盧縣 지난시 창칭구 남서 도위가 다스린다. 제북왕의 도읍이었다.
비성현 肥成縣 타이안시 페이청시 응소에 따르면 비 자작국이었다.
이구현 [4]丘縣 타이안시 페이청시 남 수향(隧鄕)이 있는데 옛 수(隧)나라다.
강현 剛縣 타이안시 닝양현 옛 천(闡)이다.
시후국 柴侯國 타이안시 신타이시
갑현 蓋縣 쯔보시 이위안현 임악산(臨樂山)에서 수수(洙水)가 발원해 지수(池水 - 사수泗水의 오기로 보임)로 흘러들어간다.

또 기수(沂水)가 남쪽에서 하비에 이르러 사수로 들어가는데, 네 군(태산·낭야·성양·동해)을 지나 6백 리를 다니며 청주를 적신다.

양보현 梁父縣 타이안시 남동
동평양현 東平陽縣 신타이시
남무양현 南武陽縣 린이시 핑위현 관석산(冠石山)이 있어 치수(治水)가 흘러나와 남으로 하비에 이르러 사수로 들어가는데, 두 군을 지나 940리를 다닌다.
내무현 萊蕪縣 쯔보시 남 원산(原山)에서 치수(甾水)가 나와서 동으로 박창(博昌)에 이르러 제수(泲水)로 들어가 유주를 적신다.
거평현 鉅平縣 타이안시 남 정정산사(亭亭山祠)가 있다.
영현 嬴縣 라이우시 북서 철관이 있다.
모현 牟縣 라이우시 동 옛 부용국이다.
몽음현 蒙陰縣 린이시 멍인현 《우공》(禹貢)의 몽산(蒙山)이 서남쪽에 있고, 사당이 있다.

전유국(顓臾國)이 몽산 아래에 있다.

화현 華縣 린이시 페이현
영양후국 寧陽侯國 타이안시 닝양현
승구현 [5]丘縣 지닝시 옌저우구
부양후국 富陽侯國 타이안시 둥핑현
도산후국 桃山侯國 타이안시 닝양현 북동
도향후국 桃鄕侯國 지닝시 원상현
식후국 式侯國 ?

[6]

신나라편집

다음 현의 이름을 고쳤다.

전한
강(剛) 유(柔)
남무양(南武陽) 환선(桓宣)
몽음(蒙陰) 몽은(蒙恩)
화(華) 익음(翼陰)
영양(寧陽) 영순(寧順)
도산(桃山) 포로(裒魯)
도향(桃鄕) 장정(鄣亭)

태수편집

전한편집

후한편집

조위편집

  • 제갈서(255년 당시)
  • 상시(常時, ? ~ 258년)

각주편집

  1. 사마천: 《사기》 권28 봉선서 : 於是濟北王以為天子且封禪,乃上書獻太山及其旁邑,天子以他縣償之。
  2. 周振鹤. 《西汉政区地理》 [서한정구지리]. 人民出版社. 
  3. 반고: 《한서》 권44 회남형산제북왕전제14
  4. 蛇로도 쓸 수 있다.
  5. 한서의 원 표기는 椉으로 乘의 이체자다.
  6. 반고: 《한서》 권28 상 지리지제8 상
  7. 반고: 《한서》 권78 양호주매운전
  8. 반고: 《한서》 권77 갑제갈유정손무장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