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강황귀비 타타랍씨(端康皇貴妃 他他拉氏, 1873년 1월 15일 ~ 1924년 9월 24일)는 중국 청나라 제11대 군주 광서제측실(側室)이며, 만주 양홍기(鑲紅旗) 출신이다. 본래의 칭호는 근비(瑾妃)이다. 광서제의 다른 후궁 진비(珍妃)는 동복 여동생이다. 시호는 온정(溫靖)이다.

단강황귀비 타타랍씨
端康皇貴妃 他他拉氏
후궁(後宮)
황귀비(皇貴妃)
신상정보
출생일 1873년 1월 15일(1873-01-15)
출생지 청나라 청나라 지린성 창춘
사망일 1924년 9월 24일(1924-09-24)(51세)
사망지 중화민국 중화민국 허베이성 베이핑 쯔진청 융허 궁
(만성 폐렴으로 병사)
왕조 청나라의 기 청나라
가문 청나라의 기 청나라
배우자 청 덕종 광서제(淸 德宗 光緖帝)
자녀
종교 불교

생애 편집

그녀는 16세 시절이던 1889년 광서제후궁으로 간택되었는데 광서제와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으며 광서제가 붕어(崩御)한 이후 청나라 제12대 황제 선통제 시대에도 선통제 푸이(宣統帝 溥儀)의 공경을 받는 등 청나라 황실 여인의 원로로서 예우되었다.

1912년 부의 즉위 후 겸조황고근귀비(兼祧皇考瑾貴妃)의 존호를 받았다. 1913년 3월에는 단강황귀태비(端康皇貴太妃)의 존호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조카 탕스샤푸이의 황후가 되기를 원했으나 탕스샤 대신 다른 여성을 푸이의 비빈으로 추천했다 한다. 대신 그는 몇년 뒤 푸이의 동생 푸제를 탕스샤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1912년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일어나며 청나라가 멸망하자 중화민국 즈리 성 베이징에서 중화민국 만저우 지방 펑톈 성 펑톈으로 퇴출 추방되었다가 1917년 중화민국 허베이 성 베이핑에 귀환하였지만 1920년에는 만성 폐렴에 걸려 투병하다가 4년 후 1924년 중화민국 허베이성 베이핑 쯔진청 융허 궁에서 그곳에서 향년 51세로 훙서(薨逝)하였다.

시신은 후에 숭릉내 비원침 동쪽, 먼저 죽은 여동생 진비의 묘 옆에 안치되었다. 시호는 온정황귀비(溫靖貴貴妃)인데, 1925년 9월 부의가 추서한 사시(私諡)이다.

같이 보기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