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당의 파벌

일본 자유민주당 내에 존재하는 세력 집단
(자유민주당 파벌에서 넘어옴)

이 문서는 일본 자유민주당의 파벌에 대해 다룬다.

통칭 편집

파벌들은 정식 명칭이 존재하지만 언론 등에선 각 파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의원의 성씨를 따서 파벌의 명칭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파벌을 다른 명칭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파벌 회장이 물러나고도 후임 회장이 결정되지 않으면 물러난 회장의 성씨에 '구' 자를 붙여 파벌 이름으로 쓰기도 한다. 예시로 정책과학연구소의 경우 구 와타나베파 혹은 무라카미파로 불렸고 굉지회도 구 가토파 혹은 오자토파로 불렸다.

파벌 회장이 총재가 되면 파벌을 이탈하는 관행이 있다. 이 경우 파벌 회장직은 최고 간부가 대행하지만 이 경우에 호칭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시마 다다모리처럼 중의원 의장 재임 뒤 정계를 은퇴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일찍 파벌을 물려주고 이름도 바뀔 때가 있다.

다나카파는 조금 독특한 사례인데 다나카 가쿠에이는 자민당의 막후 실세이긴 했지만 파벌 회장으로 취임한 적은 없었다. 파벌 회장은 니시무라 에이이치니카이도 스스무가 맡았고 다나카는 1976년 록히드 사건의 영향으로 자민당을 아예 탈당한 적도 있었지만 다나카가 파벌의 전권을 쥐고 있었기에 언론은 항상 다나카파라고 불렀다.

조직 편집

자민당의 당칙에는 파벌에 대한 규정이 없지만 각 파벌은 대체로 비슷한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파벌의 영수를 회장이라 부르며 회장은 파벌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조각·개각 때 각료와 당직을 배분하고 정치 자금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 외에 중요 간부로는 회장대행, 좌장, 사무총장 등이 있다.

역사 편집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일본의 보수 정치권은 입헌정우회의 계보를 이은 일본자유당입헌민정당의 계보를 이은 일본진보당, 그리고 일본협동당으로 재편돼서 출발했다. 이후 세 정당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1955년 보수합동을 통해 자유민주당이라는 단일 보수 정당을 탄생시켰다. 이 과정에서 인맥·경력·사상·정책 등이 가까운 의원들끼리 모이면서 형성된 것이 현재 자민당 파벌의 뿌리다.

1956년 12월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를 계기로 8개 파벌이 정립되었지만 1960년 이케다 하야토가 총재가 될 무렵을 전후로 하여 신안보조약 발표, 전국민 사회보험 제도 등의 정책 문제와 총재직을 둘러싼 권력 투쟁이 파벌 간의 극심한 대립을 낳았다. 당시 시행되던 중선거구제는 이런 파벌 간의 대립을 키우는데 공헌했고 중선거구제에 대응하지 못한 소규모 파벌들은 하나씩 도태되어 1970년대에는 5개로 수렴되었다. 당시의 5대 파벌은 십일회(후쿠다파),목요연구회(다나카파), 굉지회(오히라파), 춘추회(나카소네파), 정책연구회(미키파)였다.

5대 파벌이 자민당을 지배하던 때에는 파벌 회장들이 돌아가며 한 번씩 총재 자리를 차지했으며 그만큼 파벌 간의 항쟁도 치열했다. 1980년 오히라 마사요시 총재의 급서 이후 스즈키 젠코가 처음으로 파벌 회장이 아니면서 총재직에 오르는 이례적인 현상이 일어났는데 스즈키 젠코 내각은 5대 파벌을 모두 참여시키는 총주류 체제를 구축했고 이로써 파벌 간 항쟁은 다소 잠잠해졌다.

1989년 다케시타 노보루 총재를 비롯한 여러 파벌 회장들과 유력 정치인들이 많이 연관된 리크루트 사건을 계기로 파벌 회장이 아니었던 우노 소스케가 총재로 취임하는 일이 다시 일어났다. 그 이후에도 1989년 가이후 도시키, 1993년 고노 요헤이, 1995년 하시모토 류타로 등 파벌 회장이 아닌 사람이 총재로 당선되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이는 선거를 앞두고 총재가 당을 대표하는 얼굴로서의 가치에 무게가 실리는 쪽으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다케시타의 파벌인 경세회의 지배는 계속 이어졌다.

파벌의 역할도 다소 달라졌는데 1990년대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 비례대표 병립제로 선거제도를 고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중앙당이 강력한 공천권을 행사하게 되면서 파벌은 총재 자리를 다투는 집단에서 각료와 당직을 차지하는 역할로 바뀌었고 이는 파벌 회장이 반드시 총재직을 차지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었다. 실제로 2001년 총재가 된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2012년 총재가 된 아베 신조는 장기 집권했고 당내 최대 파벌 소속으로 파벌에 대한 영향력이 강했지만 파벌 회장에는 취임하지 않은 채 총재직을 수행했다.

매파적 성향이 강한 십일회와 비둘기파적 성향이 강한 목요연구회가 전통적인 양대 파벌을 이루었지만 십일회도 적극 재정을 통한 경기 진작을 추구하는 등 다채로운 특징을 가졌다. 굉지회는 명문가가 중심이 돼 구성되었지만 요소요소에 윤활유 역할을 주로 맡았다. 춘추회는 거당 태세를 지향한 역사가 있으며 정책연구회는 독자 노선을 지향한 역사가 있다. 과거에는 보수본류와 보수방류의 구별이 있었지만 지금에 와선 사실상 의미를 상실했다.

5대 파벌 외에도 아시다파, 오아사파, 기타무라파, 히로카와파 등 소규모 파벌이 존재했다. 1970년대 다나카파와 후쿠다파 사이에 각복전쟁이 일어나면서 다나카파가 득세했고 총재 자리를 독식하고자 하자 이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 젊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청람회가 결성된 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고노 요헤이의 정치공학연구소, 고사카 도쿠사부로의 신풍정치연구회, 나카가와 이치로의 자유혁신동우회, 이시하라 신타로의 여명의 모임, 다케무라 마사요시의 유토피아정치연구회, 다케베 쓰토무의 새로운 바람 등의 소규모 파벌이 존재했다.

변용 편집

×는 단절, ()는 이탈, 「」는 정식 명칭, 【 】는 현재 통용 명칭이다.

보수본류
보수방류
  • 노조미・무파벌연락회 계열
    • 고사리새싹회」이시바 그룹 → 「수월회」이시바파 → 【이시바 그룹】

계보 편집

보수본류보수방류
굉지회 계열목요연구회 계열십일회 계열춘추회 계열정책연구회 계열
요시다오가타오노기시하토야마마쓰무라미키
이케다이시이사토고노이시바시
후지야마
마에오후나다무라카미후쿠다가와시마모리나카소네마쓰무라파미키파
소노다이시다
오히라미즈타시나
다나카호리
스즈키나카가와고모토
미야자와다케시타니카이도아베
와타나베
오부치하타오자와가토미쓰즈카
분당→
신생당
가토고노신생당
자유당
모리가메이 그룹무라카미야마사키
하시모토보수당
보수신당
무라카미・가메이파→
에토・가메이파
고무라
호리우치오자토
민주당복당→
니카이
가메이파
니와고가다니가키쓰시마이부키
고가파아소마치무라
누카가
기시다다니가키 그룹니카이파이시하라오시마
민진당이시바호소다산토
아소파
다케시타입헌민주당
모테기입헌민주당이시바 그룹아베모리야마

파벌 일람 편집

명칭 통칭 회장 중의원 의원 수 참의원 의원 수 총 의원 수 비고
지공회 아소파 아소 다로 40 15 55 굉지회와 정책연구회의 흐름을 잇는 파벌.
파벌 재편에 의욕적이며 대(大)굉지회 구상을 주장하고 있다.
헤이세이 연구회 모테기파 모테기 도시미쓰 31 17 48 자유당사토 에이사쿠를 뿌리로 하는 파벌.
지수회 니카이파 니카이 도시히로 30 9 39 일본민주당의 고노 이치로를 뿌리로 하는 파벌.
무파벌 - - 157 76 233
합계 259 117 376 -

쇠퇴와 해소의 움직임 편집

창당을 전후한 시기에 뿌리를 내린 자민당의 파벌은 많은 폐해를 누적해왔기에 파벌 해소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1963년 가을 이케다 하야토 총재 때 자민당 조직조사회의 당 개혁과 파벌 해소에 관한 이른바 미키 답신을 통해 조건 없는 파볼의 해소가 제안됐다. 정책 파벌이나 친목 파벌의 발생은 자민당처럼 큰 규모의 정당이라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지금의 파벌은 흡사 독립 정당과 같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파벌 해소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록히드 사건의 여파로 1976년 말 총선에서 대패한 자민당은 다음 해 1월 당대회와 4월 임시 당대회에서 총재 후보 예비 선거에 당원 전체와 소속 의원들이 참여하도록 하여 파벌의 영향력을 억제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자본과 인사 중심의 파벌에서 정책 중심의 정책집단으로의 전환을 꾀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성과는 미미했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치러진 총재 선거에서 파벌이 다시 부활했다.

1979년 총선에서 다시 패배하고 40일 항쟁으로 당내 파벌 간 대립이 심화하자 1980년 6월 당 기본문제운영 등에 관한 조사회가 파벌의 폐해를 지적하며 파벌 해소를 다시 주장했다. 하지만 불과 나흘 전에 치러진 총선에서 자민당이 유례 없는 대승을 거두면서 파벌 해소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하면서 의석이 크게 줄었고 각 파벌에서 이탈하는 의원이 잇따랐다. 2010년에는 신당 창당과 공천 싸움을 둘러싸고 여전히 이탈자가 잇따랐고 2011년에는 급기야 무파벌 의원이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2012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과거의 의석 수를 회복하면서 각 파벌은 다시 내실을 다졌다.

2024년 1월 정치 자금 파티를 둘러싼 비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굉지회, 세이와 정책연구회가 파벌 해소를 결정했다. 하지만 종래의 파벌이 정책 집단으로 개편되어 사실상 존속하는 형태였다. 한편 당내 무파벌 의원 연맹은 자민당에 존재하는 모든 파벌의 해소를 제창했다. 근미래정치연구회와 파벌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있던 유린회도 이에 호응해 파벌 해소를 선언했지만 지공회와 헤이세이 연구회는 파벌 존속 방침을 세웠다.

평가와 폐해 편집

파벌 정치가 자민당에 다양성을 가져왔다는 평가가 있다. 다양한 가치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반을 닦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이는 수많은 정치 변동에도 불구하고 자민당이 장기 집권하며 광대한 지지 기반을 유지하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초선 의원들을 위한 스터디 그룹 및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파벌은 회장과 간부에 의해 주도되다 보니 자금과 조직력이 부족한 소장파 의원들은 파벌의 뜻에 좌우되기 쉬워 소신있는 정치를 펼칠 환경이 마련되지 못했다. 또한 파벌 간 항쟁이 일어나면 총재라 하더라도 다른 파벌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어 당이 단합하여 행동하기 어려웠다. 원로 정치인들에 의한 지배, 밀실 정치, 금권 정치의 원인으로도 지목받으며 각복전쟁과 같은 파벌 항쟁은 정책이 등한시되고 당의 일체화를 저해하기도 했다.

참고 문헌 편집

  • 와타나베 쓰네오 (1958년). 《派閥―保守党の解剖》 [파벌 - 보수당 해부]. ISBN 978-4-335-46032-6. 
  • 도가와 이사무 (1981년). 《小説吉田学校》 [소설 요시다 학교]. 가도카와 문고. ISBN 978-4-313-75121-7. 
  • 이세리 히로후미 (1988년 9월). 《派閥再編成―自民党政治の表と裏》 [파벌 재편성 - 자민당 정치의 앞과 뒤]. 중앙공론. ISBN 978-4-121-00892-3. 
  • 야마모토 시치헤이 (1989년 9월). 《「派閥」の研究》 [「파벌」의 연구]. 문게이슌주. ISBN 978-4-167-30608-3. 
  • 아사히 신문 정치부 (1992년 2월). 《竹下派支配》 [다케시타파의 지배]. 아사히 신문사. ISBN 978-4-022-56412-2. 
  • 아사히 신문 정치부 (1993년 7월). 《権力の代償》 [권력의 대상]. 아사히 신문사. ISBN 978-4-022-56545-7. 
  • 다자키 시로 (1995년 12월). 《経世会死闘の七十日》 [경세회 사투의 70일]. 고단샤. ISBN 978-4-062-07231-1. 
  • 이시하라 신타로 (1999년 1월). 《国家なる幻影―わが政治への反回想》. 분게이슌주. ISBN 978-4-163-54730-5. 
  • 다자키 시로 (2000년 11월). 《竹下派死闘の七十日》 [다케시타파 사투의 70일]. 분게이슌주. ISBN 978-4-167-17402-6. 
  • 다케시타 노보루 (2001년 1월). 《政治とは何か―竹下登回顧録》 [정치란 무엇인가 - 다케시타 노보루 회고록]. 고단샤. ISBN 978-4-062-10502-6. 
  • 아사카와 히로타다 (2001년 5월). 《人間 小泉純一郎―三代にわたる「変革」の血》 [인간 고이즈미 준이치로 - 삼대에 걸친 「혁명」의 피]. 고단샤. ISBN 978-4-062-73218-5. 
  • 이와세 다쓰야 (2002년 2월). 《われ万死に値す―ドキュメント竹下登》 [나는 만 번 죽어 마땅하다 - 다큐멘터리 다케시타 노보루]. 신초샤. ISBN 978-4-101-31031-2. 
  • 다자키 시로 (2004년 12월). 《梶山静六―死に顔に笑みをたたえて》 [가지야마 세이로쿠 - 죽은 이의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고단샤. ISBN 978-4-062-12592-5. 
  • 이시하라 신타로 (2016년 1월). 《天才》 [천재]. 겐토샤. ISBN 978-4-344-42692-4. 
  • 무라카미 세이이치로 (2016년 6월). 《自民党ひとり良識派》. 고단샤. ISBN 978-4-062-88375-7. 
  • 나카키나 고지 (2017년 4월). 《自民党―「一強」の実像》 [자민당 - 「1강」의 실상]. 중앙공론. ISBN 978-4-121-024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