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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교 등장 이후 ==
아랍인들이 이란을 정복하여 이슬람교가 전파되었고, 사산조가 멸망 이후는 샤의 칭호는 사용하지 않았고, [[사만 왕조]]에 의해서 페르시아어 부흥 운동에 의해 [[카라한 왕조]]나 [[셀주크 제국]] 등 투르크족 세력에 의해 인명으로서 서서히 사용되게 되어, 근대 페르시아어에서는 페르시아의 국왕에게 한정하지 않고 넓게 왕을 의미하는 보통명사가 되고, 군주나
샤한샤는 아라비아의 역사서 등에서는 오로지 사산조 페르시아 등 고대 이란의 군주들에게만 사용되고 있던 단어로 인식하였고, 사산조의 멸망 이후, 오랫동안 군주의 칭호로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932년]]에 브와이 왕조가 정권을 차지하자, [[압바스 왕조]]의 [[칼리파]]에게 아미르 알 우마라(모든 아미르의 아미르)의 칭호 이외에 고대의 샤한샤의 칭호를 사용하겠다고 요구하였다. 현재 확인 할 수 있는 사례는 아드드다우라(재위 : 949년 - 983년)부터 브와이왕조의 군주들은 화폐의 명문 등에 「샤한샤」의 칭호를 사용하였다. 또 이것에 모방한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셀주크 제국의 투그릴 베그도 술탄의 칭호가 수여된 전후로부터 역시 화폐에 최대의 술탄(Sulṭān al-Mu‘aẓẓam)이라고 칭하고 이에 더해서 가장 영광 있는 샤한샤(Shāhanshāh al-Ajall)라는 하는 칭호를 새기게 한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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