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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박씨(泰仁 朴氏)는 전라북도 태인(泰仁)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밀양 박씨에서 분적 되었으며, 혹칭 태산 박씨(泰山 朴氏)라고도 한다. 태산(泰山)은 태인(泰仁)의 별칭(別稱)이다. 시조 박언상(朴彦尙)은 고려 때 밀직사 부사(密直司 副使)를 지냈다.

목차

역사편집

≪증보문헌비고≫, ≪조선씨족통보≫등의 문헌에 의하면 시조 박언상(朴彦尙)은 고려 문종때 밀직사 부사(密直司 副使)를 지냈다.[1] 그의 7세손 박거인(朴居仁)이 고려말 화를 입어 인의(仁義. 현재의 태인)로 유배되어 그곳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는데, 그의 증손 충무시위사(忠武侍衛司) 대호군(大護軍) '박연생'이 1455년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개탄하고 그들을 피해 고향으로 내려와 아버지 박덕명(朴德明)을 모시고 전라도 장성현 소곡(小谷. 아치실)으로 은거(隱居)하면서 '박거인'(朴居仁)을 1세조로 하고, 관향도 밀양(密陽)에서 태산(泰山. 현재의 태인)으로 개관(改貫)하였다고 한다.[2]

이후 '박연생'은 사위 돈암(遯菴) 이석손(李碩孫)이 살고 있는 담양군 월산면 월산(月山)으로 은거(隱居)하여 단종(端宗)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3]

관향 변경편집

  • 태산(泰山. 현재의 태인)으로 개칭 : 1455년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돈재(遯齋) '박연생'(朴衍生)이 관향을 태산으로 개칭하였다.
  • 태인 박씨 족보 발간 : 1687년(숙종 13년) 박연생의 8세손 매헌(梅軒) '박행중'(朴行重)의 서문(序文)으로 태인 박씨(泰仁 朴氏) 족보가 처음 발간되었으며, 이때 '박거인'의 5세손 박현손(朴賢孫)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였다.[4]
  • 밀성(密城)으로 복관 : 본관을 태인(泰仁)으로 개칭한지 370여년이 지난 1831년(순조 31년) 박연생의 증손 박종원의 차자 정혜공 박수량(朴守良)의 9세손 박규혁(朴圭爀)등이 주축이 되어 본관을 태인(泰仁)에서 밀성(密城)으로 복관(復貫)하여 달라는 상소문을 예조(禮曹)에 올려 복관하였다.
  • 태인(泰仁)으로 존치 : 박연생의 증손 박종원의 장자 박수온(朴守溫)의 후손들 중 백우당(栢友堂) 박상의(朴尙義) 후손들을 중심으로 한 후손들은 조상의 뜻을 받들어 현재에도 여전히 본관을 태인(泰仁)으로 사용하고 있다.
  • 현재 : 박연생의 후손들 중 복관(復貫) 상소파(上疏派)인 <밀성박씨 돈재공파(密城朴氏 遯齋公派)>와 잔류파(殘留派)인 <태인 박씨(泰仁 朴氏)>가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밀성박씨 돈재공파(密城朴氏 遯齋公派)>와 <태인 박씨(泰仁 朴氏)>는 한 조상으로부터 분파된 것이 아니라, 한 조상을 두고 후손들끼리 양분되어 본관(本貫)을 달리하고 있을 뿐이다.

본관편집

태인(泰仁)은 전라북도 태산현(泰山縣)과 인의현(仁義縣)을 1409년 (태종 9년) 병합하여 만든 태산현(泰山縣)에서 유래하는데,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을 뜻한다.

인물편집

고려편집

  • 박거인(朴居仁, ? - ?) :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 밀직군(密直君) 박언상(朴彦祥)의 8세, 문정공(文靖公) 박열(朴說)의 손자, 고려(高麗) 공민왕 때 소감(少監) 지냄, 인의현(仁義縣) 적거(謫居)
  • 박승봉(朴承奉, ? - ?) : 호 의재(義齋), 지기(志氣)가 청백(淸白) 위엄(威嚴) 출중(出衆), 박거인(朴居仁)의 차자(次子), 고려(高麗)가 망하자 의분(義憤) 한탄(恨歎)하며 형(兄) 박문봉(朴問奉)과 함께 태산(泰山. 지금의 태인)에 은둔(隱遁), 이씨(李氏)의 역성혁명(易姓革命)을 부끄럽게 여기고 경서(經書)와 성현(聖賢)의 학문(學問)을 닦으며 중국(中國)의 백이숙재(伯夷叔齊)와 도연명(陶淵明)을 사모(思慕)하였다. 평생 닦은 학문이 진실로 고인(古人)에 비해 부족함이 없고, 조선의 이씨왕조(李氏王朝) 섬기기를 부끄럽게 여기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의사(義士)라 칭(稱)함.

조선편집

  • 박덕명(朴德明, ? - ?) : 1402년(태종 2년) 박승봉(朴承奉)의 아들, 무을과(武乙科) 합격, 호익순위사(翼巡衛司), 우영부사정(右領副司正), 절충장군(折衝將軍) 훈련원(訓鍊院) 도정(都正)[5]
  • 박연생(朴衍生, 1390(?)-1470) : 호 돈재(遯齋), 단종(端宗) 때 충무시위사(忠武侍衛司) 대호군(大護軍) 역임, 1455년(세조 1년)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녹훈되고 세조와 절친한 사이였지만 세조의 왕위 찬탈에 개탄하여 그의 부름을 거절함, 단종절신, 수산사(水山祠) 제향(박수량 고조부)[6]
  • 박문아(朴文雅, 1420(?)-1480) : 증손 박수량이 귀해져 어모장군(禦侮將軍) 호분위대호군(虎賁衛大護軍), 통정대부(贈通政大夫) 좌승지(左承旨) 겸 경연수찬관(兼經筵修撰官)에 증직됨
  • 박현손(朴賢孫, 1445(?)-1505) : 박거인의 5세손, 손자 박수량이 귀해져 선략장군(宣略將軍), 가선대부(贈嘉善大夫)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兼同知義禁府事)에 증직됨. 후손들이 '중시조'로 모심
  • 박종원(朴宗元, 1470(?)-1527) : 아들 박수량이 귀해져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 겸 지의금부사(兼知義禁府事)에 증직됨
  • 박수온(朴守溫, 1488(?)-1558) : 호(號) 하남처사(河南處士), 선교량(宣敎郞) 행경기전(行慶基殿) 참봉(參奉), 박수량 형
  • 박수량(朴守良, 1491년-1554년) : 조선(朝鮮) 중종(中宗) 문과(文科) 급제(及第), 좌찬성(左贊成),우참찬(右參贊),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 淸白吏(청백리), 수산사(水山祠) 제향
  • 박수공(朴守恭, 1500-1561) : 호(號) 목우당(牧友堂), 참봉, 증가선대부, 박수량 동생
  • 박사순(朴士珣, 1515-1583) : 어모장군(禦侮將軍), 백우당 박상의(朴尙義) 부친
  • 박사우(朴思愚, 1520-1579) : 호(號) 청절당(淸節堂), 하서 김인후의 문인, 진안현감,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박수량 장자)
  • 박사로(朴思魯) : 풍저창봉사(豐儲倉奉事)(박수량 차자)
  • 박상의(朴尙義, 1538-1621) : 호(號) 백우당(栢友堂), 풍수지리학의 대가, 임진왜란 예언, 사재감 주부, 절충장군(折衝將軍) 본위부호군(本衛副護軍), 박수량 종질, 수산사(水山祠) 제향
  • 박상지(朴尙智, 1543-1587) : 호(號) 눌헌(訥軒), 예빈시 별검, 수산사(水山祠) 제향
  • 박상근(朴尙謹, 1543-1621) : 호(號) 한적당(閒適堂), 하서 김인후의 문인, 거창부사
  • 박행중(朴行重, 1641-1689) : 호(號) 매헌(梅軒), 백우당(栢友堂) 박상의(朴尙義) 손자, 우암 송시열과 송암 기정익 문인, 경학에 깊었으며 실천적 선비가 됨. 통훈대부(通訓大夫) 사복시정(司僕寺正) 추증(追贈), 태인 박씨 족보 발행

근·현대편집

과거 급제자편집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명, 생원시 1명, 진사시 2명, 의과 1명, 음양과 1명등 과거 급제자 6명을 배출했다.

고려 문과

박윤화(朴允和)

조선 문과

박수량(朴守良)

무과

박호례(朴好禮), 박호신(朴好信), 박호인(朴好仁)

생원시

박정린(朴廷麟)

진사시

박수량(朴守良), 박사우(朴思愚)

의과(醫科)

박평(朴平)

음양과(陰陽科)

박성남(朴成男)


항렬자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