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위샹(중국어: 馮玉祥, 1882년 11월 6일 ~ 1948년 9월 1일)은 중화민국군인정치가이며 감리교 신자이다. 아명(兒名)은 펑지산(馮基善)이며 자(字)는 환장(焕章)이다.

펑위샹
馮玉祥
중화민국국가원수권한대행
임기 1927년 4월 18일 ~ 1927년 6월 18일
전임 웰링턴 쿠
후임 장쭤린

중화민국군정부부장
임기 1928년 10월 8일-1929년 3월
후임 녹종린 (대리)
총리 행정원원장

중화민국행정원부원장
임기 1928년 10월 28일-1930년 10월 11일
전임 (신설)
후임 웰링턴 쿠
총리 행정원원장

신상정보
출생일 1882년 11월 6일(1882-11-06)
출생지 청나라 안휘성 소현
거주지 중화민국 허베이 성 베이핑
사망일 1948년 9월 1일(1948-09-01)(65세)
사망지 소련 흑해 공해상
학력 중화민국 남경국방참모학교
경력 중국국민당 당무위원 겸 군사대표행정위원
정당 무소속
배우자 류더전(사별), 리더취안(재혼)
자녀 3남 6녀
친인척 차이쩌민(맏사위)
류위린(처종질)
종교 유교(성리학) → 개신교(감리회)
군사 경력
복무 국민혁명군
복무기간 1896년 3월-1938년 12월 3일
최종계급 일급상장
주요 참전 신해혁명
호국전쟁
베이징 정변
중원대전
중일 전쟁

생애 편집

중국 청나라 안휘성 합비시 소호시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청나라 안후이성 허페이를 거쳐 청나라 즈리 성 바오딩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1906년에 바오딩 무비학당을 나오면서 본격 군관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이미 군관 임관 4년 전이었던 1892년 류더전(劉德貞)과 결혼하였다가 1923년 사별 후 1925년 리더취안(李德全)과 재혼하였다. 초기에 군벌이 되어 자신의 부대를 이끌며 1924년에 국민군으로 부대를 개편한 뒤 만주의 군벌 장쭤린(張作霖)과 내전을 벌이다가 패배했다. 이 와중에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도 언급되는 실제 장면인 청 황실자금성에서 퇴출시키는 장면도 실제 사건으로, 펑위샹의 국민군 부대가 주도한 일이었다.

이후 그는 1927년 4월 18일부터 1927년 6월 18일을 기하여 장쭤린에게 중화민국 국가원수 권한대행 직위를 위임할 때까지 중화민국 국가원수 권한대행을 또다시 지냈고 이후 중앙 권력 분야에서 평생 야인 신세를 지냈지만 장제스(蔣介石)에게 협력을 하면서 군사 세력을 키워 1928년산시성 군벌 옌시산(閻錫山)과 함께 북경을 점령했으나 1929년국민당에 대한 독립 선언으로 1930년 중원 대전에서 패배해 추방되었다. 그 후에도 중일 전쟁 때 참전했으나 지지를 얻지 못하고 1941년 국민당을 마지막 탈당 선언 후 1947년미국으로 건너갔다.

1948년 9월 1일, 중국 공산당의 초청으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1차전체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소련 선박을 타고 귀국하던 중 흑해 연안의 오데사 인근에서 발생한 선박 화재로 인하여 딸(막내딸 펑샤오다)과 함께 사망했다. 타살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이를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1] 중국 공산당에서는 "선한 군벌"로 인정하여 1953년 태산에 매장하였다.[2]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외부 링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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