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지난 토론들을 보존 처리편집

충분히 많이 쌓였다고 생각해서 지난 토론들을 보존 처리하였습니다. 새로운 의견은 아래에 적어 주세요.--아드리앵 (토·기) 2013년 11월 26일 (화) 17:51 (KST)

남로당 전력에 관하여편집

여순사건에 연루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남로당의 당원이었고, 이로 인해 사형판결을 받은 것은 백선엽의 증언과, 이를 보도했던(제 기억으로는 백선엽의 구술을 토대로 한 연재물이었습니다.) 중앙일보의 기사도 있는 만큼 근거가 충분하니 적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여담으로 윤보선이 제5대 대통령선거때 박정희의 남로당 전력을 문제삼자 박정희는 "매카시즘이 한국에도 왔다"고 반박하기도 했지요. --팝저씨 (토론) 2014년 1월 10일 (금) 19:20 (KST)

사실이니 적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장기간 당원이었던 것은 아니라서 위에 적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대통령들의 창씨개명한 이름도 위에 적지는 않죠.--Iloverussia (토론) 2014년 1월 10일 (금) 19:29 (KST)

이 주장을 받쳐주는 근거가 사료가 없습니다. 신문은 사료가 아닙니다.

남로당에 가입한 사실이 있지만 배신때리고 전향했습니다.

파시스트, 친일파편집

그 당시 박정희는 만주군 장교였고, 이것은 지원이 아니라면 불가능 했던 것임. 즉, 당시 만주군의 목표가 북만주의 항일 세력인 팔로군을 토벌하는 게 주 목적이었으므로, 항일 투쟁을 진압할 확률이 있음에도 지원했기 때문에 친일파로 분류할 수 있음.

파시스트에 대한 것은 이미 기사문이나 수많은 정치학자들이 분석했으므로,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함. --Kommunisten (토론) 2014년 1월 18일 (토) 23:59 (KST)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님만의 주장이죠. 좌우파를 떠나서 대다수의 정치학자들이 파시스트로 본다는 출처를 가져오세요.--Iloverussia (토론) 2014년 1월 19일 (일) 00:04 (KST)
  • 분류항목에는 반론을 기재할수 없으므로 좀더 이견이 없는 사항이 오는것이 맞습니다. 이견이 있다면 분류항목으로 기재하지 말고 반론을 적을수 있게 본문으로 기재를 하세요
  • 박정희의 남로당경력의 기재를 주장하고 싶다면 경제개발에 대한 기재도 반대하지 마세요. 일관성 없는 주장은 다른이들의 타당성 있는 주장까지 방해를 하게 됩니다. --라이딩(RidingW) (토론) 2014년 1월 20일 (월) 13:40 (KST)
  • 그 전에 박정희가 경제개발을 했다는 증거좀? GDP 성장율이 김영삼 다음으로 낮은 정권인데. 근거 없는 주장은 타당성 있는 주장까지 방해를 하게 됩니다.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183.107.9.116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Sjsws1078 님이 추가하였습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최소한 김대중 노무현 정권보다 높습니다.--Iloverussia (토론) 2014년 2월 2일 (일) 14:04 (KST)

이름 소개에 창씨개명을 빼는 것은 이해할만 하다 쳐도 남로당은 왜 굳이 지우시는지 모르겠네요.. 특정인을 자꾸 거론하게 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만 '무조건 되돌리기'를 하는 사용자를 놔두는 것이 과연 옳은지 의문입니다. adidas (토론) 2014년 1월 20일 (월) 18:35 (KST)

제가 남로당 전력을 삭제했습니까? 정치적 목적으로 악의적으로 개요 문단에 쓴 것을 되돌린 것 뿐입니다. 남로당 전력은 밑에 적으면 충분합니다. 김대중 문서에는 개요 문단에 부정적인 내용은 전혀 없네요.--Iloverussia (토론) 2014년 1월 20일 (월) 19:03 (KST)
정치적 목적으로 악의적으로 개요 문단을 되돌리셨잖아요? 부정적인 인간에 대해선 부정적으로 쓰는게 당연한겁니다.--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183.107.9.116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Sjsws1078 님이 추가하였습니다.
김대중 문서 관련한 것은 김대중 문서에서 토론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키백과의 균형과 공정성은 위키백과 전체에서도 구현되야 겠지만 개별 문서에서도 구현되야 합니다. 악의적 편집을 되돌리시는 것은 좋지만 해당 편집 중에서도 골라낼 부분은 골라내서 되돌려 주셨으면 좋겠네요. 러시아님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만 되돌리는 과정에서 비판적인 부분의 상당수가 삭제가 된 점은 유감입니다. adidas (토론) 2014년 1월 21일 (화) 11:30 (KST)
남로당 부분은 살렸고 파시스트라던지 창씨개명 등은 뺐습니다. 특히 창씨개명은 박정희가 자발적으로 했는지도 불분명한 상황이고, 김영삼, 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등도 문서 맨 앞의 '프로필'에 창씨개명은 싣지 않은 것을 준용했습니다. 남로당 부분은 박정희 초기 생애를 설명하는데 핵심적 사항 중 하나인데 아예 빠져 있어서 서술을 추가했습니다. 부디 '되돌리기'가 아니라 '수정'으로 편집해 주시기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adidas (토론) 2014년 1월 21일 (화) 11:40 (KST)

민족문제 연구소의 혈서 관련 기사에 논란점이 있는 관계로 본문에서 제거하고 논란 쪽으로 옮겨 주셨으면 합니다. 1939년은 만주신문의 폐간일 이후 입니다. 출처 : 일본 국립국회도서관(https://rnavi.ndl.go.jp/research_guide/entry/theme-asia-49.php)

위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사이트를 검색하여 번역해보니, 만주신문의 출판 사항에 1938~[1944] 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실 확인을 다시 한 번 해주세요. 「만주 신문」(신징 [장춘] : 만주 신문사) 출판 기간 : 1938.10.11 ~ 1944.3.31 비고 : "멋진 새로운 교토 일보"(신징)의 개제. (https://ndlopac.ndl.go.jp/F/?func=direct&local_base=GU_KS&doc_number=002745759)

남로당 입당의 이유를 형의 사망으로 큰 충격을 받았는데 후에 형친구가 찾아와 권유하자 묵시적으로 가입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남로당은 미군정에서 인정하지 않아지만 남한내 최대 정치조직이었다. 군대 내에서도 남로당 조직원들이 많았고 정부수립시 정권을 잡을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출세욕으로 상당히 조직내에서 높은위치에 올라간것으로 보인다. 여수순천 14연대 반란사건시 체포되어 심문을 받을시 조직도를 그려낼 정도면 상당한 위치에 있지않으면 안된다. 또한 당시 상황상 사형이 확정정이었지만, 만주파들의 구명운동으로 살아난 것이다. 이 논란이 우스운 이유는 보수우익들의 평소 주장하는대로 한번 빨갱이는 영원한 빨갱이 아닌가 빨갱이+일본인이죠. 창씨개명을 했을으니까 박정희가 아닌 다카키 마사오인셈이죠

백:사랑방 (정책)#iloverussia님의 분쟁에 대해서편집

이 문서의 분쟁을 포함해서 여러문서에서 진행중인 분쟁에 대한 공통적인 해결책을 찾기위해서 정책사랑방으로 토론을 개설하고 여기로 공지를 한것입니다. 토론문서를 삭제하면 당장 분쟁 사유가 됩니다. 삭제하지 말고 토론에 참가해 주세요.--라이딩(RidingW) (토론) 2014년 1월 19일 (일) 16:59 (KST)

박정희 문서의 분류를 "친일파"와 "공산주의자"의 카테고리 안에 넣는 것이 정당한지 토론을 해야 합니다.편집

박정희 문서의 분류를 "친일파"와 "공산주의자" 카테고리에 넣는 것은, 과거 박정희의 친일 행적에 관한 논란과 남로당 전력에 관한 논란을 기정사실화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것은 현재도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고 다양한 주장을 하는 부류들이 있는 만큼, 개인이나 일부 집단의 "주관적 관점"을 "객관적 기정사실화"하여 카테고리에 넣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위키 문서는 "객관적 사실"만을 보여주고 판단은 사용자들이 알아서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문서 내용 자체에 친일 행적과 공산주의자인지에 관한 논란을 적을 수는 있으나 분류에 넣어 기정사실화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이 객관적 사실이나 되는 마냥 저보고 문서 훼손 행위를 멈추라고 하면서 계속 되돌리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께 오히려 왜 자꾸 문서에 주관적 의견을 객관적 사실로 만들고 싶어하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문서 내용 안에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친일 행적과 공산주의 경력을 넣는 것은 아무 문제도 삼지 않습니다. 다만 카테고리에 정착시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121.162.13.133 (토론) 2014년 3월 12일 (수) 14:53 (KST)

박정희는 친일백과사전에 수록된 것은 물론, 남로당원으로 활동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백선엽등의 선처로 사면받은 바 있으니, 사실입니다. 따라서 분류도 해야 합니다. --팝저씨 (토론) 2014년 3월 12일 (수) 14:59 (KST)
위키는 일부 집단의 주장과 관점을 기정사실화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중요한 사실은, "정치적 시각"과 "역사적 시각"에 따라 박정희를 친일파로 보는 사람도 아닌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공산주의자"로 보는 사람과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김두한"씨도 잠시 공산주의자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분류가 공산주의자로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반공주의자" 분류와 "공산주의자" 분류가 동시에 들어있는 것도 희극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박정희의 친일파, 공산주의자 경력은 주류 의견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 논란이 되고 있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다양한 언론 보도와 역사책, 논문 등이 그것을 증거하며, 굳이 여기 가지고 오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논란이 되는 것은 "문서 안쪽에 집어넣어야지" "분류로서 기정사실화"하면 안됩니다. 위키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중립적 시각"입니다.121.162.13.133 (토론) 2014년 3월 12일 (수) 15:29 (KST)
만주국 장교를 친일파로 분류하는 것은 정부의 공식 지침이고, 남로당원으로 활동하다가 사형선고를 받은 것은 대한민국 법원의 판단입니다. 이를 일부 집단의 주장과 관점이라 표하는 것이 더 희극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뉴라이트 활동가들이 대부분 주사파였다가 전향한 사람들인데, 그럼 이사람들이 주사파였다는 것을 애써 무시해야 하나요? 사람의 사상은 바뀔 수 있는 것이고, 분류는 그 둘을 담을 수 있는 것입니다. --팝저씨 (토론) 2014년 3월 12일 (수) 15:32 (KST)
저는 박정희씨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중요한 것은 이에 관한 다른 시각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자꾸 어느 한 집단이 자신의 의견을 기정사실화하는 것, 보기 좋지 않습니다. 본인의 주장에 반박하는 논문, 책, 언론도 수없이 많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박정희씨가 어느 쪽이든 아무 상관없으며, 제게 중요한 것은 내가 많이 사용하고 있는 위키백과가 중립적 시각을 가지지 않는 것 뿐입니다. "Neoalpha|팝저씨"님의 정치적 시각은 존중합니다. 님 같은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요소가 분명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집단도 만만치 않게 많은 상황에서 위키백과에서 자신의 정치적, 역사적 시각을 주장하고 공론화시키고 있는 행동은 존중해드릴 수 없습니다. "논란이 되는 것"은 "문서 안쪽에 적어주십시오." 121.162.13.133 (토론) 2014년 3월 12일 (수) 15:39 (KST)
제 주장에 어딜 봐서 정치적 견해가 들어있나요? "대한민국 법원"의 판단을 가져왔고,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을 가져온 것이 제 정치적 시각인가요?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대한민국 정부나 법원의 판단이나 입장을 가져오면 안되겠군요. 중립성 위반이니까요.--팝저씨 (토론) 2014년 3월 12일 (수) 15:46 (KST)

위키백과의 백:중립성 정책이 이런 부분을 명확하게 해석하지 않고 있어서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여기서도 명확하게 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팝저씨 님의 주장은 “박정희는 친일파, 공산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고, 그 근거는 친일인명사전과 대한민국 법원의 판결이다”이라는 것인 것 같고요, 출처 부분에 있어서는 일단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121.162.13.133님도 논문, 책, 언론을 언급하시면서, 반대의 의견도 있다고 말씀하시므로, 일단 관련 문헌부터 확인해 보도록 합시다. 다른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박정희는 친일 행위를 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공산주의 활동에 가담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는 출처를 제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거기서부터 문제 해결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논문도 좋고, 책도 좋고, 주간지 월간지 및 각종 중앙일간지도 위키백과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됩니다. 일단 출처를 제시하시고, 분류를 제거할지 말지를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10k (토론) 2014년 3월 13일 (목) 07:29 (KST)

"공산주의자"와 "반공주의자"가 한 인물에게 쓰여지는 것에 대해서편집

극히 반대되는 이 두개의 분류가 한 인물에게 쓰여지는 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어느 한쪽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는 겁니다. "공산주의자였다가 반공주의자가 된 사람"이라는 분류라도 만들어야 하나요? --mijiaer (토론) 2014년 3월 18일 (화) 23:46 (KST)

그 모순은 박정희 개인의 모순이지 위키백과의 모순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최규하는 대통령으로 1년도 안되는 기간동안 재직하고, 평생을 민간인으로 살다가 죽었지만 대통령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분류는 박정희문서 보다도 분류:공산주의자문서를 위해 더 중요합니다. 사용자가 공산주의자로 분류된 문서를 검색했는데, 단지 박정희가 전향했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 분류에서 제외되어서 나오지 않는다면, 위키백과를 이용해 공산주의자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문제가 됩니다. --10k (토론) 2014년 3월 19일 (수) 02:07 (KST)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mijiaer (토론) 2014년 3월 19일 (수) 16:04 (KST)
전향했으면 더이상 그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니까 분류에서 빼는 게 더 낫지 않나요?39.117.142.160 (토론)ㄱㄴㄷ39.117.142.160 (토론)
한때나마 가졌다면 공산주의자로 분류하는 것이 맞습니다. --Neoalpha (토론) 2014년 5월 22일 (목) 20:48 (KST)

박정희는 공식적으로 공산주의자에서 전향한 적이 없습니다. 전향서를 작성한 적도 없고, 스스로 전향 의사를 밝힌 적도 없습니다. 나중에 대통령이 되고 나서 반공을 국시로 했기에 반공주의자로 보는 것이지, 그 이전까지는 여전히 공산주의자였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15년 12월 28일 (월) 23:00 (KST)

다시 생각해보니편집

역대 대통령에 관한 문서는 최대한 객관적인 방향으로 편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는 아직도 대한민국의 절반 이상이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인물인데, 박정희가 '공산주의자'나 '친일파'로 생각되었다면 이런 평가는 내려지지 않았을 겁니다. 민족문제연구소나 법원의 판결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도 반영되어야 하지 않을까요?--mijiaer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11:09 (KST)

백:아님#국가와 백:면책 조항을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위키백과는 불쾌한 내용을 담고 있을수도 있고, 또 어느 한 국가(또는 국민)의 입장에 서지 않습니다. --Neoalpha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11:17 (KST)
백:아님#국가는 없는 링크로군요! 그럼 어디 간 것이죠? 갑자기 멘붕이... --Neoalpha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11:25 (KST)
어느 한 국가 또는 국민의 입장에 서지 않는다면, 어느 한 단체(민족문제연구소와 같은)의 입장에서 쓰는것도 이상한 것 아닌가요. 뭐 이렇게 생각하면 내용이 끝이 없지만......--mijiaer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16:32 (KST)
정확히는 사실을 근거로 한 판단이겠지요. 박정희가 만주군 장교로 복무한 "사실"과 남로당원으로 활동하다 사형을 선고받은 "사실"을 근거로 문서를 편집하는 것이 특별히 어느 나라나 집단의 입장에서 쓴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Neoalpha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16:56 (KST)
어느 입장을 반영할지를 고려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위키백과의 내용은 특정한 입장이 아닌, 다양한 문헌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그 문헌은 단체나 국가기관이 만든 것일 수도 있고, 개인이 만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점은, 그 문헌이 백:검증 가능하고, 백:신뢰할 수 있는 출처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키백과는 정서는 배제하고 정보를 반영해야 합니다. 만일 대한민국 국민들 사이에 박정희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하는 국민 정서가 있다면, 그것을 언급하는 문헌을 근거로, 그와 같은 정서가 있다는 내용은 포함될 수 있습니다. --10k (토론) 2014년 4월 9일 (수) 01:13 (KST)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와 '객관성'은 별 상관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박정희가 일본 장교를 하고 공산주의 활동을 한 것도 사실이며,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이 된 뒤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지요. 또한 위키백과에서는 특정 국가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점도 고려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실 위키백과 헤비유저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는게 사실입니다만 자주 이용하시다보면 자연스레 이해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adidas (토론) 2014년 4월 9일 (수) 14:42 (KST)

mijiaer 님께서는 객관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주관의 일면적인 의견에서 떠나 사물(객관)에 따른 공평한 태도를 객관적이라고 한다. 주관의 희망적 관측을 포함하지 않고 사물의 있는 그대로를 올바르게 드러내는 것을 객관성이라고 한다.

--Knight2000 (토론) 2015년 12월 28일 (월) 23:03 (KST)

문서 훼손 주의편집

IP 사용자의 문서 훼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훼손을 되돌리기 위해 사용자들이 "되돌리기 분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서 훼손을 되돌리기 위한 기여는 장려해야 하지만, 서로 되돌리겠다고 싸우는 것은 곤란합니다. --Neoalpha (토론) 2014년 10월 20일 (월) 16:36 (KST)

박정희의 형, 동희(참조),무희(참조) 에 대해서편집

한국어위키백과에는 타언어 판의 임시 링크제(참조)도가 없는 것 같아서 했기 때문, 일본어판위키백과에의 링크는 URL을 붙였습니다.

추가 기록: 이쪽도 현재 한국어만 있는 박재홍_(1941년)의 페이지를 일본어판으로부터 링크시켜 받았습니다.--永続繁栄 (토론) 2015년 8월 20일 (목) 02:02 (KST)

문서삭제의견편집

문서를 삭제하고 다시 만든는게 어떻습니까?

  • 의견은  완료, 미완료로 남겨주세요.--홍길동1111 (토론) 2017년 1월 5일 (목) 16:04 (KST)
@홍길동1111: 기존의 문서를 삭제 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 Jeresy 2017년 1월 5일 (목) 16:20 (KST)
네 다시만들면 정리하기 쉽겠죠?--홍길동1111 (토론) 2017년 1월 5일 (목) 16:23 (KST)
지금 이 상태에서 정리해도 문제 없습니다. -- Jeresy 2017년 1월 5일 (목) 16:24 (KST)
그런가요? Jeresy723님ㅋㅋㅋ 그럼 정리 해 드릴수 있나요?ㅋ--홍길동1111 (토론) 2017년 1월 5일 (목) 16:48 (KST)
반대합니다. --Hellopoli (토론) 2017년 5월 6일 (토) 16:26 (KST)

2018년 7월 7일의 편집 요청편집

박정희 당시 육군 소장이 1960년 2월에 쿠데타를 당시 육군참모총장인 송요찬 장군이 미국 초청으로 방문 예정 기간인 당년 5월 8일에 잡고 쿠데타를 계획했으나 4월 19일에 혁명이 일어나는 바람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61년 4월 19일은 즉 2번째 계획인거죠. 수정 바랍니다. 218.236.154.35 (토론) 2018년 7월 7일 (토) 13:09 (KST)

편집이 필요한 위치와 편집되어야 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틀에 처리 표시하고, 문단을 닫습니다. -- 메이 (토론) 2018년 9월 12일 (수) 09:41 (KST)

2018년 8월 11일의 편집 요청편집

일본군으로 된 사진은 조작된 사진이므로 삭제해주시기 바랍니다 183.99.161.150 (토론) 2018년 8월 11일 (토) 22:01 (KST)

헌병 조장으로 설명된 파일에 대한 편집 요청으로 여겨집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다면, 이에 대한 확인 가능한 출처와 함께 다시 요청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틀에 처리 표시하고, 문단을 닫습니다. -- 메이 (토론) 2018년 9월 12일 (수) 09:41 (KST)

외부 링크 수정됨 (2018년 8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박정희에서 1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8년 8월 30일 (목) 03:06 (KST)

부정적 평가를 '박정희에 대한 비판'으로 분리하려 합니다편집

박정희 문서가 현재 27만 바이트이고 이명박에 대한 비판, 문재인에 대한 비판. 김대중에 대한 비판 등 다수의 비판 문서가 존재하고 있기에 그 선례에 따르려 합니다. 현재 박정희에 대한 비판 문서가 특정 독자연구가에 의해 생성된 상황이기도 하고요. 근데 제가 위백의 현대정치사쪽 분위기는 잘 모르기도 하고 백:분리도 해본 적이 없어 혹시나 하여 의견 요청을 달았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8년 10월 28일 (일) 16:18 (KST)

 찬성 다른 선례들과 마찬가지로, 주요 논란은 요약해서 본문에 정리한 후, 비판 문서로 분리에 찬성합니다. 다만 말씀대로 현재 박정희에 대한 비판 문서는 출처가 제대로 제시되어 있지 않고 독자연구성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어 손을 봐야 할 상황인 것 같습니다. --Cyberdoomslayer (토론) 2018년 10월 29일 (월) 05:42 (KST)
 찬성 저도 분리에 찬성입니다. --인피니티 건틀렛 (토론) 2018년 11월 25일 (일) 07:20 (KST)

  의견 요청을 달고도 한 달이 지났습니다. 반대 의견이 없으므로 처리합니다. 다만 제가 분리는 처음이라 좀 과격했을 수도 있으니;; 문제가 있다 싶으시다면 적당히 수정 바랍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8년 11월 28일 (수) 16:09 (KST)

@일단술먹고합시다: [1]처럼 본문의 부정적 평가를 요약도 없이 모두 옮기는 건 중립적 시각에 어긋나는 편집입니다. 특히 긍정적 평가는 그냥 놔두고 부정적 평가만 옮긴 건 중립적 시각 원칙의 위키백과:중립적 시각#비중 부분과도 어긋나고요. 일단 되돌리니 나중에 요약판 준비되면 그때 옮겨주세요. -- ChongDae (토론) 2018년 11월 28일 (수) 17:21 (KST)
그리고 박정희에 대한 비판으로 내용을 옮기셨는데, 그 부분도 이전의 내용은 싹 지우고 박정희에서 옮겨온 내용으로 덮어써 놓으셨네요. 이 부분은 직접 수정 부탁드립니다. -- ChongDae (토론) 2018년 11월 28일 (수) 17:25 (KST)
@ChongDae: 의견 요청 달았을 땐 쭈욱 말씀없으시다 이제와서 이러시니 진짜 낭패네요. 그럼 그냥 싹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 및 논란으로 옮기면 되겠습니까? 그럼 위반이랄 것도 없이 아주 깔끔해질 것 같은데요. 아울러 박정희에 대한 비판 문서의 이전 내용은 이 문서와 중복이었던 데다가 출처도 없는 내용들이라서 그렇게 수정하였습니다. 딱히 더 손볼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8년 11월 28일 (수) 17:34 (KST)
원래의 박정희에 대한 비판에 있던 대통령 재임 이전의 비판(친일, 좌익) 내용이 누락되어 잇습니다. 그 부분은 보강해야지, 지울 내용은 아닌듯 싶네요. -- ChongDae (토론) 2018년 11월 28일 (수) 17:38 (KST)
@ChongDae: 〈서울의소리〉가 백: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 하기는 어렵죠...... '친일행적에 대한 비판' 항목은 누락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요. 박정희의 대통령 재임 이전 시절의 행적은 박정희 문서에 훨씬 아주 잘 설명되어 있기에 중복 설명을 달 필요는 없습니다. 아울러 정말로 의제인 박정희에 대한 평가 및 논란 문서로의 분리는 동의하신 걸로 알고 그렇게 진행합니다. 그리 하면 말씀하신 중립 위반이랄 것도 없으니 이 문서에서의 요약 역시 필요 없겠죠. 박정희에 대한 비판 문서도 그쪽으로 백:병합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8년 11월 28일 (수) 17:48 (KST)
@일단술먹고합시다: 주 문서인 박정희에도 평가의 주요 항목은 남겨주세요. 요약판도 없이 다 옮기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 ChongDae (토론) 2018년 11월 29일 (목) 08:30 (KST)
@ChongDae: 문재인이 당선되자마자 관련 총의도 나지 않았는데, 한 관리자가 문서의 비판 부분을 주요 사항 요약도 없이 문재인에 대한 비판으로 임의로 통째로 옮길 때는 아무 말씀 없으시더니, 이거는 굳이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ChongDae님, 전에도 여러번 말씀드렸지만 사무관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중립을 가장하면서 너무 노골적으로 편파 판정을 하니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습니다. --Cyberdoomslayer (토론) 2018년 11월 29일 (목) 09:31 (KST)
문재인의 편집도, 박정희의 편집도 모두 잘못된 절차를 따랐습니다. 문재인 쪽 편집 절차가 잘못되었으니, 박정희도 "공평하게" 잘못 처리해도 된다는건가요? -- ChongDae (토론) 2018년 11월 29일 (목) 11:23 (KST)
@ChongDae: 아니오. 지금 제 취지를 잘못 이해하시는 것 같은데, 지금 저는 이 조치가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게 아니라, 귀하의 평소 선별적인 묵인이나 선별적인 지적을 문제 삼는 것입니다. 당연히 둘 다 올바른 절차를 따라야죠. 근데 제가 보기엔 평소에 귀하가 공평한 룰 적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편향적이고 선별적인 룰 적용을 하는 것이 너무 노골적인 것 같아서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위키백과를 가장 책임지는 사무관 정도 위치라면 그런 편향은 지양되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Cyberdoomslayer (토론) 2018년 11월 29일 (목) 12:30 (KST)
일단 영어판 등 다른 의견을 따르자면
1. 현재 인물에 대한 '~비판'문서는 전부 '~의 대중적 이미지'라는 표제어로 한참 전에 교체되었습니다. (예en:Public image of George W. Bush. Criticism of George W. Bush 검색하면 이 쪽으로 넘겨집니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인물의 다방면적인 주제 (정책, 사생활, 구설수 등)가 죄다 평가로 가 버리니 해당 문단만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역효과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논란 문서 하나 만들면 앨범 수십 만장 팔렸다는 내용이 말 실수 딱 한번 한 것 가지고 '~논란' 타령하는 기사 출처인 내용 더 주목을 못 받더군요) 심지어 명예 훼손 및 허위 사실 유포 등의 문제도 있었고요. (나무위키에서 '/비판','/논란' 이런 문서 너무 많다고 지적하던 목소리 있었다는 점 짚고 넘어가죠. 위키갤에서는 '무슨 욕하려고 위키하는 것 같다'고 하더이다.) 따라서 평가의 내용은 대부분 각각의 정책이나, 대중적 이미지 문서로 옮겨져야 마땅합니다.
2. 해당 문서의 '친일' 논란은 사실 굉장히 무거운 문제입니다. 이는 '박정희의 친일 논란' 문서를 따로 만들거나, '박정희의 대중적 이미지' 문서에서 '친일 여부' 문단을 파서 다루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영어판에서는 인물 문서에서 '평가'라는 단어를 그다지 쓰지 않습니다. 오로지 '행적'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비판은 그 안에서 (또는 독립된 문서로) 다루죠. 안 믿기신다면 지금 미국 언론에게 거의 쥐 잡듯 털리고 있는 도날드 트럼프 문서 목차 보고 오시면 됩니다.--Reiro (토론) 2018년 11월 29일 (목) 19:07 (KST)
@ChongDae: 일단 종대님께 감사드립니다. 다른 위백의 고경력자들분은 자신의 맘에 안 들면 앞뒤 사정 안 가리고 무조건 되돌리기부터 하고는 시간을 질질 끌던데... 적어도 종대님께선 그간의 진행 상황을 고려하신 듯 이 건에 관해서는 백:의견 요청만 달아주셨네요. 이것도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나, 총의를 무시한 날치기 처리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도, 그것보다 위백의 잘못된 관행을 개선할 수 있는 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본건에 대해 답변드립니다. 아니, 사실 답변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종대님께선 '주 문서인 박정희에도 평가의 주요 항목은 남겨주세요'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왜요? 이거 규정에 근거한 요청입니까? 아니, 규정이 아니더라도 진짜 왜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님께서 처음 제기하신 한쪽의 관점으로 쏠릴 수도 있다는 백:중립 위반은 이미 해결이 됐지 않습니까? '요약을 달아야 한다'는 당위 주장엔 이유 하나 말씀 안 하시고, 정작 의견 요청의 이유엔 '평가 문단의 분리에 대한 반론'이라고만 요약하시는 건 좀, 진짜 좀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관행 고칩시다. 합리적 이유를 달지 않은 요청은 하지 마시고, 왜 어떻게 어떤 면에서 잘못됐다는 것인지를 뚜렷하게 말씀해주신다면 저 역시 그에 관해 서로 의견을 조율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더욱 심각한 점은 종대님이 위백의 백:관리자이자 백:사무관이란 점입니다. 그런 분께서 합리적 이유는 전혀 달지 않으신 채 그저 요청만 하신다면 '권위에 기댄 횡포'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번에도 또다시 위백의 감투분들께 읍소드립니다. 제발 위백의 규정을 지켜주세요. 아... 위백의 감투분들을 '감투'라 칭했다고 저를 내쳐시렵니까.... 정말 부탁드려요........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8년 12월 11일 (화) 19:15 (KST)

외부 링크 수정됨 (2018년 11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박정희에서 19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8년 11월 23일 (금) 08:43 (KST)

2019년 1월 26일의 편집 요청편집

박정희는 간도특설대에 있지 않았습니다. 해당 명예훼손 재판에서 당시 제자들이 증언했습니다. 그 재판이 무죄가 된 것은 조선족 류연산의 주장을 근거로 한 출판물의 내용이 허위사실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허위사실임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하는 판결입니다. 간도특설대 항목에도 조선사람 명단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왜곡된 정보 수정 바랍니다. 180.71.163.194 (토론) 2019년 1월 26일 (토) 16:47 (KST)

요청과 관련된 본문 내용 중 특별히 왜곡된 부분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에서 당시 제자들이 증언했다는 내용에 대하여 출처를 첨부하여 추가 서술하거나, 논의를 거쳐 해당 내용을 수정하면 것으로 보입니다. 틀을 처리로 표시하고 문단을 닫습니다. -- 메이 (토론) 2019년 4월 6일 (토) 15:57 (KST)

외부 링크 수정됨 (2019년 4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박정희에서 1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9년 4월 12일 (금) 03:25 (KST)

외부 링크 수정됨 (2019년 5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박정희에서 1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9년 5월 16일 (목) 02:15 (KST)

외부 링크 수정됨 (2019년 8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박정희에서 1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9년 8월 10일 (토) 18:59 (KST)

"박정희"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