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렬 (1893년)

유승렬(한국 한자: 劉升烈, 1893년 3월 9일~1958년 5월 18일)은 일제강점기군인이었었던,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이었다. 창씨명(일본식 이름)은 에모토 니에쯔(江本 烈)이고, 본관강릉(江陵)이다.

유승렬
국방부 장관 비서실의 특별보좌관
임기 1954년 4월 25일~1954년 6월 16일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함태영
총리 변영태
백한성(임시 서리)
장관 손원일
차관 이호

국방부의 공보관
임기 1954년 6월 16일~1956년 7월 25일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함태영
총리 변영태
백한성(임시 서리)
장관 손원일
김용우
차관 이호
장건식(직무대리)
김용우
강영훈(직무대리)
김종갑

신상정보
출생일 1893년 3월 9일(1893-03-09)
출생지 조선 충청도 공주군
거주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사망일 1958년 5월 18일(1958-05-18) (향년 65세)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학력 대한민국 육군보병학교
경력 손원일 국방장관 비서실 특별보좌관
정당 무소속
본관 강릉(江陵)
배우자 유정렬[1]
자녀 3남 1녀
(장남 유한엽, 차남 유재흥,
외동딸 유대자, 막내아들 유광웅)
친인척 유인숙(친손녀)
유태종(친손자)
종교 불교개신교
군사 경력
복무 일본 제국 육군
대한민국 육군
복무기간 1914년 3월~1945년 8월 15일(일본육군)
1949년 5월~1954년 6월 16일(대한육군)
근무 육군본부 육군참모총장 비서실
육군 경북지구 계엄사령부
연합참모본부
최종계급 일본군 육군 대좌
대한민국 육군 소장
지휘 정일권 육참총장 비서실장
육군 경북지구 계엄사령부 참모장
육군 경북지구 계엄사령부 부사령관
육군 경북지구 계엄사령관
연합참모본부 제3국 국장
연합참모본부 제2국 국장
주요 참전 태평양 전쟁, 한국 전쟁

그는 조선충청도 공주군(지금의 대한민국의 충청남도 공주시) 출신으로, 대한제국 시대에는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에 유학했다. 그 이후 신태영, 이응준, 홍사익 등과 함께 육군중앙유년학교에 진학했다. 1914년에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제26기로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로 임관했다.

유승렬은 조선군사령부에 근무를[2] 하면서 일본군 보병 대좌에 올랐다. 현재의 서울 용산구에 있던 조선 주재 일제 육군 제79연대에서 복무했으며, 1934년을 기준으로 종6위 훈5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국군 창설 후인 1949년에 군 경력자로 다시 육군에 입대하였다. 육군사관학교 제8기 특별과정을 거쳐[3] 대한민국 육군 장교가 되었고, 일본육사 후배인 아들 유재흥과 함께 복무했다. 한국 전쟁 발발 전 육군 제102여단장과 육군 제2사단장(1949년 5월 12일~)[4], 육군 제1사단장, 육군 제3사단장(1950년 4월 22일~)을 역임했다.[5]

한국 전쟁 때는 육군 대령으로 참전하였다. 전쟁 발발 직후 조선인민군낙동강 북쪽을 점령했을 때, 경상남도 지역을 담당하는 경남지구 계엄사령관에 임명되었다.[6] 이후 임시 수도가 있는 경상남도 부산시의 육군 부산지구 계엄사령관으로 모병 업무를 주관했다.[7]

1954년 손원일 당시 국방부 장관의 비서실 특별보좌관을 지내다가 같은 해에 대한민국 육군 소장으로 예편, 이후 국방부 공보관을 1956년까지 두햇동안 지냈고, 1957년 8월 18일 중순경부터는 만성 당뇨증과 만성 폐렴으로 투병하다가 이듬해 1958년 5월 18일에 향년 66세로 사망하였다.

사후 편집

1968년 5월 18일 (1968-05-18), 서울 마포개신교 광탄교회(改新敎 光灘敎會)에서는, 그의 10주기를 추념(追念)키도 하였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군 부문에 아들 유재흥과 함께 선정되었다.

학력 편집

가족 관계 편집

  • 본인 : 유승렬(劉升烈, 1893년생~1958년졸)
  • 부인 : 정열(鄭列, 1899년생~1983년졸)[8]
    • 첫째 아들 : 유한엽(劉漢燁, 1917년생~1948년졸)[9]
    • 둘째 아들 : 유재흥(劉載興, 1921년생~2011년졸)
    • 외동 딸 : 유대자(劉代子, 1928년생~2006년졸)[10]
    • 막내 아들 : 유광웅(劉廣雄, 1935년생~2016년졸)[11]

같이 보기 편집

참고 자료 편집

  • “軍部에 잇는 朝鮮人士官”. 《삼천리》 제6권 (제9호). 1934년 9월. 

각주 편집

  1. 아내 유정렬(劉鄭列, 본명: 정열(鄭列), 1899년생~1983년졸, 청나라 만주 지린 퉁화 출생으로, 친정은 대한제국평안북도의주군경주 정씨 가문의 후손.)은, 1899년 청 제국만저우 지역의 지린퉁화(通化) 출신의 대한제국계 후손 출신이자, 만주 둥베이 지역의 준(準)이주자 출신으로, 1912년 5월 당시에 일본 제국 히로시마히로시마(廣島)에 유학 및 간이(簡易) 이주를 하던 와중에, 일본 제국의 일본군 조선인 육군 장교였던, 이른바 조선충청도공주군의 조선인 청년 출신의 어언 6년 연상남인, 유승렬(劉升烈)을 만나, 어언 3년여 훗날 1915년 1월 1일 (1915-01-01)(을묘년 새해 첫날)에 결혼하여, 그 후 3남 1녀(4남매)를 얻음.
  2. 이규태 (1996년 6월 24일). “[이규태 역사에세이] 조선군 사령부 이야기”. 조선일보. 2010년 8월 2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8월 6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3. “국방부, 李俊植·金錫源 등 군사경력자 9명을 고급장교로 기용”. 평화일보. 1948년 12월 21일. 
  4. “각 여단을 사단으로 승격”. 동아일보. 1949년 5월 20일. 
  5. “參謀副長에 金大領就任”. 경향신문. 1950년 4월 23일. 
  6. “경남지구 계엄사령관에 유승렬대령이 임명”. 민주신보. 1950년 8월 1일. 
  7. “유승렬 부산지구 계엄사령관, 모병 문제에 대해 담화를 발표”. 민주신보. 1950년 8월 23일. 
  8. 1946년 8월 15일 (1946-08-15) 이후부터 성씨까지 바꾸고 개명하여, 유정렬(劉鄭列)이라는 이름으로 불림.
  9. 1917년 5월 28일(1917-05-28) 일본 히로시마 현 히로시마 출생으로, 1945년 8월 15일 (1945-08-15) 광복(을유 해방)이 도래한 이듬해(1946년 3월 5일 (1946-03-05)) 당시, 충청남도 공주 향리를 떠나 미군정 조선 시대 말기의 수도 서울로 귀경(귀거)을 하였으나, 1948년 6월 16일(1948-06-16) 미군정 조선 시대 말기의 수도 서울에서 갑자기 병으로 하세.
  10. 1928년 3월 21일(1928-03-21) 일제 시대 함북 경원 출생. 1938년 4월 21일 (1938-04-21), 직족들과 함께 평북 신의주 향리를 떠나 일본 도쿄(東京)로 건너가 있다가, 일본 도쿄(東京)에서 1941년 3월 14일 (1941-03-14) 소학교 졸업 4년 후, 1945년 8월 15일 (1945-08-15) 광복(을유 해방)이 도래한 이듬해(1946년 3월 25일 (1946-03-25)) 당시, 미군정 조선 시대 말기의 수도 서울로 귀국(귀거)을 하여, 훗날 성혼 및 출가(1947년 결혼 및 슬하 1남 4녀 5남매 득)까지 하는 등등으로, 1946년 이후부터 어언 60년 동안 삼팔선의 남쪽의 서울특별시에 정주하는 등의 그 일평생토록 2006년 4월 12일(2006-04-12), 하세할때까지 대한민국의 국민의 일원으로 지냄.
  11. 1935년 5월 11일(1935-05-11) 일제 시대 평북 신의주 출생. 1938년 4월 21일 (1938-04-21), 직족들과 함께 신의주를 떠나 일본 도쿄(東京)로 건너가 있다가, 일본 도쿄(東京)에서의 소학교 4학년 시절이던 1945년 8월 15일 (1945-08-15) 광복(을유 해방)이 도래한 이듬해(1946년 3월 25일 (1946-03-25)) 당시, 미군정 조선 시대 말기의 수도 서울로 귀국(귀거)을 하여, 삼광국교 5학년 1학기로 전입(편입)을 하여 1948년 3월 9일 (1948-03-09), 삼광국교졸업하여, 상급학교까지 진학 훗날 성혼(1969년 결혼 및 슬하 1남 2녀 3남매 득)까지 하는 등등으로, 1946년 이후부터 어언 70년 동안 삼팔선의 남쪽의 서울특별시에 정주하는 등의 그 일평생토록 2016년 6월 24일(2016-06-24), 하세할때까지 대한민국의 국민의 일원으로 지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