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체임벌린

조지프 체임벌린(영어: Joseph Chamberlain, 1836년 7월 8일 ~ 1914년 7월 2일)은 영국의 정치가이자 제국주의 주창자이다. 1851년 스코틀랜드 곡물소에서 일하고, 곧이어 1854년 에든버러 대학에 입학해 1857년 졸업했다. 1858년 해군에 잠시 입대하기도 하고 1860년 기업계에 투신했다.

조지프 체임벌린
출생1836년 7월 8일(1836-07-08)
잉글랜드 런던 캠버웰
사망1914년 7월 2일(1914-07-02)(77세)
잉글랜드
사인심장마비
성별남성
국적영국
직업기업가, 정치가
자녀오스틴 체임벌린, 네빌 체임벌린

사업 시절 편집

그는 사업에서 제일 유명한 금융회사 총재로 일하고 그 뒤 은행장으로 일했다. 그 뒤 사업부부장을 거쳐 언론국장으로 일했다.

공무원 시절 편집

공무원 때는 자파 석유 회사를 창설하고, 의정담당장관 및 국무 장관을 거쳐 토지 관리사로 일했고, 곧이어 은행 금융 장관과 군무 장관을 거쳐 정계에 투신했다.

정치인 시절 편집

그는 버밍엄 시장을 거쳐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투신하고 곧이어 글래드스턴 내각에서 공무 장관으로 재직하다가 내무장관과 농무 장관을 거쳐 상무장관, 식민지 장관, 재무 장관을 거친 뒤 자유당을 탈당하고 자유 통일당을 결성하고 보수당과 연합하여 당수가 되고, 그 다음 보수당 제1서기로 임명되었다. 그 뒤 보수당 전국구 위원장이 되었다.

외교관 시절 편집

외교관 시절, 그는 하와이 국무 사무소 소장을 거쳐 베이징 국무 사무소 소장을 역임했고 곧이어 외무부장관과 교통부장관 및 사회부장관을 거쳐 우파 동맹 제 2서기로 임명되었다. 농림부차관을 거친 뒤 프랑스 대사, 미국 대사를 거쳐 내무부차관을 거쳐 재무부장을 거친 뒤에는 체신국장, 보건장관, 재무상, 육군경리감을 거쳐 하원의장으로 임명되었다. 국민부장관을 거쳐 국민장관으로 일했으나 그 뒤 퇴역군인담당장관을 거쳐 자유통일당, 보수당 연합회 제3서기로 임명되었다. 곧이어 중의원을 거쳐 중의장으로 당선되었다.

마지막 정치 시절 편집

그 뒤 자유통일당을 분열시켰다가 다시 총선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고 내무상, 국방상을 겸임한 뒤, 백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