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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3월 사마휼이 [[가남풍]]에 의해 죽자, 사마륜은 4월 측근 [[손수]]를 시켜 양왕(梁王) 사마융(司馬肜)을 부추겨 황제의 조서를 위조해 혜제의 사촌 동생인 제왕(齊王) 사마경(司馬冏)과 함께 [[가남풍]]을 붙잡아 황후의 자리를 빼앗고 가밀(賈謐)등 가씨 일족을 몰살하는 동시에 이전부터 원한을 품고 있던 [[장화]]와 배위등 많은 관리들을 살해하고 일부는 그 삼족을 멸했다. 다시 허위 조서를 내세워 전국의 군사를 손아귀에 넣고, 세번째 허위 조서를 내세워 내쫓긴 [[가남풍]]을 독살했다.
 
그해 5월 죽은 태자 사마휼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그 아들인 사마장(司馬臧)을 황손(皇孫)으로 봉하고 혜제를 가까이서 보좌하게 되었다. 그러나 점차 독단적으로 행동하여, [[손수]]가 그를 부추겨 중앙에서 세력을 독점하게 해 혜제의 동생 회남왕(淮南王) 사마윤(司馬允)과 제왕 사마경 등을 중앙에서 몰아내려 했다. 사마윤은 이 조치에 분개한 나머지 가밀에게 연루되어 벼슬을 잃은 석숭[石崇, 진 대신 석포(石苞)의 아들], 반악(潘岳)과 함께 그해 8월 거병했는데 사마륜의 군대에 의해 토벌되었다. 사마륜은 제왕 사마경에게 [[허창]](許昌)의 군사를 맡기고 지방으로 가서 군사들을 감시하도록 하게 하였다.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차례차례 제거해 나가면서 그는 혜제로부터 [[구석]](九錫)을 받았다. 11월 [[손수]]의 친척인 [[양헌용]](羊獻容)을 아내로 삼았다.
 
그러나 사마륜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301년 정월, 황제의 자리를 빼앗아 제위에 올랐다. 황손 사마장을 복양왕(濮陽王)으로 강등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살해했다. 장자 사마과(司馬荂)를 태자로, 연호를 [[건시]](建始)로 했다. 또한 자신이 신임하는 인물만 벼슬을 내려 기용했기 때문에 사마륜의 친인척은 물론 연륜이 있고 그의 노비, 시종들까지도 고위직에 오르는 상황이 벌어졌다(구미속초(狗尾續貂)). 또한 [[손수]]는 사마륜의 또 다른 심복인 장림(張林)과 대립하여 그를 살해하는 등, 혼란이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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