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니 사다요리

쇼니 사다요리(少弐 貞頼, しょうに さだより)는 일본 난보쿠초 시대(南北朝時代)에서 무로마치 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했던 무장(武将)이자 슈고 다이묘(守護大名)이다.

쇼니 사다요리(少弐貞頼)
무사 정보
시대 난보쿠초 시대(南北朝時代) -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출생 분추(文中) 원년/오안(応安) 5년(1372년)
사망 오에이(応永) 11년6월 20일(1404년 7월 27일)[1]
계명 怡雲本恵[2]
막부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지쿠젠(筑前) ・ 부젠(豊前)의 슈고(守護)
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満)
관위 다자이노쇼니(大宰少弐)
씨족 쇼니씨(少弐氏)
부모 아버지: 쇼니 요리즈미(少弐頼澄)
자녀 미쓰사다(満貞)、요코타케 요리후사(横岳頼房)[3]

약력 편집

겐추(元中) 4년/가케이(嘉慶) 원년(1387년)、규슈 단다이(九州探題) ・ 이마가와 료슌(今川了俊)과 일시 화친을 맺고 지쿠젠국(筑前国)의 슈고(守護)로 돌아왔다.

그러나 료슌의 후임으로 규슈 단다이가 된 시부카와 미쓰요리(渋川満頼)의 명을 따르지 않고 기쿠치 다케토모(菊池武朝)와 동맹을 맺어 반항할 자세를 보였고, 오에이 4년(1397년) 3대 쇼군(将軍)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満)의 명을 받은 오우치 요시히로(大内義弘)나 오토모 지카요(大友親世) 등의 공격으로 일시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4] 오에이 6년(1399년)에 발발한 오에이의 난(応永の乱)으로 요시히로가 패사하고 오우치 씨(大内氏)가 일시 쇠퇴한 것을 계기로 세력을 회복하고 부젠국(豊前国) 슈고 자리를 오우치로부터 빼앗았다.

오에이 11년(1404년) 쇼니 씨는 규슈 단다이를 압도할 정도로 세력을 회복하였으나, 이 해에 사다요리는 병으로 사망하였다. 가독은 아들 미쓰사다(満貞)가 이었다.

각주 편집

  1. 『대일본사료』(大日本史料) 제7편지6 727頁
  2. 『광정사문서』(光浄寺文書)
  3. 『요코타케 계도』(横岳系図)
  4. 『대일본사료』 제7편지3 2항

참고 자료 편집

  • 『아소 문서』(阿蘇文書)
  • 『후지타쓰 가보』(藤龍家譜, 二、龍造寺十二代家氏公)
  • 『오에이 전람』(応永戦覧, 一、大内譜系付義弘威盛之事)
전임
쇼니 요리즈미
제10대 쇼니씨 당주
후임
쇼니 미쓰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