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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5일 (목)

  • 23:102021년 11월 25일 (목) 23:10 차이 역사 −21 부안 김씨경순왕을 시조로 삼는 김씨는 없으며 부령(부안)김씨의 중시조는 고려 평장사 김구. 신라왕을 시조로 삼은 김씨는 없음. 보학에 관한 기본 이해가 없는 것으로 판단됨. 스스로 마의태자가 절손되었다 하고 중시조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 태그: m 모바일 웹

2021년 11월 21일 (일)

  • 17:542021년 11월 21일 (일) 17:54 차이 역사 −1 부안 김씨→‎역사: 다른 사용자가 최아님과 같은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진실이 되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저와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는 분이 계시면 그것도 진실이 되는 것인지요? 최아님께 삼국사기 내의 서로 상충되는 내용에 관한 질문을 드리면 어떤 내용이 진실인지 판단하여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태그: m 모바일 웹
  • 16:422021년 11월 21일 (일) 16:42 차이 역사 −1 부안 김씨→‎분파: 부안김씨 문서에 작성되지도 아니한 내용으로 반복하여 시빗거리로 삼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문서가 잘못되었다면 그 내용을 가지고 따지시기 바랍니다. 태그: 수동 되돌리기 m 모바일 웹
  • 13:242021년 11월 21일 (일) 13:24 차이 역사 −322 부안 김씨→‎역사: 부안김씨의 문서에는 최아님께서 말씀하신 태자 관련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같은 내용을 반복하여 올리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또한 최아님께서 언급하신 삼국사기에 일부 오류가 있다고 하여 위조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부김 족보의 일부 내용이 최아님의 관점과 다르다는 이유로 부김의 족보가 위조라고 말씀하시는데에는 신중하셔야 하며 이는 법적인 문제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태그: 수동 되돌리기 m 모바일 웹
  • 11:362021년 11월 21일 (일) 11:36 차이 역사 −1 부안 김씨→‎역사: 조금 다른 관점이긴 하나 부령(부안)김씨가 없었다면 고려와 조선 초기 과거와 사마시에 급제한 분들께서 본관을 어찌 부령(부안)으로 칭할 수 있었겠습니까. 최아님께서 삼국사기를 언급하셨는데 부령(부안)김씨가 신라김씨의 종가로 인정받은 것은 단지 부안(부령)김씨의 주장에만 기인한 것이 아닌 역사학자들과 타 문중의 대표들간의 토론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 분들이 삼국사기의 내용도 모르고 부안(부령)김씨의 주장에 동의하였을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태그: 수동 되돌리기 되돌려진 기여 m 모바일 웹
  • 11:352021년 11월 21일 (일) 11:35 차이 역사 +1 부안 김씨→‎역사: 부령(부안)김씨의 최초 족보는 최아님이 말씀하신 1700년대가 아닌 1584년의 갑신보가 처음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이른 시기에 발간된 족보입니다. 최초의 족보 발간 이전 이미 고려시대 휘 경수의 자 휘 춘 시절부터 본관이 성립되었고 춘의 증손 휘 의가 본관 부령(부안)으로 과거에 3인으로 급제한 기록이 있습니다. 휘 의의 아들로 휘 구 역시 과거에 2인으로 급제하였고 휘 구의 아들 중 3형제(족보상 4형제)가 과거에 급제하였다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적인 기록이 있으며 위의 분들의 후예로 인정받는 사람들은 부령(부안)김씨 뿐입니다. 태그: 되돌려진 기여 m 모바일 웹
  • 11:252021년 11월 21일 (일) 11:25 차이 역사 −322 부안 김씨→‎역사: 최아님께서 요구하신 삼국사기의 오류에 관한 주장은 아래와 같은 인터넷 주소를 확인하시기 바라며 오류가 없는 사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사서의 오류를 많은 사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자신이 죽을 각오가 아니면 처자를 죽일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즉 태자께서 목숨을 이어가면서 처자를 죽인다는 것은 성립되기 어려운 논리입니다. 삼국사기에는 궁예가 고려의 국명으로 나라를 세운 기록이 누락되었는데 이는 고려왕조의 정통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라 마지막 태자의 후예가 살아있다고 기록하기 어려운 이유도 되겠지요. 당시 신라지역의 반란도 있었고요. 현대 역사도 집권자의 의지로 역사의 왜곡이 허다하게 발생하는터에 왕정시대, 그것도 통일신라의 망국 후 200년이 지나 발간된 책의 모든 구절이 진실이라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삼국사기에서 인용하신 부분은 교차검증도 되지 아니한 내용입니다. 참고로 부안(부령)김씨 내에서도 부김이 망국... 태그: 수동 되돌리기 되돌려진 기여 m 모바일 웹
  • 07:212021년 11월 21일 (일) 07:21 차이 역사 −321 부안 김씨→‎역사: 우리나라와 중국의 수많은 사서에 오류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것이 정사라도 마찬가지이며 승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특히 삼국사기는 고려가 건국하고 200여 년이 지나 발간된 역사서로 신라왕실의 계승자가 없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공표하여야 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부령(부안)김씨가 경순왕 태자의 후예라는 것은 신라연합대종원도 같은 입장이며 삼국사기가 아닌 으로 삼국사기의 내용은 최아님만 아시는 내용이 아니며 삼국사기의 내용에도 여러 오류가 있습니다. 지배층의 의도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삼국사기의 내용만 보실 것이 아니라 송막기문이나 금사, 금지, 삼조북맹회편의 내용과 부안김씨 가승과의 일치점이나 정황상의 가능성 등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최아님의 정성이라면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하며 정황도 맞지 않고 위조된 신라삼성연원보를 기초로 경순왕의 태자 후예라 주장하는 경주김씨태자파에게 쏟으시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태그: m 모바일 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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