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갈사국

활성화된 토론

출처 필요편집

항목의 내용이 사전과 다른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출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Jycinga (토론) 2012년 4월 13일 (금) 22:57 (KST)

예, 좋은 지적입니다. 제가 갈사부여에 대해 《삼국사기》 등 출처를 인용하고 문서의 내용을 대폭 수정하였습니다. 참고하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6월 24일 (일) 00:57 (KST)

갈사부여 → 갈사국으로의 표제 이동편집

갈사국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 扶餘王帶素弟至曷思水濵立國稱王是扶餘王金蛙季子史失其名初帶素之見殺也知國之將亡與從者百餘人至鴨渌谷見海頭王出獵遂殺之取其百姓至此始都是爲曷思王 - 대무신왕 5년 4월
  • 扶餘王從弟謂國人曰我先王身亡國滅民無所依王弟逃竄都扵曷思 - 대무신왕 5년 7월
  • 曷思王孫都頭以國來降 - 태조왕 16년 8월

뿐입니다. 보시다시피 ‘갈사국’이라고만 할 뿐 ‘갈사부여’란 말은 없습니다. 다른 사전들에서도 모두 갈사국이라 하고 있으며 갈사부여라는 용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위백 뿐입니다 이에 갈사국으로 옮기는 것이 좋아 보이며 관련 내용들도 조금씩 수정하겠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11월 10일 (화) 06:33 (KST)

 반대 갈사국도 맞고 갈사부여도 맞지만, 저는 갈사부여라는 현재 표제어를 유지하자는 입장입니다. 위에서 《삼국사기》에는 갈사국이라고 되어 있다고 하였으나 사실과 다릅니다. 삼국사기에 '갈사(曷思)'라는 말은 있어도 '갈사국(曷思國)'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갈사국이든, 갈사부여든 어짜피 둘 다 후세에 만든 말입니다. 또한, 위에서 갈사부여라는 용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위키백과뿐이라고 하셨는데,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다음 단행본 서적에도 '갈사부여'라고 적고 있습니다.

  • (87쪽) 갈사부여는 서기 22년에 부여 금와왕의 여섯째 아들이 세운 국가이다.
  • (85쪽) 이 때문에 대소의 막내 동생은 무리를 이끌고 부여를 빠져나가 압록곡 근처에 갈사부여를 세웠으며, 대소의 사촌동생 가운데 하나는 1만여 명의 백성들을 데리고 고구려에 귀순했다.
  • (87~88쪽) 갈사부여는 고구려와 우호관계를 맺고 있었던 모양이다. 호동왕자의 친모이자 대무신왕의 두 번째 왕후인 해씨가 갈사왕의 손녀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말하자면 갈사부여는 고구려와 혼인관계를 맺고, 대신 안전을 보장받은 것이다.
  • (81쪽) 갈사부여를 개국한 갈사왕은 고구려의 배려 없이는 나라를 지탱할 수 없었고, 따라서 조공의 형태를 띠며 고구려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106쪽) 이 같은 해태후의 정책을 이어받은 태조는 서기 68년에 갈사왕의 손자 도두를 항복시킴으로써 갈사부여를 병합하였으며, 4년 뒤인 서기 70년에는 관나부패자 달가에서 군사를 내주어...

갈사국과 갈사부여라는 두 가지 이름이 모두 맞습니다. 하지만, 표제어가 둘이 될 수는 없으니, 두 가지 이름의 장단점을 비교하여 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갈사국이라고 하면 다른 부여계 국가들과의 통일성을 쉽게 인식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습니다. 갈사부여라고 하면, 다른 부여계 국가들과의 통일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갈사부여'라는 이름을 선호합니다. 궁예가 세운 나라의 정식 이름이 태봉이지만 후고구려라고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궁예 자신은 물론 당시 어떤 사람도 후고구려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으나, 후세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갈사국과 갈사부여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5년 11월 12일 (목) 02:22 (KST)

아... 설마 그 분을 언급을 하실까 했는데..... 저자 약력을 확인 바랍니다. 박영규 선생님은 비전문가입니다. 설마 하며 다른 문서들도 검색해보니 박영규 선생님이 쓴 책이 출처로 많이 이용되었네요;; 이걸 다 언제 고칠지orz (다른 문서도 물론입니다만) 특히 역사 문서에서는 백: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항상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삼국사기엔 아사달님의 주장과는 달리 갈사에 國을 세웠다고 하고 그 왕 역시 갈사국의 왕이라는 의미에서 갈사왕이라 부릅니다. 갈사국을 지칭할 때 부여라는 표현은 아예 없습니다. 부여국의 왕은 부여왕입니다. 이러한 용례는 비류국, 황룡국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고로 현재 사학계 전체에서도 갈사부여가 아니라 갈사국이라 부르는 것입니다.(사전 참고) 갈사부여라는 용례는 현재 박영규와 아사달님으로 인해 대중에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표제의 선정은 전문가들이 정한 이름 혹은 통용표기로 해야지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선택하시면 안됩니다.(백:독자연구 참고)
그리고 본건과는 관련이 없습니다만 궁예는 스스로 고(구)려를 칭했습니다.(삼국유사 왕력) 나중에 마진, 태봉 등으로 이름을 바꾸긴 하지만 국명만 변할 뿐 국체는 그대로이므로 고씨 고(구)려, 왕씨 고려와의 구별을 위해 '후'를 붙인 것일 뿐입니다.
덧붙여 이름+왕 식의 어색한 표제도 많이 보입니다.(ex.도두왕) 그것들도 사전 표기에 따라 수정하겠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11월 12일 (목) 06:31 (KST)
1. '갈사'라는 말이 원래의 말이고, 다른 말은 모두 후세에 붙인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삼국사기 어디에도 '갈사국'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삼국사기에 갈사부여라는 말이 없듯이, 갈사국이라는 말도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삼국사기에는 오직 '갈사'라는 말만 나옵니다. 갈사라는 말과 국(國)이라는 말이 서로 떨어져 있는데, 그걸 두 개를 붙여서 '갈사국'이라고 부른 것은 역시 후세의 일입니다. 그걸 마치 삼국사기에 '갈사국'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심지어 일제강점기에 단재 신채호 선생이 쓴 조선상고사를 보면, 시종일관 '갈사'라고만 나오고, 어디에도 갈사국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신채호 선생의 주장이 맞다/틀리다를 떠나서, 근대까지도 갈사국이라는 말이 없었다는 의미에서 드린 말입니다. '갈사국'이라는 말을 쓴 것은 현대에 와서 생긴 일로 보입니다. 갈사부여라는 말도 현대에 생긴 말이듯이, 갈사국이라는 말도 현대에 생긴 말로 보입니다. 갈사국이라는 표현은 몇 가지 백과사전의 표제어에 나오는데, 그 백과사전이라는 것도 사실은 후세에 누군가 만든 것일 뿐, 다른 서적에 비해 더 권위가 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표제어가 '갈사국(葛思國)'으로 나오는데, '갈'자가 다릅니다. 葛이 아니라 曷이라고 써야 하는데, 한자가 틀립니다. 즉, 다른 사전이라고 해서, 그다지 권위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 전체가 갈사국이라고 총의를 모았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건 확대 해석일 뿐입니다. 만약 그런 증거가 있다면 제시해 주세요. 결국, 갈사국인지, 갈사부여인지는 후세 사람들의 선택의 문제이며, 위키백과는 전문적인 학술논문 수준의 어려운 설명을 하는 곳이 아니라 그 전문가의 의견을 일반인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풀어서 쓰는 곳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단행본 서적에 나오는 '갈사부여'라는 표기가 좀 더 친숙해 보여서, 그걸 표제어로 정했던 것입니다. 통용표기가 갈사국이라고 했는데, 그 점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검색해 보면 제 눈에는 오히려 갈사부여가 더 많이 보입니다. 즉, 현재 상태로는 어느 것이 통용표기인지 쉽게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이 점에 대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5년 11월 12일 (목) 23:18 (KST)
2. 덧붙여 '도두'와 '도두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위키백과에서 부여계 여러 국가들의 왕들은 모두 통일적으로 끝에 '~왕'이 붙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금와왕, 대소왕...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유독 갈사부여의 왕에 대해서만 '..왕'이라는 글자를 빼는 것은 전체적인 통일성을 해칠 수 있으므로,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럼 모든 부여의 왕 이름에서 '..왕'이라는 글자를 빼는 것은 어떨까? 저도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라도 통일성을 유지할 수는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 등 다른 나라는 전부 무슨무슨 왕인데, 유독 부여만 금와, 대소, 위구태..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도 그다지 일관성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괄적으로 '왕'을 붙이는 표제어를 선호합니다. 참고로 위키백과 이외의 다른 사전에서는 부여의 왕들에 대해 일관성이 없고 뒤죽박죽입니다. 예를 들어, 부여 대소왕이라는 표제어도 있고, 그냥 대소라는 표제어도 있습니다. 현재 시중의 사전에는 통일된 표기 방식이 없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에서는 '무슨무슨 왕'이라고 통일적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만, 제 말의 요지는 도두 or 도두왕 중에서 어떤 걸 선택할 것이냐 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이와 관련된 위키백과 다른 왕들의 표제어와 통일성 문제가 있으니, 그 점을 고려하여 표제어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5년 11월 12일 (목) 23:49 (KST)
3. 내친 김에 '후고구려'라는 국명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궁예가 세운 나라의 이름은 고려-->마진-->태봉으로 변경되었는데, 이 중에서 '고려'를 선택하고 그 앞에 '후'자를 붙여서 '후고구려'라고 부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라, 그냥 후세 사람들이 임의로 붙인 이름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꼭 '후'를 붙여야 하는 어떤 규칙이나 관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후세 사람들이 임의로 정한 것입니다.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자처한 나라 중에 '소고구려'라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원래 국명이 '고려'(=고구려)이고, 약 120년 간 존속하다가 결국 망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국명을 변경한 적이 없이 계속 '고려'였습니다. 그런데 후세 사람들이 임의로 '소'자를 앞에 붙여서, 소고구려라고 불렀습니다. 단군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나라의 이름에 '고'자를 붙여서 '고조선'이라고 부른 것도 후세 사람들이 임의로 만든 말입니다. 후고구려, 소고구려, 고조선 등에서 '후', '소', '고' 등의 접두어는 순전히 후세 사람들이 임의로 붙인 것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원래 국명이 '갈사'인 나라에 대해서, '갈사국'인지 아니면 '갈사부여'인지는 참과 거짓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며, 둘 다 출처가 있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하여 표제어로 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전혀 독자연구가 아닙니다. 일연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고조선이라고 했다고 해서 우리가 그걸 독자연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궁예가 만든 나라를 후고구려라고 부르고, 보장왕의 아들인 고덕무가 건국한 나라를 소고구려라고 부르는 게 독자연구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4. 마지막으로 독자연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독자연구라는 것은 위키백과 편집자가 임의로 만드는 게 독자연구이지, 이미 일반인을 대상으로 판매되는 단행본 역사서에 명백한 출처가 있어서, 그걸 출처로 인용한 사람에게 독자연구라고 공격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표제어가 아니라고 해서 함부로 토론 상대방에 대해서 '독자연구'라고 몰아가는 것은 위키백과의 협업 정신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위키백과에서 말하는 백:독자연구란 "공개 발표되지 않은 사실, 주장, 개념, 진술 또는 이론을 의미"하는데, 제가 출처로 제시한 자료는 일반인들에게 공개적으로 판매된 베스트 셀러 단행본 역사서에 나오는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단행본 서적의 저자가 독자연구를 한 것으로 본다면, 일연 역시 삼국유사에서 고조선이라는 말을 지어내어 독자연구(?)를 한 것이 되고, 또한 원 출처인 삼국사기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갈사국'이라는 말을 새로 만들어서(게다가 한자도 틀린 상태로) 백과사전에 올려둔 다른 저자들 역시 독자연구(?)를 한 것이 되는 셈입니다. 요지는, 갈사부여라는 말은 제가 만든 말이 아니고, 시중에 판매되는 단행본 역사서에 나오는 말이므로, 제가 독자연구를 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백: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따르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출처는 전문가 검토(peer review)를 거친 학술지, 대학출판부에서 출간된 도서, 대학교 수준의 교과서, 그리고 평판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잡지, 정기간행물, 도서입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쓴 위 단행본 역사서는 비록 전문가들의 연구논문보다는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겠지만, 위키백과에서 말하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는 해당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제 편집에 대해서 독자연구라는 근거 없는 말은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5년 11월 13일 (금) 00:31 (KST)
  1. ... ... 갈사왕이 갈사국왕이란 뜻입니다. 그게 삼국사기의 용법입니다. 황룡왕은 황룡국왕이란 뜻이고 부여왕은 부여국왕이란 뜻입니다. 갈사국이란 말은 현대에 첨 생긴 게 아니라 그 이전 사가들도 언급합니다.(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참고) 갈사국은 사학계에서 통용표기되고 있습니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참고) 혹시나 해서 논문도 몇 개 더 찾아봤는데 역시 갈사국입니다.(박승범, 夫餘國의_신화적_변동과_東明神話의_시ㆍ공간적_推移. 나하나, 부여의_변천과_동부여_문제. 등) 갈사부여는 0건입니다. 제 검색능력이 미진한 탓일 수도 있어서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갈사부여란 국명을 처음으로 쓴 분은 20세기도 아닌, 21세기의 그것도 비전문가인 박영규 선생님인 것 같습니다.
  2. 위백에서 표제는 보통 백:제목, 백:표기의 기준에 따라 선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에 따라 애초부터 갈사국이 사학계에서 통용 표기라는 것을 알려드렸습니다. 그런데 아사달님께선 무엇이 통용표기 혹은 바른 표기인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갈사국과 갈사부여가 모두 맞다는 전제부터 하신 후에 ‘갈사국이라고 하면 다른 부여계 국가들과의 통일성을 쉽게 인식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습니다. 갈사부여라고 하면, 다른 부여계 국가들과의 통일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갈사부여'라는 이름을 선호합니다.’라는 자신만의 생각을 기준으로 표제를 선정하셨습니다. 이것이 백:독자연구의 위반입니다. 님께서 갈사부여란 말을 창조했기 때문에 독자연구란 말이 아닙니다. 표제와 독자연구에 대해선 토론:서부 전선 포격에서도 꽤 상세하게 설명했으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3. 출처에 대해서는 백:신뢰할 수 있는 출처#학술성백:확인 가능, 백:독자연구, 백:비주류를 확인 바랍니다. 현재 님께서 하신 말씀들은 위백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말씀이십니다. 혹시 그거 아십니까? 광주는 폭동입니다. 표제는 변경되어야 하며 현재 써진 내용들도 전부 거짓이므로 대폭적으로 고쳐야 합니다. 이걸 어찌 아냐구요? 역사로서의 518 (시리즈 4권)이란 단행본 역사서에 잘 설명되어 있거든요. .......;;;; 본능적으로 아니라는 걸 느끼셨을 겁니다. 이런 책들을 거르기 위해서 존재하는 규정이 앞의 것들입니다. 물론 전문가조차 실수를 할 때가 있고 무리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자료의 수집과 교차검증이 꼭 필요합니다. 절대 소수의 출처만을 신뢰하여 글을 작성하셔서는 안됩니다.
  4. 고백신과 부여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시면 곤란합니다. 고백신은 왕호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령왕은 왕호가 무령왕이고 이름은 사마입니다. 반면에 부여의 왕들은 왕호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왕호를 안 써서 그랬는지 기록의 멸실인지는 모르겠으나 ― 아마 기록의 멸실일 확률이 더 클 것 같습니다만 ― 어쨌든 왕호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이름만을 알 뿐이지요. 이름+왕의 용법은 널리 알려진 자나 특수한 예가 아니면 잘 쓰이지 않는 호칭입니다. 예로 드신 대소왕 역시 왕호를 알 수 없을 뿐더러 대소란 표기에 비해 압도적으로 밀립니다;;
  5. 위키백과는 말씀하셨듯 ‘전문적인 학술논문 수준의 어려운 설명을 하는 곳이 아니라 그 전문가의 의견을 일반인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풀어서 쓰는 곳’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비전문가의 의견은 배제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다방면에서 자세히 조사하여 알기 쉽게 풀어써야할 것입니다.
  6. 앞으로 소고구려를 포함하여 가능한 한 다른 편집들도 전부 검토하겠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백:정책과 지침의 준수이지 다른 것은 없습니다. 좋은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11월 14일 (토) 00:30 (KST)
일주일 이상 반대 근거가 없었으므로 진행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11월 22일 (일) 07:45 (KST)
이 제안에 대해 동의하지 않습니다. 근거는 이미 위에 충분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문인 '삼국사기'에 '갈사국'이라는 용어가 없다는 점에서 저는 여전히 표제어 변경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5년 11월 23일 (월) 20:46 (KST)
그래서 제가 위에서 반박하였습니다... 안타깝습니다만 이미 전근대부터 사서에 갈사국이라 하였으며 현재 학계에서도 갈사국이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렸습니다. 비전문가가 쓴 서적에서만 나오는 용어는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외부의 연구를 그대로 싣는 존재입니다. 먼저 연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11월 25일 (수) 08:15 (KST)
그렇다면 갈사라고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굳이 갈사부여와 갈사국 중에서 고르라면 갈사국이 더 낫다고 하겠습니다. 대중서적에서 편의적으로 붙인 이름은 학계에서 쓰이는 이름보다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5년 11월 24일 (화) 22:07 (KST)
갈사는 이겁니다 갈사국은 국어사전에까지 등재되어 있습니다 표제의 정확성을 위해서도 어쩔 수 없이 갈사국으로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11월 25일 (수) 08:15 (KST)

외부 링크 수정됨 (2019년 10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갈사국에서 2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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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9년 10월 19일 (토) 06:3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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