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정성황후 박이제길특씨(孝靜成皇后 博爾濟吉特氏, 가경(嘉慶) 17년 5월 11일(1812년 6월 19일) ~ 함풍(咸豊) 5년 7월 9일(1855년 8월 21일))는 청나라 8대 황제인 선종 도광제의 후궁이자 추존 황후이다. 성은 보르지긴, 형부원외랑을 지낸 화량아(花良阿)의 딸이다. 청나라 황제의 생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후궁으로서 후대 황제에 의해 황태후(皇太后)로 봉숭되고 황후(皇后)로 추존된 유일한 여성이다. 최종 시호는 효정강자의소단혜장인화신필천무성성황후(孝靜康慈懿昭端惠庄仁和慎弼天撫聖成皇后)이다.

효정성황후
효정성황후
효정성황후
황후
재위 사후 추존
전임 효전성황후 뉴호록씨(孝全成皇后)
후임 (추존)효덕현황후 살극달씨(孝德顯皇后)
황태후
재위 1855 - 1855
전임 효화예황후 뉴호록씨(孝和睿皇后)
후임 효덕현황후 뉴호록씨(孝貞顯皇后)
이름
소청(少晴)
별호 강자황태후(康慈皇太后)
시호 효정강자의소단혜장인화신필천무성성황후(孝靜康慈懿昭端惠莊仁和愼弼天撫聖成皇后)
신상정보
출생일 1812년 6월 19일
사망일 1855년 8월 21일(1855-08-21) (향년 43세)
배우자 청나라 제8대 황제 도광제
자녀 황차남 순화군왕 혁강(奕綱)
황3남 혜질군왕 혁계(奕繼)
황6녀 수은고륜공주(壽恩固倫公主)
황6남 공충친왕 혁흔(奕訢)

생애 편집

도광제 즉위 초년에 입궁하여 귀인(貴人)으로 책봉됐다. 도광 6년(1826년), 15세의 나이로 회임하여 황2남인 혁강(奕綱: 순화군왕으로 추증)을 낳고 빈(嬪)으로 승봉했다. 다음 해인 도광 7년에 혁강이 사망하여 이를 위로하는 차원으로 비(妃)로 승봉되었다. 도광 9년에 혁계(奕繼: 혜질군왕으로 추증)를 출산, 도광 10년에 도광제의 황6녀(훗날 수은고륜공주로 책봉)를, 도광 12년에 황6남 혁흔(奕訢: 공친친왕으로 책봉, 훗날의 공친왕)을 출산했다. 도광 14년에 황귀비 뉴호록 씨(효전성황후)가 황후로 책립되면서 이를 기념해 정비(靜妃)로 있던 박이제길특 씨도 특진하여 귀비(貴妃)로 승봉했다.

도광 20년, 효전성황후가 급서하자 차기 황후로서 황귀비(皇貴妃)로 진봉하여 육궁을 통솔했는데, 청나라의 황귀비는 황후가 사망했을 시 상례(喪禮)를 마치기까지 차기 황후 내정자를 봉작해 황후 대리직을 수행토록 하는 작위이기도 했다. 그러나 각별히 사랑했던 효전성황후의 죽음에 깊이 애도한 도광제효전성황후의 상례를 마친 뒤에도 황후를 책립치 않아 결국 도광제가 서거하기까지 6년 간 황후의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도광제를 이어 황위에 오른 9대 문종 함풍제(효전성황후의 아들)는 황귀비 보르지긴 씨를 사실상 황태후(皇太后)의 예우로 받들어 효자황귀비(孝慈皇貴妃)로 존호를 가상했는데[1], 호(號)에 효(孝)를 쓸 수 있는 건 후(后)에게 한정된다.[註 1]

함풍 5년 7월, 그녀가 병환으로 위독해지자 함풍제는 그녀를 황태후로 존봉토록 하여 강자황태후로 올렸으며[2][3], 9일 뒤 그녀가 44세(만 43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황후로 추존했다. 이때 그녀에게 추시된 시호는 효정강자필천보성황후(孝靜康慈弼天輔聖皇后)로, 도광제의 다른 황후들과는 달리 시호의 마지막에 도광제의 마지막 시호인 성(成)이 더해지지 않았다.[4][5] 이는 명나라에서 서후(庶后)를 추존하던 형식을 차용한 것으로, 가까이는 청의 3대 황제인 세조 순치제의 서후(庶后) 효헌황후 동악 씨가 그녀의 정통성을 부정한 강희제로 인해 순치제의 시호 마지막 글자를 받지 못한 바 있다.[註 2] 이후 10대 황제인 목종 동치제가 즉위하여 그녀에게 시호를 증시하여 시호에 의소단혜(懿昭端惠)와 도광제의 시호 마지막 글자인 '성(成)'을 추가하고 그녀의 신주를 태묘(太廟)에 부묘하여 정식 황후로 추존했다.[6][7] 훗날 청의 마지막 황제인 12대 공종 선통제 때 시호가 증시되어 최종 시호는 효정강자의소단혜장인화신필천무성성황후(孝靜康慈懿昭端惠庄仁和慎弼天撫聖成皇后)이다.

기타 편집

함풍 2년(1852년) 함풍제에게 신붓감을 골라주었는데 이 두 사람이 동태후와 서태후로 유명한 효정현황후효흠현황후이다.

가족 편집

  • 아버지 : 박이제길특 화량아(博尔吉济特 花良阿)
  • 남편 : 청 8대 황제 선종 도광제 애신각라 민녕(愛新覺羅 旻寧)
    • 장남 : 황2남 순화군왕 혁강(奕綱) - 조졸
    • 차남 : 황3남 혜질군왕 혁계(奕繼) - 조졸
    • 장녀 : 황6녀 수은고륜공주 - 이름 불명, 도광 25년 부찰 경수(富察 景壽)에게 하가
    • 삼남 : 황6남 공친친왕 혁흔(奕訢)

각주 편집

  1. 《청사고(淸史稿)》卷二百十四 列傳一 后妃에는 황제로 어위한 문종 함풍제가 그녀를 황고 강자황귀태비로 봉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청사고(淸史稿)》 문종본기(文宗本記) 3년 기록에 병환으로 위중한 황귀태비를 강자황태후로 존봉하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뤄 기록 오류가 아니라면 앞서 가상했던 존호인 효자(孝慈)를 이후 강자(康慈)로 교체하고 황귀태비로 봉숭(封崇)한 것으로 보인다.
  2. 강희제가 후궁 출신인 자신의 생모 효강장황후와 역시 후궁 출신인 조모 효장문황후를 적후의 예로 추시한 것을 시점으로 청나라 황후의 시호는 적후와 서후의 차별이 뚜렷했던 명나라 때와는 달리 경계를 두지 않는다. 이에 청나라의 황후는 시호의 가장 앞 글자에 효(孝)를 쓰고 마지막 글자에 남편의 시호의 마지막 글자를 써서 총 홀수(기본 13자)로 구성된 시호를 썼다.

출처 편집

  1. 《청사고(淸史稿)》卷二十 本記 二十 文宗本記 "三十年正月丁未,(중략) 宣宗崩,己未,上即位,颁诏覃恩,以明年为咸丰元年。尊皇贵妃为孝慈皇贵妃。"
  2. 《청사고(淸史稿)》卷二十 本記 二十 文宗本記 "秋七月壬戌朔,尊皇贵太妃为康慈皇太后。
  3. 《청사고(淸史稿)》卷二百十四 列傳一 后妃 "咸丰五年七月,太妃病笃,尊为康慈皇太后。"
  4. 《청사고(淸史稿)》卷二十 本記 二十 文宗本記 "八月 (중략) 庚子,上大行皇太后尊谥曰孝静康慈皇后。"
  5. 《청사고(淸史稿)》卷二百十四 列傳一 后妃 "越九日庚午,崩,年四十四。上谥,曰孝静康慈弼天抚圣皇后,不系宣宗谥,不祔庙。葬慕陵东,曰慕东陵。"
  6. 《청사고(淸史稿)》卷二十 本記 二十一 穆宗本記 "庚申,上孝静成皇后尊谥曰孝静康慈懿昭端惠弼天抚圣皇后。"
  7. 《청사고(淸史稿)》卷二百十四 列傳一 后妃 "穆宗即位,祔庙,加谥"
전임
효전성황후
청나라의 황후
사후 시호
후임
효덕현황후
전임
효화예황후
청나라의 황태후
1855년 8월 13일 ~ 1855년 8월 21일
후임
효정현황후

틀:함풍제의 섭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