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 동맹 (1815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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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목적 뒷면의 정치적 목적을 보면, 알렉산드르 황제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이 협력하게 되는 것을 막고 영국에 대치하여 유럽대륙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높이려 했다. 이러한 러시아 황제의 목표와 프랑스 혁명의 이념이 유럽에 퍼지는 것을 우려한 열강의 이해가 일치했던 것이다. 특히 수많은 민족으로 이루어진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는 그들이 통치하고 있던 소수 민족들의 봉기를 두려워했고, 프로이센 역시 폴란드 3국 분할로 획득한 폴란드가 우려되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반동적인 오스트리아의 입장에 대체로 동조하는 편이었다. 그리하여 러시아 황제는 1815년 9월 하순 오스트리아 황제와 프로이센 국왕과 더불어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국제정치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특이한 조약을 체결했던 것이다.
 
신성 동맹이 체결된 이후 열린 1820년 트로파우 회의 등 일련의 국제 회의에서 유럽의 주요 강대국인 4개국(나중에는 프랑스까지 5개국)이 [[민족주의]], [[자유주의]] "반란"이나 폭동, 소요 사태가 발생할 경우 무력으로 개입하여 진압하는 것이 결정되었는데, 그 내용이 신성동맹 조약의 결과라고 여겨지자 동맹 자체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신성동맹은 반동적이고 반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 신성 동맹은 [[1914년]] [[7월 28일에28일]]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함으로 인해 깨지게 된다되었다.
 
== 역할과 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