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비류국

마지막 의견: 8년 전 (Knight2000님) - 주제: 문서의 인용문을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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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6년 六月,<松讓>以其艱難,怨其神鹿,懸鹿於蟹原之上,有大蟹来咬,鹿哀號七日.天乃大雨七日,洪水大漲平地水深二丈,<沸流>都城陷沒於水中.<松讓>避入岩窟,都民號哭索其父母妻子,慘惔難言.上發兵徃救之,賑其民衆.<讓>自知德薄才拙無以自存,請以國献永為臣子.乃以其地為<湯東>‧<湯西>‧<湯北>三郡,以<讓>為「多勿侯」.「多勿」者,復旧土之義也.[多勿]「舊村」曰「多勿」「故國」之義也.天帝之<熊心山>「鴨淥行宮」在<湯東>,為<讓>所奪,至是復之故,以<湯東>為<多勿郡>.自是,始置<汗東>‧<汗南>‧<桂林>‧<箕東>‧<湯東>‧<湯西>‧<湯北>編入國土而守牧之. <송양>은 자신이 박덕하고 재능이 졸렬하여 자신도 보존할 수 없음을 깨달았으며 나라를 바치고 영원한 신하가 되겠다고 청하였다. 이에 그 땅{沸流國 모든 疆域}을 <탕동湯東>・<탕서湯西>・<탕북湯北> 세 군으로 삼았으며, <송양>을 「다물후」로 삼았다. 「다물」이란 말은 ‘옛 땅을 되찾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다물」「구촌舊村」이라 함은 ‘「다물」「고국故國}」’함을 뜻하는 것이다. 천제{慕漱帝}의 <웅심산{都山・喜峯口間灤河支流淸河谷中 太平寨北 熊虎頭+牛心山?}>「압록행궁」은 <탕동>땅에 있었는데{故國原・故國川・故國川原은 湯東郡에 있었는데!}, <송양>에게 빼앗겼다가{丁卯年則BCE54年紀 참조} 지금에 되찾은 것이어서, <탕동군>을 <다물군多勿郡>으로 삼으셨다. 이때부터 비로소 <한동汗東>・<한남汗南>・<계림桂林>・<기동箕東>・<탕동湯東>・<탕서湯西>・<탕북湯北>군들을 두게 되었고, 국토로 편입하여 지키고 다스렸다{또는, 「太守」와 「牧使」를 두었다. 또는, 守備하고 牧畜하였다}.{본시의 卒本國은 湯南郡 해당?!} (유기추모경) 고구리 창세기

본문에서 옮겨왔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16년 4월 11일 (월) 23:37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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