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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걸걸중상

활성화된 토론

환단고기 인용 관련편집

환단고기는 진위가 확실히 판별되지 않은 자료입니다. 그 유래부터 불확실하고, 내용에서 많은 오류가 지적되었습니다. [1] 발해의 내용이 그럴 듯해 보인다고 해서 인용한다면 거짓일 수도 있는 내용을 위키백과의 이름으로 사실이라 주장하는 격입니다. 이는 옳지 않습니다. jtm71 2006년 9월 18일 (화) 18:33 (KST)

진국공 관련편집

@Lentonn, 대한만세, Ykhwong, 일단술먹고합시다:

해당 링크를 보시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당나라가 걸걸중상에게 진국공(震國公)을, 걸사비우에게 허국공(許國公)을 봉하고 회유하려 하였으나, 걸사비우가 이를 거부하자 토벌군을 보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해석은 크게 두가지 관점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1. 걸걸중상은 애초부터 진국공이라는 호칭을 부여받은 적이 없었다.
  2. 걸걸중상은 진국공이라는 호칭을 부여받았으나 이를 거부했다.

이 두 가지 관점에 대한 사용자님들의 의견은 어떠하신지, 그리고 이에 대해 어떻게 결론을 내리면 좋을 지 의견 나누시면 감사하겠습니다.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6:34 (KST)

두산 백과도 인용해 봅니다. "《신당서》에는 사리(舍利) 걸걸중상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고구려에 복속된 속말말갈족(粟末靺鞨族)의 추장으로 짐작된다.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의 영주(榮州) 지방으로 옮겨 억류생활을 하다가 696년 거란족의 반란을 틈타 말갈추장 걸사비우(乞四比羽) 등 고구려유민과 함께 당나라 지배에서 벗어나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이때 당나라는 그에게 진국공(震國公)을 봉하여 회유하려 하였으나 이를 뿌리치자 토벌군을 보내었다. 이에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이해고(李楷固)의 당나라군과 싸우다 패하여 걸사비우와 함께 전사하였다. 이후 고구려 유민집단은 그의 아들 대조영이 인솔하여 고구려 옛 땅으로 이동하면서 발해건국운동을 주도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걸걸중상 [乞乞仲象] (두산백과)" 분명 쓰여있습니다.--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6:36 (KST)

그래서 봉하지 않았다고요?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6:36 (KST)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중국정사조선전의 국역을 보면 이렇습니다 武后는 乞四比羽를 許國公, 乞乞仲象을 震國公으로 책봉하여 그 죄를 용서하였다. 比羽가 그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자, 武后는 玉鈐衛大將軍註 李楷固와 中郞將 索仇에게 조서를 내려 그를 쳐 죽였다. 측천무후가 걸걸중상을 책봉한 것은 분명함으로 후자의 글이 적합합니다.--대한만세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6:40 (KST)
 찬성 저 역시 해당 해석이 맞다고 봅니다. 또한 대한만세님과 Lentonn 님의 편집 분쟁이 있기 전부터 "걸걸중상이 진국공에 봉해졌다"는 식의 서술은 이미 존재해왔기 때문에 이를 토론 없이 함부로 되돌리기 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봅니다. 2019년 6월 8일 (토) 16:44 (KST)

 반대 사료를 오역한 것을 뒤늦게 알아차려 입장 바꿉니다. 신당서에서 측천무후의 책봉을 거절한 인물로 거론되는 것은 걸사비우 뿐입니다. 걸걸중상이 무후의 책봉을 거부했다는 1차 사료가 제시되어야 마땅합니다. 따라서 두 가지 관점 모두 반대합니다. 대한만세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6:48 (KST)

그럼 어떤 주장이 옳다고 보시는지요?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6:57 (KST)

 의견 걸걸중상에게 진국공 책봉이 내려졌다.

이것을 가지고 새롭게 토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이 되면 해당 문서의 편집 분쟁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6:59 (KST)

현재까지 걸걸중상이 무후의 책봉을 거부했다는 1차 사료가 제시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측천무후로부터 진국공(震國公)에 봉작되었으나 거절했다.라는 현 문서의 문구는 제거되어야 합니다. 대한만세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6:59 (KST)

그러면 어떻게 고쳐야 할까요?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6:59 (KST)
요기 토론이 있었네요. 왜 계속 기다리나 했네 마찬가지로 신당서에서 나오는 글입니다 "이에 契丹이 突厥註 052 에 붙으므로 王師의 길이 끊겨서 그들을 치지 못하게 되었다. 祚榮은 곧 比羽의 무리를 합병하여 지역이 [중국과] 먼 것을 믿고, 나라를 세워 스스로 震國王註 053이라 부르며, 突厥에 使者를 보내어 通交하였다."

걸걸중상이 책봉을 받아들였다는 기사는 없습니다. 그래서 두산백과에서도 뿌리쳤다고 나오는 것이고요 스스로 진국왕이고 하였습니다.--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01 (KST)

걸걸중상이 책봉을 받아들였다는 기사가 없으니 받아들였다고 적을 필요도, 거절했다고 적을 필요도 없습니다. 기존의 서술은 제거되어야 마땅합니다. 대한만세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03 (KST)

님들 뭔가 글을 잘못읽고 있으신데 잘 보십시오. 측천무후는 걸사비우를 허국공 걸걸중상을 진국공으로 책봉하여 그 죄를 용서하였다. 이건 걸걸중상이 책봉을 받아들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받아들였다면 뭐하러 동쪽까지 갔겠습니까. 한자를 잘 읽어야죠 ㅎㅎ--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03 (KST)
위에 글은 대조영이잖아요. 걸걸중상 이야기를 하는데 왜 대조영 이야기를 꺼내시나요? 2019년 6월 8일 (토) 17:05 (KST)
아참 헷갈렸네요 사관 요청까지 떠서 보느라고요 ㅎㅎ 잘 보세요 중상이 진국공에 책봉됬고 그것을 받아들렸다는 것은 정설이 아닙니다. 그래서 뿌리쳤다는 말이 두산백과에서 나오는 것이고요. 이해고와의 전투에서 싸우느라 사망까지 한 상황입니다. 누가봐도 진국공에 책봉됬다 이런 왜곡 글은 쓰면 안되는 것이지요.--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08 (KST)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위에 의견 안 보이세요? 걸걸중상에기 진국공 책봉이 내려졌다 이걸 주제로 하고 있는데 그걸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는 왜 하세요?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10 (KST)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를 제외하고 걸걸중상에게 진국공 책봉이 내려졌냐 마느냐 이것만 해결하면 됩니다. 그것에 대해 이미 대한만세님과 그 이전 사용자님들이 "진국공을 책봉했으나 거절했다"라고 표현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수용했다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12 (KST)

 의견 다들 무언가 이야기가 꼬여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무후가 걸걸중상과 걸사비우를 각각 진국공과 허국공에 봉한 것은 기록에 있으므로 여기서 논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무후의 책봉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람이 걸사비우 뿐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걸걸중상이 진국공 책봉을 거절했다는 것은 알 수 없으니, 기존 문서의 서술(천무후로부터 진국공(震國公)에 봉작되었으나 거절했다.)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한만세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13 (KST)

그래서 제가 주장하는 것은 "측천무후는 걸걸중상에게 진국공을 봉작했다." 이 문장으로만 끝내자는 겁니다.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14 (KST)
왜냐면 구당서와 최치원에 글에서는 걸걸상중과 대조영이 혼동되서 나오는데 영주를 나온 것으로 쓰여있기 때문입니다.즉 이것을 보고 무작정 책봉이 되었다고 말하는 건 왜곡이고요. 현재 사학계에서는 뿌리친 것이 정설로 되어있기 때문에 두산백과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도 책봉됬다고 쓰지 않습니다. 됬습니까? 너무 시간 많이 쓰게 하는데요? ㅎㅎ--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17 (KST)

두산백과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가 언제 한국 역사학계의 정설을 대변해주는 사이트가 됐죠?

 찬성 어찌되었든 측천무후가 걸걸중상을 진국공에 책봉한 것까지만 서술하는 것에 찬성합니다. 걸걸중상이 이를 거부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서술하지 않는 것이 적합합니다. 대한만세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18 (KST)

또한 이것을 보면 『오대회요(五代會要)』에는 손만영의 반란 때 고려 별종인 걸걸중상(乞乞仲象)과 말갈인인 걸사비우가 요동으로 달아나 고구려 고지(故地)를 나누어 다스렸고, 이에 당나라는 걸걸중상에게는 진국공(震國公)을, 걸사비우에게는 허국공(許國公)을 봉하고 회유해 당나라의 세력 아래 다시 복속시키고자 했으나 걸사비우가 이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이에 당이 이해고를 출전시켜 걸사비우를 죽였는데, 이때 걸걸중상은 이미 죽고 그의 아들인 대조영이 걸사비우의 무리까지 병합한 것으로 나오고 있다. 이러한 『오대회요』의 기록은 835년 발해에서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장건장(張建章)이 남긴 『발해국기(渤海國記)』에 의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9세기의 발해인의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아 그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즉 걸걸중상이 진국공에 책봉되서 받아들였다는 소리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내용을 보면 뿌리쳤다가 옳다고 봅니다. 왜냐면 걸걸중상과 대조용을 혼동하여 쓴 구당서도 있기 때문입니다.--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21 (KST)
에이 그건 아니죠. 해당 역사 왜곡 문서는 분명 진국공에 책봉되었다로 되어있는데 구당서와 최치원의 글을 보면 대조영(걸걸중상이 누락됨)이 영주를 탈출하였다고 했는데 사학계에서는 그래서 뿌리쳤다로 보는 겁니다. --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22 (KST)
구당서가 역사 왜곡 문서라고요?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23 (KST)
 의견 사:Lentonn 님, 딱 하나만 대답하세요. 걸걸중상이 진국공에 책봉되었습니까, 안 되었습니까?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25 (KST)
아니요. ㅎㅎ 아무튼 중요한 것은 회유하려고 하였으나 거부당했고 결국은 영주를 탈출하여 발해를 건국한 것을 구당서와 최치원에 글에서 확인을 할 수 있습니다요 ㅎㅎ--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26 (KST)
마지막으로 딱 말하겠습니다. 무후가 책봉하려던 이유는 회유하기 위해서 였지만 결국에는 실패했습니다. 즉 책봉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게 정설인데 무조건 책봉됬네 이건 완전히 편향적 역사왜곡의 극치죠 개인적으로 ㅎ--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28 (KST)

뿌리쳤다는건 Lentonn님의 주관일 뿐이고, 그냥 책봉되었다만 서술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왜 없을 수 있는 논란까지 만드시는지 감이 안오네요. 대한만세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28 (KST)

 의견 제 생각에 저 분은 지금 걸걸중상대조영을 헷갈리고 계신 것 같네요. 발해를 건국한 것은 대조영인데, 그걸 걸걸중상의 토론에서도 언급하고 계시니까요.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28 (KST)
아이고 ㅎㅎ 책봉하려고 했다겠지 책봉되었다는 신당서에서도 쓰여있질 않는데 무슨 소립니까 ㅎㅎ--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29 (KST)

일방적 책봉인거 아닙니까? 걸걸중상이 거부했다는 기록은 없으니 책봉을 받아들였는지 거절했는지 여부는 적을 필요도 없고요. 대한만세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31 (KST)

대조영, 걸걸중상을 헷갈리는 게 아니고요. 잘 보세요.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신당서 구당서 보면 구가 무슨 뜻입니까? 구는 오래되다 아시죠? 구당서가 신당서보다 더 전에 쓰인 것으로 사학에서는 사실 조금 더 예전 기술 문헌이 신빙성이 있습니다. 근데 신당서에서 나오는 걸걸중상이 구당서에서는 대조영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걸걸중상 의행적을 구당서의 대조영으로 보는 견해가 더 설득력이 있는 겁니다.--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32 (KST)

정작 구당서에는 진국공 책봉건도 허국공 책봉건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아예 이러한 행적이 와전된 것으로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불필요한 논란은 만들지 맙시다. 대한만세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34 (KST)

이것을 참조해 보세요. 부자관계로 보는 견해에서는 『구당서』와 최치원의 글에서는 요동 지방에서의 행적이 대폭 생략되고 동모산에서의 진국(振國)의 건국에 중점을 두면서 걸걸중상이 누락된 것으로 본다. 즉, 건국과정 전체에 관심을 둘 때는 걸걸중상의 존재가 드러나지만, 건국 자체에 중심을 둘 경우 걸걸중상의 존재는 생략되고 대조영을 부각시켜 걸걸중상의 행적에 대조영이 소급 적용된 것으로 보았다.--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35 (KST)
그니까 그게 그니까 가설들의 일부잖아요. 왜 자꾸 진국공 책봉과 관련 없는 이야기만 서술하십니까?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38 (KST)

논지 이탈 좀 그만하시고요. 책봉되었다만 적으면 될 문제입니다. 논란이 있는 견해는 따로 견해로서 소개하면 됩니다. 대한만세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37 (KST)

그런데 보십쇼. 전에 쓰여진 문서는 분명히 책봉을 거절했다 이런 식으로 쓰여있었는데 어떤 사용자에 의해서 삭제되고 책봉 되었다라고 역사 왜곡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사용자가 달랑 일본 서적 두개와 한국 서적 두개를 인용된 서적이라고 하고 인용문이나 요약문 하나 없는데 그러면 책 이름 달랑 쓰고 소설써도 알아낼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걸 반달이니 편집분쟁이니 하시면 안되죠. 그리고 " 상종하질 않겠다" 이거 매우 기분이 나쁜데요? 토론할 때 상종하질 않겠다고 하더니 지금은 계속 상종하네요? ㅎㅎ--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37 (KST)

논지 이탈은 무슨 거절했다가 정론이라니까요 책봉되었다는 신당서를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거고요.--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38 (KST)
정론이 아니죠. 그건 님 개인 생각이고요.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39 (KST)
무슨 가설에 일부입니까. 구당서랑 최치원 고대 문헌에 나오는 글들인데요.--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39 (KST)

 의견 Lentonn 님, 위키백과 여러 문서를 보시면 출처에 서적 제목만 적어놓은 경우도 많고, 이는 영어판 위키백과에서도 흔하게 있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 모든 출처로 인정하지 않고 지우실 겁니까?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41 (KST)

왕왕 자기 의견에 맞지 않는 것은 왜곡 글로 매도하는 이상 토론은 끝나지 않을겁니다. 대한만세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44 (KST)

일단 잠시 의견 개진을 중단하시죠. 다른 사용자님들의 의견도 받아봅시다.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46 (KST)

 의견 측천무후의 책봉을 걸걸중상과 걸사비우 둘다 거부했다면 걸사비우만 거부했다고 기록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윗 분들 말씀대로 측천무후가 걸걸중상을 진국공에 책봉했다고만 적는게 옳다고 생각합니다.--ㅇ느느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9:43 (KST)

 찬성 걸걸중상의 기록된 행적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충분히 언급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진국공 거절 여부는 본문에 서술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한만세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22:03 (KST)

진국공 책봉2편집

문서가 길어져 여기로 옮깁니다. 제 생각에 현재 Lentonn 님은 특정사관에 의거하여 다른 모든 가설들을 왜곡된 것이라고 보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39 (KST)

이젠 하다못해 논리가 통하지 않으면 개인적 생각으로 몰아갑니까? --Lentonn (토론)
특정 사관에 의거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만.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41 (KST)
다른 모든 가설이라니 그럼 그 왜곡 글처럼 책봉되었다 라고 주장하는 글 하나 보여주시죠. --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41 (KST)
이미 다 보여줬잖아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두산백과, 구당서. 무슨 근거가 더 필요합니까?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43 (KST)
제가 다 보여줬지 님이 보여줬습니까 ㅎㅎ--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50 (KST)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인천직진님에 대해서 왜곡 글을 쓴 사람이 인용문 하나 없는 책 출처로 옮겨놓고 글 쓰면 그게 신뢰성이 가겠습니까? 사용자로서? 계속 충돌뜨고 다시쓰고 ㅎㅎ--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44 (KST)
인천직전이거든요? 그리고, 위에서 말씀드렸을텐데요. 위키백과의 수많은 사용자들은 {{인용 서적}}이라는 틀을 이용해 서적 하나만으로도 출처를 제시한다고요. 이건 단순히 위키백과 한국어판뿐만아니라 모든 위키백과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45 (KST)
글쎄요. 근데 인용서적해놓고 요약문이나 인용문 써져 있는 것도 많이 봤는데요 ㅎㅎ 와 벌써 100번째 편집이네 인천직전님은 토론을 진행해도 결국은 계속 자기 주장만 밀고 나가고 신고한다고 그러고 그러는 걸로 보이는데요 ㅎㅎ--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48 (KST)
그럼 저희들 의견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던가요. 책봉에 대해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저희 의견은 크게 듣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 말 아닙니까? 그리고 이미 해당 문구는 대한만세님이 보여준 것 같은데 그걸 거부하시면 더 이야기가 나아가기 힘들죠.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50 (KST)
ㄴㄴ 책봉이 됬다고 하는 것은 큰 개인적 의견에 의한 역사왜곡입니다. 적어도 생각을 해보세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우습게 보면 안되요. 이건 학자들이 쓰는 내용입니다. --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52 (KST)

공론화시켜 다른 사용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도록 하겠습니다. max (토론)

대한만세 신당서 그것도 그걸 책봉이 됬다는 것으로 보고 잘못이야기한 것을 이쪽이 계속 말해주면서 보여준 거 아니에요 ㅎㅎ--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53 (KST)
자 다른 사용자 언제 참여할지 여기다 모닥불 피워놓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것이고 그리고 비방은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비방하면서 비아냥되면서 토론이 이미 끝난 상황을 지금 인천직전님이 계속 뭐 책봉되었다 글 하나 보여주지 않고 이쪽은 계속 말하고 설명하고 뭐하는 거예요 이게 ㅎㅎㅎ--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55 (KST)

이야기 은근슬쩍 다른 곳으로 돌리지 마시죠. 여기는 걸걸중상 토론하시는 곳이죠. 그건 대한문서님 사용자토론에서 해결하세요.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56 (KST)

자 이것으로 본인은 반달은 아닌 건 아셨겠죠?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 드렸는데 ㅎㅎ--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57 (KST)

토론을 시작하지도 않고 멋대로 모든 문서를 되돌린 것은 명백한 반달행위입니다. 문서를 되돌리기 이전에 편집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셨어야죠.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8:00 (KST)

뭘 돌려요 ㅎㅎ 토론이 끝났잖아요 지금 . 이쪽에 대항할 자료를 가지고 오셔야죠.--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57 (KST)

지금 그건 님의 개인적인 주장이고요. 현재 이 토론에 참여하는 인물은 세 명이고 각각의 사관이 너무나도 다릅니다. 그렇기에 제3자의 조정을 요청했습니다. 또한 현재 토론의 내용에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함부로 끝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토론에 대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려는 자세와도 같습니다.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7:59 (KST)

인천직전님 님은 무슨 사관이신데요? --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8:01 (KST)
저는 대한만세님의 입장에 동의합니다. 제3자의 중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에는 다른 사용자의 참여를 유도해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8:03 (KST)
그리고 사관이 뭔지도 모른다는 식의 상대 비하 발언은 자제해주시죠. 토론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8:03 (KST)
ㅎㅎ 아니 그쪽이 활동 기간이 길다고 무작정 협박처럼 경고에 자신의 의견만 밀어내고 결국은 기술된 문헌 하나 보여주질 않고는 신고를 하지않나 반달로 사람을 몰아가서 모욕하질 않나 토론의 태도를 문제삼고 신고를 한 상황에 님까지 그러면 안되죠 ㅎㅎ--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8:04 (KST)
지지하는 이유와 근거는 무엇입니까? ㅎㅎ 단순히 편들기가 재밌나요? 여기 다 기록이 남아요 ㅎㅎ--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8:05 (KST)
님이 그런 식으로 편집하시는 것도 기록에 다 남습니다. 저는 해당 문서에 대한 지지를 이미 위의 편집에서 다 이야기했고, 님은 그것을 왜곡된 사관을 바탕으로 한 글이라고 옳지 않다고 말씀하셨죠. 여기서 제가 더 말해봤자 어차피 도돌이표식으로 돌아갈텐데, 과연 토론을 이어나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8:08 (KST)
그리고 저도 엄청 바쁘답니다. 지금 대학 프레젠테이션 준비가 한창이라서요.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8:08 (KST)
왜 본인이 쓴 토론 글까지 지우십니까 ㅎㅎ--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8:10 (KST)

지워진 내용 지금 상황은 누가봐도 이쪽은 역사왜곡을 막으려는 사람이고 그쪽은 무작정 편들기에 지지한다고 하는 쪽인데 여기 다 기록이 남지 않습니까? 좀 제대로 생각해볼 시간을 서로 가져볼까요? 난 지금 좀 바빠서 ㅎㅎ--Lentonn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8:07 (KST)

제 생각에는 지금 여기서 끝내면 편집 분쟁을 제대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더군다나 님께서는 혼자서 역사 왜곡을 막는다고 주장하시는 전형적인 "아전인수"의 태도를 보이십니다. 과연 쉰다고 해서 진정한 의미의 토론이 이어질까요? 여태껏 님이 하신 토론과 편집은 자기 주장이 역사적으로 왜곡되지 않았기에 "내 주장은 옳으므로 그에 따라라" 이것과 다를 바가 없는데요? 토론에서도 승패를 따지시고, 대한만세님이 왜곡된 글을 올렸다는 님의 개인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대한만세 님이 편집한, 문서를 전부 되돌리기 하시고, 저희와 토론을 할 때는 "ㅎㅎ"라는 표시를 남기시며, 토론에 임하는 사용자들에게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주셨죠.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8:14 (KST)
재밌는 대화였다니. 애초부터 님은 이 토론에 진지하게 임할 마음이 1도 없으셨군요. max (토론) 2019년 6월 8일 (토) 18:15 (KST)

글을 읽는 일반인들에게 단순히 "책봉을 하였다."라고만 끝내면 이를 걸걸중상 본인이 받아들인 것으로도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없애기 위한 의도라면 "당나라가 걸걸중상에게 진국공(震國公)을 봉하였으나 걸걸중상 본인이 이를 받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라고 수정하면 해결이 될 문제 같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받아들였다고 생각하는 가설과 그렇지 않다는 가설을 학계의 시각과 그 비중에 맞게 적절하게 분배하여 설명하면 됩니다.--L. Lycaon (토론 / 기여) 2019년 6월 10일 (월) 14:13 (KST)

 찬성 적절한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만세 (토론) 2019년 6월 10일 (월) 14:59 (KST)

@Lentonn, 대한만세, 인천직전, Twotwo2019, Xakyntos: 신당서 원문은 武后封乞四比羽為許國公 乞乞仲象為震國 赦其罪 羽不受命 后詔玉鈐衞大將軍李楷固 中郎將索仇擊斬之 是時仲象已死 其子祚榮引殘痍遁去 입니다. 그에 따라 수정하며 아예 기존의 판도 대대적으로 변경합니다. 걸사비우 항목도 살짝 수정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두산백과까지 확인하였습니다. 참고로 걸걸중상의 원래 판은 이것으로 '측천무후로부터 진국공(震國公)에 봉작되었으나 거절했다' 혹은 '측천무후(側天武后)는 이들을 달래고자 걸걸중상을 진국공(震國公)에 봉하고, 말갈의 걸사비우(乞四比羽)를 허국공(許國公)에 봉하였으나, 이에 따르지 않자 중랑장 섹구와 함께 거란족 출신의 우옥검위대장군(右玉鈐衛大將軍) 이해고(李偕固)를 보내 반란을 일으킨 거란족을 토벌하고, 탈출한 고구려 유민을 추격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이해고 대군의 공격을 받고 걸사비우와 함께 사망했다.' 이었습니다. 이를 학산 무두리님께서 이렇게 '이때 측천무후로부터 진국공(震國公)에 봉작되었다.'로 수정하셨고, 이후 관련 건으로 편집 분쟁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Lentonn, 대한만세, 인천직전 세 분 모두의 토론 태도는 아주 잘못되었으며 기초적인 사실 확인조차 서로가 하지 않았습니다. 토론이나 백:의견 요청을 통해 충분히 침착하고 정중하게 이 건을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백:사관까지 가 다투셨습니다. 그중에서도 인천직전님은 기존의 사용자였음에도 말입니다. 이 건은 세 분 모두가 곱씹어봐야할 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김기흥 선생님의 '발해의 종족적 연원'은 얼추 읽어보았는데 이번 건의 근본 원인이 된 학산 무두리님의 편집에 오류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편집도 아주 약간 둘러보았는데 백:정책과 지침을 준수한 것인지 세부적인 검증이 필요해보입니다. 물론 제가 할 수도 있겠으나 저의 활동량이 예전같지 않아 죄송합니다. 걸걸중상만큼은 다시 한번 확인한 후 좀더 수정하겠습니다. 또한 이쪽이든 저쪽이든 다중계정 악용자들이 모두 관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더욱, 아니 평소에도 백:예절, 백:토론 문서 지침, 백:신뢰할 수 있는 출처, 백:총의, 백:아님#다수결을 각별히 신경써야 합니다. 세 분을 제외한 두 분은 이 건과 관련된 조금의 의견이라도 남기신 바가 있어 핑을 하였습니다. 귀찮으셨다면 대단히 죄송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9년 6월 20일 (목) 20:57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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