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천대(國府遷臺, 영어: retreat of the Republic of China to Taiwan, Kuomintang's retreat to Taiwan, The Great Retreat)는 '국민당정부 대만 파천'의 약어로서 한때 중국의 유일합법정부였던 중화민국 정부가 중국 공산당 세력에게 밀려 중국에서 대만으로 철수한 사건을 일컫는다. 이 때 약 2백만 명에 달하는 중화민국의 정부 수반들, 그리고 국민당 당원 및 지지자들이 진격해오는 인민해방군을 피하여 대만으로 이주하였다.

중화민국의 대만으로의 중심지 이전 과정

중화민국 정부 수반들은 대부분 대만으로 철수한 반면, 중화민국 군대는 대부분 쓰촨성 등을 포함한 중국 남부로 이동하여 끝까지 인민해방군에 맞서 대항하였다. 또한 국부천대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이 선포된 1949년 10월 1일 이후에도 지속되어 대략 4개월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본디 중화민국과 그 총통이었던 장제스는 잠시 전열을 재정비한 이후에 본토를 수복하려는 국광 작전(國光計畫)을 세웠으나, 이미 전세는 너무나 열세였기에 결코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후 중화민국은 국가 최우선 정책을 본토 수복에서 국토 방어로 바꾸었으며, 이를 토대로 '대만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다.

배경 편집

1945년 8월 15일에 일본 제국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며 중국 대륙에서 물러나자, 장제스 총통이 이끄는 중화민국 정부와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 세력은 서로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권력을 얻기 위하여 대대적으로 국공 내전을 다시 벌였다. 장제스와 중화민국은 보통 자본가들과 미국의 원조를 받았고, 마오쩌둥은 소련과 시골 농민들의 협조를 받으며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것이다.

국공 내전은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당시 중국 대륙은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고, 특히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북부 지방에서는 군벌들이 저마다 세를 불려 힘을 기르고 있었는데, 장제스를 중심으로 한 중화민국 정부와 마오쩌둥의 공산 세력 둘다 이 군벌들을 제거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각각 군벌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달랐는데, 장제스의 경우에는 이들이 난징의 중앙 정부에 위협이 된다고 느꼈기에 제거하려 든 것이고 마오쩌둥의 경우에는 중국에서 봉건주의를 끝내고 공산화, 사회주의화의 기틀을 닦으려 했던 것이다. 이처럼 이 두 세력들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달랐고, 심지어 일본 제국이 중국을 침략하여 두 세력의 공통의 적이 생겼을 때조차도 서로간에 반목하며 끊임없이 갈등을 겪었다.

 
타이완 섬을 통치하는 중화민국

마오쩌둥의 공산 세력은 일본 제국과의 전투 도중 농촌에서의 영향력을 급격히 늘렸고, 의용군을 모집하며 군대를 백만 명 단위로 늘렸다. 게다가 소련도 중국 전선에 일본군을 대거 묶어두기 위하여 마오쩌둥을 대대적으로 지원하며 군장의 질도 향상되었으며, 인민해방군도 이 시기 동안 일본군과의 전투를 벌이며 경험을 갖춘 정예군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중화민국의 국민당 군대는 미국의 풍부한 물자 지원을 받아 군장의 질도 좋고 상대적으로 군력도 훨씬 강대하였으나, 정치적인 분열과 경험 부족, 그리고 고질적인 무능함으로 인하여 이미 약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1949년 1월, 장제스는 국민당 당수 지위에서 물러났고, 대신 리쭝런이 그 자리에 올랐다. 리쭝런과 마오쩌둥은 평화협상에 들어갔으나, 중화민국의 강성 세력들이 공산 세력들과의 타협을 거부하면서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후 공산 군대는 대대적인 군대를 동원하여 양쯔강 이남으로 중화민국 정부를 밀어붙이기 시작했고, 장제스의 중화민국은 타이완 섬으로 철수하였다. 당시 타이완 섬에는 이미 공군으로 수송된 30만 명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고 한다. 1948년 8월 이후, 중화민국은 공군력을 타이완 섬에 집중시켰고, 80대의 전투기와 3척의 군함을 타이완 섬으로 옮겨놓았다. 1948년 8월과 1949년 12월까지 대략 본토에서 타이완 섬까지 매일 50~60대에 달하는 비행기들이 끊임없이 왕복했다고 전해진다. 장제스는 이와 함께 26척에 달하는 군함을 추가적으로 타이완 섬으로 옮겼고, 내각도 모두 섬으로 이동시켰다. 공산군은 1949년 4월 20일부터 총공격을 실시하였고, 결국 정부군은 그해 8월 쯤에는 타이완 섬, 중국 서부의 일부 섬 지역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영토를 내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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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