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

한국로마 가톨릭 성인은 모두 103명이며 조선 정부의 박해로 순교한 가톨릭 신자들이다. 이들 중 79위는 1839년 기해박해1846년 병오박해의 순교자로 1925년 7월 5일로마에서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나머지 24위는 1866년 병인박해의 순교자로 1968년 10월 6일로마 교황청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었다.[1] 이들 103위 복자 모두는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 품에 올랐다. 이들의 시성 과정에는 시성의 필수 조건인 기적 심사가 모두 면제되었으며, 시성식은 수 세기 만에 처음으로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다른 곳(여의도공원)에서 이뤄졌다. 103위 한국 순교 성인 대축일은 9월 20일이다.

103위 한국 순교 성인
'
교파천주교
시복1925년 7월 5일(기해박해 순교자 70위 및 병오박해 순교자 9위)
1968년 10월 6일(병인박해 순교자 24위) 교황 비오 11세(기해박해 순교자 70위 및 병오박해 순교자 9위)
교황 바오로 6세(병인박해 순교자 24위)
시성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축일9월 20일

성인 목록 편집

103위 한국 순교 성인 편집

한국의 시복시성 운동 편집

  • 2014년 8월 16일에 "조선왕조 치하의 순교자와 증거자" 제1차 시복식(윤지충 바오로를 포함한 순교 복자 124위)을 거행했으며,[2] 시성을 추진하고 있다.[3] 그리고 2015년부터 5월 29일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로 지내고 있다.
  • 2015년 기준으로, 최양업 신부의 시복 시성을 추진하고 있다.[4]
  • 2015년 기준으로, "조선왕조 치하의 순교자와 증거자" 제2차 시복 시성 (이벽 요한 세례자를 포함한 순교자 133위) 을 추진하고 있다.[5]
  • 2015년 기준으로, "근현대 신앙의 증인" 시복 시성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를 포함한 순교자 81위) 을 추진하고 있다.[6]
  • 2015년 기준으로,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덕원의 순교자" 시복 시성(신상원 보니파시오와 김치호 베네딕도를 포함한 순교자 38위)을 추진하고 있다.[7]

각주 편집

  1.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시복 시성 과정과 의미”. 2014년 10월 1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4년 10월 12일에 확인함. 
  2. 1945년 해방 후, 한국 천주교가 단독으로 추진한 시복 시성이어서, 조선왕조 치하의 순교자와 증거자 제1차 시복 시성이라고 부른다. 1984년 5월 6일에 시성된 순교자들은, 한국 천주교가 단독으로 추진한 것이 아니다. 1800년대부터, 즉 조선왕조 치하에 있을 때부터 시복 시성을 추진했기 때문에 "조선왕조 치하의 순교자와 증거자 제1차" 라고 부르기가 어색하다.
  3. “124위 시복 시성 과정”. 2014년 8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9월 18일에 확인함. 
  4. “진행 상황”. 2016년 3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9월 18일에 확인함. 
  5. “진행 상황”. 2015년 4월 2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9월 18일에 확인함. 
  6. “진행 상황”. 2015년 4월 2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9월 18일에 확인함. 
  7. 시복 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