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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허목]], [[윤휴]](尹鑴), 권대운(權大運), [[이원정]], 이봉징, [[이서우]] 등과 함께 [[남인]] 강경파인 청남(淸南)을 형성하여 서인과 철저한 대립관계에 있었고, 허적(許積)·민희(閔熙) 등 [[남인]]내 온건파인 탁남(濁南)과도 대립했다. 그는 [[남인]]임에도 [[허적]], [[허목]] 등과 [[서인]] [[김육]]의 [[대동법]]의 취지를 이해하여 당색으로 초월하여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또한 [[서인 (정치)|서인]] [[김홍욱]], [[송시열]] 등이 주도한 [[소현세자]]빈 [[민회빈 강씨]]의 복권 여론에도 당색을 초월하여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ref>소현세자빈의 복권을 놓고 [[남인]] 내에서는 [[송시열]] 등이 [[효종]]의 종통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악의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ref>
 
그뒤 숭정대부로 승진, [[1679년]] 다시 이조판서가 되었다.
 
==== 유배와 최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