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성 편집

독립 문서로 등재할 만큼의 백과사전 적합성, 그리고 저명성이 있는지 의문입니다.--백두 (토론) 2009년 7월 9일 (목) 14:59 (KST)답변

 병합 K-리그 연고지 문서에서 설명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명성도 없다면 그냥 삭제해도 될 듯. --람다람쥐토론2009년 7월 9일 (목) 16:55 (KST)답변

프로축구팬 아니시면 이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 인지를 못하실겁니다. 전부 근거와 출처가 있는데 왜 자꾸 저명성을 걸고 넘어가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저명성에 위배되는 부분을 지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일단 아웃라인만 잡은거고 여러가지 보충할 사항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검색을 많이 하는 사건이고 프로축구 관련 문서들에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단어로 많이 인용되고 있으니 절대 삭제 반대입니다. 《토론--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Boojanam01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출처나 근거가 있다고 해서 저명성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프로축구 연고지 관련 내용이라면 K-리그 연고지 문서가 이미 있으니, 거기에서 함께 서술하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백두 (토론) 2009년 7월 20일 (월) 22:59 (KST)답변

K리그 연고지는 문서는 일괄적인 연고지 제도 변천사에 대해서 서술하는거고 이 문서는 K리그 특정한 사건에 대해서 서술하는문서이기 때문에 합치면 안 됩니다. 왜 저명성이 떨어지는지 자세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Boojanam01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내용이 K-리그 연고지의 특정 정책에 관한 것으로, 백과사전에 단독 표제어로 기술될 만큼의 저명성을 갖추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백두 (토론) 2009년 7월 21일 (화) 13:53 (KST)답변

3개월 동안 추가적인 의견이 없으므로, K-리그 연고지 문서에 표제어를 연맹에서 사용하고 있는 공식 용어인 구단 완전지역연고제도로 바꾸어  병합하도록 하겠습니다. UNCIA Discussion ·Contributions 2009년 10월 26일 (월) 01:24 (KST)답변

근래 요새 바빠서 내용 보충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내용 보충을 못했다고 하더라도 지금 토론에서 합의가 난게 아닌데 Snowleopard님이 무슨 권한으로 병합을 하는거죠? Boojanam01 (토론)

 구단 완전지역연고제도로 이동 프로연맹에서 원칙적으로 사용한 용어가 구단 완전지역연고제도이고, 해당 정책은 세부 정책에 속하므로 해당 문서명으로 문서를 이동하고, 이쯤이면 저명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봅니다만. 참고로 구글 기준으로 '구단완전지역연고제도'를 검색 시 161,000개, '축구'를 포함하면 '93,400'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19,700'개의 결과가 나옵니다. 그리고 제가 K-리그 연고지에 합병 시 기술한 부분을 삽입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UNCIA Discussion ·Contributions 2009년 10월 27일 (화) 15:31 (KST)답변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의 오류 편집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의 오류설 혹은 허구설 논파 완료 편집

아래 기재된 반 FC 서울 커뮤니티에서 만들어 속칭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오류설 혹은 허구설이라 떠돌면서 제기된 부분들 모두 증거자료와 함께 논파되어 문서에 반영되어있습니다. 문서 본문의 시행 단락 설명과 시간대별 사건 테이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여기 한국어 공식 위키백과가 아닌 리그베다 위키백과에서 벌어진 서울연고공동화정 정책 자발성 vs 강제성 끝짱토론 게시물, 토론 결과 정리 및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허구설 주장자 패배 인정 게시물 처음부터 자세히 읽으시면 아래 오류와 허구 입증이 모두 가설이나 독자연구에 지나지 않는 것을 쉽게 이해하실 것입니다.'


일단 이건 제가 쓴 것이 아니라 풋볼케이닷넷다문제일님의 글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이 문서가 가지고 있는 오류와 허구들을 입증하는 글이니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Fetx2002 (토론) 2013년 2월 9일 (토) 15:53 (KST)답변

안양 창단 기념 칼럼 <1> 비극의 시작, 이른바 '서울 공동화 정책'의 발단에 대한 재검토

안양 프로축구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저는 낙관론자는 못 되는 사람이라서 일단 험로를 예상하고 있지만 마냥 장밋빛이 아니라고 하여 단지 조롱과 비웃음거리로만 삼는 태도는 경멸합니다. 따지고 보면 K리그 역사 자체도 졸속으로 시작되어 온갖 흙먼지를 피우고 스스로 구덩이를 파며 갈지자로 휘청거리며 걷다가 여기까지 이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로 얼룩졌던 한국 축구사에 한 매듭이 지어지는 느낌이고, 일련의 사태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민감한 주제들도 한결 편한 마음으로 가볍게 다룰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전환점을 맞아 지난 시기를 찬찬히 살펴보고 싶은 축덕으로서의 욕구가 솟아나기도 하고요.

그러려면 모든 일의 시초가 되는 1996(~1999?)년의 이른바 '서울 공동화 정책'을 면밀하게 살펴보는 과정이 필수일 텐데, 미리 말씀드리지만 그러한 과정 끝에 내린 결론으로 연고이전 문제에 관한 어떤 의견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런 식의 분쟁은 과거지사가 됐다고 여기고 있고, 어차피 이미 각자가 취하고 있는 태도는 특정 결론에 따라 달라질 부분이 아닐 것이며 이는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어쩌면 이 문제에 관해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 합의된 결론을 갖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인터넷 여기저기를 둘러보면 LG 축구단의 안양→서울 연고이전을 둘러싼 축구팬 사회의 첨예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이해의 교집합이 꽤나 넓게 형성된 것으로 느껴집니다. 한 마디로 "잘못됐다"는 것. 계기를 보나 과정을 보나 결과를 보나 말이죠.

제가 아는 한 웹에서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문서인 위키피디아 한국판의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기사(이하 위키 문서)를 읽어보면, 연맹의 판단 착오(J리그의 도쿄 공동화 모방) 또는 재벌 간의 협잡(서울 연고를 원하던 삼성 참여 유도) 또는 당시 정부의 강압(청와대 지시)에 인해 촉발되었으며, 경기장 문제 등 졸속시행으로 인한 온갖 촌극을 벌인 끝에 1999년 서울 구단 창단 결정으로 '철폐'될 수밖에 없었던, 게다가 서울 방출(?) 후 최초 연고지를 유지하는 구단이 한 개도 없는 등 어떠한 소득을 거두지도 못했던, 그야말로 삽질의 파노라마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위키 기반의 웹사이트, 예컨대 엔하위키 같은 곳의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는 입은 옷만 다를 뿐 몸뚱이는 그대로라고 해도 무방하며 심지어 연고이전을 반대한다는 풋케위키의 해당 문서 도 좀 지난 버전의 위키 문서를 전재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위키 문서가 이 문제에 대해, 적어도 네티즌-축구팬 사이에서는 상당한 권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고 그만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느냐 하면 전혀 아닙니다. 조금만 들여다봐도 송송 뚫린 구멍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일단 위키 문서에서 '서울 공동화 정책'의 원인으로 상호 모순되는 세 가지를 들고 있다는 것부터 걸립니다.

위키 문서는 '발단' 항목에서 J리그의 성공에 자극받은 연맹이 '도쿄 공동화 정책'을 모방해 '서울 공동화 정책'을 시행했다는 요지를 근거 자료도 거의 제시하지 않으면서 A4용지 한 장이 넘어가도록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바로 아래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의 알력설'이란 제목을 단 항목에서는 당초 서울을 원하던 삼성그룹의 리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서울 연고를 공동화시켰다는 사뭇 다른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다음 '시행' 항목에서는 당시 김영삼 정부가 추진하던 지방분권화의 일환으로 서울 소재 구단의 지방 분산이 이뤄졌다고 주장합니다.

이쯤 되면 이런 이모티콘이 나올 만하지 않습니까.

-_-ㅋ (도대체 뭐가 진짜 원인이라는 건지...)

잘나가던 J리그의 도쿄 공동화를 모방했다? 서울 연고를 원하던 삼성의 K리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지방분권화를 추진하던 청와대 지시 때문이다? 세 가지가 꼭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더라도 어느 하나를 강조하게 되면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음은 상식이겠죠.

만약, 위키 문서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많은 각주를 달면서 “...었다는 설이 있다”는 유보적 표현도 없이, 엄연한 축구계 ‘외부’인 청와대™의 의지에서 비롯된 서울 소재 구단들에 대한 ‘강압’적인 연고 이전과 그에 따른 해당 구단들의 완강한 ‘저항’을 자신만만하게 써내려가고 있는 ‘시행’ 항목의 원인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어쨌든 축구계 ‘내부’에서 나온 발상이었다는 ‘J리그의 도쿄 공동화 모방설’이나 (서울 연고를 원하던) ‘삼성 참여 유도설’은 조금이라도 설자리가 줄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J리그 모방설이나 삼성 참여 유도설을 믿을 만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청와대 지시와 같은 것은 설령 실재했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마지막 도화선 정도 구실을 한 것에 불과하고 근본적인 원인이 되긴 힘들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한 논을 갈라 각각 다른 곳에서 끌어들인 물을 대는 양상은 비단 저 문서가 아니더라도 위키피디아 류의 집단 연구 문서가 항상 안고 있는 문제점이긴 합니다만, 아무튼 “남이 시켜서 했다”고 한다면 “스스로 알아서 했다”고 하긴 힘들다, 그 반대도 성립한다, 이 정도는 진영에 따라서 받아들이고 말고 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적당히 종합해 보자고 하기엔 두 가지 설의 근거가 워낙 빈약합니다. J리그 모방설을 설명하는 ‘발단’ 항목에서 근거 자료의 출처를 밝힌 각주는 단 한 개인데 그나마도 베르디 가와사키의 창단 과정에 대한 것으로 전체적인 논점과는 별 관계가 없는 글입니다.

삼성 참여 유도설을 다루는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의 알력설‘ 항목에는 덕지덕지 여러 개의 각주가 붙어있습니다만 역시 클릭해서 확인해 보면 “삼성그룹이 서울 연고로 프로축구단을 창단하려고 하자 당시 협회와 연맹을 장악하고 있던 현대그룹이 위협을 느끼고 이를 무산시켰으나, 월드컵 유치를 위해 삼성의 리그 참여를 유도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서울 공동화를 단행했다”는 핵심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전무하며, 월드컵 유치전과 삼성의 K리그 참가 과정을 보도한 신문기사들일 뿐입니다.

위키 문서에는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어도 잘 뒤져보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글쎄요, 이런 것도 찾아내는 실력이라면 벌써 찾아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화·유공·LG 내년에 서울연고 없어

서울을 연고로 하고 있는 일화·유공·LG가 내년시즌부터 서울을 연고로 할수 없게 된다. 11월초 청와대가 프로연맹을 통해 이들 3개구단에 대해 서울연고지 이전지침을 내렸다. http://ikfhs.tistory.com/entry/서울연고공동화정책


바로 이것이 위키 문서에 있는 3종의 원인 설명에 대한 사실상 유일한 문헌적 근거입니다. 한창 ‘서울 공동화 정책’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 나온 기사라는 것은 신뢰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른 건 몰라도 청와대 지시설은 일리가 있는 걸까요.

덥석 물기엔 일단 분량이 너무 짧아 구체성이 부족하다든지, (한참 나중인 2003년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기사를 가장한 에세이 같은 것을 빼놓는다면) 이른바 교차검증이 되지 않는 자료라든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일단 저 기사를 전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서울 공동화 정책’이 당사자인 연맹이나 구단들의 의지와는 완전히 상반된 오로지 외부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음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상식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작용(강압)이 있으면 반작용(저항)도 있는 법. 역설적으로 반작용의 존재는 작용이 존재했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합니다. 위키 문서에서 내세우는 ‘저항’의 근거는 어떤 것일까요.


그리하여 3개 서울 연고 구단들은 12월까지 서울 연고지를 고수하기 위해 연맹에 저항하였으나[18]


각주 18번의 문을 두드려 봅시다.


↑ “일화, LG, 유공 서울 포기 못해”, 《한겨레신문》, 1995년 12월 13일 작성.


길지만 전문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프로축구계의 "뜨거운 감자", 지역연고제의 정착은 끝내 스스로 풀 수 없는가.


서울을 공동연고로 하는 유공, 일화, LG 세 팀이 프로축구연맹의 "탈서울 요구" 결의에도 불구하고 서울연고 고수방침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지역연고 정착을 위한 조처가 첫걸음조차 제대로 떼지 못한 채 무산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연맹은 지난 2월 이사회에서 지역연고제 정착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전용구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서울연고팀은 내년 시즌부터 무조건 서울을 비워야 한다"고 결의했으나, 서울 연고팀들의 탈서울 거부 움직임으로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유공은 다음 시즌부터 목동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할 방침을 세우고 서울 잔류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으며, 일화쪽은 내년에도 동대문을 홈구장으로 계속 사용할 계획으로 연고지 이전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도 "두 팀이 서울을 떠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마당에 우리만 떠날 수 없다"며 서울 연고를 고수할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연맹은 이에 따라 지난 7일 서울연고 구단들이 연말까지 서울을 떠나지 않을 경우 내년 시즌 프로리그에 참여시키지 않는다는 내부방침을 세우고 각 구단에 서울이전 계획서 제출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연맹의 이런 내부방침은 최악의 경우 프로축구 자체의 공멸로 이어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불투명하다.

구단들의 탈서울 기피현상은 우선 관중동원 등에서 가장 풍부한 시장성을 갖추고 있는 서울을 놓치기 싫다는 인식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구단운영을 모기업의 홍보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일부 구단관계자들의 근시안적 사고방식이 현재와 같은 기형적인 지역연고제의 주범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프로축구의 활성화를 통해 전체 판의 규모를 먼저 키운다는 장기적인 안목보다는 눈앞에 펼쳐져 있는 당장의 손익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축구 관계자들은 프로축구가 지역연고에 확실히 기반할 때만 관중을 운동장으로 불러 모으고 국민적 호응을 되찾을 수 있다며 관계 구단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연맹의 한 관계자는 "서울 3개 팀이 현상황에서는 사실상 지역연고가 없는 무연고팀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런 태도는 포철팀이 포항으로 팀명칭을 변경하며 독립법인화해 연고지에 뿌리를 내리고, 전남·전북팀이 본격 활동하는 등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지역연고제의 정착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1995.11.09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110900289118017&edtNo=5&printCount=1&publishDate=1995-11-09&officeId=00028&pageNo=18&printNo=2392&publishType=00010


제 눈에는 “서울 3개 팀이 현상황에서는 사실상 지역연고가 없는 무연고팀이나 마찬가지"라는 연맹 관계자의 발언이 크게 들어오지만, 이 글의 주제는 90년대 전반의 동대문 3구단, 유공 LG 일화가 과연 ‘진정한 서울 구단’이었는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므로 이에 대해 길게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

전용구장을 확보(건설 계획이라고 봐야겠죠)할 경우 서울 잔류를 보장했는데 하나도 아니고 셋씩이나 되는 구단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의미심장한 대목이지만 역시 긴 말 않겠습니다.

헌데 해당 구단들이 ‘탈서울 거부 움직임’이란 게,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껏해야 연맹이 기한으로 정한 ’96시즌에도 여전히 서울의 목동과 동대문운동장을 홈으로 사용할 의사를 내비추었다는 것에 불과함은 그냥 넘기기 어렵군요. 위키 문서에서 “마지막까지” “강력하게 저항했”다고 하는 LG 구단의 태도는 더욱 한심해서 다른 구단 눈치 보느라 미루고 있다는 게 고작인데, 과연 이 정도 반응을 ’동대문 3구단의 지방 분산‘이라는 기본 방침에 대한 전면적 거부로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연맹이 내년까지 하라고 했는데 따를 뜻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으면 그게 전면적 거부지 무슨 말장난이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꼭 연맹이 정한 타임라인에 맞춰 후다닥 일을 처리해야만 기본 방침에 동의한다고 볼 수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개념 없이 놀던 구단들이 시간 약속 정확히 지켜 해당 지역 들어가서, 프로 경기에 손색없는 경기장 바로 확보하고 유랑 경기 같은 거 싹 없애버리고 했다면 당시 한국 축구 현실에서 훨씬 더 불가사의한 일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큰일을 진행하는 데는 언제나 과도기가 필요한 것이고 그 기간이 꼭 (연맹 이사회가 결의한 시점인) 1995년 2월 이후 ‘1년 내’라는 법은 없는 겁니다. 여러 가지 사정에 따라 1년보다 훨씬 더 길어진다고 해도 그것을 반드시 방침 자체에 대한 거부라고 보는 것은 비약입니다. 사정이라니, 그런 게 어디 있냐고요?


또한 안양종합경기장은 1년간 경기장 개보수를 했으며 부천은 아예 프로축구를 할 수 있는 경기장이 없어서 1996년도부터 2000년까지 서울 목동 주경기장에서 홈경기를 개최하게 되었다. 그리고 천안 역시 야간 경기가 가능한 조명탑이 없는 종합경기장이어서 일몰 상황 발생한 뒤에 제비뽑기로 승부를 가리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발생했다.


위키 문서 스스로 밝히고 있네요. 경기장 문제 때문에 새로 정한(관점에 따라서는 ‘확립한’) 연고지에 대해 즉각적인 진입이 불가능했다고.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으면서 ‘동대문 3구단이 95년 시점에서 다음 해인 96년에도 서울 소재 경기장들을 사용할 계획을 밝힌 것’ 정도 가지고 ‘반대’ ‘저항’으로만 해석하는 건 좀 웃기는 일 아닙니까.

물론 위 기사가 ‘전면적 거부’에 대한 증거로서는 부족한 것처럼, ‘전면적 찬성’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95년 2월의 연맹 이사회 결의 직전에 해당 구단들이 나타낸 움직임을 추적하는 편이 훨씬 낫겠죠. 상식적으로 구단들이 나중에 연맹에 정한 방침과 유사한 행동을 이미 그때 보였다면 ‘공동화’가 단지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테니까요. 그런데 위키 문서에 대해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소홀히 다루고 있어,


1994년 4월 대한축구협회에서 서울 동대문 운동장을 공동 연고지로 하는 일화 천마, LG 치타스, 유공 코끼리의 서울 연고권의 분산을 추진중이었지만[16]


라고 한 것이 전부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별 근거 없는 모방설/유도설을 장황하게 늘어놓는가 하면, 그 앞에서는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80년대 유공 럭키금성의 유랑에 대해 ‘출처 필요’라는 딱지까지 맞아가며 많은 분량을 할애해 서술하고 있으면서 말이죠.

일단 16번 각주에 연결된 근거 자료는 ‘스포츠에 “地自制” 바람’이란 표제의 <경향신문> 1994년 4월 15일자 기사로 당시 이상룡 수원시장이 LG 구단 측에 수원으로 연고이전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위키 문서의 해당 본문은 “이 관계자는 축구협회가 서울을 연고로한 LG·유공·일화등 3개구단의 연고권 분산을 추진하고있는 상황에서...”라고 한 기사 말미의 구절을 직접 인용하다시피 한 것입니다.

아마 지자제라는 용어가 떡하니 들어있는 표제로써 김영삼 정부의 지시사항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해당 구단들의 자발적 의지 같은 것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건 뭡니까?


구단 관계자들은 최근 정부와 국민의 축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지금이야 말로 프로축구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정부가 축구와 태권도를 특별관리 종목으로 선정,가능한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자세여서 구단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지역연고 설정과 전용구장 확보 등에 정부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

구단 사무국장 선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연고지 설정문제는 최근 단장회의에서도 빈번히 거론되고 있어 조만간 마스터 플랜이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프로구단의 연고지 설정방법에 따르면 도시 단위로 연고를 형성하고 있는 현대와 포철은 우선적으로 울산-경남,포항-경북으로 묶어주고 기업의 지역연고에 따라 대우를 부산-제주로,유공은 인천-경기로 할당하며 LG와 일화를 서울의 강남이나 강북으로 지정한다는 것.

이같은 방안에 대해 LG와 일화도 다른 연고지를 찾고 서울은 연고팀 없이 비워 두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아직 팀간에 완전한 합의를 이룬 것은 아니나 연고지 미확립으로 프로야구에 설움을 당해 온 각 구단 관계자들은 연고지 할당에는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있다.

(강조는 인용자) 연합뉴스 1993-12-0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3723566


동대문 3구단의 지방 분산 논의가 최소한 1993년 12월로 상향 조정될 수밖에 없어 1994년 4월이라고 한 위키 문서의 부실함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겠죠.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서울 공동화’를 포함한 연고지 ‘설정‘ 또는 ’할당‘이 오로지 정부 또는 협회(산하 연맹)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 게 과연 맞는 얘기인가, 하는 반문이 위의 자료를 완독한 다음의 정상적인 반응일 겁니다.

그쪽 친구들 옛날 신문 열심히 뒤져서 리그 가입 전 LG가 서울 연고를 희망했다는 사실 따위는 잘도 찾아내면서 이런 건 왜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던 건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네이버 검색창에 LG+축구+연고지 때려 넣고 뉴스 클릭해서 오래된 순으로 정렬시키면 첫 페이지에 나오는 기사인데 말이죠.

이제 제가 왜 청와대 지시설의 강력한 근거로 제시되는 <월간 축구>의 단신 기사에 연연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아셨을 겁니다. ‘지시’는 생략된 거라고요? 예, 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습니다. ^^b

물론 구단 간에 완전한 합의를 이룬 것은 아니라는 구절 같은 것은 따로 점검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일 겁니다. 그럼 동대문 3구단은 어떤 과정을 거쳐 각자 연고지를 확정하게 됐을까... 요?

에 대해선 다음 이 시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칫통 님이 쓰셨습니다: 우선 저는 96년 일어났던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고 불리우는 일련의 서울연고구단의 이전 자체가 2004년, 2006년 연고이전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004년 2006년의 연고이전의 원인은 과거 부터 있어온 최대 시장인 서울시장에 대한 구단의 탐욕이 원인이고 그것이 폭발하게 된 요인은 월드컵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의 수도 공동화 정책의 영향을 받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 시행하게 되었다고 하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는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애당초 일본에서 수도공동화 정책이라는게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부터가 에러지요.

저도 칫통님과 마찬가지로 '서울 공동화 정책'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당시 협회 차원에서 추진했던 '정책'은 어디까지나 '도시 단위 연고지'를 확립한다는 거였고 굳이 서울을 비우겠다는 정책 목표가 수립되었다는 뚜렷한 증거는 보이지 않습니다.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서울을 비워야 한다"는 말이 나왔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연고지 확립을 위함이었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유공 LG 일화 같으면 그 '도시 단위'란 서울이어도 괜찮고 아니어도 괜찮았는데 최종적인 선택이 서울 외 수도권 도시였을 뿐입니다. 물론 상호합의 하에 말이죠.

그러니 연맹에서 2002 월드컵을 전후해서 서울 구단 창설을 추진했음을 들어 '서울 공동화 정책'이 '철폐'되었다고 하는 건 뻘소리일 수밖에요. 수립된 적이 있어야 철폐가 되든지 말든지 하죠. LG 축구단의 '서울 복귀'를 연맹에서 손놓고 보고만 있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공동화'가 허구라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안양 창단 기념 칼럼 <2> '억압'과 '저항'의 역사

일단 전회에 인용한 <연합뉴스> 1993년 12월 1일자 기사에서는 유공=인천/경기 LG=강북 일화=강남이 드러나는데 LG 일화의 서울 외 수도권 연고지 후보군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또 어정쩡하게 돼 있는 프로축구팀들의 지역연고도 하반기까지는 재조정해 정상화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서울을 공동 연고지로 하고 있는 LG, 일화, 유공 등 3팀에 대해 수원, 성남, 인천 등으로 연고를 갖게 하거나 또는 강남과 강북 등으로 나누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축구협회는 프로구단들의 전용축구장 건립을 위해서 문체부와 합리적 방안을 모색중이다. 전용축구장을 만들려면 적어도 2만여평의 땅이 필요하나 현행법상 제약조건이 많은데 문체부쪽에서 "건축법 등을 개정해서라도 최대한 도와주겠다"는 언질을 줌에 따라 프로구단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 대우, 일화를 빼고는 대부분의 프로구단들이 이런 지원 약속에도 불구하고 전용축구장 건립에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축구협회 관계자는 말한다.

축구협회는 이와 함께 동대문운동장을 전용축구장으로 만드는 게 효과적이라는 뜻을 굳히고 이미 정부쪽에 이런 의사를 표명해놓고 있는데 그 귀추가 주목된다.

(강조는 인용자, 이하 동일함) 한겨레 1994.07.15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71500289108005&edtNo=6&printCount=1&publishDate=1994-07-15&officeId=00028&pageNo=8&printNo=1954&publishType=00010


서울 지역의 남북 분할 방안이 여전히 제시되고 있는 가운데 수원 성남 인천이라는 수도권 도시들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합니다. 여러 자료들을 보건대 나열 순서와 같은 LG=수원 일화=성남 유공=인천으로 연결되는 것이 확실합니다. 지역연고제 정상화 말고 다른 목표나 축구계 외부의 의지 같은 것은 안 보이는군요. 한편 유공 LG가 축구 전용경기장 건립에 소극적이었다든가 동대문운동장을 전용경기장으로 개조하려 했다든가 하는 건 본 주제와 무관하지 않은 대목임이 분명합니다.

이때까지는 본 문제를 논의하는 상위 기관이 대한축구협회로 나타나는데, 참고로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994년 7월 30일에 창설되었고 당시 대의원 10명 중에 7명이 당연직으로 선출된 각 구단 단장들이었습니다.


프로축구 포항제철 아톰즈가 별도 법인으로 독립한다.

포항제철(POSCO)은 25일 지난 73년 창단이후 그룹차원에서 운영돼온 축구팀을 국내 최초로 단일 지역을 연고로 재창단키로 하고 前포철부사장 李大公씨(52)를 구단사장에, 崔영만 前포항시체육회 이사(46)를 단장에 내정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최초로 전용구장을 확보한 포항제철은 시즌이 종료되는 대로 지역 인사들을 중심으로 법인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 주식공모를 통해 재원을 확보한 뒤 빠르면 내년 시즌 개막에 앞서 법인으로 출범시킬 방침이다.

포항제철의 별도법인 전환움직임은 金滿堤회장 취임이후 취해진 '군살빼기'에다 스포츠가 기업보다는 지역연고중심으로 전환돼야한다는 대원칙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국내 프로축구는 전남 드래곤즈가 동광양,순천,여수를 중심으로 철저한 지역연고중심으로 출범해 본격적인 연고지시대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현대는 올해부터 이미 유니폼에 울산을 표기했으며 서울지역에 연고를 둔 일화 유공 LG도 수도권으로 연고구장을 옮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 된다.

연합뉴스 1994-10-2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3821571


창단 이후 연고이전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포항 스틸러스조차도 스스로 구단 정체성에 대해 법인화 이전까지 제대로 된 지역연고가 아닌 것으로 여겼다는 내용. 이는 지역연고제 확립 과정에서 현업 종사자들이 지니고 있던 관념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커서 전문을 인용하긴 했습니다만, 주목할 부분은 그런 것보다 동대문 3구단의 ‘움직임’일 겁니다.

동대문 3구단을 포함한 K리그 연고지 재조정 문제를 다룬 기사 중에 처음으로 서울 분할 방안을 언급하지 않은 채 오직 서울 외 수도권 즉 인천/경기 지역으로의 이전 움직임만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주어는 정부도 협회도 누구도 아닌 일화 유공 LG입니다. 아직 95년 2월 연맹 결의(95년 11월 청와대 지시?) 이전입니다.


'제8구단' 전남 드래곤즈가 이달 말께 신인드래프트에 참여할 테세를 갖추고 있는 것과 함께 일화.유공.LG도 서울을 탈피,수도권 도시를 새 연고지로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 1994-11-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3882044


역시 서울 외 수도권, 주어는 일화 유공 LG, 95년 2월 전의 일. 어디에 J리그 모방이 있고 삼성 어르고 달래기가 있으며 (특히) 정부의 명령이 있습니까. 유리한 자료만 제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면 스스로 검색해 보십시오. 뉴스 검색으로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당시 기사들을 골라내서 동어반복을 거르면 딱 저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위키 문서를 부정하는 기사만 남아있는 것도 아닐 테고요.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그러나 이들 3개구단이 연고도시를 선택하지 못할 경우 오는 20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강제로 연고도시를 배정키로해 구단의 의사와 관계없이 내년시즌 8구단의 페넌트레이스는 도시대항의 경쟁장으로 변모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경향신문 1994.12.16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121600329119001&edtNo=20&printCount=1&publishDate=1994-12-16&officeId=00032&pageNo=19&printNo=15285&publishType=00010


어엇 폭탄 출현! ‘강제’로 ‘배정’한다니 마침내 진상이 드러나는군요. 좀 치사하지만 위키 문서 작성하는 친구들이 그러는 것처럼 불리한 자료는 쏙 빼놓을 걸 그랬습니다.

... 안 그래도 됩니다. 이 문장의 바로 위를 보면,


아직 도시연고를 확정하지 않은 일화등 3개구단은 올해안에 연고도시를 선정할 계획이다. 일화는 성남, 유공은 부천, LG는 서울 또는 수원을 연고도시로 검토하고 있다.


유공=부천은 우리가 아는 바대로고 일화=성남도 결국은 그렇게 됐으니 이들 연고지가 구단 의사와 무관한 일방적인 배정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편 <한겨레> 1994년 7월 15일자 기사에 이어 LG가 수원에 거듭 짝지어지고 있다는 것은 <경향신문>이 전한 LG 구단과 수원시의 접촉 사실이 일방의 구애에 불과한 것이 아님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이밖에 LG,유공,일화가 몰려있는 서울지역의 연고지 재배치는 현행대로 공동구역으로 하자는 안과 지역적으로 3등분하자는 안이 나와 추후 이사회에서 논의키로 했다.

연합뉴스 1994-12-2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3837115


이게 바로 12월 20일 열린 이사회 결과를 보도한 기사, 그중에서도 동대문 3구단의 연고지 재조정에 관한 부분인데, 강제 배정 운운은 어디로 날아가고 대신 서울의 ‘공동구역’ 안과 ‘3등분’ 안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공동구역 안이란 ‘현행대로’라니 그렇게 알면 될 일이지만, 3등분이란 게 서울을 그렇게 하겠다는 뜻인지 3구단이 각자 다른 지역을 연고지로 삼겠다는 의미인지 본문만 읽어서는 파악이 쉽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런 것도 위키 문서가 인용하지 않은, 제가 굳이 치사한 짓을 저지르지 않게끔 해주는 자료입니다.

이상의 기사들을 종합해 보면, 늦어도 1993년 12월부터 각 구단 관계자 사이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연고지 설정 논의가 1년 동안 진행되며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 구체적인 도시 이름이 나오는 가운데 새로 설립된 프로연맹에서 하나의 정책으로 확립되었다는 것 외의 결론은 불가능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건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이 지방 축구 활성화니 하는 것보다는, 철저하게 지역연고 확립 특히 ‘도시연고’라는 관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당시 축구계에 동대문 3구단이 서울이라는 도시연고를 확립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팽배했음을 알 수 있고 이는 LG의 ‘서울 연고 복귀론’에 청와대 지시설을 비롯한 강력한 근거를 제공하는 모처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상황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위키 문서가 전하지 않는 1995년 2월 이전의 진실입니다.

물론 95년 2월 이후라고 해서 그러한 도시연고 확립을 향한 각 구단의 움직임이 딱히 달라질 건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구단들 스스로 말을 꺼내놓고 막상 연맹에서 정책으로 확립하니 전면 거부로 돌아섰다고 한다면, 흠... 알아서 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공부해라!”고 하면 공부하기 싫어지는 그런 심리인가요 -_- 별 설득력이 없습니다. 차라리 실제 움직임을 보여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니 서울 독점을 노리고 눈치 보기 대작전을 폈다면 모를까 말이죠.


또한 지역연고지 조정을 마무리해 프로축구의 전환점을 마련하려던 프로연맹의 야심찬 계획도 수포로 돌아갈 공산이 커졌다.

김기복 프로연맹 사무총장은 이와 관련해 "해당 구단에 여러 차례 문서를 보내 올해 안에 지역연고지를 옮기도록 종용했으나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고 꼬집으면서 "하루빨리 입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프로연맹에 따르면 LG는 안양, 일화는 성남·과천·평택, 유공은 인천 등과 연고문제를 협의하고 있으며 일부 구단은 이미 방안을 확정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3개 구단은 서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서로 발표를 미룬 채 상대 구단의 동태만 살피고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 1995.12.13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121300289119009&edtNo=5&printCount=1&publishDate=1995-12-13&officeId=00028&pageNo=19&printNo=2423&publishType=00010


유공 LG 일화 동대문 3구단의 거부 의사라고 해봤자 겨우 서로 눈치를 본다는 정도. 동대문 3구단의 이전 거부 움직임을 보도한 <한겨레> 기사에서 LG 구단이 보인 반응과 일맥상통합니다. 이쯤 되면 ‘저항’의 진면목도 슬슬 드러나는 듯합니다.

중요한 건 밑줄 친 부분이 보여주는 당시 3구단의 연고 문제 협의 지역. LG는 1년 사이에 수원에서 안양으로 맘을 바꾸었는데 뭐 이건 삼성 때문이겠죠. “이미 방안을 확정해 놓은” “일부 구단”이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런 구단들에게 강제로 연고지를 배정했다고 하는 것이 천하의 헛소리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나저나 3구단은 이렇게 시종일관 수도권 도시만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지방 축구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의 대의 명분에 어긋나는 연고지 선택이었다” 는 얘기는 뭡니까.


프로축구연맹은 또 지역연고제 확립을 위해 그동안 서울을 연고로 하던 팀들중 LG는 창원과 대전, 안양중 한곳을 선택하기로 했으며 일화는 다음달 16일 이후 확정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1996-02-27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040294


LG와 관련해서 창원 대전이 새로 등장합니다. 95년 겨울에 돌출된 발표 미루기 수준의 저항조차 이미 끝났는지 그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한편 서울을 공동 연고지로 했던 3개구단은 지역연고제의 조기 정착을 위해 일화가 천안, 유공이 부천, LG가 창원으로 홈 구장을 옮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1996-03-1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102646


유공 코끼리는 결국 제일 먼저 거론되던 부천으로 정했고, LG 치타스는 LG전자 공장이 있던 창원에 눈을 돌리는 듯하지만, 최종 선택이 어디였는지는 모두 아는 바입니다.


안양은 LG연구소 LG전선등 각종 계열사들이 자리잡고 있고 서울 등 인근 도시의 축구팬들가지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

인구 1백27만여명의 대전은 이들 중 최대 도시이며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있지만 LG와는 별 연관이 없는게 결정적인 흠.

반면 창원은 축구열기가 드높은 데다 LG전자 등 계열사가 있어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서울에 눌러앉으려 하고 있는 LG로서는 이들 중 어디에서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서울을 공동연고지로 사용해 왔던 일화와 유공이 이미 연고지 이전을 마무리한 상황에서 약속을 깨고 혼자서 서울 잔류를 우길 수도 없는 형편.

결국 LG는 현재 열리고 있는 아디다스컵대회의 홈3경기를 대전과 안양, 창원에서 잇따라 열어 축구열기와 흥행성 등을 판단한 뒤 연고지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동아일보 1996.04.03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40300209115014&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4-03&officeId=00020&pageNo=15&printNo=23157&publishType=00010


여기까지 따라오신 분이라면 위 기사의 “어떻게든 서울에 눌러앉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나 위키 문서가 링크한 기사의 “서울연고 고수를 강력히 희망했”다는 표현에 별 알맹이가 없음을 아실 테고 그보다는 “일화와 유공이 이미 연고지 이전을 마무리한 상황에서 약속을 깨”기 힘들다는 표현에 더 주목을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여기서 ‘약속’이란 다 같이 서울을 비우기로 한다는 내용일 것임은 뻔할 뻔. "두 팀이 서울을 떠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마당에 우리만 떠날 수 없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에 이은 참으로 일관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손가락 걸고 약속까지 했는데 한두 달 주저했다는 게 강력한 저항인가요. -_-

무슨 단체로 격렬한 반대 시위를 했다거나 연맹 이사회에서 전면 철회 요구라도 했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이렇다 할 항의조차 없었습니다. 설사 그런 게 있었다고 하더라도 전체 맥락을 볼 때 ‘안 되면 말고’ 식 아니면 ‘흔한 통수’일뿐 거창한 연고 수호 의지 등으로 봐줄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애착이 남달랐다면 그렇게 열심히 새 연고지를 물색한다든가 ’95시즌에 유랑질의 정점을 찍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각 구단의 연고지 확정 기사를 인용할 필요성은 못 느낍니다. 어떤 애들은 레지스탕스의 증거로 모 구단이 막차를 탔다는 기사를 소중히 여기는 것 같습니다만, 2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검토를 거듭하다가 잠시 눈치 보느라 발표가 늦어진 것 따위를 놓고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건 가장 멍청한 해석입니다.

결국 구단들 스스로 검토한 후보군이 아닌 엉뚱한 지역으로 강제 배정을 받은 사태 역시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바로 옮길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결국 전부 자기들 가고 싶은 데 들어간 겁니다.

이런데도 ‘1996년’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요. 96년부터 하기로 95년에 결정했는데 안 따랐다, 그래서 강제적으로 배정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이상의 자료들을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양심이 없는 겁니다.

‘서울 공동화’란 어디까지나, 1993년부터 구단들 스스로 논의를 시작한 것이 1994년 즈음에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프로축구연맹의 정책으로 수용되어 1995년 2월 이사회 결의로 확립, 실제 이전은 1996~2000년(일화에 면죄부를 주는 느낌이라면 하한을 99년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에 이뤄진 정책이라고 보는 게 맞지, 그렇게 갑작스럽고 일방적으로 시행된 폭거처럼 말하는 건 사실을 크게 왜곡하는 것입니다.

사실 2011년 개편 전의 프로연맹 이사회란 게 어떤 성격인지 당시 K리그 구단 수가 몇 개였는지만 알아도 당사자인 3구단의 의사와 무관하게 밀어붙여서 반발이 불거졌다는 따위 황당한 주장은 내뱉기 힘들 겁니다.

이렇게 사실관계를 추적해 보면 이른바 ‘서울 공동화 정책’, 지금 와서 보면 ‘도시연고 확립’이라고 하거나 당시 주로 쓰였던 표현인 ‘연고지 조정’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은가 싶은 움직임 전반에 대해, 위키 문서가 대표하는 통설(?)에 오류가 허다함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K리그 연맹에서 J리그의 도쿄 공동화 정책을 모방했다.” - 근거 없음.

“당시 협회가 서울 연고를 노리던 삼성그룹의 리그 참여를 유도하고자 단행한 조처였다.” - 근거 없음.

“김영삼 정부의 정책에 부응하고자 했거나 청와대의 직접 지시가 있었다.” - 근거 미약. 문헌적 근거가 너무 단편적이고, 실제 진행 과정을 보도한 당시 통신사 및 신문 기사들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이 발견되지 않음.

“서울 소재 3구단에 대한 강제적인 지방 분산 방침에 해당 구단들이 저항했다.” - (극히) 부분적 진실. 대체적 오류. 일단 ’96시즌부터 서울 소재 경기장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1995년 2월의 연맹 결의에 대해 1995년 11~12월 3구단 측에서 불응하는 자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나, 해당 구단들이 수도권 도시를 연고지로 삼는다는 기본 방침에 대한 전면적 거부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출한 일은 없었다.

- 오히려, 본 방침은 늦어도 1993년 12월부터 각 구단이 논의를 시작해서 구단 간 협의체인 프로축구연맹의 공식 정책으로 확립된 사안이며 최종 결정된 연고지도 각 구단이 장기간 검토 끝에 스스로 정한 것이니만큼 전체적인 진행 과정에서 강제성보다는 자율성이 훨씬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지방 축구 활성화를 명분으로 했으나 3구단이 수도권에 연고지를 정한 것은 난센스다.” - 허수아비 치기. 당시 K리그는 이미 전북 전남의 가입으로 전국화를 달성한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비수도권 지방 이전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고 실제로 3구단이 검토한 연고지 후보군 대부분이 수도권 도시인 것에 대해 협회 또는 연맹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는 증거 역시 발견되지 않으므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이제 지금까지 확인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동대문 3구단 도시연고 확립’ 과정을 써 보...

는 일은 다음 이 시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안양 창단 기념 칼럼 <3> '탈 서울'은 실패했는가?

“1993년 무렵 K리그 구단들 사이에서 지역연고제를 도시연고로서 확립하고자 하는 논의가 일어났고 특히 지역연고 정착이 미진하다고 여겨졌던 동대문경기장의 세 구단(유공 LG 일화)의 경우는 서울 외 지역을 도시연고로 삼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동대문 3구단은 서울의 강남/북 분할 방안 등과 병행하여 서울 외 지역을 연고지로 검토하게 되는데 그 대상은 부천 인천(이상 유공) 수원 안양 창원 대전(이상 LG) 성남 과천 평택 천안(이상 일화) 등 주로 수도권 또는 그에 인접한 도시들이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러한 각 구단의 움직임을 정책으로 수용하여 마침내 1995년 2월 연맹 이사회에서 ’96시즌부터 전용구장 건설 계획을 제출하는 구단에 한해서 서울 잔류를 허용한다고 결의, 이들 구단의 수도권 내 분산을 촉진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내기에 이른다.

유공과 일화가 ’96시즌에도 각각 목동과 동대문운동장을 홈으로 사용할 의사를 밝힘에 따라 정책 추진에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으나 서울을 비운다는 기본 방침 자체에 대해서는 구단 간 합의가 있었으므로, 일단 유공은 부천을, LG는 안양을, 일화는 천안을 도시연고로 확정, K리그 다른 구단들과 더불어 1996년부터 연고지로 삼은 지역 이름을 구단 명칭에 표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해당 지역의 미비한 경기장 시설 문제로 인해 실질적인 진입은 즉각 이뤄지지 못했고 LG는 1997년 유공은 2001년에야 각각 안양과 부천의 종합운동장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일화 구단의 경우도 1996년에는 천안시에서 홈경기를 거의 개최하지 않았으며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천안의 오룡경기장을 홈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써놓으니 별거 아닙니다만, 적어도 아무런 근거도 없는 주장을 주절주절 펼쳐대면서 지들 입맛에 맞는 것들만 취사선택하느라 정작 중요한 부분은 구렁이 담 넘듯 하고 연결된 근거 자료가 보여주는 실제에 비해 터무니없는 과장을 일삼는 위키 문서보다는 사실관계에서 놓치는 부분이 훨씬 적다고 자부합니다.

신중을 좀 덜어서 말씀드리자면, 당시 축구계에서 많지도 않은 전체 여섯(나중엔 여덟) 구단 가운데 세 개가 한 경기장에 몰려있다는 것은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하여 일단 어떤 식으로든 분산한다는 방침 자체에는 각 구단 간에 이견이 없었으리라 보는데, 실제로 확인되는 사실도 대체로 그러합니다.

또 추정컨대 당시 프로구단이 실질적으로 사용할 만한 경기장이 동대문 목동뿐이었으므로 강남/북과 같은 식으로 서울을 분할할 경우 다른 형태의 불균형이 발생하게 되어 3구단 중 한 개 구단 이상이 서울 외 지역을 연고지로 정함이 불가피해졌으며, 끝내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전부 서울을 비우기로 하고 이를 서로에게 확실히 보장받고자 월드컵 유치와 맞물린 전용경기장 건설이란 제약 조건을 걸기로 합의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뇌내망상이 지나치다고요? 위키 문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온갖 개똥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입니다. 망상이라고 하지만 구단들의 도시연고 확립 의지가 서울 공동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보다 더 잘 풀어낼 이론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막판에 눈치작전이 벌어진 경위도 자연스럽게 설명이 되고요.

이쯤 되면 결국은 다 편향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한 거 아니었냐고 여길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위키 문서의 각주는 전부 일일이 조사해봤고 네이버 뉴스에서도 관련 기사를 최대한 확보하려고 노력했으나 제 주장의 핵심 논거인 1. 수도권 내 도시연고 확립 논의는 각 구단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2. 해당 구단이 연맹 등에 본 정책의 전면 철회를 요구한 적은 없다. 에 대해 반례가 될 만한 것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못 믿겠으면 너님이 찾아보시죠.

상식적으로 그렇게 청와대 지시 등의 외부 강요로만 시행된 정책이었다면 유수의 기업집단(+종교집단)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각 구단들이 당하고만 있었겠습니까. 서슬 퍼런(?) 김영삼 정부 때는 어쩔 수 없다 쳐도 그 시기 지나면 바로 행동 개시했겠죠. 결국은 일화는 천안 버리고 LG는 안양 버리고 SK는 부천 버리지 않았느냐고요? 그 연고지 다 지들이 선택한 거라니까요. -_- 강제성 어쩌구 하고는 아무 관련 없는 일입니다.

또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안양과 서울에 프로구단이 나란히 서게 된 이상 이제 와서 패륜 짓이니 연고 복귀니 해봤자 별 의미가 없는 것이고 어차피 안양→서울 연고이전이 잘못됐다는 제 신념은 안양 연고 확립 과정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고 해서 변할 부분이 아닙니다.

어차피 ‘연고지 조정’에 대한 저의 정리를 전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나중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관점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겠죠. 어떤 이는 서울특별시를 본사 소재지 이상의 ‘지역 기반’으로 여기지 않나 싶은 한 기업집단 산하 스포츠클럽이 서울 도시연고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시행착오쯤으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GS가 월드컵경기장에 눈이 멀어서 검토 단계까지 포함하면 5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해당 지역의 전폭적인 협조 하에 확립한 연고지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린 사건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LG의 안양 시대’에 대한 해석이야 어떻든 1996~2000년의 도시연고 확립 정책은 K리그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 영향은 대체로 긍정적이었습니다. 구단 명칭에 지역명을 표기하고 유랑 경기를 점차 줄여가는 가운데 팬 집단의 질적 양적인 성장이 일어났고, 국내 축구 리그도 프로 야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메이저 스포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한국 축구 르네상스’도 이 시기의 일이었습니다. 수원과 같은 대형 클럽의 탄생도 도시연고제가 아니었으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어딘가의 볼멘소리에도 불구하고 많은 축구팬이 1996년을 지역 연고제 원년으로 인식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 공동화’만 보더라도 실패라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혹자는 LG의 안양→서울 연고이전과 일화 SK도 최초 진입한 도시 연고를 유지하지 못했음을 들어 그러한 단언에 거리낌이 없지만, ‘서울 복귀’를 기준으로 삼더라도 실패는 1/3에 한정되며 나머지 두 구단은 여전히 서울 밖에 머물고 있으므로 2/3의 성공은 인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천안 부천 연고를 이어나가지 못한 것은 탈 서울 ‘합의’(‘정책’보다는 이 표현이 어울립니다)의 실패가 아닌 연고지 설정의 실패일 뿐입니다. 물론 책임은 해당 구단의 몫입니다. 누차 말씀드렸다시피 모든 건 스스로의 선택이었으니까요.

“1,041만여명의 수도 서울이라는 대한민국 최대 시장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결정이었다는 지적도 전혀 그럴싸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현재 유일한 서울 소재 구단이나 과거 동대문 시절 3구단의 관중 동원 능력을 보면 91년 체제의 연장은 평균관중 5~7천 수준 중소 구단의 병존에 그쳤을 공산이 큽니다.

안양 부천 천안 합쳐도 서울보다 훨씬 적다 어쩌고 하는 뻘소리는 낫 놓으면 낫 그림 밖에 그릴 줄 모르는 어린이다운 발상입니다. 좀 더 크면, 연고 도시 인구가 서울 1/10 밖에 안 되고 K리그 전체를 놓고 보면 딱 중간급 규모인 수원 삼성의 흥행성이 국내 최고인 것이나 부산 1/7 수준인 포항 스틸러스의 관중 동원 능력이 아파트 구단의 두 배 이상인 것에서 세상이 그리 단순치 않음을 깨달으리라 봅니다.

오류 반박-풋볼케이닷넷이 FC서울 안티 집단이고 위에 쓴 사람이 북패충 북패충 거리는 FC 서울 안티팬이자 안양팬으로서 어떻게든 문서 흠집낼려고 연구해서 만든 글인데 위키에서 통할 수가 없죠.

위에 글이 나온 사이트 링크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http://footballk.net/phpBB3/viewtopic.php?f=21&p=5367#p5367

(1) 요새 북패충들 사이에서 by 다문제일 » 2010년3월30일(화) 08:24

(2) 칫통 님이 쓰셨습니다: 우선 다문제일님 안양 창단 축하드립니다. 10년전 빛 갚으러 가겠습니다. ㅎㅎㅎ 5대 0 참패도 돌려드려야 하고.. 제가 농담처럼 노래 불렀던 "범계불바다"도 -_-;;

(3) Re: 연고이전에 관한 끝장토론 by 윤군 » 2012년10월14일(일) 23:27 다문제일님 글 잘 읽었습니다. 자료 찾느라 고생하셨겠네요. 다문제일님이 여기 쓰신 근거로 위키백과에 상주하는 쓰레기새끼들 엿맥이고 문서 제대로 수정하여 진실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Footwikis 이 개패륜 쓰레기새끼 때문에 위키가 썩네요 아주.수원 블루윙즈 지지자 패륜박멸

일단 위에 오류와 허구라고 설명하는 글 쓴 지은이가 다문제일이라는 아이디를 쓰고 있고 보시다시피 풋볼케이닷넷에서 북패충 북패충 거리는 FC 서울 구단 극렬 안티입니다.. 그리고 풋볼케이닷넷이 어떤 집단입니까? FC 서울, 제주 유나이티드 안티 사이트이고 위키백과에서 FC 서울, 제주 유나이티드가 공식 구단명칭대로 불리고 프로축구연맹 공식 기록대로 불리는게 싫어서 자기들 마음대로 편집하겠다고 풋케위키라는 위키백과까지 만든 곳과 연관 있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 글 지은이가 뭐 객관적으로 글 적었겠습니까? 위키백과에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 흠집내어야겠다 목표 설정하고 어떻게 하면 꼬투리 잡고 반박할 구실 찾아서 흠집내고 물타기 해버릴까 의도 가지고 만든 글인것이 명백하며 윤군이라는 아이디가 쓴 글 보시기 바랍니다. 위키백과에 상주하는 쓰레기새끼들 엿맥이고 문서 수정하겠다고....의도가 뻔하죠.

여기 위키백과의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서술 내용이 100% 확실할 수는 없지만 왜냐면 무슨 일이든지 정체가 규명될려면 당시 관계자의 구체적인 진술 등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부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지만 당시 여러가지 정황을 최대한 설명하고 언론 기사를 근거로 해서 최대한 객관적인 내용이며 저 문서가 문제없이 몇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또 하나 위에 반박글에서 범하는 오류 하나가 위키백과 서울공동화정책에 발단 원인이 여러 가지 원인을 서술해서 서로 모순된다고 하면서 말이 안 된다고 하는데 여러가지 요인들이 복합작용해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습니다. 세상 일이 무슨 수학처럼 딱딱 떨어지고 그럴 수가 없는거죠.

풋볼케이닷넷 등등 FC 서울이나 제주 유나이티드 등 무슨 의도를 가진 집단에게는 이 문서가 눈에 가시겠지만 앞으로 반달도 할려고 계획 중인 것 같네요.

덧붙여 반대로 저기 위에 글 흠집내어야겠다 목표 설정하고 자료 모으면 위에 오류와 허구라고 주장하는 기사 아래처럼 똑같이 반박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풋볼케이닷넷 유저가 순수하게 중립적인 관점에서 연고이전 반대 이 논리 하나 때문에 객관적으로 서술하자고 한다면 1996년 서울 연고지 공동화 정책도 연고지 이전을 비판하는 관점에서 서술을 해야 하는데 도리어 1996년은 안양 LG 치타스가 연고이전으로 생긴 것을 감추고 미화하기 위해 당시 서울 연고 3개 구단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서울에서 나갈려고 했으며 당시 정황상 3개 구단이 서울에 밀집해 있었으니 합리적인 판단이며 명분이 있다는 이런 얘기로 은근히 물타기를 하는데 이런 것으로 당시 연고이전이 미화할 수가 없는거죠. 이 논리대로 적용하면 예전에 안양, 부천, 성남, 수원 수도권 중소도시에만 축구단들이 몰려 있으니 서울, 제주 등으로 연고지 이전했으니 이것도 역시 명분이 있는 합리적인 판단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위에 글은 연고이전 반대론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자기한테 유리한 연고이전은 미화하는 이중잣대 시각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1) “K리그 연맹에서 J리그의 도쿄 공동화 정책을 모방했다.” - 근거없음 -> 모방 안 했다는 근거 역시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즉즉 1993년 J리그 출범 후 당시 J리그 방식을 따라서 1995년부터 전후기 리그제에 챔피언결정전 방식이 도입되었고 1996년부터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시행되었고 그 후 1998년 K리그라는 리그명칭을 J리그 모방해서 K리그 K리그 이렇게 부르다가 공식적으로 K리그로 확정한 것 이 3가지 변화가 J리그 모방 내지 영향 받아서 만들어진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축협이나 연맹에서 모방했어도 공식적으로 J리그 방식 모방했다고 당연히 발표를 할 성질의 것이 아니죠 이런거 발표 안 했다고 근거가 없다고 하면 그러면 이런 정책을 독자적으로 연맹이나 협회에서 기안하고 계획해서 했다는 근거도 전혀 없습니다.

(2) “당시 협회가 서울 연고를 노리던 삼성그룹의 리그 참여를 유도하고자 단행한 조처였다.” - 근거없음 -> 삼성그룹과 관련 없다는 명백한 증거 역시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아무튼 위키에 삼성그룹 현대그룹의 알력으로 생겼다는 설 정도로 소개되어 있었음

“김영삼 정부의 정책에 부응하고자 했거나 청와대의 직접 지시가 있었다.” - 근거 미약. 문헌적 근거가 너무 단편적이고, 실제 진행 과정을 보도한 당시 통신사 및 신문 기사들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이 발견되지 않음. -> 그나마 김영삼 정부의 정책에 부응하고자 했거나 청와대의 직접 지시가 있었다는 당시 뉴스 기사라도 있는데 너무 단편적이라고 자신들한테 유리한대로 근거가 미약하다고 억지 부림

(3) “서울 소재 3구단에 대한 강제적인 지방 분산 방침에 해당 구단들이 저항했다.” - (극히) 부분적 진실. 대체적 오류. 일단 ’96시즌부터 서울 소재 경기장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1995년 2월의 연맹 결의에 대해 1995년 11~12월 3구단 측에서 불응하는 자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나, 해당 구단들이 수도권 도시를 연고지로 삼는다는 기본 방침에 대한 전면적 거부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출한 일은 없었다. -> 최소한 불응하는 자세라도 보인 것은 사실인데 이 부분은 의도적으로 별거 아닌 것처럼 묘사하고 전면적 거부 의사가 없었다고 자신들 유리한대로 의미 축소

- 오히려, 본 방침은 늦어도 1993년 12월부터 각 구단이 논의를 시작해서 구단 간 협의체인 프로축구연맹의 공식 정책으로 확립된 사안이며 최종 결정된 연고지도 각 구단이 장기간 검토 끝에 스스로 정한 것이니만큼 전체적인 진행 과정에서 강제성보다는 자율성이 훨씬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전혀 근거 없음, 연맹에서 강제 분산 방침 정해지고 차라리 해체라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아니고 계속해서 프로축구단 운영할려면 싫든 좋든 계속 운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서울 연고지에서 축출될 경우 그나마 그래도 가장 자기 구단한테 유리한 연고지에서 운영을 해야 하므로 이런 연고지 찾는 작업을 한 것을 자율성으로 판단할 수 없음.

(4) “지방 축구 활성화를 명분으로 했으나 3구단이 수도권에 연고지를 정한 것은 난센스다.” - 허수아비 치기. 당시 K리그는 이미 전북 전남의 가입으로 전국화를 달성한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비수도권 지방 이전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고 실제로 3구단이 검토한 연고지 후보군 대부분이 수도권 도시인 것에 대해 협회 또는 연맹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는 증거 역시 발견되지 않으므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 95년에 전북, 전남이 생겼어도 당시 대전, 충청 지역에 구단이 없어서 전국화 달성이라는 말 자체 부터 틀렸고(대전 시티즌은 1997년부터 리그 참가) 염원하던 호남 연고팀이 생겼지만 대한민국에서 영향력 있고 뼈대가 되는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중에서 부산 연고팀 밖에 없는 실정이었음 그에 반해 프로야구는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이런 각 지역별 중심 대도시에서 연고정착을 해 나가는 상황이었으며 어차피 서울에 3개 기업구단을 분산할 것이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수도권 위성도시나 혹은 지방 중소도시보다는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이런 각 지역별 중심 대도시로 들어가는게 당시 상황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의사결정이었음. 예를 들어 비유하자면 서울대를 가던 아니면 가장 입지 좋은 번화가에 프랜차이즈를 개설하던 이것이 100%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인생이나 사업에서 성공확율을 높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으로 서울대 갈 점수가 되는데 일부러 지방대 가고 입지 좋은 번화가에 프랜차이즈 개설 할 수 있는데 일부러 변두리에 차릴려고 하는 사람 없는 것처럼 서울을 정책적으로 피치못해서 포기했다면 그래도 그 다음으로 가장 시장성 좋은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이런 지역별 중심 대도시로 들어가는게 합리적이었음..덧붙여 연고지 후보군 대부분이 수도권 도시인 것에 대해 협회 또는 연맹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는 증거 역시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는데 이런 수도권의 서울 위성도시로 연고지를 정하는데 설사 연맹과 협회가 반대 의사를 안 밝힌 것을 떠나 아예 적극적으로 찬성하였더라도 이건 명백하게 상식적인 의사결정과 거리가 멈. 다시 서술하지만 위에처럼 일단 시장성 좋은 대도시부터 기업구단으로 채우고 그 후 안양, 부천, 천안 이런 중소도시로 연고지를 확대해야 하는데 그 반대로 비상식적인 연고지 배정을 하면서 지금처럼 중소도시에는 기업구단 시장성 높은 대도시는 채울 기업구단이 없어서 시도민 구단이 생기는 이런 구조가 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Footwiks (토론)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 대해서도 이를 '정책'이라고 불릴 만한 구체적인 실증 자료가 있는지를 제시해주십시오. 가장 좋은 방법은 1차 사료. 즉 정부기록을 탐색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 존재한다고 주장을 하신다면, 1차 사료 혹은 1차 사료가 부재할 경우를 대비한 다양한 각도의 2차 사료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청와대 압력설의 경우 베스트일레븐 기사에 잠깐 언급된 것 외에는 다른 매체들은 이사회 결정사항으로 제시되어있습니다. 베스트일레븐의 기사가 신뢰성있는 기사인지부터 검증을 하셨어야지요. 그리고 연고를 비우는 것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서울 내에 전용구장 건설이 목표였고, 연맹에서 제시한 요구사항을 듣지않고 안양, 부천, 천안 등으로 이전한 존재가 문제의 동대문 3개팀인데 이것이 마치 연맹의 강압에 의한 조치였다고 주장하시는 건 객관성의 문제가 있다고 봐야지요. 이 문서에서 제시된 레퍼런스들을 전부 검토해보았는데, 동대문을 떠난건 서울 3개팀의 의사가 아니었다는 것 외에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레퍼런스가 딱히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게 백과사전에 기록될만큼 보편적인 합의를 획득할만한 문제인지부터 다투어야하는데 그러면 일단 이 문서를 삭제하고 가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Steelerskimc (토론) 2013년 10월 1일 (화) 12:16 (KST)답변

문서 내 레퍼런스에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발간한 한국프로축구 30년사에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내용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스크린샷 링크가 없어서 못 보신 것 같네요.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올해 발간한 한국 프로축구 30년사에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으니 스크린샷 링크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한국 프로축구 30년 2004시즌 307페이지 링크

1996년 1월 2002년 월드컵 대회 개최국 선정을 앞두고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시행했다. 월드컵 유치를 위해 전국적인 프로축구 열기 확산과 주요 16개 도시의 축구전용구장 건설이 목표였다. 이 정책에 따라 서울 동대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 유공 코끼리 프로축구단, LG 치타스 프로축구단은 천안, 부천, 안양으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프로축구를 관장하는 최상위 기구인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30년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정리하면서 자기들이 무슨 이유로 언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시행했다고 구체적으로 기재하고 있으며 이 책 말고도 뷰티풀 K리그 6페이지 서른 살 K리그의 나이테 부분을 보면 1996년 부분에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시행해 일화, 유공, LG가 각각 천안, 부천, 안양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이렇게 기재되어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발간하는 공식 서적들에 일관되게 서울연고공동화정책 시행이라고 나오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나는 인정 못 하겠으니 증명할 레퍼런스를 더 가져와라 이건 위키백과 사용자들에게 요구할 사항이 아니죠.

위에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의 오류와 허구라는 입증으로 제목으로 엄청 긴 내용의 글이 있고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존재했다는 신뢰성 관련해서 타박하듯이 글도 써져 있는데 확신이 있으시면 이게 옛날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사자들이 없어진것도 아니고 위에 쓰신 글 출력해서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찾아가시든가 전화를 하시던가 해서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존재도 안 했는데 왜 한국프로축구연맹 발간 공식 한국 프로축구 30년사등에 '서울연고공동화정책 시행이라고 나오냐고 이의를 제기해서 주장하시는 의견을 뒷받침할 합당한 근거자료를 찾아오시기 바랍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 2가 1-131 축구회관 5층

한국프로축구연맹 전화번호 : 02-2002-0663~9 Footwiks (토론) 2013년 10월 16일 (수) 21:16 (KST)답변

한국프로축구연맹 30주년 기념 오피셜북과 축구전문지에 정부와 연맹이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을 시행했다는 공식자료가 나오고 있습니다. 연맹이 공식적으로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의 시행 주체, 시기, 목적, 결과 등을 구체적으로 서술했다는 것은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실존했음을 증명하기에 실증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은 실존했던 정책이라는 것이 증명된 이상 이 문서는 계속 존재하는 것이 마땅하며 이 문서를 삭제하기 위해서는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은 실존했던 정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쪽에서 그에 맞는 실증 자료를 제시해야 마땅합니다. 쉽게 말해서 연맹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한국프로축구연맹 30년사의 서울연고공동화정책에 대한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지 않는 이상 이 문서는 계속 존재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Withfact (토론) 2013년 10월 19일 (토) 20:43 (KST)답변

도쿄 연고 공동화 언급 부분 편집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는 삭제 토론 (위키백과:삭제 토론/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 결과 삭제되었으므로 더 이상 본문에서 도쿄 연고 공동화 관련 내용이 거론될 필요가 없으며 문서 일부 내용의 근거로도 쓰일 수 없으므로 관련 내용을 지속적으로 복구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해당 내용을 삭제할 것을 요구합니다 --Gunmania (토론) 2013년 2월 11일 (월) 12:31 (KST)답변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가 위키에서 삭제된 것과 여기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에서 언급될 수 없는 것과 무슨 관계입니까?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지금 일부러 억지 쓰시는거죠? 아니 위키에서 문서가 없는 내용은 다른 문서에서 언급 못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가 위키에 생성되기 전에도 아니 위키백과가 생기기 한참전 이 정책이 시행되고 나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 대해 축구팬들이 토론할때도 1993년 J리그 출범시 도쿄 연고지 구단을 안 두고 전구단이 공동 연고지로 두는 방식을 모방 내지 영향을 받았다고 것이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근거 따지시던데 님도 J리그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에 영향을 안 받고 한국 축구계에서 독자적으로 만든 정책이라고 증명 할 수 있나요? 예전에 김현회 칼럼 보면 K리그가 J리그 따라서 만든 명칭이라고 칼럼에서 쓴 적이 있는데 이게 J리그가 93년 출범후 프로축구연맹이 98년 K리그로 명칭확정하면서 즉 J리그라는 명칭이 먼저 생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축구팬들 대부분이 모방을 했다는 생각이 일반화되면서 김현회가 그렇게 쓴거지 언제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우리가 J리그 모방해서 K리그로 명칭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발표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김현회가 J리그 모방해서 만든 것이라고 기사 쓴 것인가요?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 관련은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서 빠질 수가 없는 내용이니 문서 반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Footwiks (토론)


위의 Gunmania님과 Footwikis님의 이야기 이후에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는 삭제 토론 (위키백과:삭제 토론/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이 계속 이루어지다가 결국 삭제가 최종결정되었네요.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가 위키에서 삭제된 것과 여기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에서 언급될 수 없는 것은 별개라고 하시지만, 저 문서에서 벌어진 토론의 내용을 볼 때 J리그 사무국에서 도쿄도내의 연고지 선정을 금지했다는 '정책'의 진위여부를 가릴만한 근거가 부족한 현상황에서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 내에서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을 언급한 부분은 수정해야 할거 같네요. 단순히 문서가 없는거라면 몰라도 저명성 미달과 정책이라는 근거 부족으로 인해 삭제된건 다르죠.--182.209.154.217 (토론) 2013년 9월 29일 (일) 10:54 (KST)답변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용어가 일본에는 사용이 안 되고 그리고 J리그 관련 정책이 위키백과에 있을 정도로 저명성이 없어서 그랬던거지 J리그 출범 당시 도쿄 연고지가 출범된 것은 두말할 필요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용어는 한국에서 언급된다고 표기를 했고 도쿄 연고지가 공동화 되면서 J리그가 운영이 되었고 이것이 한국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기술 한 것이니 문제 없습니다.Footwiks (토론) 2013년 9월 30일 (월) 23:21 (KST)답변
정책이라는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에 저명성 미달에 해당되어 해당 문서가 삭제되었으니 그걸로 된거고,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 도쿄를 비워둔 J리그가 영향을 끼친 것이 있으니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신거네요. 그런데 출처로 엑스포츠 기사를 올려두셨지만,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 삭제 토론에서도 저 기사 하나로는 저명성을 인정받지 못하시고 공문서 혹은 그에 준하는 신뢰도 있는 일본 메이져 언론의 기사 혹은 당시 출간된 J리그 관련 책자의 해당 부분 발췌를 요청받으셨잖습니까? 제가 볼때는 삭제된 것과 별개로 Footwiks님이 J리그 사무국에서 도쿄도내의 연고지 선정을 금지했다는 '정책'의 진위여부를 가릴만한 구체적인 문헌적 근거를 제시 못하시는 상황에서는 '한국의 축구 커뮤니티 및 언론에서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고 호칭하는', '한편 J리그의 리그 운영 방식과 똑같은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K리그 명칭 등에 관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이 J리그를 모방해서 도입했다고 생각하는 시각이 축구팬을 비롯 한국 축구계에 폭넓게 존재한다.'라는 문구조차 이 문서에 넣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걸 넣으려다 보니 문맥이 부자연스럽고 장황하게 서술되고 있다고 보여지네요. 이 부분은 일단 제가 손을 볼테니 그걸 확인하시고나서 그 이후에 논의를 이어나가지요. --182.209.154.217 (토론) 2013년 10월 1일 (화) 12:46 (KST)답변
아예 아이디를 만들었습니다. --By elliott (토론) 2013년 10월 1일 (화) 12:52 (KST)답변
발단부분을 계기라는 명칭의 단락으로 바꾸고 배경과 계기를 서술하는 목적에 충실한 형태로 손 봤습니다. 대폭 지워진 부분이 논쟁이 되는 핵심 부분이라서 아무래도 반론을 펼치시거나 수정을 다시 하려고 하실텐데, 일단 발단 부분은 되도록이면 가만 두시고 그 이후 단락인 '시행'과 '영향'에서 세부 내용을 넣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토론은 그 부분을 중심으로 하면서 문서를 발전시켜나갔으면 좋겠네요. ^^ --By elliott (토론) 2013년 10월 1일 (화) 17:12 (KST)답변
elliott님이 위키백과 사용자 의견요청란에 기여했다가 삭제한 내용 보니까 제가 무슨 끼어맞추기를 할려고 억지로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 넣고 이를 모방해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시행되도록 만들고 그래서 FC서울에 유리하게 할려고 억지로 문서를 편집하신 것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건 오해입니다. 수원 삼성팬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도 수원 구단 프런트에 계신 이X호 과장님이라는 분 아실겁니다. 이 분이 과거 붉은악마 운영진 , 축구기자 등등 하시고 PC 통신에서도 수준높은 필력으로 유명했던 분이신데 이 분이 당시 PC 통신에 썼던 글도 그렇고 축구 커뮤니티 비롯 축구계에서 J리그 모방해서 서울 연고지를 공동화 시키고 명칭 역시 J리그를 따라서 K리그 명칭으로 개칭하고 이런 부분들에 대해 비판이 많았습니다. 이과장님이 아래 글 쓸 당시에도 골수 수원삼성팬이셨는데 훗날 안양LG가 연고지 이전해서 FC서울이 될 것을 미리 예언하고 그러면 FC서울 유리하게 해 주기 위해서 아래와 같은 글을 쓰셨겠습니까? 아무튼 아래 이X호 과장님이 과거 PC 통신에 올린 글 기재했으니 참고해서 보시기 바라며 김현회 역시 K리그 명칭은 J리그 따라서 한거라고 비판하는 칼럼을 써 놓았고 J리그 제도를 K리그에서 무분별하게 도입했다는 부분에 대해 축구팬 비롯 축구계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스빈다.

아무튼 일본에서는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표현을 사용 안 다고 하니 정책이라는 표현은 한국 언론에서 지칭하는 용어라고 설명하고 요지는 J리그 사무국의 도쿄 국립경기장 불허로 인해 도쿄 연고지가 공동화 된 채 출범하여 운영되었고 이런 배경과 더불어 이 후 똑같이 서울 연고지가 공동화 된 것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없어 보이며 이런 J리그 방식에 대한 모방 부분은 필히 들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계기 부분에 바로 들어가는 것이 문장 구성상 어색하다고 판단되어 아예 카테고리를 계기 부분에 더 생성을 했습니다.

PC 통신 참고글

K리그 문제들, 어설픈 J리그 흉내때문은 아닐까? 02/07/09 11:03 | 조회수 291 이X호 통합검색

박진감 넘쳤던 성남-포항전이 끝난 후 각종 게시판들이 축구얘기로 박터지네요. 경기 내용에 대해서는 칭찬하면서도 나머지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글들이 많은데. 이런저런 불평불만 비판들을 종합해보니까 대강 3가지로 나뉘는거 같더군요.

1. 선수 유니폼 등에 광고넣지 말고 선수 이름 넣어라 2. 서울팬들도 축구보고 싶다 서울에 연고팀 만들어라 3. K리그라는 이름 너무 개성없다 바꿔라

거의 와와~ 하면서 위의 의견들을 대세로 몰아가는 분위기인데 문득 느껴지는 점이 위의 1~3번까지가 모두 일본 J리그로부터 건너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선수 유니폼의 등광고. 제가 기억하기로 최소한 99년 시즌까지만 해도 전 구단이 등에 한글 선수명을 표기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자리에 광고가 들어가더니 이제는 선수이름이 들어가는 유니폼이 아예 사라지고 말았죠. (수원의 '블루윈 에어컨'이 시초였던거 같습니다) 이런 등광고는 유럽의 메이저 리그 중에 이러한 광고 넣는는 없고 남미하고 일본 뿐인데 결국은 J리그 보고 따라한거죠.

서울에 팀이 없는 것, '서울 공동화 현상' 이것도 결국 J리그 보고 따라한거죠. 일본 J리그 출범하면서 도쿄를 비워놨었었던 것 '다른 도시와는 비교도 안되는 가장 큰 시장은 특정 구단이 독점하면 안된다' 는 논리였는데 이게 우리나라로 건너오더니 서울에 있던 세 팀을 내쫓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결과로 이어졌죠. (서울에 전용구장을 건설하거나 나가라는 논리였는데 이게 넌센스라는건 모두가 아실겁니다. 지금 250억 내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구단들인데 무슨돈으로 땅값비싼 서울에 구장짓습니까)

마지막으로 K리그라는 이름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J리그 따라한 것이라는거 아시는 분들은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전에는 KPFL(Korean Pro Football League) 인가 하는 이름이었는데 어느날 두리둥실하더니 K리그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90년대 중반 '일본 우세론' 이라는 이상한 분위기가 축구판에 형성되었을때의 부산물들이 지금 부작용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일본이 앞서나간다~' 'J리그 박터진다~' '딴건 몰라도 J리그 마케팅은 최고다' 등등의 이야기들이 언제부터인가 축구인들과 축구팬들을 불안하게 했고 결국은 이것이 보이지 않는 'J리그 따라하기' 로 이어지고 말았죠. 행정도 그렇고 리그 운영도 그렇고 마케팅도 그렇고 심지어 일부 서포터들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한동안 있었죠. 저는 여기에 신모씨가 해설때마다 입에 침나게 외쳐왔던 '일본 배워야한다' '우리 일본에게 추월당했다' 론이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저 '배워야 한다' 는 얘기만 입버릇처럼 반복했지 멀 어떻게 해야 한다는건지 이야기는 전혀 없었고 J리그들이 갖추고 있는 유소년 축구 클럽 시스템이나 연고지제도 등 정작 배워야 할건 훌쩍 건너뛴 채 '등광고' '수도 공동화' '리그 명칭' 등 그야말로 아무 쓸대도 없는 '껍대기' 들만 흉내낸 결과가 지금 나타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글을 적는 것은 더이상 리그 운영에 있어 과학적인 J리그니 J리그 만능주의 하는 등의 이상한 분위기를 더이상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때문입니다. 도쿄 베르디와 FC 도쿄의 등장이 말해주듯 J리그의 '수도 공동화' 론은 완전한 실패였고 이것은 J리그 역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하나의 '신생리그'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일본이 2005년부터 유럽 방식의 리그일정을 채택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다 각자 주어진 환경에서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지 우리가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다같이 리그 운영에 있어 아직 시행착오를 거치는 단계인데 저희가 그러한 '시행착오' 까지 따라할 필요가 있을까요. 세계 축구에 유례가 없는 초유의 '전후반기리그' 니 이런것도 결국 다 일본 J리그 따라한거 아닙니까. 그러다가 전반기 리그 챔피언이 후반기 리그에 소흘히 한다는 부작용이 일본에서 나타났고 얼마후 한국에서도 그것이 고스란히 나타났고... 저는 차라리 '야구식' 이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플레이오프 제도같은 '우리의 시행착오'를 하는 것이 '우리 리그' 의 발전을 위해 훨씬 값진 시행착오였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월드컵 이후 지금이 프로축구판이 개혁에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개혁을 하던 그것은 우리 축구 현장을 체험하면서 느낀 생각에서 나와야지 어설픈 외국사례 카피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당장 현안으로 떠오른 광주 상무의 프로참여 등이 그런 좋은 예겠지요.

부디 이번에는 우리의 현실을 고려한 '한국적인 개혁' 이 K리그에서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랜만에 긴글을 써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Footwiks (토론) 2013년 10월 4일 (금) 22:16 (KST)답변


제가 나서기엔 다소 성급했다 싶어서 지웠는데, 그새 보셨군요. ^^ 보신김에 마저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연고이전을 한 FC 서울도 잘못된 정책의 희생양이고, 쫓겨났던 서울로의 복귀는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은 조치다.고 이야기했던 부분은 'FC서울에 유리하게 할려고' 억지로 문서를 편집하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안 일화 천마의 성남으로의 연고이전, 안양 LG 치타스의 서울로의 연고이전을 초래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는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취지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서의 Footwiks님의 논지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저 말도 님의 논지에 부합하는 이야기죠. 사례로 FC서울을 언급했을 뿐, 충분히 Footwiks님의 논지로 추론 가능한 부분이 있다 생각합니다. 제가 논외라고 말한 것은 FC서울의 연고이전과 관련된 가치판단은 일단 접어두자는 의미였고요. 위키백과에서 협업을 해서 문서를 완성해야 하는 이상 논쟁의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이 부분은 이렇게 정리하도록 하고, 일단 제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계기 부분이 아니라 새로운 부분으로 삽입하신 것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 의견도 오해하고 계신 부분이 있네요. 저는 J리그의 영향이 없다고는 단 한번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계기 부분에서조차 관련 부분을 넣지 않았겠지요. 제가 주장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1. 일본 J리그의 영향이든, 모방이든 분명 존재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월드컵의 유치 경쟁자인 일본에 새로운 프로리그가 생겨나고 흥행한다는 사실에 자극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역연고제의 제대로 된 밀착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관중을 끌어모은다는 부분에서는 위기감까지 느꼈기에 완전지역연고제를 도입했죠.

2.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은 정책이 아니지만, 분명히 당시에 도쿄 연고 구단은 없었으니 도쿄 공동화 자체는 수긍합니다. 정책이라는 표현은 한국 언론에서 지칭하는 용어라고 서술하시고 계신데, 어차피 실제로는 정책임이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 언급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표현은 과감히 삭제하되, 각종 문서에서 도쿄 공동화가 일어난 상황 설명은 다소 부피를 줄여 깔끔하게 적어두는 것을 추천합니다.

3. K리그 명칭 같은 부분은 모방의 근거가 될지는 몰라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서 언급되는 것은 사족으로 여겨집니다.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과 일본의 도쿄 공동화와의 유사점이야 내용으로 녹여내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인 점은 출처 링크로 올린 글의 경우에 김현회 칼럼은 명칭 모방이 사족이라는 점에서, 플라마의 칼럼은 칼럼이 필자의 주관적 의견이 제시될수도 있어 기사로서의 객관성에서 흠결이 있다는 점이겠죠.

4. J리그와의 연관성이라는 파트는 나쁘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제안을 하나 하자면 계기, 시행에서는 경과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영향 파트에 J리그의 영향 파트와 타종목에 끼친 영향 파트를 만들어 이 부분에 넣는 것이 더 효율적인 문서 구조가 될거 같습니다.

5. 수원 구단 프런트에 계신 분의 글을 보여주셨는데, 어차피 이 글이 일반 개인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고, 기사나 공식 문헌이 아닌 이상, 위키백과 내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을 뿐더러 논의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전 FC서울에 대한 가치판단을 접어두겠노라는 의사를 밝혔을 뿐만 아니라, 이 문서에 수원 팬으로서 주관적인 의견을 반영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으면 싶네요. ^^ --By elliott (토론) 2013년 10월 5일 (토) 10:32 (KST)답변

수원 구단 프런트에 계신 글을 링크한 이유는 이 분이 글을 근거자료로 삼을려고 하는게 아닙니다. 서울팬들이 허구로 존재하지도 않은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이를 위해 J리그에 영향을 받았다고 이런 식으로 퍼트린다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분들이 계셔서 안양LG가 FC서울로 되기 이전에 1990년대에 이미 당시 오피니언 리더들이 도쿄 연고지가 공동화된 방식으로 J리그가 운영되고 이런 J리그의 영향을 받아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시행되었다고 얘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 드리기 위해서입니다.Footwiks (토론)

제목 이동 및 근거자료 인용 편집

  • 요즘 성남 FCK 리그 관련 문서관련하여 보강하고 고치고 있는데, 이 문서 인용이 너무나 부실해서 아래의 내용은 삭제를 하거나 인용이 필요하다고 남겨두었습니다.
  1. 신뢰할 수 없는 출처(블로그 등) 인용.
  2. 게시판에 출처의 스크린샷을 올린 링크를 인용. 내용을 인용하고 싶다면 형식에 맞게 원 출처의 내용을 입력해야 합니다.
  3. 개인 의견 피력. 예를 들어 프로농구에 줬다는 영향은 기사에 프로축구라는 말 언급조차 나오질 않습니다. 또한 과도한 수식어와 사실관계에서 벗어난 추측 등이 들어가 있습니다. "과도하게 반발" 등.
  4. 인용부족. 너무나 많은 문장이 인용 없이 적혀져 있어 해당 부분은 삭제했습니다.
  5. 잘못된 제목. 서울 공동화는 '프로축구 지역연고제' 내지는 '완전 지역연고제'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지 그 자체가 제도가 아닙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2월 24일 (금) 12:03 (AEDT)

이동하신 제목은 이미 K리그 연고지라는 문서에 해당되는 제목이라 넘겨주기로 이었고 위에서도 토론 한번 나왔지만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은 단독 문서로 충분한 저명성이 있어서 독립적으로 문서 개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옛날 스포츠신문이나 축구잡지들이 1990년대 기사 볼 수 있게 서비스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신문이나 축구잡지들도 네이버 옛날 신문 보기처럼 서비스가 되기 전까지는 사진 등등으로 캡춰되어서 블로그나 축구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이런 옛날 기사들을 지금과 같은 식으로 밖에 인용을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리고 조금 의아한게 킹케니님이 인용한 K리그 30년사는 실제 책 내용에 대한 캡춰사진도 없고 그냥 몇 페이지다 이렇게만 기재해 놓았는데 무슨 신문사와 무슨 축구잡지의 언제 기사인지와 당시 기사가 사진으로 캡춰되어서 유저들이 읽고 실제로 확인할 수 있게 자세히 제공되고 있는데 이 기사들이 캡춰되어서 단지 블로그와 축구커뮤니티 게시판에 있다고 신뢰할 수 없는 출처라면서 삭제되어야 하는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위키백과에서 신뢰할 수 없는 출처라는 것은 블로그에 쓰여진 개인 주관적인 글을 근거로 제시했을때 하는 것이고 옛날 스포츠 신문이나 축구잡지 기사들이 블로그나 축구 커뮤니티에 캡춰된 사진으로 올라왔다고 신뢰할 수 없는 출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제목 비롯 내용까지 위에서 보시다시피 전부 토론 거쳐서 합의된 내용이니 함부로 날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이루어진 토론은 아니지만 개발공에서 오신 분들이랑 리그베다 위키에서 끝짱토론으로 앞으로 하시고 싶은 얘기들 다 나왔고 논파되었으니 미리 보시기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courageuser/220341436156 Footwiks (토론) 2017년 2월 25일 (토) 01:05 (KST)답변

답변
  1. 제목 : 한국프로축구연맹 발간 한국프로축구 30년과 신문기사에 명시된 서울 연고 프로축구클럽 연고지 이전 시행 합의안의 이름은 지역연고제 내지는 완전 지역연고제이지 서울 공동화 정책이 아닙니다. 또한 대한축구협회 웹사이트에도 해당 정책에 대해 한국 프로축구는 기존의 지역연고제를 보완한 완전지역연고제를 실시하여라고 기재되어있습니다.[1]
  2. 기사 인용 : 인용의 합법적인 인용의 다섯 가지 요건 중 '인용 정도' 부분에서 해당 기사를 찍어올린 사진이 게시된 블로그물은 저작권 위배이므로 해당 게시물을 링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3. 신뢰할 수 없는 출처 : 인용에 사용하신 블로그들은 신뢰할 수 없는 출처의 조건에 합치하며, 예외적인 내용에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4. 감정적 기술 : 또한 제가 문서 본문을 고치다보니, 인용하신 문서에도 존재하지 않는 수식어를 기재하신 경우가 존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용없이 LG 치타스 축구단을 대변하시는 듯한 기술이 있는데 이는 위키백과:중립적 시각의 중립성의 요건 중 단어, 문체와 논조 부분에 위배됩니다.
  5. 토론 합의: 위의 토론 내용에는 footwiki님의 주장이 존재하지 '합의'가 존재하진 않는데요. 이에 따라 위키백과:의견 요청합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2월 25일 (토) 06:15 (AEDT)
1. 제목: 프로축구 30년사 304페이지 보시기 바랍니다. 1996년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는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을 실시했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한축구협회 페이지에 아래와 같이 당시 기업명이 우선시되던 구단명칭을 연고지역명으로 변경하는 것을 완전지역연고제라고 설명하고 있지 서울 연고 프로축구클럽 연고지 이전 시행 합의안의 이름이 완전지역연고제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 이 문서는 서울 연고 3팀이 서울 연고지에서 강제 축출 된 세부 정책에 대해 기술하는 것이지 1996년에 기업명 쓰던 구단명칭을 지역명 쓰는 것으로 변경하면서 지역연고제 제도를 강화했다는 거시적인 개념의 완전지역연고제 실시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K리그 연고지라는 문서의 완전 지역 연고지 제도 시행(1996시즌-현재) 파트에 서술이 되어 있습니다. 원하시는 제목인 한국프로축구 지역연고제는 이 문서가 아니고 K리그 연고지 문서의 이동시 고려되어야 하는 제목입니다.

축협문구: 한국 프로축구는 기존의 지역연고제를 보완한 완전지역연고제를 실시하여 당시 기업명이 우선시되던 구단명칭을 연고지역명으로 변경하는 등 지역주민과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한 작업을 확고히 하였다.

2. 기사 인용과 신뢰할 수 없는 출처: 저작권법 제7조에 의해서 사실의 전달에 불과한 시사보도는 저작권이 없고 앞에서도 설명한대로 옛날기사 온라인 서비스가 없는 한 블로그나 축구커뮤니티에 올라온 기사 사진 인용은 문제가 될것이 없으며 신문기사가 블로그나 축구커뮤니티에 캡춰되어 올라왔다고 신뢰할수 없는 출처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순수한 의도로 저작권이 염려되었다면 킹케니님은 예를들어 청와대 강제지시 문구의 관련 근거기사인 베스트일레븐과 스포츠서울 기사에 대해 전부 날짜, 제목, 페이지등이 있으니 기사 사진이 없는 프로축구연맹 30년사 책을 킹케니님이 인용한것처럼 기사 사진 링크만 삭제하면 되는데 청와대 강제지시 사항에 관련된 문장을 아예 삭제했고 근거기사도 삭제했습니다. 이건 저작권을 염려한 편집이 아니고 킹케니님의 주장에 반하는 내용과 근거자료를 은폐하기 위한 반달행위입니다. 이 부분 해명해 보시기 바랍니다.
3. 감정적 기술: 저만 이 문서를 편집한 것도 아니고 수식어에 대한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정확히 의견내리기가 힘들지만 수식어가 좀 과도하게 느껴지더라도 전체적인 논조에 대해서는 이 문서가 생긴지도 조금만 있으면 10년이 되는데 FC 서울 안티 사이트 개발공 등에서 오신 분들, 수원 삼성 팬으로 FC 서울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런 이해관계자들 외에는 이 문서가 LG 치타스를 대변하는 듯이 쓰여져있다는 지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아무튼 저도 오랜만에 다시 이 문서에 들어왔는데 킹케니님의 의견을 반영하여 주관적인 서술처럼 느껴지는 부분과 불행하게 이런 수식어들은 몇군데 삭제하였습니다.
4. 토론 합의: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의 오류 토론때 withfact님이 합의해 주셨고 그리고 도쿄 연고 공동화 부분 토론때도 By elliott님의 의견을 반영해서 문서가 수정되었습니다. 이 문서 내용은 저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고 그리고 근거자료로 인용된 기사 숫자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엽적인 부분은 아닐수 있어도 이 문서의 큰 틀과 요지는 관련 근거자료와 기사들이 철저하게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5. 영어홈피도 똑같은 이유로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의 영어 제목을 자꾸 옮기시는데 여기서 얘기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한국사람끼리 영어로 서로 문서 이동으로 왔다갔다할 필요는 없어보입니다.Footwiks (토론) 2017년 2월 25일 (토) 11:18 (KST)답변
답변
  1. 제목: 한국프로축구 30년의 304페이지에는 2002년의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서포터스 응원문화 변화 모색이 담겨있지, '서울연고공동화정책'에 대해서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혹시나 해서 340페이지도 뒤져봤지만 전혀 관련 내용이 없습니다. 다만 307페이지에서 확인했기에 해당 문서의 제목이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2. 잘못된 기사 인용: 저작권법 제7조 제5호로 보호받지 못하는 저작물인 '사실의 전달에 불과한 시사보도'의 범위는 원칙적으로 인사발령, 부고기사, 주식시세 등 오로지 '사실'만으로 구성된 기사로 한정됩니다.[1] 공익·비영리 목적의 사용이라 하더라도 뉴스기사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또한 기사 인용 자체는 개인 블로그/특정 서버 게시판에 올라온 내용으로 할 수 없습니다. 위키백과:신뢰할 수 있는 출처#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사용하는 이유는?을 보시면, 출처는 다음과 같은 때에 필요합니다. 본문에서 주장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출처가 있어야 합니다.라고 나와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인용문으로 내용 기술을 직접 하시는 부분도 있던데, 위키백과 인용방법에는 맞지 않습니다.
  3. 신뢰할 수 없는 출처:원문에 등재된 내용들은 모두 위의 저작권법에 합치하지 않은 블로그에 올라온 기사의 사진파일을 근거로 되었기에 신뢰할 수 없는 출처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해당 내용을 인용하고자 한다면 위키백과의 인용 틀에 맞추어서 인용하면 됩니다.
  4. 감정적 기술: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라도 인용하신 부분을 참고한다 하더라도, 인용기사 내용에 존재하지 않은 부분들이 본문에 기술된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하기 기술은 감정적 기술로 이해됩니다.
가.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緣故空洞化政策)이란 한국프로축구연맹과 대한민국 당시 김영삼 정권이 K리그 1996년 시즌에 2002년 월드컵 유치 활동과 맞물려 서울 축구전용구장 건설과 지방 축구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시행한 강압적인 정책 : 해당 인용기사인 '위원석의 하프타임'에는 김영삼 정권이 개입한 내용, 서울 축구전용구장 건설의 목적에 대한 기술이 없습니다.
나. 서울 연고권을 공동화(空洞化)시킨 정책을 말한다.: 인용된 1998년 내용은 서울을 공동(共同)관리구역으로 지정하고 경기를 1경기씩 돌아가며 열게 한 내용이지 공동(空洞)화가 아닙니다.
다. 흔히 서울 공동화 정책이라고도 부를 때는 1996년도 정책을 지칭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내용을 뒷받침할 인용이 없습니다.
라. 한편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용어의 유래에 대해 한국어 위키백과에 등재된 이후 원래 없던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용어가 새롭게 퍼지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나 이는 명백한 유언비어로 한국어 위키백과 자체가 있기 전부터 공동화 내지 공동화 정책이라는 용어는 이미 언론과 축구팬들 사이에 언급되었으며[5][6]이 문서가 한국어 위키백과에 생성되기 전 FIFA 홈페이지의 성남 일화 천마 관련 기사에서도 "League's decentralisation policy" 즉 연맹의 공동화 정책이라고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유언비어에 대해 이 문서에서 설명할 필요도 없으며, 유언비어에 대응하기 위한 주장을 이 문서에서 펼칠 이유도 없습니다.
마. 당시 몇개 안 되는 구단으로 대한민국 전체를 커버해야 하는 당시 연고지 정책에 따라 서울 연고 복수팀 제안은 거부되고 충청도로 배정이 되었으며 같이 합류했던 현대 호랑이 (현 울산 현대)가 인천+경기 연고권을 배정받으면서 유공은 서울 단독 연고권을 보유하게 된다. 인용 내용이 없습니다.
바. 그러나 1993년 옆나라 일본의 J리그가 프로야구단이 선점하고 있던 도쿄 등의 대도시가 아닌 중소도시에 연고지를 두고, 수도인 도쿄에는 국립이라 특정 구단의 소유가 될 수 없던 도쿄 국립 경기장을 중립지역으로 두고 돌아가며 중립 경기를 열며, 기업명을 배제하고 기존 기업구단의 한계에서 벗어나 지역과 구단이 밀착하여 움직이는 유럽이나 남아메리카의 축구문화를 지향하는 구단 시스템을 추구하면서 당시 한국처럼 프로야구가 지배하던 일본 사회에서 프로야구를 위협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모으며 한국 축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인용 부분에는 한국 축구계의 직접적인 반응이 없기 때문에 해당 내용을 뒷받침할 수 없습니다.
사. 중소도시 연고지 정책과 J리그와의 연관성부분은 J리그에서 실시한 정책 내용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지 실제 K리그의 서울 공동화 정책에 대해 실제로 영향을 주었다는 본문 주장에 대해서 뒷받침 할 수 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본문과 상관이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삭제해야 합니다.
아. 이 사이 특히 LG 치타스의 반대로 57번 인용에는 다른 2개 구단에 비해 LG 치타스가 특히 반대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유공이 더 격렬하게 보이는데요. 다음 기사[2]에도 유공은 격렬하게 반발하는 한편 LG는 다른 두 팀을 핑계대고 있습니다.
자.  1996년 4월 마지막까지 서울 연고지 고수를 위해 강력하게 저항했던 LG 치타스가 안양으로 연고지 이전을 발표하면서 위의 내용과 동일하게 인용 내에서 특별히 LG 치타스가 다른 2개 구단에 비해 격렬하게 저항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내용을 기술한 것은 작성자가 LG 치타스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있으셔서 기술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차. 결국 프로축구연맹의 성급한 의사결정과 정부시책의 산물로 대한민국의 심장부이자 프로스포츠 최대 시장인 서울에서 프로축구가 6년동안 쌓아온 기득권을 스스로 완전히 포기하고 고스란히 경쟁 프로스포츠인 프로야구가 무혈선점하는 구도가 만들어졌으며이에 대해 언론과 축구행정가들 역시 결과적으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연고지에서 프로야구에 밀리게 된 결정적인 실수였다며 뒤늦은 비판과 후회를 하고 있다. 인용 내용에서는 한 축구관계자의 의견을 담고 있는데 그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축구계 전체의 의견으로 포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차. 연고지 시장성 측면에서 살펴보면 1996년 당시 서울 인구가 1,041만여명이고 그에 반해 연고지 이전을 한 안양 59만여명, 부천 79만여명, 천안 35만여명으로 1,041만여명의 수도 서울이라는 대한민국 최대 시장을 포기하고 고작 세 도시 인구를 다 합쳐도 173만명밖에 안 되는 협소한 시장을 찾아 연고지 이전을 한 것이다. 전 세계 프로 스포츠에서 연고지 이전의 이유가 대부분 연고지의 인구가 적거나 등등 상업적인 이유와 비즈니스적인 마인드에 입각하여 더 큰 시장을 찾아 즉 스몰마켓에서 빅마켓으로 연고지를 이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런 상식을 벗어났으며 덧붙여 대한민국이 일본처럼 야구가 국기(國技)인 나라가 아니고 단지 프로야구가 프로축구보다 인기가 조금 더 있었을 뿐으로 일본처럼 대도시를 피해 중소도시 중심 지역연고제로 우회 전략을 펼칠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최대 시장인 서울 연고지를 성급하게 포기하는 의사결정이었다. 인용 하나 없는 독자연구입니다.
카. 한국 프로농구 KBL 역시 1997년 서울 연고지를 공동화 시키고 인용 내용에는 프로축구의 연고지 공동화 정책이 프로농구의 공동구역에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다음 기사[3]에서는 '프로야구와 똑같이 지역연고제'라고 나와 있습니다.
타. 영향문단의 나머지 또한 프로축구연맹의 서울 공동화 정책이 준 영향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다른 스포츠리그와의 비교만이 존재합니다. 삭제해야 합니다.
파. 과제부분은 작성자 개인의 의견 개진이지 사실관계를 나타낸 부분이 없습니다.
1. 제목: 307P 내용을 304P로 잘못 보고 얘기드렸는데 제목은 서울연고공동화정책에 이의 없으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문서에 대응되는 영어이름이 정확하게 Decentralization policy in K League이니 영어 문서에 이동요청도 철회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 잘못된 기사 인용: 아무리 찾아보아도 위키백과에서 블로그에 올라온 신문 기사 인용이 안 된다는 규정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 기사 중에 단순 사실 나열에 불과한 기사들이 많으며 또 하나 블로그에 사진기사 올리신 분이 베스트일레븐이나 스포츠신문사의 허락하에 올렸을 수도 있기 때문에 킹케님이 주장하는 저작권법 위반물이라는 단정에 제가 동의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저 사진 기사들도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데 저작권법 위반물로 문제가 되었으면 진작에 블로그에서 내려갔을테고 지금 상황에는 허락하에 올린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으로 보입니다. 나중에 블로그에서 사진 기사 내려가면 그때 프로축구 30년사 책 인용하는 방식으로 스포츠신문 혹은 축구잡지이름, 날짜, 제목 이런 식으로 변경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3. #감정적 기술: 한 문장 한 문장 지엽적으로 분석해서 인용문과 대조하시는 것 같은데 나무보다는 숲을 보듯이 전체적인 맥락으로 글을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인용문 중복을 피하기 위해 안 달린 경우가 좀 있었던 것 같고 아무튼 제가 하나하나 답변드리겠습니다.
가:' 김영삼 정권이 개입한 내용과 서울 축구 전용 구장 건설은 프로축구 30년사 307P에 나와있고 해당 내용에 대해 본문중에 중복되는 내용입니다. 한 문장 뒤에 인용기사가 달렸다고 그 문장이 전부 인용기사가 뒷받침 안 한다고 이의제기하시는데 한국어 위키백과 모든 문서에 그런식으로 문서 작성 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첫문장은 전체 내용 요약인데 그러면 이 문장에 모든 인용문을 다 붙여야 하는것인데 어차피 뒤에 나오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위현석 기사의 인용은 그 문장의 핵심인 강제시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 기사가 달린 것으로 보입니다.
: 서울 연고권을 공동화(空洞化)시킨 정책을 말한다.에 인용된 기사가 이 기사이며 이른바 서울 공동화(空洞化) 정책이다. 이렇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인용기사
: 기사들고 그렇고 개발공 같은 축구커뮤니티, 한국어 위키백과뿐만 아니라 서울연고공동화정책 문서가 생성된 곳 모두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란 문서들이 1996년도 정책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너무 당연해서 굳이 인용 기사를 달 필요가 없어서 그런것 같고 그리고 사실 중요한 내용도 아니라 아예 문장 자체가 삭제되어도 크게 상관은 없어 보여서 의견반영해서 아예 삭제해 버렸습니다.
: FC서울 안티팬 비롯 서울연고공동화정책 허구론자 등등이 한국어 위키백과의 서울연고공동화정책 문서라고 특정해서 유언비어가 계속 돌고 있으니 한국어 위키백과 문서내에도 내용이 있어야 할 것 같고 논문 등에도 원래 모호하고 잘못 알려진 용어가 있으면 유래나 자세한 설명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이해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 옛날 신문에 연고지 배분 관련 기사 발견했고 의견 반영해서 추가시켜 놓았습니다.인용기사
: 인용 기사와 문장을 대조하듯이 보면서 문자 그대로만 이해하시면서 이의 제기를 하시네요. 일본 J리그 성공에 대한 자세한 기사가 한국에까지 나왔고 한국 축구계에서도 반응을 보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유추가 가능해 보입니다.
: 도쿄 연고 공동화 언급 부분 토론에서 이미 J리그 연관성으로 단락 구성해서 기술하기로 했고 By elliott과 토론에 의해 단락을 구성했고 종료되었습니다.
: 서울연고공동화정책 결의가 2월인데 1995년 1월 13일 그러니까 거의 막바지까지 반대하고 있는 구단 LG치타스라고 김기복 당시 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이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제일 마지막까지 반대하니 특히 LG 치타스가 반대한다고 서술하는 것이 문제없어 보입니다.
: 인용기사에 서울연고고수를 강력히 희망하였으나 이렇게 나오기 때문에 서술에 큰 문제는 없어보입니다. 또한 사람마다 문장을 읽고 느끼는 감정은 다 다른 것인데 제가 킹케니님이 이 글에 느끼는 개인감정에 대해 답변드릴 말은 없어 보이고 그러면 저 역시 개인감정 얘기드리면 킹케니님이 평소에 이런식으로 위키백과 문서마다 인용문과 해당 문장과 일일히 글자 하나하나 대조해 가면서 고치고 이런 식으로 토론 하시는 분도 아니고 킹케니님 역시 FC 서울에 대한 특별한 감정(나쁜 감정)을 가지고 이런 지적한다고 얘기 드리면 킹케님 역시 할 말 없으실 것 같습니다. 인용기사
: 모두가 그런것 아니고 축구행정가들 사이에서 그런 비판과 후회의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식으로 표현 수정했고 요지인 최대시장을 포기하고 중소도시로 이전하는 것이 비상식적인 의사결정 실수였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기사는 위에 위원석 기자 기사를 다시 사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인용기사1
카~타: 프로축구의 서울연고공동화정책 이후 프로농구가 똑같은 방식으로 서울 연고지가 공동화되어서 프로리그를 출범을 했고 연관된 사례들을 영향이라는 단락에 넣는 것은 구성상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 서울 연고지 프로축구단 증가 대한 서술로 과제 보다는 확대가 더 어울릴 것 같아서 단락 제목 수정했고 앞부분은 프로축구단 확대 단락에 대해 과거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없었다면 이런 화두를 던지면서 시작하는 서론 단락으로 보시면 될 것 같고 중점은 서울 연고 구단들이 늘어나는 과정에 대해 계속해서 업데이트해 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추신: 반영했습니다.
 답변 객관적인 태도로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말씀드렸는데도 아예 평행선을 달리시니, 조정을 신청하려고 합니다. 이에 동의하십니까?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2월 26일 (일) 06:11 (KST)답변
 답변 객관적인 태도여서 이 문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 강제지시 단락을 통째로 날리시고 해명도 없으신건가요? 그리고 킹케니님이 분명한 근거 제시하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기사에 나온 단어 의미 혹은 본문의 맥락을 킹케니님 의견과 다르니까 없애자 이런 내용이 주입니다. 그렇다고 제 주장만 일방적으로 고수한 것도 아니고 지금 킹케니님 의견 수용해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인용기사도 찾아서 보강하고 말씀하신대로 감정적 기술 같다는 생각되는 부분도 삭제했고 그 외 불필요해 보이는 수식어들 삭제, 축구계 전체의 의견처럼 비추어질 수 있는 문구 수정 등 최대한 반영을 했고 즉 토론 개설 후 제가 편집한 내용이 전부 킹케니님 의견 반영한 편집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아예 평행선을 달리신다고 그러면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지금 오해하겠습니다. 그리고 토론 개설된지 겨우 만이틀 되었고 지금 저와 킹케니님 두명만 참가했습니다. 의견요청에도 올리셨으니 좀 기다려 보면서 여러 위키백과 유저들 의견도 들어보고 조정을 하던가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Footwiks (토론) 2017년 2월 26일 (일) 13:32 (KST)답변
 Kingkenny1967 답변위에 가-파 중 대부분 말씀하신 부분들은 다 이해가 되나 몇 가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 인용기사에는 전혀 없는 부분을 유추를 하라는 건, 내용을 뒷받침 할 인용이 없이 글을 썼다는 말입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해당 정책 결정에 있어 J리그의 사례를 참고했다는 내용이 담긴 인용을 달아주셔야 합니다.
카~타: 위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프로농구연맹에서 해당 정책 결정에 있어 한국프로축구연맹의 1996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참고했다는 내용이 담긴 인용이 있어야 합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2월 28일 (화) 09:42 (KST)답변


서울연고공동화정책 문서는 20년 전 사건에 대한 문서이지만 당시 상황, 계기, 시행(주요 일지 포함), 철폐, 유산 등 단락 구성이 잘 되어있고 근거 자료 제시 또한 160개가 넘을 정도로 상당히 잘 되어 있는 문서라고 생각됩니다.

1. 프로축구연맹에서 공식 발간한 한국프로축구 30년사 도서 307페이지에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을 실시했다고 직접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1996년에 서울 연고 구단들이 타의에 의해 다른 연고지로 이전한 것을 지역연고제 내지 완전지역연고제라고 명시한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지역연고제 내지 완전지역연고제는 당시 프로축구연맹이 기존의 지역연고제를 더 보완한 것 자체를 의미하지 서울 연고 구단들이 타의에 의해 다른 연고지로 이전한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한국프로축구 30년사 도서대로라면 완전지역연고제 시행 시기에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같이 시행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보여집니다.

이외에도 각종 국내 축구 언론 보도에서도 서울공동화정책 내지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라는 용어와 그에 따른 정책 내용 설명들이 나오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서울공동화정책 내지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없었다고 부정하는 기사들은 발견할 수 없습니다.

2. 본 문서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라 생각되는 당시 서울 연고 구단들에 대한 청와대의 이전 지침 하달과 관련된 근거나 서울연고공동화정책에 대한 실시 근거에 대한 신뢰성 문제 제기는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같은 형태로 존재하는 자료는 아니지만 엄연히 신뢰 가능한 스포츠 관련 언론, 출판사를 원 출처로 하고 있으며 그 내용적 흐름은 프로축구연맹에서 공식 발간한 도서와도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자료 자체의 원본성, 진본성에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단순히 인터넷에서 스포츠신문사나 축구잡지 홈페이지와 직접적인 접근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뢰성이 없는 출처라고 단정짓는 것은 상당히 적절하지 아니하다고 생각되며 kingkenny1967님이 제시하신 규정 문서를 들어가봐도 원본 기사 캡쳐 사진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저작권의 경우 해당 근거 자료들을 게시한 블로그와 해당 언론사간의 문제이지 위키백과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며 그에 앞서 무엇보다도 저작권 위배라고 단정하기에 그 근거가 미약하다고 판단됩니다.

해당 블로그들에 자료가 게시된 날로부터 시간이 많이 경과하였음에도 기타 소요없이 근거 자료들이 블로그에 계속 게시된 상태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는 해당 블로그가 원 저작권자로부터 허락을 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됩니다.

3. 문장 하나 하나마다 인용 근거가 없다고 하여 무조건 감정적 기술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물론 인용 근거가 없는 문장의 경우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보니 관점에 따라 감정적 기술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충분한 근거 또는 주장이 잘 뒷받침된다면 감정적 기술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체적으로 kingkenny1967님이 감정적 기술에 대해 문제 제기한 부분에 대해서 footwiks님이 충분한 설명을 하였다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문제 제기를 하였다고 하여 실제로 그 부분들이 무조건적으로 수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문제 제기에 대하여 합리적인 근거 내지 주장을 밑바탕으로 실제로 문제가 되지 아니하다고 증명한다면 오히려 문제 제기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 인정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footwiks님은 kingkenny1967님의 문제 제기에 대하여 서술에 문제가 있거나 수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하여 인정할 부분을 받아들였다고 생각되며 문제가 없는 부분에 대해해서는 분명한 출처 내지 합리적 주장을 기반으로 충분히 kingkenny1967님에게 설명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평행선을 달린다고 말하기에는 상당히 부정적하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감정적 기술이라고 한다면 근거 제시에 전혀 문제가 없는 청와대의 이전 지침 기사를 일방적으로 삭제한 것이 감정적 기술에 해당한다고 판단됩니다. Rodrigo 0000 (토론) 2017년 2월 27일 (월) 20:30 (KST)답변

 Kingkenny1967 답변삭제한 것은 감정적 기술은 아니죠. 대부분의 내용은 확인했고, 하기의 질문만이 남아있습니다. 하기 질문 내용에 맞는 인용이 달리지 않을 경우 J리그와 프로농구연맹 부분은 삭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인용기사에는 전혀 없는 부분을 유추를 하라는 건, 내용을 뒷받침 할 인용이 없이 글을 썼다는 말입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해당 정책 결정에 있어 J리그의 사례를 참고했다는 내용이 담긴 인용을 달아주셔야 합니다.
카~타: 위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프로농구연맹에서 해당 정책 결정에 있어 한국프로축구연맹의 1996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참고했다는 내용이 담긴 인용이 있어야 합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2월 28일 (화) 10:14 (KST)답변
킹케니님도 아시겠지만 개발공 이런 FC서울 안티사이트에서 서울연고공동화정책 음해하고 왜곡할려고 그래서 용어 유언비어에 대한 설명 그대로 유지하는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킹케니님이 백과사전에 어울리지 않다고 지적하신 의견 반영해서 삭제했고 그 외에도 최대한 의견 반영했는데 킹케니님은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만 하시네요. 특히 근거자료 저작권이 정말 걱정되었다면 링크만 날리고 인용문 잘 만드시던데 월간축구 몇월호 몇페이지이렇게 만들 수 있었잖아요. 그런데 청와대 강제 이전 지침 하달 관련 부분 아예 날려버리고 이런 것에 대해서 해명이나 사과도 없으신 것은 좀 그렇습니다.

아무튼 질문 주신 부분 또 답변 드리자면 다음과 같고 여기도 말씀하신 부분 반영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 부분이 중요한 부분도 아닌데 자꾸 여기에 너무 집착하시는 것 같습니다.

: 먼저 중소도시 연고지 정책과 J리그와의 연관성 단락에서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해당 정책 결정에 있어 J리그의 사례를 참고했다는 직적접인 문장은 없으며 요지는 강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며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당시 내부부에서 스포츠와 지역활성화 모색이라는 J리그 벤치마킹 보고서를 만들었고 당시에는 월드컵 유치 때문에 정부와 축구계가 밀접하게 협조 시기였으며 아래 기사처럼 축구기자들도 J리그에서의 영향이 있있던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측하고 있기 때문에 아예 없는 것을 억지로 연결시킨 부분이 아닙니다. 의견 반영하여 직접적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벤치마킹한 것철머 오해될 수 있는 표현은 수정조치했습니다.

내부무 작성: 스포츠와 지역활성화:스포츠를 통한 지역활성화 모색”.http://theme.archives.go.kr/next/pages/viewer/archiveViewer.jsp?archiveId=0001287865&singleData=N

<21편>서포터즈 이야기 http://sports.media.daum.net/sports/newsview?newsId=20071126114210029 결국, 유공을 시작으로 일화와 LG는 어쩔 수 없이 서울을 떠나게 되었는데 이 문제는 당시부터도 논란이 없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서울을 공동화시킨 연맹의 일방적인 조처는 상당한 판단착오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결정의 밑바탕에는 J리그에서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그 안타까움이 더할 뿐이다.

카~타: 단락 제목이 영향이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어서 단락 제목을 유산 즉 Legacy 정도 개념으로 바꾸었고 문장 보시면 아시겠지만 KBL이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모방해서 서울 연고지를 공동화 시켰다는 직접적인 문장은 없으며 시기상 K리그 이후 프로농구도 서울 연고지가 공동화 되었다는 부분만 서술하고 있습니다. 직접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문장이 없으니 말씀하신 인용은 필요가 없습니다.
 Kingkenny1967 답변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면 충분한 인용이 없는 상태에서 삭제할 수 있는데, 반대로 이 부분에 왜 집착하시는지 이유를 모르겠네요. 위키백과 문서에서 근거없이 '유추'나 '추측'만으로 글을 쓰는 걸 최대한 지양해야 맞는 게 아닐까요? 저는 이 문서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자 싶은 게 아닙니다. 그저 충분한 근거가 없이 문장이 달리거나, 때로는 단순한 수식어조차도 독자들에게 특정한 결론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하고, 저자가 원하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단어 선택과 문장 구성을 무미건조하게 이끌어가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자마다 다르겠지만, 위키백과의 목적인 "중립적이고 검증 가능한 자유 콘텐츠 백과사전의 제공"과 완전히 합치하는 내용이니까요.
부분의 인용이라고 달아주신 내무부 작성 문서 몇 번째 페이지를 참고하신 겁니까? 또한 <21편>서포터즈 이야기는 저자조차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라고 저자 본인의 추측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전혀 없고요.
카~타 유산이라는 말 또한 연관성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KBL이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모방했거나 영향을 받아서 공동화 시켰다는 내용이 없다면, 이 문서에서 언급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위의 토론 내용을 읽어봤을 때, 계속 FC서울 안티사이트 언급하시는 이유도 이해가 가지만, 전혀 상관없이 문서 자체의 내용을 중립적이고 검증 가능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

월 1일 (수) 08:17 (KST)

문서 자체 내용을 중립적이고 검증 가능하게 만들시고 싶다는 분이 핵심인 청와대 지침 근거자료와 가장 중요한 난락 날려버리신건가요? 중립적이고 검증 가능하게 만들고 싶으신 것이 맞으시면 이 부분이나 먼저 해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FC서울 안티사이트에서 한국어 위키백과를 꼭 집어서 이 문서 때문에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라는 용어가 생겼다는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를 퍼트리니까 그 부분을 누군가 넣은것 같고 그리고 계속해서 이런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있는 상황이니 유지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제 의견 얘기드렸다가 킹케니님 의견 수용하면서 그 부분 삭제했다고 하면서 언급한건데 뭐 잘못된 부분 있습니까? 킹케니님이 유언비어에 대한 부분 삭제하시고자 하시면서 그 부분 언급하니 당연히 이유를 말하면서 언급이 된것이지요. 킹케니님이 그 얘기 안 꺼냈으면 제가 얘기 했겠습니까?

프로농구 들어간 단락은 제목을 유사 사례로 바꾸었으니 이제 할 말 없으시죠?

또 하나 J리그 연관성 부분이 이 문서에 핵심이 아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어도 이미 한번 토론을 거쳤고 J리그를 직접적으로 모방했다는 서술을 지양하고 연관성과 배경 정도의 뉘앙스 단락으로 빼고 합의하에 서술 된 것인데 이걸 제 맘대로 어떻게 삭제합니까?

아무 근거없이 유추나 추측이라면 그러면 킹케니님은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을 독자 입안으로 실행했다는 증거 가지고 있습니까?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우리는 J리그의 J자도 모르는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서울 연고지 구단들을 강제로라도 지방으로 이전시키면 축구 열기가 살아날 것 같아서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을 실행했다는 증거 가지고 오시면 당연히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은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독자 입안 실행한 정책이다 이렇게 기술하는 것이 맞겠죠. 결국 따지고보면 킹케니님의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독자 입안 실행했다는 결론도 근거없는 유추나 추측인것입니다.

전 세계 프로스포츠에서 수도 연고지가 공동화되고 리그를 운영하는 사례가 엄청나게 흔한 것도 아니고 1993년 J리그 그 후 1996년 한국 프로축구에서 수도 연고지 공동화 정책이 실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내무부 문서 등등 월드컵 유치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도 J리그를 벤치마킹한 보고서도 있고 현재까지도 J리그를 벤치마킹하러 떠나는 상황에서 연관성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자료가 존재하고 축구기자들도 연관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 현재 단락 유지에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 대신 킹케니님 의견에 따라 영향 받은 것처럼 인상을 받을 수도 있으니 이 문단 말미에 그러나 일부 축구팬 중에서 J리그와 관련 없이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독자적으로 입안하여 실행한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축구팬도 존재한다 이렇게 삽입시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외에 저는 찾지를 못하겠는데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독자적으로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을 입안시킬 수 있는 배경이나 능력이 있었다는 정황 자료들 찾으시면 그런것도 추가시키면 단락이 균형있게 맞춰질 것 같습니다.

결국 이렇게 J리그의 리그 운영 방식과 똑같은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K리그 명칭 등에 관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이 J리그를 모방해서 도입했다는 비판적 시각이 과거 PC 통신 축구 커뮤니티 시절부터 현재까지 축구팬을 비롯 한국 축구계에 폭넓게 존재한다 반면 일부 축구팬 중에서 J리그와 관련 없이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독자적으로 입안하여 실행한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축구팬도 존재한다 Footwiks (토론)

 Kingkenny1967 답변1. 프로농구가 유사 사례가 되려면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실행하게 된 계기나 실행하게 된 과정과 동일하다는 입증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밥을 먹고, 그 후에 footwiki님이 밥을 드셨다고 해서 유사 사례라고 할 수 없지요. 해당 란에 인용된 신문기사를 참조해보면 '프로야구'얘기는 나옵니다.
2. J리그 연관성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문서에서 언급 자체를 하면 안됩니다. 삭제를 직접 하기 어려우시면 삭제해야 된다는 내용에 동의해주세요. 관리자에게 가져가겠습니다.
3.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특정 사례를 들어 실행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것은 주장자의 의무이지, 그 특정 사례를 들지 않았다고 하여 독자 입안이라는 점을 제가 증명해야 하는 의무는 없습니다.
그리고 당시 내무부 문서 등등 월드컵 유치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도 J리그를 벤치마킹한 보고서도 있고 현재까지도 J리그를 벤치마킹하러 떠나는 상황에서 연관성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자료가 존재한다면 그 자료들을 얘기해주세요. 위에 내무부 자료라고 링크해놓으신 문서 읽어봤는데, 실제로 영향을 미쳤다라고 볼 수가 없는데요.
이 정책이 '완전한 홈/원정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실행되었다'라고 얘기하는 스포츠 비즈니스 연구 서적은 존재합니다.[2]
위의 이유에 근거해, 저는 프로농구 언급 부분과 J리그 부분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일 (수) 13:39 (KST)답변

서울연고공동화정책과 J리그 간 연관성 부분에 대한 두분의 의견을 잘 들어봤습니다.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을 실시한 주체가 프로축구연맹인 것은 맞는데 여기서 이 정책의 내용들을 프로축구연맹이 자체적으로 생각하여 수립한 것인지, J리그를 참고하여 수립한 것인지는 현재로써는 둘다 확언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1. fookwiks님이 제시하신대로 당시 내무부 문서, 근래 축구기자들의 언급 등을 고려해볼 때 J리그와의 연관성(J리그를 참고하여 정책 수립)은 일정 부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되어 해당 단락을 문서 내에 존치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kingkenny1967님이 제시하신 자료는 서울연고공동화정책 실시 목적 내지 이유와 관련이 있는 부분이지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자체적으로 생각하여 수립한 것인지, J리그를 참고한 것인지에 대한 부분과는 무관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프로축구연맹에서 자체적으로 이 정책의 내용에 대해 생각했다는 정황자료나 근거자료들이 발견되면 그때 토론을 재개하여 두 견해에 대해 충분한 검증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2. 프로농구의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은 프로연맹의 서울연고공동화정책과 성격이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정책의 시행 계기, 과정의 상호 유사성 여부는 이 부분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되며, 핵심적으로 두 정책 모두 공통적으로 연맹 차원에서 서울을 비웠다는 점에서 두 정책은 충분히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Rodrigo 0000 (토론) 2017년 3월 2일 (목) 00:16 (KST)답변

 Kingkenny1967 답변 1. 내무부 문서, 152페이지의 문서 중 몇 번째 페이지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명시해 주세요. 또한 축구기자들 언급도 어느 부분인지 확정해서 말해주셔야 맞습니다. 저는 못 찾겠는데요 그런 부분.
그리고 해당 내무부 문서, 내용을 보셨다면 서문에 이 책자는 최근 일본의 <자치포럼>에서 스포츠를 통한 지역활성화에 대해 특집 연재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 기조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2. 말씀하셨듯이 정책의 시행 계기, 과정의 상호 유사성이 없으므로 이 문서에 프로농구의 서울 연고지 미지정(해당 정책은 이름이 거론된 적이 없으므로 '프로농구의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부분이 삭제되어야 합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2일 (목) 07:45 (KST)답변

왜 그랬나 했는데 반달했던 것이 확실하네요. 계속 무시하시고 계신데 중립성이니 객관성이니 이런 말 하면서 인용문 링크만 날리면 되는데 핵심인 청와대 강제지시 사항 문단까지 다 날린 것부터 해명부터 하세요. 보아하니 이 문서에 토론 걸고 왜 오신지는 대충 짐작은 하겠는데 중요한 파트는 아니지만 어찌됐든 과거 토론에서 합의가 난 부분이고 지금도 토론에서 킹케니님만 반대하고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만 하시면서 소모적인 논쟁이 이어지네요. 일방적인 주장에 문서 내용 삭제시킬 생각만 하지 마시고 협업 태도를 가지시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수도 연고지를 공동화 시키고 리그를 운영하는 것은 흔한 것이 아닙니다. 1993년 J리그 그리고 1996년에 한국 프로축구에서 수도 공동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일본과 아예 멀리 떨어져서 교류가 전혀 없었으며 모를까 내무부에서 일본 스포츠 분석 보고서를 번역까지 해서 발간했고 한국 축구계도 일본 J리그가 인기에 대해 알고 J리그 운영방식을 계속 분석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며 축구전문기자도 J리그 영향과 관련된 언급을 했기 때문에 이 문서에 기술이 된 것입니다. http://sports.media.daum.net/sports/newsview?newsId=20071126114210029 결국, 유공을 시작으로 일화와 LG는 어쩔 수 없이 서울을 떠나게 되었는데 이 문제는 당시부터도 논란이 없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서울을 공동화시킨 연맹의 일방적인 조처는 상당한 판단착오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결정의 밑바탕에는 J리그에서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그 안타까움이 더할 뿐이다.

지금까지 연맹에서 독자이든 J리그 벤치마킹이든 공식발표는 없는 상황이니 계기 부분에서 참고사항처럼 연관성 부분으로 빼서 서술하는 것으로 과거 토론에서 By elliott님과 합의가 된 것이고 지금도 Rodrigo님도 그렇고 구성상 무리가 없다고 동의하시고 계십니다.

이렇게 과거 다른 유저들과 합의가 난 토론 결과에 그리고 지금도 킹케님만 계속 아예 날려버리자고 무리한 주장하시는데 이걸 삭제시킬려면 삭제시킬려는 킹케니님이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독자적으로 실행했다는 증거를 가져 오셔야지 왜 저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연관성 파트로 빼서 서술하는게 무리없다고 다 생각하는데 증거자료를 여기서 더 왜 제가 가져 옵니까?

연맹 독자 입안 및 실행 증거자료 가져오시면 정책 입안 모티브는 자체적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입안했다로 기술하는 것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고 그리고 지금 연관성 파트가 J리그 영향으로 한 것처럼 오해되면 연맹 독자 입안 및 실행으로 했을 가능성에 대한 문구도 추구하면 되고요...

과거 토론 내역 중 By elliott님 의견
1. 일본 J리그의 영향이든, 모방이든 분명 존재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월드컵의 유치 경쟁자인 일본에 새로운 프로리그가 생겨나고 흥행한다는 사실에 자극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역연고제의 제대로 된 밀착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관중을 끌어모은다는 부분에서는 위기감까지 느꼈기에 완전지역연고제를 도입했죠.
2. J리그와의 연관성이라는 파트는 나쁘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제안을 하나 하자면 계기, 시행에서는 경과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영향 파트에 J리그의 영향 파트와 타종목에 끼친 영향 파트를 만들어 이 부분에 넣는 것이 더 효율적인 문서 구조가 될거 같습니다.

2. 100% 똑같은 사례가 아니고 단락 제목이 유사 사례이고가장 중요한 개념인 수도 서울 연고지가 공동화 된 것이니 유사 사례 단락에 들어간 것입니다. 종목이 다른데 어떻게 계기랑 과정이 100%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Footwiks (토론)

 의견 죄송하지만 이 토론은 제 3자가 갑자기 참가하기엔 알아야할 배경지식이나 현 토론 진행 사황을 파악하기에 지나치게 복잡해진 느낌입니다. 제3자가 알기 쉽게 현재 어떤 부분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고(이미 합의된 내용 제외) 무엇이 문제인지 정리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토트 2017년 3월 5일 (일) 23:51 (KST)답변


 rodrigo_0000 답변 토론이 어느새 꽤 많이 진행되었네요. 제3자로 참여한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다른 부분은 두분 의견 조율이 되어 문서에 반영됬고, J리그 연관성, 유사사례 단락에 대해서 서 의견 조율이 되지 않아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footwiks님은 기존대로 J리그 연관성과 유사사례 단락 유지를 주장하고 있고, kingkenny1967님은 모두 삭제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Rodrigo 0000 (토론) 2017년 3월 10일 (금) 14:32 (KST)답변


 Kingkenny1967 답변 간단히 말해 이 문서의 너무나 많은 부분이 독자연구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가. "한편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용어의 유래를 살펴보면 위키백과에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가 등재되기 전부터 공동화 내지 공동화 정책이라는 용어는 언론과 축구팬들 사이에 명백히 언급되고 있었으며[4][5]FIFA 홈페이지의 성남 일화 천마 관련 기사에서도 "League's decentralisation policy" 즉 연맹의 공동화 정책이라고 명확하게 기술되어 외국에 소개되고 있었다." : 서술이 불필요합니다. 문서내용과 다른 주장을 '반박'하는 것도 편집자의 주장입니다.
나. "이때 이유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이유를 모르는 내용을 기재했습니다.
다. "중소도시 연고지 정책과 J리그와의 연관성" 이 단락은 아예 정책의 시행 계기, 과정의 상호 유사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계기"란에 들어가 있습니다. 전형적인 독자연구죠.
라. 그리고 너무나 많은 인용들이 잘못 인용되어 있습니다. 한 예를 들자면 "1994년 7월 20일 프로축구만을 전담하는 새로운 행정기구인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공식 출범을 하였고 연맹은 J리그를 5년안에 추월한다는 목표아래 연고지 재조정 및

서울 연고 공동화 계획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발표하였다."[3] 인용 내에는 연맹이 서울 연고 공동화 계획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말이 없습니다.

마. "당시 김영삼 정부가 행정 개혁 목표로 삼았던 지방분권화에 부합하고 월드컵 유치를 위해 서울보다는 지방 연고 프로축구단들로 전국적인 축구 열기를 높이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하에 청와대에서 다시 한번 프로축구연맹을 통해 이들 3개 구단에 연고지 이전 지침을 내렸다." [4] 인용에는 본 문장에서 서술한 판단 근거가 없습니다. 또한 문서 내용상 1994년부터 프로축구연맹이 서울 연고 공동화정책을 시행해왔고, 그것에 대해 내용을 모르는 지침을 내린 것인데 그것을 마치 김영삼 정부가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여러번 지침을 내린 것처럼 서술했습니다.
또한 같은 인용 내에 '3개 클럽은 모두 협의했다'라는 내용이 스포츠서울 기사 내에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저항했는데 강제로 이동한것처럼 서술하는 것도 독자연구입니다. 기사 내용은 "일화,유공,LG 등 서울 팀은 지난 2월 프로축구연맹 1차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모두 서울을 떠나기로 합의해 놓고도"
바. "이에 대해 언론과 축구행정가들 사이에서 결과적으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연고지에서 프로야구에 밀리게 된 결정적인 실수였다며 뒤늦은 비판과 후회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해당 인용들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는 몰라도 언급하는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사. "결국 이렇게 J리그의 리그 운영 방식과 똑같은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K리그 명칭 등에 관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이 J리그를 모방해서 도입했다는 비판적 시각이 과거 PC 통신 축구 커뮤니티 시절부터 현재까지 축구팬을 비롯 한국 축구계에 폭넓게 존재한다" 한국 축구계에 폭넓게 존재한다라고 대변할 만한 인용도 아니고, 독자들을 그렇게 편집자 자신의 시선으로 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 "유사 사례"에는 마찬가지로 정책의 시행 계기, 과정의 상호 유사성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프로농구의 연고지 이전이 담겨 있으며 인용조차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 "서울 연고권의 미래"는 이 문서가 "서울 프로스포츠 연고지" 문서가 아니므로 기재될 이유가 없습니다. 해당 정책을 다루는 내용에서 벗어납니다.
잘못된 것이 한두군데가 아닙니다. 제일 큰 문서는 이 문서 내용이 편집자의 주장대로 독자에게 특정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독자연구라는 점입니다. 아예 문서를 재작성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문서 전체적으로도 인용은 그대로 사용할지라도 내용은 재작성이 필요

합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7일 (화) 11:08 (KST)답변

킹케니님 먼저 문서 반달하실려고 했던 것이나 해명하시고 말씀을 하셔야죠. 킹케니님은 그냥 이 문서가 맘에 안 드시는거잖아요. 그리고 다-J리그 연관성, 아-유사사례 외에는 전부 합의하셨놓고 왜 뒤늦게 딴지를 거십니까 이러면 토론이 진행이 될 수 있습니까?

J리그 연관성 부분도 킹케니님 이전에 이미 토론으로 합의 된 내용이 반영된 것이고 위에 토론도 로드리고님도 기존처럼 존치하는 것에 의견을 두셨습니다. 그리고 원래 위키백과에는 저작권 문제도 있고 기사 본문 내용 그대로 글자 그래도 쓸 수가 없습니다. 즉 Paraphrasing를 해서 써야 합니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780980 연맹은 또 일본프로축구(J리그)를 5년안에 추월한다는 목표아래 연고지의 재조정, 전용구장 확보에 중점을 둬 사업을 펼쳐나갈 방침이다. 일화,유공,LG가 동대문과 목동구장에 몰려있는 등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하기위해 각 시,도로 분산시키고 공설운동장을 임대, 전용구장으로 활용하는 문제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이 내용을 Paraphrasing해서 1994년 7월 20일 프로축구만을 전담하는 새로운 행정기구인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공식 출범을 하였고 연맹은 J리그를 5년안에 추월한다는 목표아래 연고지 재조정 및 서울 연고 공동화 계획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발표하였다." 이 내용이 무슨 인용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까? 대부분 기사 내용 Paraphrasing해서 쓰여져 있고 그러니까 기사 내용 토시 하나 안 틀리고 썼다고 지금 그러시는 것 같은데 그러면 위키백과가 무슨 존재 의미가 있습니까? 기사 내용 복사해서 붙이기만 하면 되지...

그리고 유사사례, 서울연고권의 미래가 이 문서에 없을 이유는 무엇입니까? 논문도 그렇고 유사한 사례 그리고 서울연고권에 관한 문서이니 미래 전망 등 이런 관련 내용 기재하는 것은 일반적것입니다. 억지 좀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Footwiks (토론)

 Kingkenny1967 답변 위에 달아놓은 내용을 따로따로 대답을 못하시고 계속 한 문단으로 퉁쳐서 답변하시네요.
Paraphrasing은 같은 문장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지, 공개 발표된 자료를 근거로 새로운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쓴 내용들을 제외하고 바로 위 답변에만 간략하게 달아준 내용도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해당 인용에서 일본프로축구(J리그)를 5년안에 추월한다는 것목표이지 동기나 과정이 아닙니다.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심지어 J리그에는 도쿄국립경기장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을 서울 연고지를 비우는 것과 비교하는 오류도 범하고 계시구요. 경기장을 못 쓰게 하는 것과 한 도시 연고지를 비우는게 같다고 생각된다면 인지오류겠지요.
또한 유사 사례, 서울 연고권의 미래가 이 문서에 없어야 하는 이유는 이전 답변에 말씀드렸습니다. 간단하게 정리드리면 위키백과:중립적 시각에 위배됩니다. 직접적 연관이 없는 내용을 끌고 들어오는 것은 해당 문서 문서의 구조 부분에도 어긋납니다. 또한 앞서 답변의 부분이 해당 문서의 문체와 논조란에 나온 부분이겠죠? 위키백과에서 사회적 이슈에 대해 기술할 때는 그 논쟁을 있는 그대로 기술해야 하지 논쟁에 개입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해당 정책에 대한 논쟁이 있다고만 언급하면 되지, 이 정책이 존재한다는 것은 문서 내용에 올바른 인용으로 증명하면 그만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반달 얘기 계속 꺼내시는데, 편집 분쟁 중 상대방에 대한 감정적 대응을 하시는 건가 싶어서 제가 답변은 딱히 하지 않아왔습니다. 그 부분은 편집 상의 실수로 같이 지워졌었던 부분이고, 롤백 이후로 해당 부분을 삭제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반달행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시고 싶으시다면 위키백과:문서 훼손을 읽어보시길 권해드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달이라고 생각되신다면 사용자 제재요청하시면 될 일입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8일 (수) 21:56 (KST)답변
저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에 다 토론에 나와 있으니까 찾아보시고 같은 문장을 봐도 킹케니님만 이상하게 느끼는 걸 제가 왜 답변을 합니까? J리그 연관성 부분만 해도 수원 삼성팬인 By elliott님 의견 반영해서 합의해서 만든거고...그리고 어디에 새로운 결론이 있는데요? J리그 5년안에 추월한다는 내용은 제가 동기나 과정이라고 사건 일지에 Paraphrasing으로 넣지도 않았고 본문 내용 그대로 목표라고 기재했는데 무슨 소리이신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J리그에서 도쿄국립경기장을 홈경기장으로 못 쓰면서 결과적으로 도쿄연고지가 공동화 된것과 서울 연고 공동화와 비교를 할 수 있죠. 왜 하면 안 되는데요? 또하나 중립적 시각과 서울 연고권의 미래가 무슨 상관인데요? 서울 연고지 구단 현황들 앞으로 서울 연고 프로축구단 생기는 것에 대해서 기술한것인데 이게 중립적 시각 위배입니까? 지금 킹케니님만 그렇게 느낀다니깐요. 그 이유는 킹케니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그리고 반달 해명도 무슨 편집상의 실수로 왜 지워져요? 인용문 핑계로 제일 맘에 안 들어하는 청와대 강제 지시 사항 단락 날린거 뻔히 보이는데 무슨 실수라고....해명을 해도 그럴싸하게 하시던가요?Footwiks (토론)
 Kingkenny1967 답변 Paraphrasing이라고 말씀하시는 원 문장과 해당 문장을 말씀해주시죠. 주장을 하시려면 정확히 근거를 짚어 주셔야지요. 저는 위키백과 정책대로 하고 있을 뿐입니다.
J리그 연관성에 대해서 어느 구단 팬이든 관계없이, 관련성이 없는 것을 있다고 합의하신 것은 잘못하신 겁니다. 두 분께서 잘못 이해하셨다고 해서 그 부분을 아예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도쿄국립경기장을 홈 경기장으로 못 쓰는 것과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는 것은 당연히 도쿄국립경기장과 서울시 전체를 비교하는 것과 같으니까 안되지요. 도쿄국립경기장을 못 쓰게 해서 도쿄에 팀이 안 들어왔던 것과, 서울 자체를 연고를 가질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이 같다고 생각하신다면, 논리에 큰 오류가 있습니다.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문서 내용상으로도 분명히 프로축구 흥행을 위해서 서울 연고팀을 이전한 정책인데, 거기에 서울 연고권이 중심이 된 내용이 들어가면 안되지요. 초점은 "누가 서울에 남느냐/연고를 갖느냐"가 아니라 "프로축구 흥행을 위해서 서울 연고지에서 3팀을 내보냈다"라는 정책이니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청와대 지시 사항이 실수로 날아갔던 부분에 대해서 반달행위라고 느끼신다면 그냥 신고하시면 그만입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8일 (수) 22:30 (KST)답변
 Footwiks 답변

기사 원 문장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780980
프로축구聯,30일 출범
(서울=연합) 프로축구연맹의 창설로 한국축구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중략
연맹은 또 일본프로축구(J리그)를 5년안에 추월한다는 목표아래 연고지의 재조정, 전용구장 확보에 중점을 둬 사업을 펼쳐나갈 방침이다. 일화,유공,LG가 동대문과 목동구장에 몰려있는 등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하기위해 각 시,도로 분산시키고 공설운동장을 임대, 전용구장으로 활용하는 문제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위 기사를 인용문으로 달고 제가 쓴 문장
한국프로축구연맹 공식 출범과 함께 J리그를 5년안에 추월한다는 목표아래 연고지 재조정 및 서울 연고 3구단 공동화 계획 적극 추진 발표

킹케니님 제가 여기서 위키백과 정책 어긴 것이 뭐가 있는데요? 일화, 유공, LG가 각 시도로 분산시켜서 나가게 하는 것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는 내용을 서울 연고 3구단 공동화 계획 적극 추진 발표 이렇게 요약해서 썼는데 지금 킹케니님 의견은 이 부분을 가지고 기사 본문에는 일화, 유공, LG가 각 시도로 분산시켜서 나가게 하는 것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쓰여있을뿐이지 서울 연고 3구단 공동화 적극 추진이라고는 안 쓰여 있으니 기사 본문에 없는 내용을 쓴 것이고 그래서 위키백과 정책을 위배하고 독자연구라고 하시는거에요?

주요 사건 일지 형식에 맞게 짧게 요약해서 써야만 하니까 기사 본문의 내용을 패러프레이징해서 쓴건데 정말로 이해가 안 가는 것입니까?
기사와 제가 쓴 내용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기사 인용문의 내용이 단어가 달라졌다고 독자연구니 이렇게 얘기하시면 진짜 제가 드릴 말씀이 없네요. 킹케니님이 원하시는 편집 방향을 말씀해 주세요. 문제제기 대부분이 인용문과 연관이 많이 되는데 그러니까 정확하게 킹케니님 원하시는 편집 방향은 기사 인용문 문장 그대로 한자 한자 똑같은 단어로 구성된 문장으로만 위키백과 본문에 편집하라는 것인가요?

또 하나 이유를 모르는 내용을 서술했다고 문제제기 하셨는데 1987년 유고 연고지가 서울에서 인천/경기로 바꼈는데 이유가 알려지지 않아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보충 설명한건데 이게 왜 문제가 됩니까? 단순 결과에 대해서 그렇게 된 이유나 원인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위키백과에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위키백과 규정에 어디에 그렇게 나와 있나요? 킹케니님 의견이면 같은 맥락으로 사건사고에 어떻게 죽었는지 알려지지 않은 사상자는 쓰면 안 되겠네요. 지금 문장마다 이런 식으로 문제제기를 하면 이게 지금 토론하자는건지 딴지를 거는것인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J리그 연관성이 쉽게 말해 논란 같은 부분이고 당시 언론 기사에도 영향을 받은 것에 대해 기사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걸 반영해서 문서에 넣는 것은 토론으로 가능합니다. 그리고 문서 내용에 공식적으로 J리그 도쿄 공동화정책 모방해서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입안되었다고 기술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관련기사: 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breaking/view.html?cateid=1027&newsid=20071126114210029&p=flamma
도쿄국립경기장과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은 한일 프로축구 도쿄, 서울 수도 연고지가 공동화 된 것이 유사하니까 서술이 된 것이고 말씀하신 차이 나는 부분은 도쿄국립경기장만 불허했지만 도쿄 연고지로 공동화가 되었고 한국 언론은 이 과정과 결과를 도쿄연고공동화정책으로 기술 한다고 기사 인용문에 근거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 내용에 도쿄 연고지 공동화 된 것이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처럼 정부가 지시해서 했다는 그런 내용 없고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결과는 수도 연고지가 공동화 되었지만 차이점에 대해서 분명히 서술하고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 http://www.footballi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451
말씀하신대로 프로축구 흥행을 위해서 서울 연고팀 이전한 정책으로 서울 연고팀이 전부 없어지고 그런데 이 정책이 철폐되었으니 향후 다시 서울 연고팀이 생기는 과정이나 현황에 대해서 서술할 수 있습니다. 영문위키백과의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에는 Aftermath라는 단락 직접 만드셔놓고 왜 한국어 문서에서는 서울 연고지에서 나가는 것만 써야 한다고 그러십니까?
반달했었다고 사과하면 제가 그 후에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뻔히 다 보이는데 계속 거짓말 하시네요. 솔직히 킹케니님이 인정하고 사과만 하면 저도 그 다음 문제 삼을 필요도 없지요. 며칠전에 킹케니님 이 문서에 대해서 트위터로 FC서울 안티팬들이랑 의견 나누는거 잠깐 올라왔었죠. 거기 보니까 위키백과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 내용들 삭제했다고 자랑하시던데 그 동안 계속 해명도 없다가 이제와서 실수로 삭제했다는걸 지금 믿으라고 하시는건가요? 기억 안 나시면 여기 토론창 역사 보기에서 3월 1일로 문서 되돌려서 킹케니님이 트위터에서 썼던 글 다시 한번 읽어 보세요. 입장 바꿔서 킹케니님이 제 입장이면 실수로 지워진거구나 하고 수긍을 할 수 있을런지도 한번 생각해 보시고요.

Footwiks

 Kingkenny1967 답변 제가 글을 잘 이해가 안되게 썼나? 다시 한번 말씀드릴게요. 그 전에 앞서서, 이 부분은 이 문서에 존재하는 많은 독자연구 중 한 부분만 말씀드리는 것이라는 걸 확실하게 말해두고 싶네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짧게말해 서울에 전용구장 지을 게 아니면 서울시 3개팀 모두 다른 지자체로 옮겨라죠?
일화,유공,LG가 동대문과 목동구장에 몰려있는 등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하기위해 각 시,도로 분산시키고 공설운동장을 임대, 전용구장으로 활용하는 문제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와는 다르죠. 세 팀이 모두 서울에 있으니 (그 중 한두팀만인지, 전부인지 불분명한 팀들을) 시, 도로 분산시키는 계획과 "서울에 전용구장을 짓는 팀은 남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거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고 해서 당시 서울 연고 3개팀과 합의한 정책"은 다르죠.
그리고 영문위키백과는 한국어위키백과와 다른 운영주체가 있어서 말씀을 안 드렸던 부분입니다. 내용을 자세히 한번 보세요. 기술 내용은 서울 연고권의 미래 같은 문서 주제와도 벗어난 내용이 아니에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 영향받은 세 팀 내용만을 쓴 것이죠. 나무위키 편집하는 게 아니니까요.
편집 방향이라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위키백과 정책에 맞지 않는 부분은 삭제하고 기술도 고쳐야 한다는 얘깁니다. 위키백과 정책대로, '과감하게 수정하라'는 말에 따라 수정할 예정입니다.
반달행위로 판단되는 부분이 있으면, 신고하세요. 제 SNS 찾아보시고 제가 어떤 '의도'로 편집/기술하는지 '추측'하시는 건 좋은데, 위키백과 편집할 때는 그런 '추측' 하지 마시길 부탁드리고요.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9일 (목) 10:34 (KST)답변
 Footwiks 답변
다시 한번 읽어 보세요. 저는 서울 연고 3구단 공동화 계획 적극 추진 발표라고 썼습니다. 즉 서울에 전용구장 짓는 팀은 서울 연고지에 남고 이런 디테일한 세부사항을 갖춘 정책면으로 확정되기 전에 핵심적인 내용인 서울에 있는 팀을 비우는 것 즉 일화,유공,LG가 동대문과 목동구장에서 나가면서 서울 연고지 공동화 계획을 추진한다는 내용만 기사 근거해서 충실하게 썼습니다. 제가 어디에 정책이라고 썼고 그리고 여기서 무슨 독자연구가 나올 수 있습니까?

대부분 문제제기 하는 것이 이런식이잖아요. 기사에 서울 연고 공동화라는 단어 없는데 공동화라는 단어 썼으니 아전인수식으로 독자 연구 덧붙여 저는 정책이라는 용어 쓰지도 않았는데 확대해석해서 연결시켜고 독자연구다.... 한번 아래 기사에 대해 다른 분들 의견 들어 보죠. 제가 새로 발견된 기사에 의거해서 업데이트한 내용이 독자연구인지 아닌지를?

그리고 영어 위키백과가 운영주체가 달아서 AFTERMATH를 쓸 수 있고 한국어 위키백과는 쓸 수 없다는 것은 무슨 얘기인가요? 그리고 서울 연고권의 미래 보세요. FC서울처럼 이 정책에 영향 받은 팀도 포함되어서 기술되고 있고 이 정책으로 인해 파생된 75억원 서울월드컵경기장 입성금 문제도 기술 되어 있고 전혀 문제가 없다니깐요.

또 하나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킹케니님이랑 토론하다가 새로운 기사 발견했고 위키백과 규정의 과감하게 문서의 내용을 고치고라고 해서 저도 업데이트 한 것이고 계속 이렇게 업데이트할 예정입니다.

기사 원 문장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780980
프로축구聯,30일 출범
(서울=연합) 프로축구연맹의 창설로 한국축구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중략
연맹은 또 일본프로축구(J리그)를 5년안에 추월한다는 목표아래 연고지의 재조정, 전용구장 확보에 중점을 둬 사업을 펼쳐나갈 방침이다. 일화,유공,LG가 동대문과 목동구장에 몰려있는 등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하기위해 각 시,도로 분산시키고 공설운동장을 임대, 전용구장으로 활용하는 문제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위 기사를 인용문으로 달고 제가 쓴 문장
한국프로축구연맹 공식 출범과 함께 J리그를 5년안에 추월한다는 목표아래 연고지 재조정 및 서울 연고 3구단 공동화 계획 적극 추진 발표

Footwiks (토론) 2017년 3월 9일 (목) 21:39 (KST)답변

 Kingkenny1967 답변 진짜 이해를 일부러 못하시는 건지 몰라도, 공동화 정책이라고 썼든 공동화라고 썼든, 기사 내용은 서울에서 다 쫓아낸다는 내용이 아니라구요. 그러니까 독자연구 맞아요. 단어 하나가지고 딴지거는 게 아니라 기사 내용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리고 "서울 연고권의 미래"가 어떻게 "서울 공동화 정책 실행 이후"와 같습니까? 실행 이후 공동화 정책이 어떻게 되었다, 영향받은 구단들은 어떻게 되었다가 나와야죠. 서울 연고권의 미래는 철저하게 서울 중심적인 말이잖아요. 또한 그 내용을 다 삭제해야 하니까 말을 안했던 거 뿐인데, 해당 내용에 "LG 치타스와 LG 치타스와 일화 천마 두 구단으로 서울 강남북 더비를 구현하였다면"같은 서술 방식도 문제가 있어요. 서울 공동화 정책을 편집자가 실패로 단정짓고 가정법을 넣어서 그 실패를 도드라지게 보이는 편집 방식이니까요. 2017년 3월 10일 (금) 15:58 (KST)
 Fookwiks 답변 저야 말로 진짜 이해를 못 하시는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일화,유공,LG가 당시에 서울 동대문과 목동구장를 사용했고 기사 본문에 일화 유공, LG를 각 시, 도로 분산시키는 것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어 잇는 것을 저는 서울 연고 3구단 공동화(空洞化) 즉 서울 연고 3구단이 분산되어서 비워지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기사 본문의 서울 연고팀을 각, 시 도로 분산시키는 것을 공동화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 뿐인데 이게 어떻게 독자연구가 됩니까? 그리고 서울 연고권의 미래 보다는 Aftermath에 해당하는 후유증이란 단락명이 더 어울릴 것 같아서 단락명을 수정했고 서울연고공동화정책에 영향받은 구단 중 제주 사례와 리그 측면에서 서울 더비가 사라지고 이런 후유증 측면에서 기술하면서 말씀하신대로 서울 강남북 더비를 구현하였다면 이런 조금 생뚱맞을 수 있는 표현들에 논리적 구성을 촘촘히 가져갔습니다.Footwiks (토론)
 Kingkenny1967 답변 기사 내용은 서울을 비우는 게 아닙니다. 서울에 있는 팀도 옮겨갈 수 있다. 다만 아예 서울을 비우게 되는지는 확실하지 않은거죠. 확실하지 않은 부분을 그렇게 해석하시는 것이 바로 독자연구입니다.
그리고 후유증이든 뭐든 상관없습니다. 이 문서 곧 바뀝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2일 (일) 10:27 (KST)답변
 Fookwiks 답변 기사 내용은 서울 연고팀의 일화, 유공, LG를 각 시도로 분산시키는 계획 추진을 저는 서울을 공동화 계획 추진 한다고 표현했죠. 당연히 계획 추진이니까 확실하지 않은거고 제가 여기에서 공동화 계획 확정이라고 표현했습니까? 제가 쓴 답변 다시 한번 읽어 보세요. 제가 어디에 확실하지 않은 부분을 확실하다고 쓴 부분이 어디에 있어요? 기사 그대로 용어만 바꿔서 쓴 것인데....

한국프로축구연맹 공식 출범과 함께 J리그를 5년안에 추월한다는 목표아래 연고지 재조정 및 서울 연고 3구단 공동화 계획 적극 추진 발표
Footwiks (토론) 2017년 3월 12일 (일) 11:45 (KST) 며칠 사이에 토론이 많이 진행된 것 같습니다. 두 분이 지엽적인 개별 문장 워딩의 해석 차이로 하나씩 다 따지는 것보다는 계속 진행중이었던 J리그 연관성, 유사사례 단락에 대해서 먼저 마무리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흐름대로라면 끝도 없을 것 같습니다.답변

유사 사례 단락은 그에 대한 근거가 충분하고 형식상으로도 무리가 없으니 존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J리그 연관성 단락은 추후 자세한 근거가 나오면 자세히기 기술하고 지금은 kingkenny1967님의 의견대로 해당 단락을 삭제하되, 유사 사례 단락으로 통폐합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Rodrigo 0000 (토론) 2017년 3월 10일 (금) 23:43 (KST)답변

 Fookwiks 답변 주신 의견 고려해본 결과 J리그 공동화 정책이 철폐되는 과정이 유사 사례 부분에 있길래 한 단락에서 같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해서 통합시켜 버렸습니다.Footwiks (토론)
 Fookwiks 답변 기사 찾아 보다가 아래 같은 J리그 연관성을 입증할 기사를 찾아서 다시 유사 사례에서 J리그 연관성 단락으로 회귀시켰습니다.

http://www.xportsnews.com/jsports/?ac=article_view&entry_id=95779 이후 1990년부터 각 구단은 도시연고제로 전환을 했고, 1996년부터는 당시 큰 성공을 거두던 J리그를 모방해 구단 완전 지역 연고제가 실시되었다. 이때부터 현재처럼 각 팀 명칭에 지역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프로축구연맹은 서울의 공동화를 위해 당시 서울에 있던 세 팀 LG, 유공, 일화를 강제연고이전시켰다. 연맹은 지역축구의 발전과 서울이란 거대 시장의 독점을 막기 위해서란 명문을 내세웠다. 결국, 세 구단은 각각 안양, 부천, 천안으로 연고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질문할 것이 있는데요 편집

이 정책이 존재한다는 것이 FC 서울 안티팬들에게 불리한 사실인가요? 제가 축구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몰라서요.--Leedors (토론) 2017년 3월 15일 (수) 23:55 (KST)답변

 답변아닙니다. FC 서울 안티팬들이 해당 구단을 싫어하는 이유는 안양 LG 치타스일때 안양 팀으로 홍보한 후 서울로 이전해버렸다는 점이니까요. 반대로 이 문서가 일부 FC 서울 팬들에게 'FC 서울은 원래 서울 연고였고 단순히 돌아온 것이니 욕하지 말아라'라는 프로파간다에 이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FC 서울 팬들 중에서도 1983년부터 LG의 프랜차이즈라는 점을 인정하자는 사람들과, 2004년에 재창단을 한 것과 다름없다는 사람들로 나뉘거든요.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6일 (목) 08:31 (KST)답변
 답변 지속적으로 이 문서 토론 걸리는 것 보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 위에 토론창에 전부 남아 있지만 이 문서에 대해 토론 걸고 그랬던 분들이 대부분 FC서울 안티팬들이었습니다. 일반 중립 축구팬 유저 혹은 일반 위키백과 유저 분들은 이 문서에 대해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하는데 FC 서울 안티팬들만 이 문서가 만들어진 이래로 계속해서 토론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참고로 서울연고공동화정책 관련된 위키백과, 기사 등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FC 서울 안티 축구 커뮤니티에서 조금만 검색해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덧붙여 FC 서울 안티팬들이 한국어 위키백과의 이 문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폄하하기 위해 만든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없었다 이런 내용의 블로그도 존재합니다. 그 블로그 내용처럼 이 정책이 없었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 얼마전 문서 제목 변경도 시도도 있었고 청와대에서 강제 이전 지침 이런 자신들에게 절대 불리한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자료들이나 내용은 아예 삭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킹케니님이 중립성 규정 들이밀면서 갈아엎은 버전의 근간도 사실 FC 서울 안티팬이 만든 아래 블로그에 있는 개인 독자연구에 의한 의견을 골자로 하는 것입니다. 참고

FC서울 안티팬들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이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가 주도해서 서울 연고 3구단을 강제로 연고이전 시켰다는 팩트와 이와 관련된 기사, 그리고 이 정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기사들인데 한국어 위키백과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에 이런 기사들이 인용문으로 많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킹케니님이 만든 버전 살펴보면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가 주도해서 강제로 연고이전 시켰다 혹은 강압적인 정책이었다는 내용과 이와 관련된 기사, 그리고 이 정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기사들은 전부 날라갔고 당시에 압력에 의해서이지만 어찌됐든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 합의했다는 사실만 부각하는 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일본인들이 을사조약, 위안부 문서 등에 자신들이 감추고 싶은 불평등 조약, 강제 체결, 강제적이거나 집단적, 일본군의 기만에 의해 여성 인권 유린 이런 팩트들과 이를 비판하는 기사들은 최대한 감추고 어찌되었든 조약 체결에 합의하고 스스로 도장 찍은 것이니 불평등과 강제 체결은 아니다. 위안부들 중에 자발적으로 일하러 온 사람들도 있고 계약도 하고 댓가도 받고 그런 사람들도 있는데 어떻게 강제적인거냐 이런 식으로 일부 자신한테 유리한 부분을 침소봉대해서 본질 흐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킹케니님이 문서가 전체적으로 중립성 규칙에 위배된다고 말씀하시는데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실행 이후 그러니까 이 정책의 전후맥락이 확실히 파악된 이후의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의 관련된 기사들이 당시 정책이 서울 연고 3팀을 강제적으로 연고이전 시키고 그로 인해 당시 서울이라는 프로스포츠 최대 시장을 활용 못했던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등등 이런 비판적인 내용의 기사들만 나오고 있고 어찌되었든 이 정책과 관련된 내용들의 기사이니까 인용문으로 계속 업데이트 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이 중립성 위배인가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명확하게 "서울 연고 3팀이 서울을 떠나고 싶어서 지방으로 이전한 자발적인 연고이전 정책이다." 이렇게 인쇄되어 있거나 혹은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프로축구를 발전시킨 정책이다 " 이런식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현재 문서 골자와 상반된 내용의 인쇄된 신뢰할만한 출처의 기사 찾아와서 이런 시각도 있으니 이런 내용도 비중있게 고려해서 편집해야 한다 이러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근간은 FC 서울 안티팬이 만든 과거 1994-1995년 기사에서 서울 연고 3개 구단이 어찌되었든 서울 공동화에 합의했고 그리고 연맹의 공동화 정책 추진 되면서 서울 말고 다른 연고지 검토 했다는 내용의 기사 있으니 자발적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이런 식으로 아전인수 및 확대해석으로 자발적으로 연고 이전했다는 결론 도출하는 독자연구 내용을 어떻게 위키백과에 서술할 수 있습니까? (연맹이 서울연고공동화정책 추진을 하니 대비 차원에서 다른 연고지 검토해 볼 수도 있는 것이지 다른 연고지 검토 = 자발적으로 서울 연고지에서 나간다 이런 개념이 어떻게 성립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관련 정보들이 공개되면서 전후맥락이 정확하게 파악되고 따라서 종합적인 평가에 의한 본질이 규정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에 대해 처음에 내려졌던 본질도 시간이 가면 충분히 바뀔 수 있고 계속 업데이트가 되어야 하는데 비유하자면 킹케니님 이 분 논리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1980년 당시에 폭도들이 일으킨 난동으로 기술된 기사들이 명백하게 남아 있고 당시 국민들도 이런 기사들 믿고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으니 빨리 진압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 가졌던 것도 사실이므로 이 사건은 영원히 폭동으로 규정되어야 하며 위키백과 문서 제목도 영원히 폭동이란 단어가 들어가야 하며 신뢰할만한 출처로 뒷받침되는 추후 새롭게 알려진 사실이나 종합적으로 평가에 의해 새롭게 규정된 본질들이라도 중립성 시각에 위배되니 기술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킹케니님이 지금 이 문서에 대해 편집했던 행동들과 갈아엎은 버전 한번 자세히 보면 제목부터 이동시켜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란 내용 자체를 없앨려고 하고 그리고 2000년대부터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 대해 강제적인 정책이었다 혹은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들은 전부 날라간 것으로 입증이 됩니다.

아래 기사들 보면 스포츠서울 1부 부장, 스포츠동아 2부 부장등 스포츠계 권위있는 대기자분들이 서술한 기사들도 있고 외국 전문 스포츠 서적에도 강제로 이전시켰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런 신뢰할만한 출처의 기사는 거르고 그러면 FC 서울 안티팬이 만든 블로그 독자연구 내용을 믿고 위키백과 내용을 바꾸는 것이 말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일부 기사가 칼럼 형식 혹은 저신뢰 출처라고 평가절하하는데 이런 저신뢰 출처라도 한번 킹케니님 의견 지지하는 "서울 연고 3팀이 서울을 떠나고 싶어서 지방으로 이전한 자발적인 연고이전 정책이다." 이렇게 인쇄되어 있거나 혹은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프로축구를 발전시킨 정책이다 " 이런식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문서들이 근래 나왔는지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문서 근간이 되는 달린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의 서울연고공동화정책 관련 기사들 지금 온라인에서 바로 접속 가능한것만 추려보아도 이 정도인데 다시 읽어 보시고 이런 기사들 바탕으로 용어나 내용이 여기 문서에 기술이 된 것인데 이것이 중립성에 위배되고 독자연구가 되는지 다시 한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위에도 썼지만 "서울 연고 3팀이 서울을 떠나고 싶어서 지방으로 이전한 자발적인 연고이전 정책이다." 이렇게 인쇄되어 있거나 혹은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프로축구를 발전시킨 정책이다 " 이런식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이 인쇄된 신뢰할만한 출처의 기사들 나오면 당연히 이런 내용도 기술해야겠지만 안 나오는 것이 제 잘못입니까?

그리고 원래 사건 당사자가 발언한 것은 중립성 문제가 있을까봐 FC 서울 한웅수 단장이 LG 치타스 시절에 우리는 등 떠밀리듯이 나갔다 즉 자의가 아니고 외부 압력에 의해서 나갔다는 발언 이런 내용은 여기 인용문에 넣지도 않았고 전부 제3자 신문기사만 인용으로 넣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의 서울연고공동화정책 관련 기사들
(1) <21편>서포터즈 이야기 (2007)
http://archive.fo/xbw2o
결국, 유공을 시작으로 일화와 LG는 어쩔 수 없이 서울을 떠나게 되었는데 이 문제는 당시부터도 논란이 없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서울을 공동화시킨 연맹의 일방적인 조처는 상당한 판단착오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결정의 밑바탕에는 J리그에서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그 안타까움이 더할 뿐이다. 물론 8팀 가운데 3팀이 서울에 있다는 것은 상당한 불균형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한국적 상황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불균형한 모습은 한국 사회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기 자체만으로 보면 큰 불균형은 아니었다고도 할 수 있다.


(2) [스카이박스] 축구와 야구의 차이, 그리고 연고의식 (2009)
http://www.xportsnews.com/jsports/?ac=article_view&entry_id=95779
1996년부터는 당시 큰 성공을 거두던 J리그를 모방해 구단 완전 지역 연고제가 실시되었다. 이때부터 현재처럼 각 팀 명칭에 지역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프로축구연맹은 서울의 공동화를 위해 당시 서울에 있던 세 팀 LG, 유공, 일화를 강제연고이전시켰다. 연맹은 지역축구의 발전과 서울이란 거대 시장의 독점을 막기 위해서란 명문을 내세웠다. 결국, 세 구단은 각각 안양, 부천, 천안으로 연고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3) 위원석의 하프타임 - K리그서 서울 더비를 보고 싶다 (2009)
http://www.fntoday.co.kr/bbs/list.html?table=bbs_219&idxno=94642&page=192&total=3877&sc_area=&sc_word=
1996년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역연고제를 본격적으로 정착시킨다는 명분 아래 서울을 홈으로 쓰고 있던 3개팀 (유공, LG, 일화)의 연고이전을 강행했다. 유공은 부천, LG는 안양, 일화는 천안에 각각 새롭게 터를 잡았고 프로스포츠 최대 시장인 서울은 무주공산이 됐다. 돈을 벌겠다는 프로스포츠가 인구와 재화가 가장 많은 시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분명 상식적인 일은 아니었다.


(4) 서울 연고 이랜드프로축구단 출범…FC서울과 '투톱'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5&aid=0003076649
하지만 정부가 2002년 월드컵 유치 활동과 맞물려 지방 축구 활성화를 내세우며 3개 프로축구단의 연고지를 강제로 다른 지역으로 이전시켰다.
1996년 정부의 강압적인 ‘서울 연고 공동화(空洞化) 정책’으로 한때 프로축구 불모지로 전락했던 수도 서울이 다시 축구의 중심지로 거듭날지 주목된다.


(5) 레니 이랜드 신임 감독 “특별한 팀 만들 것…서울의 라이벌이 되겠다
http://v.sports.media.daum.net/v/20140911110504772
1996년 정부는 월드컵을 준비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서울에 연고지를 두고 있던 팀들을 지방으로 내려보냈다. 이른바 서울 공동화(空洞化) 정책이다.


(6) [최현길 사커에세이] ‘서울 더비’가 보고싶은 이유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382&aid=0000102716
한 때 서울에는 3개의 프로팀이 포진했었다. 1989년 일화가 서울 연고로 창단됐고, 1990년엔 럭키금성이 충청남북도에서 서울로 연고를 옮겼다. 유공은 인천, 경기를 연고로 삼다가 1990년 서울로 이전했다. 1995년까지 3개 팀이 동대문운동장을 사용하며 서울 팬과 만났다. 1996년 초 갑자기 지형이 바뀌었다. 이들 3팀이 모두 지방으로 내려갔다. 일화는 천안으로, 유공은 부천으로, 럭키금성은 안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명분은 지역 균형발전이었다. 당시 8개 구단 중 3개 팀이 서울에 몰려 있으니 지방이 소외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목이 좋은 서울이 하루아침에 공동화(空洞化)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던 우매한 결정이었다.


(7) '밑바닥 까는' 특별시-광역시 연고 구단…K리그 클래식 '이색 현상'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468&aid=0000006201
1990년대 후반 월드컵 유치를 위해 서울 연고 기업 구단 3팀을 안양과 천안, 부천으로 밀어내지 않았는가. 그 때 좀 더 규모가 크면서, 월드컵 경기장을 유치한 광역시로 이동하게 했다면 어땠을까란 아쉬움이 지금 든다. 대구 광주 인천엔 결국 시민구단이 들어섰다”고 말했다.


(8) The Sports Business in The Pacific Rim: Economics and Policy - 64 PAGE
https://books.google.co.kr/books?id=9gYjBQAAQBAJ&pg=PA64&dq=Decentralization+policy+in+K+League&hl=ko&sa=X&redir_esc=y#v=onepage&q=Decentralization%20policy%20in%20K%20League&f=false
K League also established decentralization, which forced all three clubs in Seoul to move to other cities.


(9) FC 서울 단장 (1996년 당시 LG 치타스 직원)
서울 연고 구단 "선 창단 원칙" 전격 철회 (2004)
http://sports.media.daum.net/sports/general/newsview?newsId=20040206113520100
또 한 단장은 연고 이전 이유에 대해 "서울을 연고로 하다 등 떠밀리듯 안양으로 옮겼으나

뭐라고 하시던 좋은데요,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어요. 1996년이든 2016년이든, 어느 인용이라도 FC 서울 혹은 안양 LG 치타스 단장이 "이사회에서 연고이전 합의는 없었다. 다 거짓이다."라고 한 마디라도 한 적이 있나요? 전 합의했다는 걸 합의했다고 할 뿐인데요.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7일 (금) 21:08 (KST)답변
저도 궁금한게 있는데 이사회 결정에 서울 연고 3개 구단이 명확하게 합의가 되었다는 기사 찾으셨나요? 한번 1995년 2월 이사회 신문 기사들 보시기 바랍니다. 결정이 통과됐다는 의미입니다. 그 전에 3개 구단이 계속 반대해서 원만히 타결 안 되면 다수결로도 통과 될 수 있다고 했고 킹케니님이 당시에 10명이었다고 하니까 3 VS 7로 통과될 수 있는거잖아요. 원만히 해결되었으면 만장일치라든가 이런 부가적이 정보가 없습니다.

A: 서울 연고 3구단이 합의 안 해도 이사회 결정은 통과되었지만 추후 이를 받아들이는 것 B: 서울 연고 3구단이 이사회때 자신들이 원해서 합의했다는 것

A와 B는 차이가 있죠. 승강제도 반대하는 구단 있어도 시행이 되었고 반대하던 구단도 결과 수용하고 따른것인데 킹케니님은 독자연구로 이사회때 합의했다고 계속 하시잖아요.Footwiks (토론)

문서 수정 편집

위키백과:신뢰할 수 있는 출처의 특정문서의 신뢰성 부분, 특히 여론의 주장을 어긴 부분이 많아 삭제하였습니다.
위키백과:중립적 시각에 위배되는, 주관적인 표현이 사용되었고, 권위있다고 편집자가 생각한 출처를 소개하면서 권위있는 출처가 평가하고 있다는 서술을 하지 않은 내용을 모두 삭제하였습니다.
문서의 구조-위키백과:중립적_시각#.EB.AC.B8.EC.84.9C.EC.9D.98_.EA.B5.AC.EC.A1.B0 부분에서는 시간순서대로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특정 시각으로 서술한 부분을 모두 삭제하였습니다.
문체와 논조-위키백과:중립적_시각#.EB.AC.B8.EC.B2.B4.EC.99.80_.EB.85.BC.EC.A1.B0 부분에서는 ‘논쟁을 그대로 기술하고 논쟁에 개입하지 말라’는 부분 어겼으므로 그 부분또한 삭제하였습니다.
또한 인용의 내용을 사실 전달 위주로 시간 순으로 재배열하여 내용 이해를 도모했습니다.
이상입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6일 (목) 11:01 (KST)답변

그리고 만약 기존 문서로 롤백하고 싶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조정 요청을 하시죠. 토론은 위의 토론 내용과 지금 문서 내용으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하시겠습니까?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6일 (목) 11:16 (KST)답변

수고하셨습니다. 이전 버전에선 블로그가 출처로 달리기도 하고 각 문장에 해당되는 출처는 있는데 개괄적인 부분을 설명하는 출처는 없어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어디서부터 건들어봐야 할지 엄두가 안 났는데 잘 정리해주셨네요.--Leedors (토론) 2017년 3월 16일 (목) 12:53 (KST)답변
 답변감사합니다. 기존 문서가 상당한 중립적 시각, 출처 인용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최대한 기존 문서의 인용을 반영하려고 노력했고, 사설처럼 비중립적, 저신뢰 출처는 최대한 지양하고 사실 관계를 그대로 보도하는 출처 위주로 편집했습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6일 (목) 13:27 (KST)답변
롤백 처리했습니다. 기존 내용이 토론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진 내용입니다.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의해서 인용이 달린 내용 통째로 날릴려면 당연히 토론을 해야죠. 고치고 싶으신 부분 토론으로 얘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축구 배경지식이 있으신 분들이 와서 토론을 해야 될 것 같아서 위키백과 프로젝트 축구 토론란에도 올렸으니 그 분들과 같이 편집할 부분 있으면 편집 했으면 좋겠습니다.Footwiks (토론)
거대한 똥을 부분 부분 토론을 통해 바꾼다고 황금이 되진 않습니다. 축구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야 위키백과겠죠.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6일 (목) 20:49 (KST)답변
그래도 지금 문서 내용이 토론에 의해 이루어진 내용인데 똥이라고 비하 하시는건가요? 위키백과 기본 다섯 원칙부터 다시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위키백과에서는 다른 사용자를 존중합니다. 비록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위키백과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을 존중해 주세요. 예의를 갖춰주세요. 다른 사용자를 공격하거나, 싸잡아 비난하지 말아 주세요. 편집이 치열할수록 더 냉정해지세요. 필요없는 편집 전쟁은 피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손보고 의견을 나눠야 할 375,327개의 글이 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환영하고 포용합시다.Footwiks (토론)

편집은 과감하게 하는 것이 장려됩니다. 불필요하거나 비중립적인 내용과 의심이 가는 출처가 있다면 과감히 삭제하고 바꾸고 개편하는 것이 좋습니다. 위키백과의 중립성은 사용자간의 중립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서는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되어야 합니다. --토트 2017년 3월 17일 (금) 19:23 (KST)답변

문서 내역 보시면 아시겠지만 킹케니님이 제기하신 부분들 다시 한번 면밀히 검토하면서 불필요하거나 그런 부분 최대한 많이 삭제하였습니다. 이 문서도 이제 10년이 다 되어 가니까 계속 여러 유저 분들의 공동 기여로 문서가 많이 확장되면서 불필요한 내용도 많이 쌓여 있었던 것은 인정하며 이번 기회에 더욱더 다듬을 계획입니다. 문서 보시고 더 다듬거나 제가 혹시 모르는 규정으로 잘못 서술된 부분 있으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Footwiks (토론)

중립성 편집

킹케니님 중립성 틀 다셨잖아요. 중립성 틀에 어떻게 되어 있나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의 중립성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주관적인 내용이나 감정적인 표현은 없는지, 고려할 가치가 있는 여러 관점이 편견 없이 공정하게 반영되었는지 확인해 주세요. (2017년 3월)

내용에 대한 의견 있으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라고 되어있습니다. 아무튼 저 역시 킹케니님이 제시한 규정 보고 최대한 수정했으니 문서 다시 한번 읽어 보시고 킹케니님이 생각하는 고쳐야 할 문장이나 단락 얘기해 주시고 계속 토론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위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그 전 토론에서도 지적하신 부분 있으면 최대한 의견 반영해서 수정했었지 제 주장만 일방적으로 진행하지도 않았으며 토론 피한 적도 없었습니다. 지금 토론 때문에 일부러 거의 매일 들어와서 토론창부터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토론 하면서 협업으로 문서 수정시켜서 발전시키는 곳이 위키백과이지 일방적으로 문서 수정하는 곳이 아닙니다..그리고 중립성 규정들 많이 공부하신 것 같은데 규정에 어긋난 부분들 있으면 얘기해 주시고 다른 분들 의견도 들어보고 확인하고 필요한 부분 있으면 많이 수정했으면 좋겠습니다. 킹케니님 시각으로 일방적으로 통째로 바꾸신 버전으로만 여기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위키백과 규정에 맞지도 않고 그리고 위에 보시면 아시다시피 수차례 토론 걸쳐서 계속 발전해 온 문서입니다.

J리그 연관성 같은 부분도 계속 얘기드리지만 엘리어트님과 토론으로 만든 부분이고 그리고 근거가 부족하다고 하셔서 제가 다시 근거자료 찾아서 달았고 패러프레이징 하면 독자연구라고 하셔서 기사 본문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Footwiks (토론)

서울 연고 공동화의 유래 문장 편집

해당 문장에 달린 3가지 출처를 보았으나 일단 블로그 출처는 정상적인 출처로 사용하기 힘드므로 넘어가겠습니다. 동아일보 기사에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공동화 하였다.'는 그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서술에 불과하며 특정되어있지 않습니다. 또한 Fifa홈페이지에 실린 기사의 해당 단어는 '리그의 분산 정책'으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과 1대1 대응이 되는지 의문입니다. 기사에 두 정책을 연결짓거나 명확히 한 내용이 없고 기여자인 우리가 여기에 해석의 차이를 둘 여지는 없어보입니다. 첨언하자면 아무리 정당한 출처라 하더라도 위키백과에서 A와 B라는 출처를 가지고 와서 C라는 새로운 내용을 만들어 내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는 독자연구에 해당합니다.

위키백과에 문서 제목을 정한 정당성을 반드시 밝힐 필요는 없습니다. 유래 서술에 굳이 집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토트 2017년 3월 17일 (금) 19:31 (KST)답변

이 문서 내력 보면 아시겠지만 안티팬들에게 오해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원래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용어와 개념이 아예 없었는데 한국어 위키백과에 문서가 만들어지고 나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용어와 개념이 축구팬들 비롯 축구계에 생겨났다는 유언비어가 이 문서를 싫어하는 분들이 퍼트려서 그런 유래가 달린 것 같습니다. 이 문서가 생성되기 전인 2008년에 발간된 FC 서울 25년사 책에 서울 공동화 정책이라는 용어가 나오며 블로그 출처는 지금은 없어진 싸커월드 게시물에 서울 연고 공도 정책이라는 용어를 축구팬이 사용했던 게시물이 캡춰되어 있어서 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 역시 유래 서술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문서 안티팬들에게 오해를 사고 있는 것 같아서 유지시켜 두고 있었습니다.Footwiks (토론) 2017년 3월 17일 (금) 20:11 (KST)답변
위키백과는 불특정 독자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특정 집단을 우려하여 그들을 방지하겠다는 의도로 글을 써놓고 하는 식은 문서를 사유화 하는 행위입니다. 문서훼손이 우려된다면 문서 보호조치를 하면 됩니다. --토트 2017년 3월 17일 (금) 23:27 (KST)답변

간단히 정리한 논점 편집

2000년대 이전까지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자료를 모아 집필을 의뢰하고 감수해서 발행한 책에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단어가 딱 한 번 들어가 있으므로, 어디까지나 해당 이름의 정책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용자 Footwiks의 기존 문서의 저신뢰 인용의 자세한 설명 없는 형용사 서술(예를 들어 "강제적인" - 얼마나 강제적이었고 무엇을 어떻게 언제 강제했습니까)을 짜집기한 내용을 계속 인용이라고 들이밀고, 특정 시각에 맞추어서 서술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논점:

1.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空洞化인가? 共同化인가? 현재 인용은 정책 자체의 이름이 아닌, 서울이 비워졌다는 의미의 空洞化를 사용한, 문서 시행이 10년 가까이 지난 시기의 칼럼 뿐입니다. 해당 한자를 사용한 당시 인용이 없다면 한자 자체를 삭제해야. (저도 궁금합니다. 실제로 어떤 한자인지.)
2. 강제 이전인가? 이 얘기를 하기 전에 이전 과정 자체는 강제가 맞습니다. 그러나 먼저 이전을 합의해놓고 합의를 불이행 한 것은 3개 구단이고 이를 강제 이행시켰습니다. 이 점을 명확하게 명시하지 않고 ‘강제로 이전’을 말하는 것은 독자에게 시행에 합의가 없었다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참고로, 합의 내용 자체를 부정하는 인용은 없었습니다.
해당 서울 3개 구단이 (조건부 서울을 포함한) 연고지 이전에 합의한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가. 한국 프로축구 30년 (사)한국프로축구연맹. 2013. p. 178. ISBN 9788996317845
완전 지역 연고제의 본격 시행으로 이어졌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995년 2월 13일 이사회에서 1996년 1월 1일자로 서울을 공동지역으로 두기로 결정했다. 서울 공동 연고 3개 구단(유공,LG,일화)의 연고지 이전 결정이었다. 단서 조건은 서울 연고 3개 구단이 이전 후 서울 지역에 전용구장을 건립하여 복귀를 원할 경우 우선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서울 공동 연고 3개 구단이 결정에 합의하자’’,”[1]
나. 스포츠서울 1995년 11월 6일 기사
"일화, 유공, LG 등 서울 3팀은 지난 2월 프로축구연맹 1차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모두 서울을 떠나기로 합의해 놓고도 아직까지 뚜렷한 이전계획을 내 놓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일부 구단은 최근 다시 서울에 눌러앉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되풀이해 주위의 눈총을 받아왔다.”[2]
3. 문서 구조
가. 1993년까지의 서울 연고권 상황은 ‘프로축구 서울 연고지’ 문서를 따로 나누어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해당 정책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정책 시행 당시에 서울에 3팀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합니다.
나. ‘여파’ 부분은 직접적인 효과가 아니므로 편집자의 판단에 따라 많이 좌지우지 되는 부분이어서 중립적 시각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특성상 저신뢰 출처인 칼럼에 의존하거나, 인용없는 기술 – 속칭 나무위키식 기술 – 이 주를 이룰 수 밖에 없습니다. 가치판단이 끼어들 이런 부분은 제거해야 합니다.
다. 유사 사례 부분에서 다루고 있는 사례들이란 직접적 정책의 발단/실행 부분에서 유사성이 존재하지 않고, 그저 ‘수도에 팀이 없었다’라는 결과의 유사성을 가지고 추측하는 내용이므로 기술하지 말아야 합니다.
라. 위 ‘다’의 이유로 “배경” 부분의 J리그 부분 또한 기술되지 말아야 합니다. 해당 부분을 지키려는 Footwiks님이 과거에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허위 문서로 해당 내용을 기재했다가 문서를 삭제 당하기도 했습니다. 위키백과:삭제_토론/도쿄_연고_공동화_정책
4. 청와대의 개입은 있었다고 나오나, ‘지침을 내렸다’ 이외에 어떤 식으로 정책을 수행하라는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서 문서의 처음부터 청와대가 월드컵 유치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부터 시작하여 장황하게 월드컵 유치 노력을 설명합니다. 월드컵 유치 과정 문서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입니다.
5. 철폐 부분 ‘여론’ 인용 부분도 중립적 시각에 어긋납니다.
6. 정리 : 이 문서에서 기술하는 정책이 올바르게 독자에게 이해되기 위해서는,
계기와 시행 부분에서 서울 3개구단은 합의를 했었고,
시행 중에 3개구단이 서로 눈치보며 미루고 있어서 이전을 하라는 프로축구연맹과 청와대의 지침이 강제적이었다는 부분을 인용을 통해 확실하게 해야 하며,
이 정책과 상관이 없는 많은 사족들을 잘라내야 합니다
그 부분이 결여된 현재의 문서는 독자 연구 문서의 아주 좋은 특성을 갖춘 셈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현재의 문서는 "FC 서울은 강제 연고이전의 피해자이며 2004년의 서울 입성은 서울로의 정당한 복귀일 뿐이다"라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 과거 내용을 그릇되게 기술한 문서입니다.
그러나 저는 Footwiks님이 단순히 오해를 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위키백과의 내용은 중립성을 지키고, 의견을 최대한 배제한 채 사실 전달로서의 백과의 내용을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제가 FC 서울을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겠습니다만, 그것이 FC 서울이 강제 연고이전의 피해자이든 아니든, 서울 입성이 정당한 복귀든 아니든 상관없이 싫어하는 것이므로 이 문서에 대해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기술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제가 편집한 내용을 보시더라도 충분히 나타나 있지 않나요?
제가 관심있는 것은 오직 정확히 왜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이 정책을 실시했으며, 3개 구단은 이전에 합의했었고, 합의가 이행되지 않아 강제적으로 실시가 되었다는 그 내용을 독자들이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현재 문서의 내용은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들게 장황하게 적혀져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아, 그리고 자꾸 여러 사용자와 토론을 거쳐서 유지해왔다고 하시는데, 문서 역사 보면 Footwiks님이 거의 압도적인데요. [편집 역사] - 현재 내용에 애정이 있으실 법도 하지만, 위의 내용을 한번 검토해 주세요.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7일 (금) 21:14 (KST)답변

답글 제발, 그냥 새로 달아주세요. 중간에 서명도 없이 떡 집어넣어놓으면 찾아볼 수가 없잖아요.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7일 (금) 21:18 (KST)답변

00년대 이전에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말이 없다가 축구연맹에서 제작한 서적에 처음 등장하는 말이라면 그 책이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인용한 것인지도 의심해봐야 합니다.--Leedors (토론) 2017년 3월 17일 (금) 21:26 (KST)답변
이 문서 생성전에 연맹에서 서울을 공동화 했다라는 표현의 기사들이 있고 2008년에 FC 서울 25년사에 나온 서울 공동화 정책이라는 용어가 정확하게 나오며 외국에는 공동화를 분산시키다는 Decentlization 그리고 정책을 Policy로 Decentlization Policy번역되어 FIFA에 소개되었습니다. 축구팬들이 축구 커뮤니티에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참고삼아 2006 축구 커뮤니티 사커월드에서 이 정책에 대해 서울 공도 정책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courageuser/220122499795Footwiks (토론)
다 좋은데 커뮤니티 글이나 블로그 글은 가져오지 말았으면 합니다.--Leedors (토론) 2017년 3월 17일 (금) 23:23 (KST)답변

 의견 @Kingkenny1967, Footwiks: 일단 제 토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부절절해보입니다. 언제까지고 개인 토론 페이지를 축구 연고화에 관한 내용으로 뒤덮을 순 없고요. 어쩌다가 중재 비슷한걸 하는 입장이 되었는데, 지금 문서의 바이트 수가 많아도 너무 많죠. 두 분께 제안하자면, 문서를 토막으로 나눠서 부분적으로 하나 하나 뜯어가보죠. 그러면서 어떤것이 중립적이고, 어떤것이 비중립적인지 하나 하나 차례대로 한번 토론해봅시다. 개인적으로 문서 전체(- 전반적으로.)가 문제가 있다고 언급하며, 문서의 2/3을 덜어내는 편집을 하시면, 어느날 갑자기 본인도 모르게 어쩌다보니 그 4만바이트를 대조하는 입장에선 답이 안나오거든요. 위부터 아래로 토막으로 나눠서 파트별로 이야기하고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기왕 하는거 두 분 각각의 버전의 문단들의 구조도 모두 다른데, 이참에 문단도 통일해 보고요. Tablemaker (토론) 2017년 3월 17일 (금) 21:28 (KST)답변

동의합니다. 현재 문서는 가독성이나 짜임새가 좋지 않습니다. 전체적 구조를 재조정해가면서 중복되는 내용은 삭제하고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편집해야합니다. --토트 2017년 3월 17일 (금) 23:25 (KST)답변
동의합니다. 현재 문서의 문제점이 독자들이 내용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저의 편집본은 그러한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작성했던 것입니다. 사용자:Kingkenny1967/서울_연고_공동화_정책
1. 한계가 있어야 합니다. 일단 이 정책의 주체는 한국프로축구연맹입니다. 그 관점에서 3개 축구팀을 분산시킬 계획이 처음 나온 시점부터 시작했습니다.
2. 시간 순이어야 합니다.
3. 최대한 사실 전달에 집중해야 합니다. 현재 문서는 칼럼으로 보일 지경입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7일 (금) 23:28 (KST)답변

간단한 논점 정리 및 의견 반영 편집

(1)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문의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모두 서울을 떠나기로 합의해놓고도 서울 연고 구단들이 잔류한다면 요청하신대로 3개 구단이 합의 내용을 어기는 내용을 신문 기사 본문 그대로 문장 사용해서 추가시켜 인용했습니다.
(3) 문서 구조
가: 93년까지 연고권 상황은 기본적인 상황 정보로 있어야 할 것 같고 서울 연고권 상황은 다른 분들 의견 들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 여파 부분 아래 답변 참고 다: 유사사례 킹케니님 의견 요청대로 삭제
라: J리그 모방 부분 관련 일본 사례로 인용 부분 불확실할 수도 있으니 요청하신 대로 삭제

그리고 자꾸 왜곡하시는데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한국어 기사도 있고 그런거 믿고 문서 만들수도 있지 무슨 허위 문서로 해당 내용을 만들었다고 왜 자꾸 왜곡하십니까? 지금 한국 축구 기자들이 쓰는 기사에도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용어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3][4][5] 5. 철폐 부분 ‘여론’ 인용 부분도 중립적 시각에 어긋난다는 얘기는 이해가 안 갑니다. 왜 중립적 시각에 어긋나는거죠?

 답변
(1) 프로축구연맹에게서 답변 오기 전까지는 한자가 맞는지 입증할 수 없다는 말씀이시니, 한자를 지웠습니다.
(2) 합의 부분은 "하지만 서울 연고지를 고수하려는 기존 구단들의 반대로 계속되는 마찰을 겪었다. 특히 1995년 10월 이사회에서 유공 코끼리 이계원 단장이 서울 연고지에서 내보낼 경우 축구단 운영 포기를 할 수 있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등" 이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4번 답변은 없군요.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은 위키백과:삭제 토론/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 보셨나요? 이 문서에 J리그 연관성이 직접적으로 나타난 것도 없는데 계속 집어넣으시는 게 이상하니까 말씀드리는겁니다. 그리고 토론 다른 부분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한국 축구 기자들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인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7일 (금) 23:22 (KST)답변
(1) FC서울 25년사에 한자가 있습니다. 복구시키겠습니다.
(2) 문맥 다시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3) 4번은 다른 분들 의견 좀 들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4) 한국 기자들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인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일단 신뢰할만한 출처의 기사가 나오면 정확하다는 가정하에 쓰는 것이지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당연히 기자들 오보가 많은 것은 사실인데 그렇다고 아무 관련 없는 킹케니님 의견 보다는 그래도 기사라도 있는 내용을 쓰는게 자연스런것 아닌가요? Footwiks (토론) 2017년 3월 17일 (금)

http://www.xportsnews.com/jsports/?ac=article_view&entry_id=95779 그리고 신뢰할만한 출청에 의해서 J리그를 모방했고 이 정책이 영향 받았다는 내용 있습니다. 이후 1990년부터 각 구단은 도시연고제로 전환을 했고, 1996년부터는 당시 큰 성공을 거두던 J리그를 모방해 구단 완전 지역 연고제가 실시되었다. 이때부터 현재처럼 각 팀 명칭에 지역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이 과정에서 프로축구연맹은 서울의 공동화를 위해 당시 서울에 있던 세 팀 LG, 유공, 일화를 강제연고이전시켰다. 연맹은 지역축구의 발전과 서울이란 거대 시장의 독점을 막기 위해서란 명문을 내세웠다. 결국, 세 구단은 각각 안양, 부천, 천안으로 연고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Footwiks (토론)

신뢰할 수 있는 출처? 편집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Footwiks님이 너무 많은 내용을 열거하면서, 각 문단을 넘나들며 토론하시기에 너무 번잡한 감이 있습니다. 뉴스 기사를 인용하실때는 가급적 링크만 올리시고 기사의 내용을 전재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링크를 올리시면 들어가서 읽으면 될 요량인데, 링크와 기사를 동시에 언급하시니

  1. 쓸데없는 바이트수가 너무나 발생됩니다. 놀랍게도 이 토론은 25만 바이트를 토론했습니다만, 사용자들간의 대화가 아닌, 뉴스 기사가 대부분입니다. 토론을 하는 것인지, 기사를 읽는 것인지 구분이 잘 안되기 시작했습니다.
  2. 기사를 전재하시면서 주장도 펴시니, 주장하시는것과 뉴스 기사가 뒤엉켜있습니다. 많이 올리실때는 수 천 바이트, 거의 1만 바이트에 가깝게 올리실때가 있는데, 그 1만바이트의 활자 전부 정독하여 레퍼런스와 주장을 분리해내라는 말씀 아니시죠?
  3. 앞서 이야기한 것과 비슷합니다만, 500바이트 정도 주장하신다 쳤을때 수 천 바이트의 레퍼런스를 올리시니 주객이 전도되었습니다.

솔직히 다른 사용자들이 참여할 엄두가 안나게 무지막지하게 토론 내용이 양적으로만 불어나있습니다. 실속은 거의 없는것같고요. 당부드립니다만, 신문 기사 링크면 족합니다. 근거. 이런 식이면 될 듯 합니다.


일례로 J리그 모방 건등을 반론하시면서 엑스포츠 뉴스를 언급하며 "신뢰할 수 있는 출처다"라고 언급하시는데, 이 뉴스가 신뢰할만한 출처인가요? 아니, 이전에 뉴스면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인가요? 아닙니다. 뉴스라고 모두 신뢰받는 것은 아니며,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문서가 다루는 대상 마다 각 개념을 설명하는데 '신뢰할 수 있는 출처' 역시 달라집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유수의 저명한 매체가 "지구 위에 현존하는 삼라만상"에 대입했을때 항상 신뢰가 가능한 출처가 될까요?

이 건으로 돌아가보죠.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설명하는데 신뢰가능한 출처가 뭐가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이 건은 연맹이 주가 된 사건이라 보여지기 때문에, 위에 자주 언급되는 그 프로축구연맹 30년사라는 책이 가장 신뢰할 수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J리그를 모방"한다는 뉘앙스의 주장이 30년사에는 없는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엑스포츠'같은 뉴스를 인용하는 것 같은데 앞서 말했듯 이는 신뢰할만한 출처가 아닙니다. Footwiks님도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듯이요.

(전략) 일단 신뢰할만한 출처의 기사가 나오면 정확하다는 가정하에 쓰는 것이지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당연히 기자들 오보가 많은 것은 사실인데 그렇다고 아무 관련 없는 킹케니님 의견 보다는 그래도 기사라도 있는 내용을 쓰는게 자연스런것 아닌가요?

기사의 진위 여부도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이를 보고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고 하는 것인지요..?

또한 "신뢰할만한 출처의 기사가 나오면 정확하다는 가정하에 쓰는 것이다."라는 문장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견해입니다만, 백:신뢰의 "일반적인 신뢰도"를 살펴보면

문서를 작성할 땐 신뢰할 수 있고, 제3자가 작성했으며, 이미 출판된, 그리고 사실 관계와 정확성을 제대로 지키기로 명성이 높은 출처에 기반을 두어 작성하십시오.

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달리말하면 위 문장은 일반적으로 신뢰가 가는 출처에 대한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후술하신것처럼 "당연히 기자들 오보가 많은 것"이 사실인데요, 이를 인지하고 계신 시점에서 엑스포츠 뉴스 따위가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고 주장이 가능한지요? 또한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은 일단 이 키워드에 관한 뉴스가 발견되기만 하면 집어넣어도 무방하다고 비춰질수도 있는 발언입니다. 기사라도 있는 내용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신뢰가능하고 입증가능한 사실을 적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한번 고민해보셨으면 하며. 또 다른 부탁입니다만 문단을 넘나들며 의견을 남기시거나, 다른사람의 의견 사이에 의견을 삽입하시면 편집 역사를 하나하나 대조하지 않는 한 토론이 현재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의견을 읽어야 하는 사람들도 고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Tablemaker (토론) 2017년 3월 18일 (토) 09:05 (KST)답변

 의견 이렇듯 현재 해당 문서 내용이 너무나 방대하고, 직접적인 연관성이 밝혀지지 않은 부분도 무리해서 들어온 감이 있어 독자의 정책 내용 이해는 물론, 추후 편집자들의 기여에도 크나큰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여, 단순히 시간 순서대로 사실 전달 위주의 기사로 정책을 설명한 사용자:Kingkenny1967/서울_연고_공동화_정책 문서를 골조로 하고, 그 문서에 살을 덧대는 식으로 재정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8일 (토) 10:45 (KST)답변
지금것도 시간순서대로 서술된 것으로 보입니다. 약간 축이 안맞는 부분이 있는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비지식인 입장에서 감내하고 볼 수 있는 수준이고, 본문도 마냥 어렵게만은 적혀있진 않습니다. 그새 Footwiks님이 정말 많이 편집하셔서 처음보다는 읽기 편한 느낌이 있습니다. 킹케니님의 서술은, 이건 제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백:문단 구성의 일부 문장에서는 문단을 무분별하게 늘림으로서 생기는 가독성 따위의 문제를 거론하는데, 가독성문제는 아니지만 문단이 너무 많아 분명 다른 문제가 생기긴 생겼습니다. 또한 저는 개인적으로 백과사전은 산문이었으면 좋겠고, 그 문서의 서술은 사전식 기술이 아니라 조각모음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물론 저 상태가 완성된 문서는 아니실것이라 조심스럽게 추측해보는 거지만요,,,
제가 축구를 좋아하긴 하지만 저야 한 구단에 대해서만 좋아하는거지, 이런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덜하니 두 판의 차이가 그렇게 특별하게는 와닿지 않네요. (개인적인 감상으로요.) 킹케니님의 서술이 FC서울 안티의 서술이다,, 같은 이야기도 들었던것 같은데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그 팬의 심정까지 투영해서 문서를 읽어야할 마음이 들지 않을 뿐더러, 모든 문서를 그런 마음가짐으로 읽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냥 그런 느낌입니다.
솔직히 두 판이 겉으로는 달라보여도, 저 역시 글쓰는 편집자이며... 저 역시 글 갈아 엎었던 적 많고,, 그런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나 두 판이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제 스타일대로 이야기하면, 두 분이 평행선 달리며, 결국 계속 하는 주장이 이 두가지 판 중에서 하나를 골조로 해서 수정하자는 취지로 보이는데, 저라면 그냥 문서 다 지우고 새로 쓸 겁니다. 두 분이서 어떤 골조를 정해서 붙이는 것이 아니라, 새 페이지에서 서두부터 끝까지 새로 함께 쓰면, 논문으로 치면 공저이니 이견이 없겠죠. 허나 편집 스타일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고, 결국 이 문서의 가장 열의를 가진 편집자는 두 분이시니, 결국 두 분이서 편집하신 내용으로 끝맺음 할 문서입니다. 어떤 식으로 서술할지, 어떤 골조로 할지는 제가 정해드릴 수 없는것이고, 강요할수도 없는것이겠죠. 결국 두 분이서 정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문서에서 드는 의문이나, 조언을 해 드릴 수 있을 뿐이지 이렇게-저렇게 편집하라고 지정할 권리가 없습니다. 좀 글이 길었네요. Tablemaker (토론) 2017년 3월 18일 (토) 12:07 (KST)답변
추신입니다만은, 저는 지금 판이 독자가 정책 내용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책 내용과 그 과정을 한눈에 보이고 싶다면, 그건 표제어를 적는 첫 문단에 좀더 기술하면 해결될 것이라 봅니다. Tablemaker (토론) 2017년 3월 18일 (토) 12:13 (KST)답변
 답변 그렇네요. 저도 막상 기존에 고쳐지기 전의 판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과거보다 훨씬 나아진 거 같아 이해가 훨씬 수월합니다.
사용자 문서는 골조를 저렇게 가져가서 살을 붙이자고 논의를 위한 것입니다. 저 판으로 무조건 바꾸자고 하는 주장은 아닙니다. "공동화 결의", "공동화"라는 기사 인용을 잘못 해석한 부분이 많이 빠진 지금 판은 상당히 많이 나아졌고, 어느정도 괜찮다고 생각 중입니다. 다시 한번 퇴고를 해봐야겠지만서도요.
상당히 길고도 번잡한 글과 토론을 많이 읽어주시고 생각해주시고, 의견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8일 (토) 21:13 (KST)답변
뭐 어떤 분들은 나름 숙고하셔서 많은 바이트를 써가시면서 토론을 하는 것과는 달리 이 토론에 크게 참여하지 않은 저로선 이런 말을 해도 될런진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불판을 갈아엎고 쟁점만 간단히 한 부분만 새 불판 위에 놓고 새로 토론해보는 게 어떨까요?--Leedors (토론) 2017년 3월 18일 (토) 23:12 (KST)답변

강제이전 정책 VS 이전 합의와 합의 불이행 / 부정적인 여파 VS 긍정적인 여파 대한 중립적 시각 편집

제가 오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킹케니님이 만든 문서 보면 강제이전에 대한 내용은 없고 서울 연고 구단이 탈서울 결의에 대한 당시 시점 합의사항만 강조하고 그 합의사항을 어겼다는 것만 초점을 맞춘 문서를 만드셨습니다.

예를 들자면 일본인들이 을사조약, 위안부 문서 등에 자신들이 감추고 싶은 불평등 조약, 강제 체결, 강제적이거나 집단적, 일본군의 기만에 의해 여성 인권 유린 이런 팩트들과 이를 비판하는 기사들은 최대한 감추고 어찌되었든 조약 체결에 합의하고 스스로 도장 찍은 것이니 불평등과 강제 체결은 아니다. 위안부들 중에 자발적으로 일하러 온 사람들도 있고 계약도 하고 댓가도 받고 그런 사람들도 있는데 어떻게 강제적인거냐 이런 식으로 일부 자신한테 유리한 부분을 침소봉대해서 본질 흐리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위에도 서술했지만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관련 정보들이 공개되면서 전후맥락이 정확하게 파악되고 따라서 종합적인 평가에 의한 본질이 규정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에 대해 처음에 내려졌던 본질도 시간이 가면 충분히 바뀔 수 있고 계속 업데이트가 되어야 하는데 비유하자면 킹케니님 논리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1980년 당시에 폭도들이 일으킨 난동으로 기술된 기사들이 명백하게 남아 있고 당시 국민들도 이런 기사들 믿고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으니 빨리 진압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 가졌던 것도 사실이므로 이 사건은 영원히 폭동으로 규정되어야 하며 위키백과 문서 제목도 영원히 폭동이란 단어가 들어가야 하며 신뢰할만한 출처로 뒷받침되는 추후 새롭게 알려진 사실이나 종합적으로 평가에 의해 새롭게 규정된 본질들이라도 중립성 시각에 위배되니 기술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문서에 공동화 결의에 합의를 하고 합의 이행을 안 한 3개 구단의 행동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이 중립적 시각인지 먼저 토론을 거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해야 할 점이 프로스포츠리그는 비즈니스이고 시장성 좋은 연고지를 획득하고 거기에서 계속 팀을 유지하고 이런 것은 구단의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구단 자산인 대표팀 선수를 빌려가고 돈으로 보상금도 주는데 그렇다고 당시 서울 연고 3개 구단이 보상금을 받은 것도 없습니다. 또한 1990년대까지 축구장 인프라가 좋지가 않았습니다. 서울, 부산, 대구, 수원, 포항 등등 조명탑 시설 갖춘 축구장도 몇개 안 되었고 즉 탈서울 하면 구단이 손해만 보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서울을 포기하고 탈서울을 할 이유가 상식적인선에서 전혀 없습니다.(실례로 유공은 부천으로 정했지만 경기장이 없어서 2000년까지 서울 목동에서 있었고, LG도 1996년까지 서울 동대문에서 있었고 1997년에 자기들이 조명탑 설치했고, 일화는 천안에서 1999년까지 조명탑 없이 경기를 했습니다.)

또한 정부, 연맹 vs 구단에서 구단은 상대적 약자이며 공동화 결의 합의라는 것도 당시 2002 월드컵 유치를 위해 쉽게 말해 대승적 차원에서 희생 같은 성격이 있었으며 합의 이전에도 압력에 의해 탈서울 결의를 종용하고 공동화 결의가 통과된 1995년 2월 이사회 이전 1994년 12월 이사회에서 강제로 연고지 배정한다는 발언 그리고 1995년 2월 이사회 앞두고서는 이번에도 서울 연고 3개 구단과 협의가 안 되면 투표로 통과시키겠다는 발언 등등 뭔가 정상적이지 못한 정황이 분명히 있습니다.

또한 합의라는 것이 1995년에 했더라도 실제로 진짜 나갈 생각하고 타 연고지도 고려해 보았더니 조명탑 있는 경기장들도 없고 다시 철회하고 서울 연고지를 고수하겠다고 했을때 이것이 합의 불이행이라고 강조될만한 것인지도 중립적 시각에서 살펴 봤으면 좋겠습니다.

여파 단락은 일단 문서 구조가 산만하다는 지적하에 삭제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여파 단락을 새로 만든다면 어떻게 기술하는 것 중립적인지 알고 싶습니다. 가끔가다가 연고지 역사 특집 기사들이 나오면 서울연고공동화정책에 관해서 강제적인 정책이었다, 서울 연고지를 놓치고 황금시장을 놓치는 우를 범했단 이런 식의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만 나옵니다. 킹케니님이 포커스를 맞춘 서울 연고 3개 구단의 공동화 결의와 합의와 이에 대해 왜 안 지켰는지 이런 부분에 대해 초첨을 맞춘 기사는 전무합니다.

강제적인 연고이전 vs 합의와 합의불이행 / 부정적인 여파 vs 긍정적인 여파로 구분해 본다면 강제적인 연고이전과 부정적인 여파에 기사들만 나오고 있는데 이런 경우 서술 비중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토론을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을사조약, 위안부 이런 문서들의 서술방식도 참고해서 현재 기준으로 민주화 운동, 불평등 조약, 강제적인 성노예로 정의 되었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폭도에 의한 폭동, 어찌되었든 제 손으로 체결한 정상적인 조약 체결의 성격, 계약도 하고 댓가도 받고 이런 성노예가 아닌 자발적인 면에 대한 서술 비중을 어떻게 안배해서 기술하는 것이 중립적인지 토론 좀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강제성과 부정적인 여파에 대해서만 서술하고 있는 서울연고공동화 정책에 대한 근래 기사들

(1) <21편>서포터즈 이야기 (2007)
http://archive.fo/xbw2o
결국, 유공을 시작으로 일화와 LG는 어쩔 수 없이 서울을 떠나게 되었는데 이 문제는 당시부터도 논란이 없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서울을 공동화시킨 연맹의 일방적인 조처는 상당한 판단착오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결정의 밑바탕에는 J리그에서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그 안타까움이 더할 뿐이다. 물론 8팀 가운데 3팀이 서울에 있다는 것은 상당한 불균형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한국적 상황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불균형한 모습은 한국 사회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기 자체만ㄷ으로 보면 큰 불균형은 아니었다고도 할 수 있다.


(2) [스카이박스] 축구와 야구의 차이, 그리고 연고의식 (2009)
http://www.xportsnews.com/jsports/?ac=article_view&entry_id=95779
1996년부터는 당시 큰 성공을 거두던 J리그를 모방해 구단 완전 지역 연고제가 실시되었다. 이때부터 현재처럼 각 팀 명칭에 지역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프로축구연맹은 서울의 공동화를 위해 당시 서울에 있던 세 팀 LG, 유공, 일화를 강제연고이전시켰다. 연맹은 지역축구의 발전과 서울이란 거대 시장의 독점을 막기 위해서란 명문을 내세웠다. 결국, 세 구단은 각각 안양, 부천, 천안으로 연고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3) 위원석의 하프타임 - K리그서 서울 더비를 보고 싶다 (2009)
http://www.fntoday.co.kr/bbs/list.html?table=bbs_219&idxno=94642&page=192&total=3877&sc_area=&sc_word=
1996년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역연고제를 본격적으로 정착시킨다는 명분 아래 서울을 홈으로 쓰고 있던 3개팀 (유공, LG, 일화)의 연고이전을 강행했다. 유공은 부천, LG는 안양, 일화는 천안에 각각 새롭게 터를 잡았고 프로스포츠 최대 시장인 서울은 무주공산이 됐다. 돈을 벌겠다는 프로스포츠가 인구와 재화가 가장 많은 시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분명 상식적인 일은 아니었다.


(4) 서울 연고 이랜드프로축구단 출범…FC서울과 '투톱'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5&aid=0003076649
하지만 정부가 2002년 월드컵 유치 활동과 맞물려 지방 축구 활성화를 내세우며 3개 프로축구단의 연고지를 강제로 다른 지역으로 이전시켰다.
1996년 정부의 강압적인 ‘서울 연고 공동화(空洞化) 정책’으로 한때 프로축구 불모지로 전락했던 수도 서울이 다시 축구의 중심지로 거듭날지 주목된다.


(5) 레니 이랜드 신임 감독 “특별한 팀 만들 것…서울의 라이벌이 되겠다
http://v.sports.media.daum.net/v/20140911110504772
1996년 정부는 월드컵을 준비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서울에 연고지를 두고 있던 팀들을 지방으로 내려보냈다. 이른바 서울 공동화(空洞化) 정책이다.


(6) [최현길 사커에세이] ‘서울 더비’가 보고싶은 이유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382&aid=0000102716
한 때 서울에는 3개의 프로팀이 포진했었다. 1989년 일화가 서울 연고로 창단됐고, 1990년엔 럭키금성이 충청남북도에서 서울로 연고를 옮겼다. 유공은 인천, 경기를 연고로 삼다가 1990년 서울로 이전했다. 1995년까지 3개 팀이 동대문운동장을 사용하며 서울 팬과 만났다. 1996년 초 갑자기 지형이 바뀌었다. 이들 3팀이 모두 지방으로 내려갔다. 일화는 천안으로, 유공은 부천으로, 럭키금성은 안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명분은 지역 균형발전이었다. 당시 8개 구단 중 3개 팀이 서울에 몰려 있으니 지방이 소외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목이 좋은 서울이 하루아침에 공동화(空洞化)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던 우매한 결정이었다.


(7) '밑바닥 까는' 특별시-광역시 연고 구단…K리그 클래식 '이색 현상'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468&aid=0000006201
1990년대 후반 월드컵 유치를 위해 서울 연고 기업 구단 3팀을 안양과 천안, 부천으로 밀어내지 않았는가. 그 때 좀 더 규모가 크면서, 월드컵 경기장을 유치한 광역시로 이동하게 했다면 어땠을까란 아쉬움이 지금 든다. 대구 광주 인천엔 결국 시민구단이 들어섰다”고 말했다.


(8) The Sports Business in The Pacific Rim: Economics and Policy - 64 PAGE
https://books.google.co.kr/books?id=9gYjBQAAQBAJ&pg=PA64&dq=Decentralization+policy+in+K+League&hl=ko&sa=X&redir_esc=y#v=onepage&q=Decentralization%20policy%20in%20K%20League&f=false
K League also established decentralization, which forced all three clubs in Seoul to move to other cities.


(9) FC 서울 단장 (1996년 당시 LG 치타스 직원)
서울 연고 구단 "선 창단 원칙" 전격 철회 (2004)
http://sports.media.daum.net/sports/general/newsview?newsId=20040206113520100
또 한 단장은 연고 이전 이유에 대해 "서울을 연고로 하다 등 떠밀리듯 안양으로 옮겼으나

 답변 말씀하신 부분들에 대해 답변드리겠습니다.
1. 먼저 비슷한 사례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위안부 문제와 광주 민주화운동 문제는, 위안부 문제는 당시 강제로 끌려갔고 합의가 없었다는 것에 '당사자'들이 얘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광주 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정부가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당시 언론에서 일어난 잘못된 점을 바로 잡은 부분입니다.
그러나 1995년 2월 13일 당시 이사회의 3개구단 조건부 서울 이외지역 이전론에 합의했다는 사실에 '당사자'들이 부인한 적도 없고,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바로잡은 적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비교할 수 있는 대상들이 아닙니다.
2. 당연히 당사자들이 합의한 부분은 굉장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강제로 밀어붙였고 합의가 없었느냐, 혹은 합의를 했고 이전을 할 준비도 어느 정도 되고 있었지만 실제로 실행을 하지 않아 강제로 실행을 시켰느냐 - 강제지만 심지어 연고지도 해당 구단들이 골랐습니다 -로 서술이 아예 갈라져버리니까요. 뒤의 자세한 차이점은 인용이 있는데, Footwiks님의 인용들은 그냥 '강제적이었다'라고만 하지 언제 어느 부분을 어떻게 강제했는지가 나오지 않으니 굉장히 그런 부분이 두루뭉실해집니다..
3. 문서에 "강제배정"이라고 인용하신 기사는, 12월 16일에 20일에 열릴 이사회에서 강제로 배정하겠다는 기사입니다.[6]
그러나 12월 20일 열린 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는 연고도시 강제 배정이 이루어지지는 않고, 현행대로 공동구역으로 하자는 안과 지역적으로 3등분하자는 안이 나와 추후 이사회에서 다시 논의키로 했으니 이루어진게 아닙니다.[7]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기술해야 합니다. 그 뒤 일어난 일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 문서 내용 중 "그러나 프로축구연맹은 1994년 12월 20일 이사회 이후 서울 연고 구단들을 계속 이전시켜 공동화 시킬 계획을 추진하여 다음 이사회 때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이 사이 특히 LG 치타스의 반대로" 부분 인용 말인데요. 읽어보면 '시간을 끈다' 뿐인데 '특히 LG 치타스의 반대로'라고 쓰인 건 잘못된 일이죠. 반대를 한 게 아니라 시간을 끌고 있잖아요.
5. 그리고 언급하신 인용들 얘기 좀 해보겠습니다. 인용들이 도대체 어느 주장의 인용인지 명시하지 않으셔서 참 불분명한데. 앞으로는 부탁드립니다.
(1)"이런 결정의 밑바탕에는 J리그에서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그 안타까움이 더할 뿐이다." : 개인의 추측, 즉 '않았나 하는 생각'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2)"J리그를 모방해 구단 완전 지역 연고제가 실시되었다. 이때부터 현재처럼 각 팀 명칭에 지역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 지금 이 정책은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지 '완전 지역연고제'가 아닌데요. K리그 구단 완전 지역 연고제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지역명을 팀에 삽입 등의 여러가지 종합적으로 들어가 있는 부분이잖아요. J리그를 모방한 부분이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고 특정할 수 없는 인용입니다.
(3) 서울을 홈으로 쓰고 있던 3개팀 (유공, LG, 일화)의 연고이전을 강행했다. : 합의를 지키지 않아서 이전 실행을 강행했다는 부분과 충돌하진 않습니다.
(4) 2014년 기사는 이 문서가 위키백과에 존재한 이후에 등장했습니다. 또한 위의 (3)과 마찬가지로 강제했지만 무슨 부분을 어떻게 강제했는지 나오지 않고, 합의를 지키지 않아서 이전 실행을 강행했다는 부분과 충돌하지는 않습니다.
(5) 마찬가지로 2014년 기사는 이 문서가 위키백과에 존재한 이후에 등장했습니다. 또한 위의 (3)과 마찬가지로 강제했지만 무슨 부분을 어떻게 강제했는지 나오지 않고, 합의를 지키지 않아서 이전 실행을 강행했다는 부분과 충돌하지는 않습니다.
(6) 지방으로 내려가기를 강제했다는 내용조차도 없네요.
(7) 이 문서 현재 내용의 문제점이기도 한데요, 심지어 (1)에서 주장하신 내용과도 상반됩니다. J리그를 모방한 것인지, 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한 것인지..
(8) 마찬가지로 강제했지만 무슨 부분을 어떻게 강제했는지 나오지 않고, 합의를 지키지 않아서 이전 실행을 강행했다는 부분과 충돌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Decentralization Policy"가 존재해서 내려보냈다가 아니라 단순히 '분산화Decentralization'를 시켰다라고 나와있네요.
(9) 등을 어떻게 떠밀렸는지.. 합의하고 이행 안해서 이행하라고 강제해도 등 떠밀린거잖아요.
그리고 요시자키 에이지 칼럼처럼 칼럼니스트가 실제로 일어난 정책의 내용을 모르고 자신이 아는 대로 왜곡해서 쓸 수도 있기 때문에, 칼럼같은 저신뢰 인용은 되도록 피해주셨으면 합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7일 (금) 23:04 (KST)답변

1. 위안부가 말씀하신 당시 강제로 끌려갔고 합의가 없었다는 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아닌 분들도 있고 자발적인 면을 가진 분들도 있어서 이런 부분을 일본에서 파고듭니다. 을사조약은 그러면 어떻게 기술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조약을 그래도 체결을 한 것인데 그러면 포커스를 어찌되었든 조약을 체결한 것에 맞추어야 하나요?
2. 합의가 중요한 것이니까 합의에 대해서도 이게 강압에 의한 합의인지 말씀하신대로 정말 마침 자발적으로 나갈려던 찰나에 연맹에서 나가라고 한 것인지 좀 더 살펴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원래 나갈려고 했는데 청와대에서 지침까지 내려온 것이 좀 모순되지 않습니까?
3. 이사회에서 연고지 강제 배정을 하겠다는 것이 강압인거죠
4. 흔쾌히 원래 서울 연고지에서 나갈 생각이 없었으면 시간을 끌 이유가 없잖아요.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 봐도 아시겠지만 대면조사 시간 끄는것이 대면조사의 반대의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5. 지금 인묭문들은 문서내 특정 주장에 대한 인용이 아니고 근래 나온 기사들이 하나같이 강제이전, 강압적인 정책, 정책의 부정적인 면에 일관되게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합의와 합의 불이행 그리고 긍정적인 부분을 다룬 기사가 있으면 공평한 시각으로 붙이면 되는데 기사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고 그러니 여파 단락이 부정적인 내용만 쓰여져서 자칫 중립성을 위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습니다. 2014년 이후에 나온 기사와 여기 위키백과와 문서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습니다. 기자가 위키백과 문서 보고 썼다고 생각하셔서 기사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시면 이것은 킹케니님이 입증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킹케니님은 합의와 합의 불이행이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잘 알겠고 그런데 근래 나온 기사들 보암면 이건 킹케니님의 주관적인 의견으로 판단되어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 좀 듣고 싶습니다. 강제적이라는 내용 혹은 이 정책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기사들을 엄청나게 폄하하시는데 주장하시는 강제적에 관한 기사는 그래도 위원석 이런 스포츠서울 부장급 기자가 쓴 기사라도 짤막하게 소개되는데 킹케니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합의와 합의 불이행에 관한 기사들은 칼럼에서조차 발견이 안 되고 있다는 것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합의와 합의불이행이 이 정책에서 중요한 요소인가 검토를 해 봐야 한다는 것이죠. Footwiks (토론)

 답변 Footwiks님이신가요? 간단히 말해서 제가 인용하는 과거 해당 정책 시행을 다룬, 사실관계 보도의 기사에서는 합의가 매우 중요하고,
Footwiks님이 주로 인용하시는 근래 "칼럼"을 비롯한, 해당 정책이 아닌 현안을 다루는 기사에서는 합의가 별로 중요하지 않겠죠.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7일 (금) 23:37 (KST)답변

 답변 제가 인용한 기사들은 과거 해당 정책을 규정하고 평가한 기사들이 대부분이죠. 아무튼 킹케이님 의견은 알겠고 다른 분들도 이제 많이 참여하니까 의견 좀 들어 보도록 하죠. Footwiks (토론) 2017년 3월 17일 (금) 23:44 (KST)답변

[4] 제 글은 왜 지우시나요.--Leedors (토론) 2017년 3월 17일 (금) 23:56 (KST)답변

이거 아주 단편적인 예인데요, 이런 거 독자 연구 좀 하지 마세요.
"1994년 7월 20일 프로축구만을 전담하는 새로운 행정기구인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공식 출범을 하였고 연맹은 J리그를 5년안에 추월한다는 목표아래 연고지 재조정 및 서울 연고 공동화 계획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발표하였다.[38]이에 연맹 주도의 공동화 계획은 급물살을 타고 서울 연고지 공동화 방안으로 골자가 잡히고 1994년 12월 20일 연맹 이사회에서 서울 연고 3구단이 타지방으로 이전에 합의를 안 할 경우 강제로 연고도시를 배정하고 구단의 의사와 관계없이 1995 시즌을 시행할 계획을 천명하였다.[39]"
38번 인용 : 7월 20일 내용에 연고지 재배정이고 내려보내겠다고는 했지만 전부 내려보낸다는 얘기가 없습니다.
39번 인용 : 거기 기사 내용에 LG는 서울을 고려하고 있대잖아요. 그런데 무슨 서울 연고지 공동화 방안입니까? 그냥 도시 연고 확정일 뿐이에요. 서울 연고지를 공동화한다는 말이라면, 같은 기사에 LG가 서울을 고려하고 있다고 기사가 나는게 말이 안돼죠.

워딩 표현 가지고 하도 물고 늘어져서 기사 본문 문장 그대로 쓰겠습니다. 또 발견하신 부분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Footwiks (토론) 2017년 3월 18일 (토) 00:14 (KST)답변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8일 (토) 00:06 (KST)답변

단순 표현과 사실관계를 잘못 표현하는 것을 분간하지 못하신다면 큰일인데요.
"하지만 서울 연고 3구단은 서울 잔류 의사를 표명하며 동대문운동장을 세 구단이 같이 사용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 지역내에서 강북 지역 동대문운동장, 강남 지역 서울올림픽주경기장, 강서 지역 목동운동장이렇게 세 지역으로 분산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상정하여 이사회에서 공동화 결의는 무산되었다.[30]"
인용 내에 서울 3등분 어떻게 3등분 하겠다는 얘기도 없고요, 그 3등분 안을 제안한 게 서울 연고 3구단인지도 안나와 있습니다. 또한 문제점은 동대문 운동장을 세 구단이 같이 사용해서가 아니라, 지역 연고제 정착이니까요. 그리고 여러 안이 있다고 해서 일단 (서울을 포함한) 도시 연고 강제배정 실행을 하지 않기로 한거지 무슨 공동화 결의가 무산됩니까.
그리고 제발 제 코멘트 내에 쓰지 마시고 제 서명 뒤에다가 답글 작성하세요.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8일 (토) 00:19 (KST)답변

여기도 기사 본문대로 수정했습니다. 그런데 저 이만 자러 가도 되겠습니까? 기사 하나하나 눌러 보시고 문장과 다르게 쓰여져 있는 부분 있으면 정리해서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Footwiks (토론)
 답변 뭔가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 저는 그냥 지적이고요. 제가 그냥 고치면 됩니다. 그런데 자꾸 롤백하시고요. 그리고 잘못된 점 말해드리면 본인이 수정하신다는데. 이해가 안되네요. 제대로 편집한 거 롤백하지 말아주세요.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8일 (토) 00:41 (KST)답변
개별 편집자는 다른 사용자의 기여를 되돌리고 문서를 편집하는,, 칼자루(편집권..?)를 쥘 권리가 없습니다. 동등한 입장이니까요. 킹케니님께서 자유롭게 편집하시면 될 듯 합니다. 물론 편집 분쟁이 크게 일어날 수 있는 "통삭제"의 경우는 의견을 교환한 후에 삭제하는게 맞겠는데, 그게 아닌 부분은 편집하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것이 맞겠죠. Tablemaker (토론) 2017년 3월 18일 (토) 01:31 (KST)답변
킹케니님이 지적하면 제가 계속 수정하면서 맥락상 오해가 생긴 것같은데 저 역시 고칠 부분 있으면 계속 지적해 달라는 의미였습니다. 제가 쓴 문장 보시면 다르게 쓰여 있는 부분 올려만 달라고 했지 킹케니님은 수정 못 하고 제가 수정하겠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롤백은 전체 구조가 완전 바꼈을때 롤백했었고 그리고 한국프로축구 30년사에 통째로 나온 문장 이렇게 제가 쓴 문장이 더 낫다고 판단했을때 수정 코멘트 달고 롤백했습니다.Footwiks (토론)

절대다수의견 - 강제이전 및 강제시행 vs 소수의견 - 이전 합의와 합의 불이행 / 중립적 시각 위반 토론 편집

위에 토론 단락은 답변이 너무 번잡해졌고 새로 토론 참여하실 분들도 있고해서 다시 만들었습니다.

킹케니님 버전과 제가 킹케니님 버전에서 중립적 시각 수정한 버전과 큰틀에서 거의 차이도 없고 논쟁이 되는 부분은 이제 딱 한가지입니다. 문서 전체 논조를 현재 절대 다수의견인 강제이전 및 강제시행 vs 강제보다 이전 합의와 합의 불이행를 강조: 소수의견 혹은 FC서울 안티팬 비주류이론 이 둘 중에서 정하고 문서 시각을 중립적으로 어떻게 안배하냐는 것입니다.


킹케니님 버전에서 중립성 시각 규정에 의한 문제점 정리
(1)
저는 신뢰할만한 출처들의 여러 기사에서 일관된 논조로 확인된 절대다수 의견인 강제이전 정책, 강압적인 정책 부가적으로 부정적인 여파를 가저온 정책이라는 정의에 따라 강제성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해야 한다는 것이고 킹케니님도 강제성은 인정했지만 이 정책이 전후맥락이 파악된 이후 나온 어떤 하나의 기사에서는 전혀 다루어지지 않은 소수가 아닌 0퍼세트 의견인 합의는 했는데 합의불이행에 의해 강제적으로 시행된 것이다라는 시각으로 서술을 원합니다.

아래 규정에 의거 중립적 시각 위배로 보입니다.
각각의 시각들을 다루는 비중은 각각의 중요도에 따라야 합니다. 문서의 구성이나 설명에서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보다 두드러져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문서 첫문장부터 시작에서 이 문서가 나아갈 방향이 전체적으로 강제성이 초점인지 합의와 합의불이행이 초점인지 결정해야 하고 이에 따라 적절하게 논조가 안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정책에 대한 긍정적인 여파에 대한 신뢰할만한 출처의 기사들이 전무하니 긍정적인 여파를 여기에 쓸 수 없다고 부정적인 여파의 내용도 기재를 아예 안 하는 것이 중립적인 시각이라고 보여지지 않으며 부정적인 여파만 가져온 정책이라는 내용이 계속 쌓일지라도 기재를 했으면 합니다.


(2)
또한 단락에도 합의와 합의불이행은 배치한 반면 강제시행은 넣지 않았습니다. 이에 반해 합의와 합의불이행, 합의이행 강조 등 합의라는 단어가 무려 8번이 들어가 있는데 반해 본문 내용에도 이 정책에 대해 합의이행을 강제하고, 강제시행 이렇게 딱 두번 들어갑니다. 하지만 사실 합의이행 강제는 중립적인 표현이 아니므로 실질적인 강제성과 관련된 표현은 강제시행 딱 한번입니다. .

아래 규정에 의거 중립적 시각 위배로 보입니다.
문서가 특정 시각이나 입장만을 모아놓거나, 기타 특정 시각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구조를 가지면 안 됩니다.
따라서
합의와 합의불이행 보다는 절대다수 의견인 강제이전 강제시행을 더 들어가게 하야 중립적인 문서라고 보여집니다.


(3)
기본적으로 프로스포츠팀 운영은 비즈니스이고 구단 연고지는 가장 중요한 사업기반인데 이를 아무 보상도 없이 그것도 중소도시 연고지에서 대도시 연고지로 더 좋은 조건으로 이전하라는 명령도 아니고 수도 서울 최대시장에서 이전하라고 했고 갈 곳은 기존보다 인구도 적고 경기장 시설도 열악한 곳으로 이전하면 손해만 볼일밖에 안 남았습니다.
(실례로 서울 연고 3구단인 유공은 부천으로 정했지만 경기장이 없어서 2000년까지 서울 목동에서 있었고, LG도 1996년까지 서울 동대문에서 있었고 1997년에 자기들이 조명탑 설치했고, 일화는 천안에서 1999년까지 조명탑 없이 경기를 했습니다.)

특히 이 정책이 실시되던 1994년 7월부터 1995년부터는 축구계에서 2002 월드컵 유치를 위해 프로축구연맹과 정부에 비해 상대적 약자인 구단은 대승적 차원에서 희생하라는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명목적 합의에 가까운데 현재 문서를 보면 1 대 1 대등관계에서 서로 주고 받은 것이 있는 쌍무적 계약관계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합의이행을 강제해도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상대적 강자가 합의를 했는데 이를 어기는 것은 잘못이며 이에 대한 페널티로 당연히 강제당하는 것과 같은 뉘앙스는 중립적이지 못합니다.

또한 합의불이행라는 용어는 국내에서 뉘앙스가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던 노동자들을 상대적 강자인 회사에서 복직 안 시키고 이런 경우때 합의불이행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 정책과 관련된 기사와 책에서 통틀어 합의 또는 합의사항 이렇게 통틀어 합의라는 용어가 3번 정도 나오지만 합의불이행이라는 표현은 나온적도 없습니다.

또한 위와같은 경우도 아니고 상대적 강자인 프로축구연맹과 정부에 비해 상대적 약자인 구단이 자신의 사업기반이 연고지를 포기하는 대가에 대한 정당한 보상도 없이 단지 2002 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 서울 연고지에서 나가라고 하는 것도 사실 구단한테 도의적으로 미안해야 할 일인데 합의했다는 이유 만으로 합의이행을 강제해도 된다는 식의 현재 표현은 중립적 시각을 떠나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 대 1 대등관계의 쌍무적 계약관계에 의해 합의를 했더라도 타연고지를 알아 보았더니 후보 도시도 마땅치 않고 그래서 마음을 바꿔서 서울 잔류를 계속 요구하는 것은 구단의 정당한 권리이고 이에 대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계약이 틀어진 것에 대한 위약금 정도나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비유자면 주말에 직거래를 하기로 합의했다고 치더라도 마음 변경하고 계약 파기하면 위약금이 걸려다면 위약금 물면 되는것인데 현재 첫문서에 포함된 합의이행을 강제하고 표현 자체부터가 많이 쓰이지도 않는 서술이고 어색합니다. 사회적 합의에 대한 합의이행을 강제하고 이런식으로는 쓰여도 서울 연고 3구단이 서울을 안 나가는 것에 대해 합의이행을 강제하고....이 표현은 강제이전이나 강제정책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상대적 강자가 합의를 했는데 안 해서 이행을 강제 당교묘하게 만든 표현이라는 것이 보이며

그러므로 합의불이행과 합의이행 강제라는 표현은 아래 규정에 의거 중립적 시각 위배입니다.
대상에 관한 찬미적이거나 모욕적인 단어의 사용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되도록 중립적인 어휘를 구사해야 합니다. 원문의 직접 인용의 이유로 어휘의 선정이 설명상 필요한 경우 등 논란이 있는 부분은 신뢰있는 출처에 뒷받침될 수 있는 단어를 선정하고 대안가능성의 기준에 비추어 선택가능한 어휘 중 중립성의 요건에 부합하는 단어를 쓰도록 힘써야 합니다.

따라서 합의불이행 보다는 합의를 했지만 서울 연고지 잔류로 기존 합의를 반대 - 합의이행 강제라는 표현은 아예 없애고 쓴다면 기존 합의를 반대하자 강제시행 이런 적합한 표현으로 바꾸어야 중립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금 합의가 어떤 상황에서의 합의인지 즉 대등관계에서 합의인지 그리고 합의에 의해 보상을 받았는지 이런 추가적인 정보도 알려주는 것이 중립적인 시각이라고 보여집니다.

덧붙여 2000년대 이후 전후맥락이 완전히 파악된 이후 나온 기사에서 서울 연고 3구단의 합의나 합의불이행에 포커스를 맞춘 기사는 전무하며 짧게 표현하는 기사는 정부와 연맹이 서울 연고 3구단을 연고이전 시켰다 더 자세한 기사는 강제이전, 강압적인 정책이라는 표현이 나오는것은 이 정책을 전체적으로 평가했을때 서울 연고 3구단의 합의와 합의불이행이라는 요소보다는 위와 같은 상황하에 프로축구연맹과 정부 주도였다는 것이 이 정책의 본질인 것을 축구계 인사들과 축구계 기자들은 알고 있고 독자들도 상식적으로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기 때문라고 보여집니다.

그러므로 기사들이 강제이전 시키고 강압적 정책 이런 표현이 이 정책의 대표 속성을 대변하는 서술이기 때문에 굳이 합의니 합의불이행 이런거는 아예 생략하고 짤막하게 강제이전, 강압적 정책이라고 나오고 있는 것이며 특히 한국프로축구연맹 30년사에서 주체였던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만들었던 책이니 자신들에게 불리한 강제라는 단어는 뺐고 합의라는 단어는 넣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에 나온 신문기사들도 합의라은 단어는 없고 강제이전, 강압적 정책이란 기사가 나온다고 있습니다.

Footwiks (토론)

 @Footwiks 답변 궁금한게 하나 있는데요,
"현재 절대 다수의견인 강제이전 및 강제시행 vs 강제보다 이전 합의와 합의 불이행를 강조: 소수의견 혹은 FC서울 안티팬 비주류이론"이라고 표현하셨던데. 본인께서 인용하신 내용에도 있는 "3개구단 합의" 내용과 "합의 불이행 후 강제시행" 부분이 전체 인용이랑 전혀 충돌하지 않는데 왜 자꾸 무슨 주류/비주류 대결 구도로 만드시는 거에요? 그 주류/비주류의 근거도 잘 모르겠고 그리고 저는 FC서울 안티팬을 대변하지도 않고요. 저에게는 프로파간다 퍼뜨리지 말라고 하시더니 왜 이런 식으로 토론 프레임을 가져가시는지 모르겠어요.
합의 했지만 "기존 합의를 반대"했다는 인용은 전혀 없어요. 합의를 했지만 서로 눈치를 보면서 밍기적거리면서 안 나가서 청와대에서 "정확히 내용을 모르는" 연고지 이전 지침을 내린거죠. 그리고 3개 구단은 본인들이 알아서 협상해서 나갔잖아요. 만약 그 합의가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인용이 있으면 보여주세요. 그래야 저도 수긍이 가죠.
저도 그 쫓겨난 3개 구단 중 한 팀의 팬입니다. 시행 과정은 강제라 하더라도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스포츠서울과 K리그 프로축구연맹 감수 공식 역사책에서 나왔다면 그렇게 기술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부분을 감추고 "강제시행"으로 뭉뚱그려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한 내용 이해를 방해하는 거 아닐까요?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9일 (일) 11:52 (KST)답변
그리고 3번 읽어보고 있는데.. 위키백과:독자_연구_금지에 나오는 "만약 A와 B가 공개 발표된 믿을 수 있는 출처의 자료라면, 이 둘을 조합하여 새로운 결론 C를 이끌어 낼 수 있다."라는 부분과 겹쳧보입니다.
첫번째 두번째 문단은 "상식에 기반한 추론" 혹은 "맥락에 기반한 추론"에 기반한 주장이구요.
반대로 "강제시행"만 강조하고 "합의" 및 "합의 내용 불이행" 부분을 축소하려는 것도 특정 시각에 의한 서술 아닐까요? 저는 강제시행도 서술했습니다만, 강제시행을 한 이유도 알려줘야 하는 게 중립적 서술이라고 보고 합의 및 합의 내용 불이행을 넣은겁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9일 (일) 12:23 (KST)답변
 답변 킹케니님 일관된 의견 잘 알겠고 상식에 기반한 추론" 혹은 "맥락에 기반한 추론"이라고 하시는데 그래서 지금 계속해서 여러 사람들 의견 들어보고자 토론 참여 글 올리고 있으니 기다리고 의견 좀 들어보시죠. 그리고 제 버전 보시기 바랍니다. 킹케니님 말씀하신 합의" 및 "합의 내용 불이행" 관련 내용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고 강제라는 단어와 합의라는 단어 비중도 별반 차이 없습니다. 킹케니님도 전체적인 큰 틀에서 인정한 강제라는 개념이 조금 더 들어간 것이 합의 및 합의 내용 불이행을 축소하는건가요? 두 버전 자세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의 포인트를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제 의견이 아니고 신뢰할만한 출처에서 전후맥락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이 정책 본질을 평가한 다수의견이 강제이전 및 강제시행이고 그 합의나 합의를 어긴 것은 전체 이 사건 맥락상에 과정 중 일부분입니다. 제가 만든 버전 보세요. 제가 합의 부정했습니까? 하도 합의와 합의불이행 강조하셔서 제가 강제라는 말과 합의 관련 단어 비중이 거의 비슷하게 맞추었습니다.

그런데 킹케니님 버전은 강제연고 정책이라는 다수의견인 사건 속에서 그 과정 중 일부인 합의와 합의불이행만 단락 만 배치 (강제시행 단락 없음) 그리고 단어도 합의와 합의불이행 8번 이상, 강제시행 (2번) 신뢰할만한 출처에서 계속 이 사건 본질이 강제성에 초점이 맞추어서 나오는데 왜 과정중에 명시되면 될 합의와 합의불이행만 강조해서 문서 주객이 전도되게 만드시냐는거죠?

각각의 시각들을 다루는 비중은 각각의 중요도에 따라야 합니다. 문서의 구성이나 설명에서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보다 두드러져서는 안 됩니다. 문서가 특정 시각이나 입장만을 모아놓거나, 기타 특정 시각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구조를 가지면 안 됩니다.

다른 분들도 이제 많이 오시고 하니까 비유해서 설명하겠습니다. 특정 사건의 본질이 다수의견에 정해졌을때 문장 서술이나 논조는 (1)번처럼 되어야 하는데 지금 킹케니님 버전은 본질을 흐리는 (2)번처럼 되어 있습닏. 말씀하신 합의와 합의에 반대해서 강제시행 그 부분 제 버전에도 들어가 있습니다.

(1) 일반적인 정의 서술: 1937년 소련의 극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 약 172,000명이 스탈린의 명령으로 인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적으로 이주된 사건.
(예를들면 상식적으로 당연히 현재 거처에 머무르는 것이 이득이지만 여기 머무르면 앞으로 고생길이 뻔할거야 이런 무언의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명목적 합의를 하긴 했지만 본질적으로 권력이나 위력(威力)으로 남의 자유의사를 억눌러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킨다는 강제성이 핵심인 사건이므로 강제성에 초점을 정의 및 본문 서술 - 당연히 중립적 시각에 의해 명목적 합의를 했던 사실도 과정상 팩트이기 때문에 정확히 기재 개인 사견이 아니고 신뢰할만한 출처의 여러 기사들도 한결같이 간단명료하게 표현하면 강제적으로 시행된 정책 이렇게 기술)

(2) 의도적인 목적을 가진 서술: 1937년 소련의 극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 약 172,000명이 스탈린의 명령으로 인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할 것을 합의했으나, 합의가 이행되지 않아 합의 이행을 강제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된 사건.
(강제성을 물타기 하기 위해 합의라는 용어와 합의가 이행되지 않아 합의 이행을 강제한다는 식으로 서술하면서 뭔가 대등한 1 대 1 관계에서 서로 이득을 주고 받는 평등한 계약을 합의하였는데 합의이행을 안 해서 강제당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서술 - 본문도 왜 강제적으로 이주하였나는 없고 합의를 했는데 합의가 이행되지 않아 합의 이행을 강제할 수 밖에 없었다는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계속해서 합의라는 말을 강조해서 더 넣음


한국프로축구연맹 30년사 - 307P

  • 서울연고공동화정책 직접적인 개념 서술 부분 - 307P

1996년 1월 2002년 월드컵 대회 개최국 선정을 앞두고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시행했다. 월드컵 유치를 위해 전국적인 프로축구 열기 확산과 주요 16개 도시의 축구전용구장 건설이 목표였다. 이 정책에 따라 서울 동대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 유공 코끼리 프로축구단, LG 치타스 프로축구단은 천안, 부천, 안양으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이 정책을 주체였던 한국프로축구연맹 자신이 만든 책이니까 당연히 강제적으로 이런 자신들에게 부정적인 그런 내용은 넣지 않았지만 이 정책 주체는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였으며 이 정책에 따라 일화, 유공, LG는 이에 따라 이전한 것으로 명확하게 서술했습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조차도 3개 구단이 합의는 했지만 3개 구단이 합의이행을 하지 않아서 우리가 강제적으로 연고이전 시켰다는니 이런 내용으로 서술은 안 되어 있습니다.

  • 서울연고공동화정책 과정 서술 부분 - 178P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995년 2월 13일 이사회에서 1996년 1월 1일자로 서울을 공동지역으로 두기로 결정했다. 서울 공동 연고 3개 구단 (유공, LG, 일화)의 연고지 이전 결정이었다. 단서 조건은 서울 연고 3개 구단이 이전 후 서울 지역에 전용구장을 건립하여 복귀를 원할 경우 우선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서울 공동 연고 3개 구단이 결정에 합의하자 3개 프로팀을 유치를 원하는 지방 도시들의 구애는 뜨거웠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자기들 의도로 서울 공동화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에 대해 서울 연고 3개 구단이 결정에 합의했다고 나옵니다.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합의도 없이 강제로 이전시킨 것은 아니고 과정중 합의라는 형식도 있었다는 것만 알려줄 정도로 서술이 되면 됩니다. 그런데 킹케니님이 만든 문서 보면 초점이 서울 연고 3개 구단의 합의와 합의불이행입니다.

그리고 위에 문장도 해석의 여지도 있고 팩트 확인도 더 필요한 부분입니다.

찾으셨으면 킹케님이 먼저 제시하셨겠지만 1995년 2월 이사회 당시 신문 기사들 보시기 바랍니다. 결정이 통과됐다는 의미입니다. 그 전에 3개 구단이 계속 반대해서 원만히 타결 안 되면 표결로 통과 될 수 있다고 했고 킹케니님이 당시에 10명이었다고 하니까 3 VS 7로 통과될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 이사회에서 3개 구단이 상식적으로 말은 안 되지만 서울 연고지에서 나가고 다른 도시로 나갈려는 찰나에 프로축구연맹에서도 때마침 나가라고 해서 흔쾌히 동의했으면 프로축구연맹 30년사 책에도 일화, 유공, LG의 합의에 의해 만장일치로 결정에 합의 이렇게 명시가 되었을 것입니다.

A: 서울 연고 3구단이 반대 했지만 어찌되었든 공동화 결의는 통과되었고 이에 대해 결의 수용 합의
B: 서울 연고 3구단이 이사회때부터 자신들이 원해서 합의했다는 것

A와 B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서 탄핵 결정에 지금도 반대하지만 국익을 위해서 더 이상 국론 분열은 안 된다고 결정에 합의 내지 수용하는 것과 탄핵결정 자체에 처음부터 찬성했고 당연히 원하는대로 탄핵되었으니 합의된 것이고..

같은 합의라도 이렇게 개념상 차이가 있는 것인데 지금 문서는 이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도 없고 1대1 쌍무적 관계로 대가라도 받고 합의를 했고 그런데 대가 받고 합의한 놈이 이행을 한해서 강제한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쓰여져 있습니다.

지금 서술하는 합의가 1대1 쌍무적 관계도 아니고 당시 상황상 서울 연고 구단들이 2002 월드컵 유치를 위한 대의명분에 동참해서 희생하면서 이루어진 합의 이런 부분도 부가적으로 서술이 되어야 중립적 시각으로 보입니다.

저랑 킹케니님 이렇게 둘이서만 주장, 반반, 재반박 하다가 토론창 엄청 길어지고 새로 오신 분들 토론창 보고 참여할 엄두도 안 나고 이런 식으로 되니까 다른 분들이 이 문서 논점 좀 파악할 수 있게 의견 들어보게 서로 기다렸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지금 축구배경지식 가자신 분들부터 여러분들 계속 토론 참여 글 올리고 있습니다.

Footwiks (토론)

 @Footwiks 답변 제 논지를 지금 잘못 이해하신거 같은데요.
저는 서울 연고 3구단이 처음부터 원했다 안했다는 인용도 없으니 모르니까 서술하지 않는 겁니다. 그냥 3개 구단 대표를 포함한 이사회에서 합의가 됐고 그러니까 발표가 됐고, 그 후에 합의가 된 부분에 대해서는 3개 구단에서 태클도 없었어요. 1995년 2월 이사회에서 나가기로 합의하고 발표 다 했는데 뜬금없이 1995년 10월쯤 되어서 이제 이전할 때가 가까워 오니 유공이 갑자기 해체하겠다 하면서 태클 놓고, 일화도 1996년 동대문 쓰기로 얘기해놨으니까 그냥 쓰겠다 그런데다가 LG는 쟤네 둘 안나간다는데 우리만 나간다면 웃기지 않느냐라고 한 거잖아요. 이걸 합의 불이행이라고 표현하는게 중립적 서술 위배랑 어떤 상관인가요?
합의 불이행이 중요한 이유는, 합의에 의해서 스스로 연고지 골라서 나가라고 했고 그게 안됐기 때문에 지침으로 '합의 이행'을 강제한겁니다. 연고지를 일방적으로 골라주고 여기로 나가라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지 않았다는겁니다. 1. 서울에서 다른 연고지로 이전하도록 합의 > 2. 합의를 이행 안함 > 3. 합의를 이행하도록 압력(이 부분이 '강제'에 맞는 부분) > 4. 스스로 연고지 골라서 협상하고 나감.이잖아요. 저는 반대로 전체 정책 시행 단계에서 딱 1단계, 그것도 청와대에서 "연고지 이전 지침 하달"이라고 내용이 1문장으로 끝나는 내용을, 앞서 언급한 1,2,4부분에도 모두 강제인것처럼 보이게 포장하는게 중립적 서술 위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합의 관계가 1대1이 아니라 희생이라고 하시는데, 그것도 증명할 자료가 있나요? 당시 이사회에서 투표가 이루어졌고 3개구단은 반대를 했는데 나머지 구단은 모두 이전시키자고 해서 이전됐다라던가.
지금 자꾸 정황, 추측에 의해서 얘기를 하시니까 그런 부분이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9일 (일) 12:53 (KST)답변
 @Kingkenny1967 답변 알겠습니다. 아무튼 다른 분들 의견도 들어봐야 하니 일부러 재반박은 안 하겠습니다. 어차피 지금 똑같은 얘기가 돌고 도는 것이고 지금만 해도 토론창 길어져서 스포츠에 대한 배경지식까지 없으신 분들이 논점과 전체적인 맥락 파악이 어려울 수도 있으니 서로 조금 기다려 봤으면 좋겠습니다. Footwiks (토론)

나름 정리를 위하여 새 문단을 개설하여 다시 토론을 개시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위에서 말씀하신 대로 두 사용자 간의 무한 논쟁만 이어집니다. 이 문단의 토론 또한 다소 난잡한 감이 있어 Kingkenny 님의 의견을 명확히 알기 어려운 감도 있는데, 간단히 말해서 '세 구단이 합의를 했는데 이행하지 않아 강제로 이행하게 했는지', 아니면 '해당 세 구단이 합의에 반대하였으나 그대로 통과되어 강제로 이행하게 했는지' 등과 같은 입장들이 필터링 없이 마구 쏟아지고 있습니다. Kingkenny 님께서 편집하신 버전은 뒷부분이 어찌 됐든 첫 부분이 '합의를 했는데 불이행했다'과 같이 구단 측에 부정적인 입장으로, 기존 판과는 다소 상이한 부분이 있고 이런 변경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용자가 있으므로 '합의를 했는데 불이행했다'라는 사실까지 전부 입증할 수 있는 출처, 혹은 서적 인용을 타 사용자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링크와 함께 근거가 되는 부분을 간략히 추가해 주실 필요가 있는 듯 싶습니다. + 재차 언급하지만, 토론이 다소 난잡하여 본인의 이전 토론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할 수 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Tursetic 2017년 3월 19일 (일) 13:32 (KST)답변

 @Tursetic 답변 좋은 질문입니다. 우선 토론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문서 상에 존재하는 내용으로 답변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인용1 : "일화, 유공, LG등 서울 3팀은 지난 2월 프로축구연맹 1차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모두 서울을 떠나기로 합의해 놓고도 아직까지 뚜렷한 이전계획을 내놓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일부 구단은 최근 다시 서울에 눌러앉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되풀이해 주위의 눈총을 받아왔다." 스포츠서울 1995년 11월 6일 기사[8]
이 인용의 앞선 부분 : "프로축구연맹은 최근 청와대로부터 서울 3팀의 연고지이전지침을 직접 하달받고 각 해당 구단에 이같은 청와대의 의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용2 : "이미 합의된 사항을 '손바닥 뒤집기'식으로 번복하려 들기가 예사고..(중략)..서울 연고의 3개 구단이 올해 말까지 전용구장을 못할 경우 내년시즌부터는 서울을 떠나야한다는 합의사항에 대해서는..(중략)..자신들이 내린 결정에 아무런 의무감도 못느낀다는 듯한 태도"스포츠서울 1995년 10월 22일 기사[9]
이상입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9일 (일) 13:47 (KST)답변
 @Tursetic 답변 Tursetic님이 약간 포인트 벗어난 것이 먼저 이 토론은 주제는 먼저 강제성 vs 합의이행과 합의미이행에서 다수의견을 어느 것으로 정하고 서술 논조를 정할지가 첫번째 논쟁 포인트입니다.

이 이 정책의 속성을 대표하는 다수의견이 정해지면 정책의 대표속성을 대변하는 정의 설명을 3~4줄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고.....

세 구단이 나갈려고 하던 참에 흔쾌히 합의해서 통과되었는지 아니면 나가는 것에 반대는 하지만 통과는 되었고 이를 수용해서 나가기로 합의한 것인지 이 부분은 현재로서는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또한 여기서 합의라는 것이 1대1 쌍무적 관계에 의해서 서울 연고지를 포기하면 보상금을 주던가 이런 대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상대적 강자: 정부와 프로축구 연맹 VS 상대적 약자: 구단 사이에 당시 2002 월드컵 유치를 대의명분 등등에 의한 사실상 명목적 합의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합의와 이에 따른 합의이행을 강제 이런 표현은 상황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이렇게 대표 개념을 서술하는 책이나 신문기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합의나 합의불이행에 대한 기사는 과거 당시 기준 시각의 기사만 남아 있고 이는 본문에 이 정책 과정 중 일부로 분명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광주민주화운동때 폭도들의 난동이다 이런 식으로 당시 기준 시각에 의해 폭도들의 난동과 이것이 문제라는 식의 기사만 남아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고 이것도 알아야 할 분명한 사실이니 당연히 본문에도 쓰여지 있는 것처럼...그런데 당시 기준 기사를 가지고 정책 대표 개념을 설명하는 문장에 이 부분을 넣은 것은 정책 대표 속성에 대한 본질흐리기에 가깝습니다.)

프로축구연맹 30년사의 세부 과정 설명이 아닌 서너 문장으로 요약되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개념 설명 그리고 제가 제시했던 전후맥락이 파악된 이 후 나오는 신문기사 등 서너 문장으로 이 정책을 정의할때 강제이전 정책이다 강압적 정책이다로 표현하지 과정 중 일부인 합의에 대해서 언급하는 문장은 하나도 없습니다. 즉 서울 연고 구단과 프로축구연맹 합의는 이 정책의 과정 중 일부이지만 전체를 대변하는 본질적인 속성이 아닙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전체 본질을 서너문장으로 요약할때 민주화운동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으로 끝나지 큰 사건 중 일부인 예를들면 폭도 같은 과격시위도 있었다 이런 부분을 넣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실제 일어난 일이긴 하니 폭도 같은 과격시위에 대해 서술하는 것도 중립적 시각인 것은 저도 인정하고 이런것처럼 제가 만든 버전도 이 정책 중 과정중 일부로 합의가 존재 했었다는 부분 명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사에서 이 정책을 요약하는 한두줄의 정의 문장들이 아래 같은 강제적인 정책이라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합의를 했는데 합의불이행이므로 이를 강제했다 이런 문장들이 들어가고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기사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본질적인 성격이 아니고 과정중 일부이기 때문이며 합의와 합의불이행으로 포커스를 맞처서 이 정책을 서술하는 것은 소수의견도 아니고 0퍼센트 의견으로 여기 킹케니님 버전만 그렇습니다. 포인트가 이것이니 이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정책에 대해 전후맥락이 파악된 이 후 신문기사들의 한두줄 짜리 정의 개념 기사
정부가 2002년 월드컵 유치 활동과 맞물려 지방 축구 활성화를 내세우며 3개 프로축구단의 연고지를 강제로 다른 지역으로 이전시켰다.
프로축구연맹은 서울의 공동화를 위해 당시 서울에 있던 세 팀 LG, 유공, 일화를 강제연고이전시켰다.
1996년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역연고제를 본격적으로 정착시킨다는 명분 아래 서울을 홈으로 쓰고 있던 3개팀 (유공, LG, 일화)의 연고이전을 강행했다.
fookwiks. --Footwiks (토론) 2017년 3월 19일 (일) 14:50 (KST)답변

저기요, 뭐라 쓰든 정말 상관없는데 제발 남의 답변 중간에 본인 답변 달거나, 남의 서명 지우지 말아주시겠어요? 이 말만 지금 몇 번이나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9일 (일) 15:45 (KST)답변
불판 갈아엎어도 될까요? 지금 바이트 수가 25만을 넘겼어요.--Leedors (토론) 2017년 3월 19일 (일) 18:54 (KST)답변
 @Leedors 답변네 부디 부탁드립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9일 (일) 20:07 (KST)답변



그동안 안본 사이에 footwiks님과 kingkenny1967님을 중심으로 상당한 토론을 거쳐 문서가 많이 바뀌었고 새로 바뀐 문서를 보니까 전체적으로 가독성, 명료성 등이 더 높아져서 기존보다 더 적절한 문서로 탈바꿈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문서의 전체적인 큰 틀에 대해서는 두분 모두 큰 이견은 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footwiks님이 새롭게 토론을 제시한 것대로 강제이전 및 강제이전과 이전 합의와 합의 불이행 이 두가지 주장에 대해서 토론을 완료하면, 현 시점에서 추가적으로 문서와 관련하여 추가적으로 토론을 할만한 부분은 딱히 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토론을 보니까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정책의 강제 시행 자체에 대해서는 두분 모두 동의를 하는데, footwiks님은 구단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책이 강제 시행되었다고 주장하시는 것 같고, kingkenny1967님은 구단이 합의를 했는데 그것을 행동화하지 않아서 청와대가 강제 시행토록했다고 주장하시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국 이 토론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부분은 최초의 서울공동화 시행 합의과 관련된 자발성, 강제성 여부라고 판단됩니다. 합의에 대한 부분이 토론에서 많이 주목받고 있는데 합의가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 정책이 시행된 것은 결국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합의가 이루어졌고 그것을 토대로 시행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합의라는 것이 자발적인 동의를 전제로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제3자의 강제적인 개입에 의한 불가피한 동의를 전제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을 해야 문서 서술에 있어서 더욱 더 명확한 서술이 가능해집니다.


[1] 구단들이 연맹, 협회, 정부 등의 강제적 정책 추진에 따라 불가항력적으로 서울공동화 시행에 합의한 경우

[1]에서는 구단들이 연맹, 협회, 정부 등의 강제적 정책 추진에 따라 불가항력적으로 서울공동화 시행에 합의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경우, 문서에 '합의'라는 부분이 언급되는 것은 잘못된 서술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상호간의 채무, 채권 관계가 전혀 없는 A와 B가 있고 B가 A보다 물리적으로 힘이 압도적으로 강한 상황이라고 가정해봅시다. 이 상황에서 B가 A에게 일방적으로 돈을 줄 것을 강요하여 A가 돈을 주겠다고 최초에 말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A가 생각을 해보니 이것은 아니다 싶어서 다시 B에게 돈을 주지 못하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때, B가 더욱 더 강압적인 태도를 기반으로 마침내 A에게서 돈을 받았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이것을 B가 A로부터 일방적으로 돈을 갈취했다고 표현해야 적절한 것이지, A가 돈 지급 합의 후 불이행을 하여 B가 강제적으로 돈을 받아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연맹, 협회, 정부 등의 강요, 강압 등에 의해 구단들이 합의를 한 것이 맞다면 이 상황에서는 '합의'에 주목해서는 안됩니다. 연맹, 협회, 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합의가 발생한 것이니 저 합의를 발생시킨 강제성에 주목을 해야 맞는 법입니다.

이와 관련있다고 판단되는 주요 자료에는 1994년 4월 축구협회의 서울 연고 구단들에 대한 연고권 분산 추진, 1994년 7월 연맹의 서울 연고 구단 분산 추진 계획 발표, 1994년 7월 축구협회의 서울 연고 구단 타 도시 이전 방안 언급, 1994년 7월 문화체육부의 지역연고제 개선 계획 발표, 1994년 12월 서울 연고 구단들이 연고 도시를 선택하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한 강제 연고 배정 계획 발표, 1995년 2월 연맹 사무총장이 다수결을 통해서라도 이사회를 통과시키겠다는 발언, 1995년 11월 서울 연고 구단들에 대한 청와대의 강제 이전 지침 하달이 있습니다.(문서 내 주요 사건 일지에도 바로 나와 있는 자료들이니 별도로 각주는 달지 않겠습니다.)

일단, 1994년 4월에는 협회가, 1994년 7월에 연맹과 협회에서, 연이어 서울 연고 구단들을 타 도시로 이전시키는 것과 관련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 이전 시점에 서울 연고 구단들이 타 도시로 이전하는 것을 검토 내지 추진하겠다는 식의 자료는 없는 것으로 볼 때 서울공동화 검토, 추진이 연맹, 협회에서 처음 제기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공교롭게도 1994년 7월에는 문화체육부가 프로축구 지역연고제를 확실히 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면 연맹, 협회를 통해 처음 검토, 추진된 서울공동화에 대해서도 문화체육부가 적극 지원했을 가능성 또한 충분합니다. 더군다나 이 문서에 각주로 인용된 당시의 여러 언론 보도들을 보면 지역 연고제 개선 필요성에 대한 내용들이 자주 나오고 있었기도 했고요. 종합적으로 이러한 부분들을 보면 서울공동화라는 것 자체가 서울 구단들이 아닌 연맹, 협회, 정부 등에 의해 적극 추진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면 구단들의 입장들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하는데 1994년 12월의 서울 연고 구단들에 대한 강제 연고 배정 계획 발표나 1995년 2월의 다수결을 통해서라도 이사회를 통과시키겠다는 식의 발언 등은 당시 서울공동화 추진 과정에 있어서 서울 연고 구단들이 연맹, 협회의 계획에 대해 반대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로 판단 가능합니다. 서울 연고 구단들이 자발적으로 서울에서 타 도시로 이전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연맹, 협회 계획에 따랐다고 가정하면 근본적으로 저런 말들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인 부분들을 첨언하면 구단들의 저런 행동들은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일화는 1989년에 서울 연고로 창단했고, LG, 유공은 1990년, 1991년에 각각 충청, 인천/경기로부터 서울로 이전을 했습니다. 서울로 이전한지 애시당초 3~4년 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타 도시로 자발적으로 이전하기로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당시에도 서울이 압도적인 최대 시장성을 갖추고 있고 수도라는 상징성도 있는데 안양, 부천, 천안 등의 중소도시로 이전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또한 지역 연고제를 개선해야 하는 상황에서 서울에서 타 도시로 연고이전을 한다는 것은 모순적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세 구단이 한꺼번에 말입니다. 지역 연고제를 개선한다고 하더라도 서울 연고 구단들이 서울에 잔류를 한 상황에서 1996년에 연맹이 했던 것처럼 구단 명칭에 지역명 사용하는 식으로 지역 연고제 개선하면 그만이기도 했씁니다. 그래서 서울 연고 구단들의 연고지와 지역 연고제 개선 사이에는 상관 관계부터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지역 연고제 개선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서울 연고 구단들이 서울에서 나가야 했던 것도 전혀 아닙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1995년 11월에 청와대에서 서울 연고 구단들에 대한 강제 이전 지침이 나왔습니다. 서울 연고 구단들이 강제적으로 서울에서 타 도시로 이전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 이전 지침의 영향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면서 최종적으로 1996년 상반기에 서울 연고 구단들 모두 타 도시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문화체육부가 프로축구 지역연고제를 개선하겠다는 계획과 청와대의 강제 이전 지침은 어느정도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평시 상황에서 청와대가 뜬금없이 서울 연고 구단보고 타 도시로 이전하라는 강제 이전 지침을 내릴 이유가 없기도 하고, 충분히 전후 상황 파악 가능할만큼의 자료도 존재합니다.


[2] 구단들이 자발적으로 서울공동화 시행에 합의한 뒤 이를 이행하지 않아서 강제 이전 지침을 통해 결국 이행하게 된 경우

[2]에서는 한번 [1]과 다르게 구단들이 자발적으로 서울공동화 시행에 합의한 뒤 이를 이행하기 않아서 강제 이전 지침을 통해 결국 이행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경우에도 [1]과 마찬가지로 '합의'라는 부분이 언급되는 것은 잘못된 서술에 해당합니다.

구단들이 최초에 서울공동화의 시행을 자발적으로 합의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이를 반드시 이행해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도중에 생각을 해보니 서울에서 타 도시로 이전하는 것 자체가 구단에게 불필요한 행동이라 생각되어 이를 이행하지 않을 수도 있는 법입니다. 자발적으로 합의를 했다고 하여 무조건 그 최초의 합의 사항을 그대로 이행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그 합의를 파기하는 것 또한 하나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합의 파기에 따른 보상 책임 등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 또한 동반하겠지만 말입니다.

구단들이 최초에 서울공동화 시행에 자발적으로 합의했다가, 이것 저것 생각해보니 잘못 생각했다 싶어서, 그냥 없던 일로 하자는 식으로 나오면, 구단의 의사를 존중하여 서울공동화를 실시하지 않는 것이 맞는 것이지, 청와대 강제 이전 지침 등을 통해서 서울 연고 구단들을 타 도시로 강제 이전토록 하는 것은 결국 구단의 의사와 무관한 강제 이전에 해당합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보면 지역 연고제 개선의 목소리가 높은데 이 상황이라면 오히려 서울 연고 구단들이 자발적으로 연고이전을 하려던 행위를 멈추고 스스로 서울 잔류를 택하기로 했으니 연맹, 축협 등의 입자에서는 오히려 다행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 연고제 개선을 해놓겠다고 해놓고서 단체로 여러 팀이 연고이전을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되기 때문입니다. 축구팬들이 연고이전에 대해 상당히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지역 연고제 강화에 방해가 되는 행동이기 때문인데, 이러한 측면을 고려해볼 때 만약 서울 연고 구단들이 자발적으로 최초에 서울공동화에 합의를 했다가 이를 행동화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냥 거기서 끝내는 것이 맞는 행위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여러분들께 질문을 한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지역 연고제 개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서울LG, 서울유공, 서울일화 등과 같이 지역명을 구단 명칭에 붙이고, 서울 라이벌 의식을 토대로 서울더비를 정착시키는 것이 맞는 행동일까요? 아니면 최초에 공동화 합의를 하고 말고를 떠나서 결국에는 서울에 있던 구단들이 서울에 잔류하겠다고 했는데 이 상황에서 강제로 타 도시로 이전시킨 것이 맞는 행동일까요?


[2-1] 구단들이 자발적으로 서울공동화 시행에 합의한 뒤 이를 이행하지 않아서 강제 이전 지침을 통해 결국 이행하게 된 경우와 관련된 몇가지 의문 사항들

한편 위에서 말한 부분과는 별개로 [2]에 대한 주장에 대해서도 좀 의아한 부분들이 좀 있습니다. 만약, 서울 연고 구단들이 서울에서 타 도시로 자발적으로 이전하겠다는 의사가 있으면 연맹 이사회에 연고이전 신청을 하여 최종 승인을 받으면 바로 이전이 가능합니다. 이사회에서 별도로 합의를 하고 말고 그런 소리가 나올 이유 자체가 애시당초 없다는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연고이전한 K리그 사례들을 봐도 타 도시로 이전하고 싶으면 이사회에 연고이전 신청해서 승인받고 가지 이 과정에서 합의를 하고 말고 그런 말들 자체가 애시당초 나오지도 않았고 나올 이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1]에서도 언급한 부분이지만 1994년 4월 축구협회의 서울 연고 구단들에 대한 연고권 분산 추진, 1994년 7월 연맹의 서울 연고 구단 분산 추진 계획 발표, 1994년 7월 축구협회의 서울 연고 구단 타 도시 이전 방안 언급, 1994년 7월 문화체육부의 지역연고제 개선 계획 발표, 1994년 12월 서울 연고 구단들이 연고 도시를 선택하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한 강제 연고 배정 계획 발표, 1995년 2월 연맹 사무총장이 다수결을 통해서라도 이사회를 통과시키겠다는 발언, 1995년 11월 서울 연고 구단들에 대한 청와대의 강제 이전 지침 하달이 있습니다. 이런 자료들은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을 연맹, 협회, 정부 등 구단이 아닌 제3자가 처음 제시하고 그 후에도 그 정책을 주도했다는 잘 입증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서울 연고 구단들이 자발적으로 합의한 것이 맞다면 이런 수 많은 자료가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서울에서 타 도시로 이전하고 싶으면 그냥 이사회에 연고이전 신청해서 최종 승인 받고 바로 가면 그만입니다.

위에서 말한 부분이기는 한데 상식적인 선에서 보더라도 당대 대한민국의 최대 시장인 서울에서 타 도시로 이전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 구단중 한 구단 정도라면 그나마 또 모르겠지만, 세 구단이 동일 시점에 한꺼번에 서울에서 타 도시로 자발적인 이전을 추진한다? 더군다나 LG, 유공은 기존 연고지에 불만을 품고 타 도시에서 서울로 이전한지 3~4년 밖에 되지도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말라는 절대적인 법은 없습니다. 상식에 맞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 세상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단편적으로 보기에 납득하기 굉장히 어려운 부분인만큼 이에 대해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고, 그래서 각종 자료들을 보면 오히려 [1]이 맞으면 맞지 [2]는 부적절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당시 자료로 보나, 지금 현재 시점에서 서울연고공동화정책에 대해 언급한 기사들을 보나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3] 결론

일단 [1]이 맞든 [2]가 맞든 그 부분과는 별개로 기본적으로 서론의 '서울에서 다른 곳으로 연고지를 옮기기로 합의했으나, 합의가 이행되지 않아 합의 이행을 강제하고'라는 내용이라든지, 3개 구단들의 합의 불이행 같은 하위 단락의 존재는 부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부분들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1]이 맞느냐, [2]가 맞느냐에 따라 수정의 내용이 다소 달라질 수는 있어도 마치 '서울 연고 구단들이 스스로 이전하겠다는 식으로 나섰다가 안하니까 단지 강제 이전 지침을 내려서 이전시킨 것일 뿐이다'라는 뉘앙스가 풍겨지는 지금의 문서 내용은 [1]이 맞다고 하든, [2]가 맞다고 하든, 부적절하기 때문입니다.

합의가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그 부분과는 상관없이, 정책의 진행 경과를 보면 강제 시행이 된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 부분에 먼저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최초 합의의 성격(자발성, 강제성 여부)을 떠나서 결론적으로 구단이 하지 않겠다는 것을 강제 지침을 통해 강제적으로 실시토록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그 합의가 자발적인지, 강제적인지를 따져야 하는데 각종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2]가 맞다고 가정하면 의문점들이 상식적인 선에서 보나 각종 자료들로 보나 부적절한 부분들이 존재하지만, [1]이 맞다고 가정하면 상식적인 선에서 보나, 각종 자료들로 보나 상당히 적절합니다. 이러한 부분까지 고려하여 문서를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Rodrigo 0000 (토론) 2017년 3월 20일 (월) 00:05 (KST)답변

글자가 너무 많고, 링크도 여기저기 산재해있어 모든 근거를 확인했다고 자신할 수 없는 데다, 원체 이 분야엔 문외한이라 부정확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의견 달아달라하셔서 의견답니다. 또 토론란이 번잡하여; 어디에 달아야할지도 모르겠네요. 나름 의견들과 관련 링크들을 읽어본 바 강제적으로 이전된 것 같습니다. 후대의 신문들은 '합의'를 포함한 해당 과정을 강제라 평가하고 있으며 ‘프로축구연맹은 최근 청와대로부터 서울 3팀의 연고지이전지침을 직접 하달받고 각 해당 구단에 이같은 청와대의 의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같은 문장 역시 강제이전을 뜻하는 문장입니다. 단, '한국프로축구 30년'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했는데 하필 국중도가 공사중이어서;;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7년 3월 20일 (월) 04:26 (KST)답변
 @일단술먹고합시다 의견 먼저 소중한 시간 할애하여 이 문서 토론에 의견남겨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후대의 신문들 평가가 '강제시행'이라는 한 단어로 '(조건부 이전)합의를 포함한' 해당 과정 전체를 강제라고 평가한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인용을 보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프로축구연맹 '한국프로축구 30년'에도 합의 부분은 합의라고만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 인용의 당대 신문은 자신들이 내린 결정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인용1 : "서울 공동 연고 3개 구단이 결정에 합의하자" 한국프로축구 30년 178쪽, 2013[10]
인용2 : "일화, 유공, LG등 서울 3팀은 지난 2월 프로축구연맹 1차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모두 서울을 떠나기로 합의해 놓고도 아직까지 뚜렷한 이전계획을 내놓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일부 구단은 최근 다시 서울에 눌러앉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되풀이해 주위의 눈총을 받아왔다." 스포츠서울 1995년 11월 6일 기사[8]
이 인용의 앞선 부분 : "프로축구연맹은 최근 청와대로부터 서울 3팀의 연고지이전지침을 직접 하달받고 각 해당 구단에 이같은 청와대의 의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용3 : "이미 합의된 사항을 '손바닥 뒤집기'식으로 번복하려 들기가 예사고..(중략)..서울 연고의 3개 구단이 올해 말까지 전용구장을 못할 경우 내년시즌부터는 서울을 떠나야한다는 합의사항에 대해서는..(중략)..자신들이 내린 결정에 아무런 의무감도 못느낀다는 듯한 태도"스포츠서울 1995년 10월 22일 기사[9]}}
정리해서 1. 이사회 결정, 서울에 전용구장을 짓지 않을 경우 서울에서 다른 연고지로 이전하도록 3개 구단과 합의 > 2. 3개 구단, 합의를 이행 안함 > 3. 합의를 이행하도록 압력(이 부분이 '강제'에 맞는 부분) > 4. 스스로 연고지 골라서 협상하고 나감.이라는 얘깁니다.
저는 2017년 3월 20일 오전 7시 15분 기준 현재 문서에 만족합니다.
이상입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20일 (월) 07:20 (KST)답변
일단술먹고합시다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후대의 신문들은 '합의'를 포함한 해당 과정을 강제라 평가하고 있으며 ‘프로축구연맹은 최근 청와대로부터 서울 3팀의 연고지이전지침을 직접 하달받고 각 해당 구단에 이같은 청와대의 의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문장 역시 강제이전을 뜻하고 이번 토론의 정확하게 포인트를 짚으신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신뢰할만한 출처의 기사 논조도 그렇고(후대 기사 중에 킹케니님이 주장하시는 합의와 합의불이행 그래서 합의불이행에 따른 강제일뿐이다는 논조의 기사가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킹케니님 또한 제시를 못 하고 계시며 계속 1995년도 기사에 당시에 이랬었다 이런 기사들만 인용하시고 계십니다.) 여기 토론 의견들도 그렇고 이 정책에 대한 다수의견인 강제성 관점을 이 문서의 전체적이 논조로 가져가야 합니다. 그러나 합의 또한 이 정책 전체 과정 중 존재했던 팩트이니 이에 대해 정확히 명시하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으며 이러한 위키백과:중립적 시각 규정에 의해 만든 [2017년 3월 18일 (토) 12:13‎ ] 버전 골자로 다시 편집해야 합니다. 킹케니님이 우려하시는 합의도 없이 강제시행 한 것 같은 그런 오해를 살 수 있게 만든 버전이 아니고 강제성을 두드러지게 강조한 그런 버전도 아닙니다.

그리고 한국어 위키백과가 특정 사건의 대표 속성에 대해 개인 유저들이 서로가 당시 정황을 추론해서 어떤 속성이 특정 정책이나 사건의 본질이다를 개인 의견으로 토론해서 결정하는 곳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언론인들이 이 정책에 대해 기사를 쓰기 전에 평범한 민간인들이 접할 수 없는 축구기관 혹은 해당 구단, 당시 당사자 취재하면서 그들만이 접할 수 있는 정보나 인터뷰 등등으로 사실 확인을 바탕으로 결론낸 '합의'를 포함한 해당 과정을 강제라 평가하고 있는 사실을 존중하고 여기에 따라가서 문서 편집을 해야 합니다.(그것도 한두 기사면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이 문서가 생성되기 전부터 언론에서 이 정책 속성은 강제성으로 규정했으며 2013년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발간한 책에서 과정 설명 중 세 구단의 합의라는 단어가 나왔지만 2014년 신문기사에서는 여전히 강제이전, 아예 강압적인 정책으로 개념 설명을 했으며 합의나 합의불이행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것에 주목했으면 합니다.

인용1 : " 하지만 정부가 2002년 월드컵 유치 활동과 맞물려 지방 축구 활성화를 내세우며 3개 프로축구단의 연고지를 강제로 다른 지역으로 이전시켰다.
인용2 : " 1996년 정부의 강압적인 ‘서울 연고 공동화(空洞化) 정책’으로 한때 프로축구 불모지로 전락했던 수도 서울이 다시 축구의 중심지로 거듭날지 주목된다.

또한 현재 버전은 단락이 23개로 어떤 단락에는 내용이 한 줄이고 단락이 너무 많아서 가독성이 떨어집니다. .3월 18일 버전에는 단락수도 줄여서 가독성을 보완했습니다.--Footwiks (토론) 2017년 3월 20일 (월) 22:28 (KST)답변

  1. http://i66.tinypic.com/30jnzb4.jpg
  2. 이영규 (1995년 11월 6일). '서울 한지붕 세가족' 일화 LG 유공 "내년엔 모두 서울 떠난다". 《'서울 한지붕 세가족' 일화 LG 유공 "내년엔 모두 서울 떠난다"》 (스포츠서울). 6면. 
  3. “10년간 한국 축구 얼마나 발전했나?”. 엑스포츠뉴스. 2012년 6월 1일. 
  4. 요시자키 에이지 (2000년 1월호 133P). “수도 연고지 프로팀은 흥행의 보증수표”. 베스트일레븐). 
  5. “회색도시 도쿄, 한국축구의 슬픈 거울”. 풋볼리스트. 2014년 10월 2일. 
  6.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121600329119001&editNo=20&printCount=1&publishDate=1994-12-16&officeId=00032&pageNo=19&printNo=15285&publishType=00010
  7.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837115
  8. '서울 한지붕 세가족' 일화, LG, 유공 내년엔 모두 서울 떠난다”. 스포츠서울. 1995년 11월 6일. 
  9. “줏대없는 프로연맹 이사회”. 스포츠서울. 1995년 10월 22일. 
  10. >(사)한국프로축구연맹 (2013년 6월 14일). 《한국프로축구 30년》. 유니크플러스. 178쪽. 2017년 3월 15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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