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 허씨(泰仁 許氏)는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허사문(許士文)은 고려 태조 때 시산군(詩山君)에 봉해졌다. 시산 허씨(時山 許氏)라고도 한다.

태인 허씨 (泰仁 許氏)
시산 허씨 (時山 許氏)
관향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시조허사문 (許士文)
중시조허포(許褒)
집성촌전라북도 부안군
주요 인물허사문, 허진규
인구(2015년)11,990명

역사편집

시조 허사문(許士文)은 가락국(駕洛國) 수로왕비(金首露王妃) 허황옥(許黃玉)의 30세손으로 전한다. 그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부마(駙馬)였으며 시산군(詩山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태인허씨족보(泰仁許氏族譜)에 의하면 그의 6세손 허포(許褒)가 고려 때 기천현령(奇川縣令)ㆍ풍해도 관찰사(豊海道觀察使) 등을 지낸 후 태산군(泰山君)에 봉해졌으며, 그로부터 위로 4대(四代)와 아래 2대(二代)가 실전(失傳)되어 포(褒)를 중조(中祖)로 삼고 본관을 태인(泰仁)으로 하여 예의전서(禮儀典書)를 역임한 허잠(許岑)을 1세조로 계대하여 왔다.

본관편집

태인(泰仁)은 전라북도 정읍시(井邑市)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태산현(泰山縣)과 인의현(仁義縣)의 합명이다. 태산현은 본래 백제의 대시산현(大尸山縣)을 757년(신라 경덕왕 16) 태산(太山)으로 고쳐 대산(大山)‧태산(泰山) 등으로 불렸다. 940년(고려 태조 23) 빈성을 인의현으로 고쳤으며, 1354년(공민왕 3) 대산군을 태산(太山)으로 고치고 인의를 편입하였다. 인의현은 백제 때 빈굴(賓屈)‧빈성(斌城)‧부성(賦城) 등으로 불렸다가 신라 때 무성(武城)으로 고쳤고, 고려에 인의(仁義)로 고쳤다가 1409년(태종 9)에 태산(泰山)과 합하여 태인현(泰仁縣)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태인군으로 승격되었고, 1913년에 정읍군 태인면이 되었다.

분파편집

고려 숙종(肅宗)과 예종(睿宗) 때 허경(慶)은 중서문하평장사(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러 치사(致仕)했다. 그의 아들 6형제가 모두 관직에 올라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는데, 둘째 아들 지재(止齋) 사문(斯文·지평공파)은 교리ㆍ지평 등을 지낸 뒤 고부(古阜)로 이거하였으며, 사문(斯文)의 둘째 아들 곤원(昆元)이 다시 옥과(玉果)로 이주했다. 셋째 사의(斯義·생원공파)는 동복(同福)으로, 넷째 사행(斯行·직장공파)은 직장(直長)을 지내고 부안(扶安)으로, 다섯째 사효(斯孝·진안공파)는 진안현감을 지내고 고부(古阜)로, 여섯째 사제(斯悌·사평공파)는 사평(司評)을 지내고 금구(金溝)로 각각 이주하여 5파로 갈리었다고 한다.

인천 이씨는 태인 허씨에서 분관되었다.

인물편집

  • 허사문(許斯文, ? ∼ 1430년) : 전라도 고부(高阜) 출생. 1429년(세종 11) 식년 문과에 을과(乙科) 장원(壯元)으로 합격하여,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양천(陽川)‧금구(金溝)‧보령(保寧)‧낙안(樂安)의 수령(守令)을 거쳐 병조시랑(兵曹侍郞), 예조정랑(禮曹正郞),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으로 역임하였다.
  • 허진규(許鎭奎, 1940년 ~ ) : 일진그룹 회장

과거 급제자편집

태인 허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명, 무과 급제자 1명, 사마시 10명을 배출하였다.

문과

허사문(許斯文)

무과

허진(許縉)

생원시

허계(許繼) 허숙현(許叔賢) 허재후(許載厚) 허형(許蘅)

진사시

허구연(許九淵) 허국빈(許國賓) 허권(許權) 허석호(許錫祜) 허섬(許暹) 허숙현(許叔賢)

인구편집

  • 1985년 태인 허씨 (1,305가구 5,955명) + 시산 허씨 (441가구 1,882명) = 7,837명
  • 2000년 태인 허씨 (2,070가구 6,472명) + 시산 허씨 (591가구 2,029명) = 8,501명
  • 2015년 태인 허씨 6,870명 + 시산 허씨 5,120명 = 11,99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