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옥 (1890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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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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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무기와 항일 문서를 휴대하고 서울에 잠입한 뒤 [[1923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 당시 종로경찰서가 독립 운동 탄압의 본산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투척 사건 이후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해 피신하던 중, 열흘 후인 [[1월 22일]] [[효제동]]에서 경찰의 포위에 맞서 싸우다 자결했다.
 
마지막 은신처는 혁신단 시절의 동지인 [[이혜수 (1891년)|이혜수]]의 집이었는데, 효제동은 그의 생가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그가 수많은 일본 경찰의 포위에도 단신으로 여러 시간 동안 버티며 총격전을 벌인 이 사건을 당시 학생이던 서양화가 [[구본웅]]이 직접 목격하여, [[1930년]] 시화집 《[[허둔기]]》에 스케치와 추모시를 함께 실었다는 일화가 있다<ref>{{서적 인용
|저자=이구열
|제목=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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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인 [[1924년]], 임시정부 외교부장이며 김상옥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조소앙이 그의 전기를 집필해 간행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고, [[1998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동상이 설치되었다. 김상옥은 [[일제강점기]] 초기의 무장 테러 운동과 의열단의 용감한 투쟁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대한민국 국가보훈처]]가 선정해 기념 사업을 벌이는 [[이 달의 독립 운동가]]로 [[1992년]] 최초로 선정되기도 했다.
 
== 참고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