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해(金天海, 1898년 5월 10일 ~ ?)는 일본공산당에서 활동했던 공산주의자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치가로, 본명은 김학의(金鶴儀)이다.

김천해
출생1898년 5월 10일
대한제국 경상남도 울산군
사망몰년 미상(1970년 경?)
성별남성 위키데이터에서 편집하기
거주지일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생애 편집

경상남도 울산군(현재는 울산광역시 방어동)에서 태어났다. 양산 통도사에 맡겨져 불도를 수행했다. 1916년 경성의 불교계 학교인 경성중앙학림에 입학했고, 졸업후 울산에 돌아가 야학 교사로 일했다.

일본에서 편집

1920년대초 겨울 일본으로 건너가서 니혼대학 사회과에 입학했다. 1922년 도쿄조선노동동맹회가 결성됐을 때 실행위원을 맡았다. 1925년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재일조선노총)이 결성됐고, 같은해 7월 김천해는 재일조선노총 가나가와현 지방조직(가나가와조선합동노동회)을 결성하고 상무집행위원이 됐다. 1928년 5월 재일본조선노총 중앙집행위원장 겸 쟁의부장에 취임했다. 일본 전체 재일조선인 노동운동의 최고지도자가 된 셈이다. 같은달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1928년 10월에 체포돼 1935년에 출소했다. 1936년에 다시 체포돼 1945년 10월에 석방됐다. 1945년에 재일본조선인연맹이 결성되자 최고 고문이 됐고, 일본공산당 중앙위원에도 선출됐다.

북한에서 편집

1950년 6월 10일 부산으로 밀항했고, 다시 6월 15일 북한으로 향했다. 일본공산당 중앙위원 후계자로는 한덕수를 지명했다. 1951년 11월 조선노동당 제2회 대회에서 당 중앙위원 겸 사회부장에 취임했다. 1970년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에서 중앙위원 명단에서 사라짐. 이후 소식 두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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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