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적(萬積, ?~1198년)은 고려의 노비이자 반란 주동자로 만적의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생애 편집

고려 신종 때 당시 권력자인 최충헌의 노비였다. 1198년(신종 1년) 5월[1], 만적은 "경인년[2]과 계사년[3] 이후부터는 천예들이 높은 관직을 많이 차지했으니 장군과 재상이 어째 본래부터 타고난 씨가 있겠는가?"[4]면서 천민들을 모아 봉기하려고 했다. 17(갑인)일[5]에 흥국사에 모여 최충헌 등을 죽이고 노비 장부를 태우려고 했지만[1] 봉기 모의에 참여했던 노비 순정(順定)의 밀고로 만적의 주도로 봉기에 참여했던 100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체포, 강물에 빠뜨리는 방식의 사형을 당하면서 일단락 되었다.

만적의 봉기시도는 한국 역사상 최초의 신분해방운동이라는 데에 역사적 의의가 있다.

만적이 등장한 작품 편집

각주 편집

  1. 『고려사절요』 권14, 신종 1년(1198) 5월조
  2. 의종 24년인 1170년을 가리키며, 무신정변이 일어난 해이다.
  3. 명종 3년인 1173년을 가리키며, 김보당의 난이 일어난 해이다.
  4. "장군과 재상이 어째 본래부터 타고난 씨가 있겠는가?"는 진승이 했던 말과 같다. "陳勝佐之,并殺兩尉。 召令徒屬曰:「公等遇雨,皆已失期,失期當斬。藉弟令毋斬,而戍死者固十六七。且壯士不死即已,死即舉大名耳,王侯將相寧有種乎!」"(『사기』 권48, 「세가」18, 진섭)
  5. 『고려사』 권129, 「열전」42, 최충헌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고려사절요』 권14, 신종 1년(1198) 5월조에 의거한 것이다.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