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왕후(文明王后, ?~?)는 신라 태종무열왕의 왕후로, 이름은 문희(文姬), 아명은 아지(阿之)이다. 소판(蘇判) 김서현(金舒玄)의 차녀로, 김유신의 둘째누이이다. 인물과 지혜가 뛰어났는데, 언니인 보희의 꿈을 사서 김춘추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삼국유사》에서는 훈제부인(訓帝夫人)으로 불린다.

문명왕후
文明王后
신라 태종무열왕의 왕비
신라왕후
재위 654년 ~ 661년
이름
문희(文姬)
별호 훈제부인(訓帝夫人)
시호 문명왕후(文明王后)
신상정보
출생일 610년
사망일 681년
국적 신라
부친 김서현
모친 만명부인
형제자매 김유신, 김흠순, 보희
배우자 태종무열왕
자녀 문무왕
김인문
김문왕
김노차
김지경
김개원
지소공주
종교 불교

설화 편집

문명왕후의 언니 보희서형산(西兄山) 위에서 소변을 보았는데, 그 소변이 서라벌을 가득 채우는 꿈을 꾸었다. 망측한 꿈이라고 여긴 보희는 동생 문희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는데, 문희가 꿈을 사고 싶다고 하여 보희는 비단치마를 받고 꿈을 동생에게 팔았다.

열흘 뒤 김유신의 집에 놀러온 김춘추가 공을 차고 놀다가 옷끈이 떨어졌다. 김유신이 보희를 불러 옷을 꿰매라 시켰는데, 보희가 이를 마다하였고, 문희가 대신 나와 옷끈을 꿰매었다. 김춘추는 문희의 빼어난 미모를 보고 마음이 끌려 그 뒤로 자주 김유신의 집에 들르게 되었고, 문희는 김춘추의 아이를 회임하였다. 김유신은 결혼 전의 처녀가 아이를 배었다고 꾸짖고 주위 사람들에게 일부러 누이를 죽이겠다는 소문을 내었다.

얼마 뒤 선덕여왕이 궁을 나와 남산으로 나들이 행차를 하게 되었는데, 김유신이 여왕의 행차를 기다려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다. 멀리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놀란 여왕이 무슨 일인지를 묻자 신하들이 김유신의 누이가 처녀의 몸으로 임신을 하여 태워죽이려 한다고 고하였다. 선덕여왕이 그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자 듣고 있던 김춘추의 안색이 변했다. 사정을 짐작한 선덕여왕김춘추에게 문희를 구하라고 하였고, 김춘추는 말을 타고 달려가 왕명을 전하고 그녀와 혼인하였다.

설화의 의문점 편집

김춘추는 603년생이고 632년에 선덕여왕이 즉위했을 때에는 서른 살이다. 만약 선덕여왕의 명으로 문희와 결혼했다면, 아이를 낳았을 때는 632년 이후여야할 것이다. 하지만, 김춘추와 문희의 첫번째 아들인 김법민(문무왕)이 626년생으로, 문희가 김법민을 임신했을때는 선덕여왕이 즉위하기 5년전인 진평왕 때라는 것이 된다. 즉, 설화의 시기가 맞지 않음이 드러난다. 또, 김춘추가 문희와 결혼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이유로는 신라 왕족이 아닌 멸망한 가야의 왕족과 결혼한다는 것이 자칫 자신의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이유와 이미 김춘추에게는 첫번째 부인이 있었다는 이유가 있다. 만약, 첫번째 이유가 맞다면 위 설화를 통해 신라 왕족과 가야 왕족의 결혼이라는 극적인 연출을 하려는 목적이 아닐까하고 추측해볼 수 있다. 만약 두번째 이유라면 김춘추의 딸인 고타소의 나이와 대야성에서의 이야기를 통해 첫번째 부인이 있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번째 부인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치 않다.

가계 편집

문명왕후가 등장한 작품 편집

참고 문헌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