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왕후

조선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 김씨(哲仁王后 金氏, 1837년 4월 15일(음력 3월 23일 ~ 1878년 5월 31일(음력 5월 12일))는 조선 철종의 왕비이자 대한제국의 추존 황후이다. 본관은 신안동(新安東), 휘호명순휘성정원수령경헌장목철인왕후(明純徽聖正元粹寧敬獻莊穆哲仁王后). 대한제국 때에 철인장황후(哲仁章皇后)로 추존되었다.

철인왕후
哲仁王后
조선 철종의 왕비
대한제국의 추존 황후
재위 1851년 9월 25일 ~ 1863년 12월 8일 (음력)
전임 효정왕후 홍씨
후임 명성황후 민씨
조선의 대비
재위 1863년 12월 13일 ~ 1878년 5월 12일 (음력)
전임 명헌대비 홍씨 (효정왕후)
후임 -
이름
별호 철인장황후(哲仁章皇后)
시호 철인(哲仁)
존호 명순휘성정원수령(明純徽聖正元粹寧)
휘호 경헌장목(敬獻莊穆)
전호 효휘전(孝徽殿)
신상정보
출생일 1837년 4월 15일(1837-04-15) (양력)
출생지 조선 한성부 순화방 사제
사망일 1878년 5월 31일(1878-05-31)(41세) (양력)
사망지 조선 한성부 창경궁 양화당
가문 신안동
부친 영은부원군 김문근
모친 흥양부부인 여흥 민씨
배우자 철종
자녀 1남
원자 이융준
능묘 예릉(睿陵)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서삼릉)

생애 편집

돈녕부영사 영은부원군 김문근과 흥양부부인 여흥민씨 사이에 태어나 1851년 왕비(王妃)에 책봉되었다.

본래 그녀가 왕비가 된 것은 신 안동 김씨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비가 없던 철종에게 자기 집안의 사람을 왕비로 맞아들이도록 해, 당시 조정을 장악하고 자신들의 부를 축적시키기 위한 의도였다.

철종이 승하한 후 고종 때에 대비(大妃)가 되었고, 1878년 창경궁 양화당에서 42세로 죽었다. 철인왕후는 평소 친정을 두둔하지 않았고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말이 적고 자신의 감정을 내면에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남편 철종 사이에서 1858년 원자(元子) 융준(隆俊)을 낳았으나 별세하였다.

가족 관계 편집

본가 안동 김씨(安東 金氏)

  • 조부 : 목사 김인순(牧使 金麟淳, 생몰년 미상)
  • 조모 : 정부인 신씨(貞夫人 申氏, 생몰년 미상)[1]
    • 백부 : 한성부판윤 김수근(漢城府判尹 金洙根, 1798~1854)
    • 백모 : 정부인 풍양 조씨(貞夫人 豐壤 趙氏, 생몰년 미상)[2]
    • 아버지 : 영돈령부사 증 의정부 영의정 영은부원군 김문근(領敦寧府事 贈 議政府 領議政 永恩府院君 金汶根, 1801~1863)
    • 친어머니 : 흥양부부인 여흥 민씨(興陽府夫人 驪興 閔氏, 미상~1872)
    • 어머니 : 연양부부인 연안 이씨(延陽府夫人 延安 金氏, 1799~1824)
  • 외조부 : 미상
  • 외조모 : 미상
  • 남동생 : 예조판서 김병필(禮曹判書 金炳弼, 1839~1870)
  • 올케 : 미상

왕가(王家 : 전주 이씨)

  • 시조부 : 충정공 은언군 이인(忠貞公 恩彦君 李䄄, 1754~1801)
  • 시조모 : 상산군부인 진천 송씨(常山郡夫人 鎭川 宋氏, 1753~1801)[3]
    • 시아버지 : 제23대 순조숙황제(純祖肅皇帝, 1790~1834)
    • 시어머니 : 순원숙황후 김씨(純元肅皇后 金氏, 1789~1857)
    • 친시아버지 : 전계대원군 이광(全溪大院君 李㼅, 1785~1841)
    • 친시어머니 : 용성부대부인 용담 염씨(龍城府大夫人 龍潭 廉氏)
      • 남편 : 제25대 철종장황제(哲宗章皇帝, 1831~1864) - 대한제국 추존황제
        • 아들 : 원자 융준(元子 隆俊, 1858 11 22(음력 10 17) ~ 1859 05 25(음력 04 23)

관련 작품 편집

드라마 편집

각주 편집

  1. 신일식(申日式)의 딸.
  2. 조진택(趙鎭宅)의 딸.
  3. 송낙휴(宋樂休)의 딸.
전임
효정왕후
조선 역대 왕후
1851년 ~ 1863년
후임
명성황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