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광주원부인

후광주원부인 왕씨(後廣州院夫人 王氏, 생몰년 미상)는 고려의 제2대 혜종의 제2비이다.

후광주원부인
後廣州院夫人
고려 혜종의 왕비
재위 미상
대관식 후광주원부인(後廣州院夫人)
전임 의화왕후(義和王后)
후임 청주원부인(淸州院夫人)
이름
미상
이칭 미상
별호 미상
묘호 미상
시호 미상
신상정보
출생일 생년 미상(生年 未詳)
출생지 경기도 광주(京畿道 廣州)
사망일 몰년 미상(沒年 未詳)
사망지 경기도 광주(京畿道 廣州)
왕조 고려(高麗)
가문 개성(開城)
부친 왕규(王規)
모친 미상
배우자 혜종(惠宗)
자녀 미상
종교 불교(佛敎)
묘소 미상

생애 편집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대광 왕규의 딸이다[1]. 태조의 제15비 광주원부인과 제16비인 소광주원부인은 그녀와 자매간이다. 왕규후진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2], 태조가 사망할 때 그의 유명을 받들고 내외에 선포하는 중요한 일을 맡기도 한 인물이었다[3]. 태조는 혜종을 태자로 책봉하면서 이러한 왕규의 능력이 외가의 출신이 미약한 혜종에게 큰 보탬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왕규의 딸을 그의 부인으로 맺어주었고, 실제로 왕규는 태조가 사망할 때 혜종을 잘 보필하라는 유명을 받들었다[4].

그러나 왕규는 자신의 외손자이자 소광주원부인 소생인 광주원군을 보위에 올리기 위해 혜종을 암살하려고 했다가 실패하여, 945년(정종 즉위년) 음력 9월 처형당하였다[5]. 단 왕규의 역모에 대해서는 그 해석이 엇갈리기도 한다[3].

후광주원부인의 생애는 《고려사》에 자세히 전하는 것이 없다[1]. 현대 일부 학자들은 반역자의 딸들도 폐출되거나 함께 살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후광주원부인과 그 자매들 역시 이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4]. 후광주원부인(後廣州院夫人)이며, 능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혜종과의 사이에서 소생은 없었다.

가계 편집

  • 아버지 : 왕규 (王規, ? ~945)
  • 시아버지, 형부 : 태조(太祖, 877~943 재위:918~943)
  • 시어머니 : 장화왕후(莊和王后) 오다련(吳多憐)의 딸
    • 남편 : 혜종 (惠宗, 912~945 재위:943~945)

출처 편집

  1. 《고려사》권88〈열전〉권1
  2.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광주원부인〉항목”. 2014년 8월 1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3.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왕규〉항목”. 2014년 8월 1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4.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후광주원부인〉항목”. 2015년 12월 2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5. 《고려사》권2〈세가〉권2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