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고려 태조

활성화된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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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집

korealife가 편집한 편년통록에 대해서는 [1]에 나와있습니다. 확인결과 이 책은 고려왕건을 신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편찬된 책으로 고려 태조의 조상이 당나라의 황족이었다는 것은 단순한 무속적 설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덧붙여 korealife가 기여한 모든 내용에 대해 사실 여부를 알아봐야될 필요성이 있습니다. 앞으로 korealife가 프록시 등을 통해 편집하는 내용은 바로바로 rv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 Allen R Francis 2006년 8월 31일 (금) 18:54 (KST)

아이피 사용자의 참고사항 삭제에 대하여편집

고구려를 계승하여 고려를 건국하였지만, 고구려의 수도였던 서경으로 천도하지는 않았다. (그의 아들 정종의 대에 이르러서야 서경으로의 천도 움직임이 일어난다) 태조 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건국이념을 내세웠지만, 고구려의 수도인 서경으로 천도하지도 않았고, 옛 고구려의 영토를 극히 일부분만 회복했을 뿐이다. (황폐해진 서경을 주요도시로 부흥시키기는 하였다 -> 왕식렴분사제도 참고)

특정 인물의 행적 중에서 특정 의견에 부합 혹은 편중되는 일부분만 뽑아서 모아 놓음으로써 특정한 의도를 만들어 내는 것은 명백한 주관적 편집이며, 비중립적인 편집이기도 합니다. 해당 편집은 명백하게 그렇게 볼 수 밖에 없으며, 이는 삭제 대상입니다. 해당 내용을 본문에 첨가하길 원하신다면, 그러한 특정 의견을 제시한 공인된 출처를 명시하시고, 그 내용은 평가와 같은 제목으로 따로 서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사항과 같이 불분명한 방식으로 서술하는 것은 지극히 비중립적입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12월 9일 (목) 14:18 (KST)

역사교양서 인용에 관한 문제편집

어느 사람이 고려 왕 항목마다 '박영규의 고려왕조실록' 책을 인용하여 출처 표기를 달아놨는데, 고려사 같은 사료를 제쳐두고 2차 편집본인 교양서를 인용할 이유도 없고, 그 교양서가 사료의 내용을 그대로 담아내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그 편집자가 그 책을 인용한다는 것은 책장에 그 책 밖에 없다는 말이겠지요. 특히나 '왕건이 몇 년에 무슨 성을 공격했다' 같이, 사료가 명백하여 굳이 출처가 필요하지 않는 부분에도 일일이 그 책이 인용되었습니다. 일단 그런 부분들은 다 삭제를 하였는데, 나중에 본 문서를 포함하여 고려 왕 항목들은 수정할 분들은 교양서가 출처로 표기된 부분에서 그 기사가 작가의 주관적인 견해인 경우는 남겨두시고, 1차원적인 역사적 사실 부문에 교양서가 출처로 표기되어 있다면, 삭제하시거나 꼭 출처가 필요할 것 같다 하는 것들은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인용해주시기 바랍니다. Kakarote17 (토론) 2014년 3월 21일 (금) 16:1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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