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 시씨(泰仁 柴氏)는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태인 시씨 (泰仁 柴氏)
능향 시씨 (陵鄕 柴氏)
관향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시조시신운(柴臣雲)
중시조시준무(柴峻茂)
인구(2015년)1,743명

역사편집

《도곡총설(陶谷叢說)》에 의하면 고려 현종(顯宗) 초에 시신운(柴臣雲)이 흥화진두(興化鎭頭)를 지냈다고 한다.

《고려사》에 의하면 궁인(宮人)인 무비(無比)는 태산군인(泰山郡人) 시씨(柴氏)의 딸로서 뽑혀 입궁(入宮)하였는데 충렬왕이 도라산(都羅山)으로 왕래(往來)할 때면 반드시 따라가 왕이 객지에 머무를 때의 즐거움으로 삼았다. 충렬왕의 총애가 커지자 무비(無比)에 붙어 의탁(依托)하는 자가 중외(中外)에서 횡포하므로 세자(世子)가 매우 미워하였다. 세자가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의 초상에 참여하기 위해 원나라로부터 달려와서 왕에게 아뢰기를, “전하께서는 공주께서 병에 걸리신 이유를 아십니까? 필시 총애를 받는 후궁 중에서 투기하고 아양 떠는 자의 소행이오니, 청컨대 이를 국문하십시오.”라고 하니, 왕이 말하기를, “우선 장례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세자가 측근 신하들로 하여금 무비(無比) 및 그 일당인 최세연(崔世延)·도성기(陶成器), 장군(將軍) 윤길손(尹吉孫)·이무(李茂), 소윤(少尹) 류거(柳琚), 지유(指諭) 승시용(承時用)과 송신단(宋臣旦), 내료(內僚) 김인경(金仁鏡)·문완(文玩)·장우(張祐), 중랑장(中郞將) 김근(金瑾), 환관 전숙(全淑)·방종저(方宗氐), 궁인 백야진(伯也眞)을 체포하여 수감하게 하고, 무비가 무당을 시켜 제국대장공주를 저주한 사건을 국문하게 하였다. 무녀(巫女)와 술법을 쓰는 중들이 모두 자백하니 점차 저주 사건의 정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1297년(충렬왕 23년) 세자가 무비(無比)와 도성기, 최세연, 전숙, 방종저, 김근을 참수하고 그 일당 40여 명을 유배 보냈다.[1]

《세종실록지리지》에 태인 시씨(泰仁 柴氏)는 전라도 태인현(泰仁縣) 태산(泰山)의 토성(土姓)으로 기록되어 있다.

시준무(柴峻茂)가 1504년(조선 연산군(燕山君) 10년) 식년(式年) 생원시에 2등으로 합격하였다.[2] 자는 자번(子蕃)이며, 거주지는 태인(泰仁)이다.[3]

본관편집

태인(泰仁)은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일대의 지명이다.

본래 백제대시산현(大尸山縣)이었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년) 대산군(大山郡)으로 고쳤다. 1354년(공민왕 3) 대산군을 태산(太山)으로 고치고 인의(仁義)를 편입하였다. 1409년(태종 9)에 인의현(仁義縣)을 태산현(泰山縣)과 합하여 태인현(泰仁縣)이 되었다. 태산(泰山)의 별칭은 시산(詩山)이며, 속향(屬鄕)으로 능향(綾鄕)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전라도 태인현 태산(泰山)의 토성(土姓)으로 (朴)·시(柴)·(許)·전(田)·(景) 5성이 기록되어 있다.[4]

1896년 전라북도 태인군이 되었고, 1913년에 정읍군 태인면이 되었다.

고려 왕실과의 인척 관계편집

인구편집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시(柴)씨는 2,114명으로 조사되었는데, 이 중 태인 시씨 184명, 능향 시씨 940명, 시산 시씨 85명으로 조사되었다. 능향(綾鄕)은 태인(泰仁)의 속향이고, 시산(詩山)은 태인(泰仁)의 별칭이기 때문에 능향 시씨와 시산 시씨는 태인 시씨의 본관 이칭이다. 이 밖에 능양 299명, 능주 158명, 능경 77명인데 능향의 오기로 추정된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