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람 폰 에셴바흐

중세 독일의 시인

볼프람 폰 에셴바흐(Wolfram von Eschenbach, 1170년경 – 1220년경)은 독일 중세시대의 작가이다. 여러편의 서사시 작품들과 민네장(Minnesang)을 지었다.

기사로 묘사된 저자 에셴바흐의 삽화, 마네세 필사본 출처
바이에른 왕국막시밀리안 2세가 기증한 볼프람스 에셴바흐에 있는 에셰바흐의 동상

생애 편집

에셴바흐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그에 대한 기록은 없으며 본인의 시작품들이나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의 기록들이 중요한 증거자료이다. 그의 성에서부터 그가 에셴바흐라고 하는 곳 출신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으며, 그의 작품 속의 지형, 지리에 대한 단서들로부터 미루어볼 때 그는 독일의 오버에셴바흐(오늘날의 볼프람스 에셴바흐) 출신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불안정한 방랑 생활을 영위했고 튀링겐에 있는 방백의 궁정에서 자주 머물렀다. 그 곳에서 위대한 서정시인 발터 폰 포겔바이데와 조우한다. 방백의 죽음 이후 볼프람은 1217년 가난 속에서 부인과 자식과 함께 살았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에셴바흐의 프라우엔 교회에서 수장되었다.

작품 편집

에셴바흐는 독일어로 쓰여진 당대 서사시중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 받는 걸작 《파르치팔 (Parzival)》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크레티앵 드 트루아의 《페르스발 (Perceval)》를 개작한 것으로 성배를 주제로 한 독일 문학 작품 중 현존하는 최초의 것이다. 총 16권, 24,840 행의 대서사는 중세에 가장 많이 읽힌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동화, 아더왕, 성배 이야기 등의 소재를 집대성한 것으로 오늘날 약 90편의 필사본이 전해지고 있다. 이후의 성배 이야기들은 대부분 '파르치팔'에서 유래한다.

성배는 가장 고귀한 사람들의 기사적, 기독교적 동족 종교 단체와 보물이고, 이 세상에서 최고의 품위이며 신의 은총의 표시이다. 성배가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했던 잔을 의미한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중에 요셉이 이 잔을 갖고 영국으로 갔는데, 그가 죽은 후에는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잃어버린 신성한 것, 행방불명이 된 성배의 탐색이 중세 문학 특히 아더왕이야기 중 성배이야기의 핵심적 주제가 되었다. 그는 이것으로 세계 문학에서 처음으로 내면에서 파악한 발전소설을 만든 것이다.

다른 작품으로 단편 서사시 '빌헬름'이 있다. 그밖에 약간의 서정시를 남겼다.

참고 문헌 편집

  • 네이버 백과사전
  • 《독일문학사》, 김성곤, 경진출판사, 2009[쪽 번호 필요]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