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 통첸 율숭

까르 동짼위슝(티베트어: མགར་སྟོང་བཙན་ཡུལ་སྲུང༌།, ? ~ 667년)은 티베트 전역을 통일하여 토번의 전성기를 연 33대 감포 손챈감포 시대의 재상이다. 중국 역사서에서는 그의 이름을 록동찬(綠東贊)으로 기록하고 있다.

까르 동짼위슝
མགར་སྟོང་བྩན་ཡུལ་ཟུང་
토번뢴첸
재위 661년—667년
전임 오마데로첸
후임 샹론트로모 (권한대행)
군주 망송 망첸
재위 652년—659년
전임 충보 붕새주쩨
후임 오마데로첸
군주 송짼감뽀
신상정보
출생일 590년
사망일 667년
가문 가르씨
자녀 가르체녜 돔푸
가르친링 첸드로
가르첸바
가르타구 리숨
가르체녠 궁톤

까르 동짼위슝은 손챈감포 즉위 초기에 토번의 고관 벼슬인 대론(大論)에 임명되었다. 그는 손챈감포의 정책을 보좌하여 법제를 만들고 군인과 노예 계급의 구분을 엄격히 하고 조세 정책을 개혁했다. 또 티베트 내의 강족 세력과 토욕혼 등을 멸망시켜 토번이 티베트를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당나라네팔로 사신으로 갔고 당나라를 강요하여 공녀를 보내게 하였다.

토번의 당나라 정벌 편집

638년 토번은 25만 대군을 편성해 사천성 지역에 있는 도시 송주(松州)를 점령하고 이후 당나라 장안으로 진격하였다.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은 당시 이부상서(吏部尙書) 후군집을 당미도 행군대총관(當彌道行軍大總管)으로 삼고 토번군에 맞서게 했으나 장안이 함락되었다. 당나라는 장안 바로 옆까지 많은 영토를 토번에 의해 잃었다. 그 후로도 토번은 지속적으로 장안을 유린하였고, 그때마다 당태종은 토번과 불공정한 평화협정을 맺고 당나라에 조공하였다. 까르 동짼위슝은 토전의 송챈캄포왕의 명을 받고 640년 직접 당나라에 사신으로 당태종의 앞에서 당나라의 공주를 공녀로 보내라고 강요하였다.

당시 위구르의 공격을 받아 당나라는 위구르에 당나라 공주를 공녀로 보내는 굴욕을 받았고 토번에까지 당나라 공주를 공녀로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당태종은 큰 굴욕을 느꼈다. 그러나 토번은 날로 강성해져 당나라 수도 장안 바로 옆까지 당나라 영토와 백성들을 정복하였고 또 634년에도 토번의 요청을 거절하였다가 25만의 토번 대군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결국 당 태종 이세민은 토번의 송챈캄포왕에게 문성공주를 공녀로 바치게 되었다. 정식 왕비가 있던 송챈캄포는 당나라 문성공주를 첩으로 삼고 당나라가 주는 조공을 받으며 당나라를 공격하지 않게 되었다.

송첸감포 사후의 활약 편집

650년 송첸캄포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손자 망송첸포가 즉위했다. 망송첸포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나라의 중요한 사안은 가르통첸이 처리하게 되었다. 그는 송첸캄포가 세웠던 정책을 이어받아 당나라와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법률을 만들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토욕혼을 정벌하는 것이었다.

토욕혼은 모용복윤(慕容允伏)이 칸으로 있을 때 당나라 장군 이정에게 패배해 당나라의 종주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660년 가르통첸은 군사적 재능이 뛰어난 둘째아들 가르친링에게 군사를 주어 토욕혼을 공격하게 했으며, 663년에는 토욕혼에서 도망쳐 나온 토욕혼의 신하 소화귀(素和貴)를 거느리고 직접 토욕혼을 공격하여 토욕혼을 멸망시켰다. 토욕혼의 칸 모용낙갈발(慕容諾曷鉢)은 그의 첩 홍화공주(弘化公主: 이세민의 딸)와 잔존 세력을 이끌고 당나라 양주(凉州)로 피신했다.

토욕혼을 멸망시킨 토번은 오늘날의 칭하이성 지역까지 세력을 뻗게 되었고 이는 그의 사후 토번과 당나라가 자주 충돌하는 원인이 되었다. 가르통첸은 667년에 사망했으며 훗날 재상이 된 맏아들 가르친네와 명장 가르친링을 비롯한 그의 다섯 아들들은 당나라를 상대로 많은 공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