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독립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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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Sirjohnfrench.jpg|thumb|[[존 프렌치, 제1대 이프로 백작|프렌치 공]]]] -->
[[블랙 앤 탄스]] 부대가 괴멸 상태에 이른 RIC를 지원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BaT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7,000여 명의 건장한 영국군들로 이뤄져있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왔다. 공식적으로 그들은 RIC의 하위조직이었으나 실제로는 살인, 테러를 일삼고 술주정을 부리며 어설픈 훈련을 받은, 아일랜드에서 활동하는 어떤 조직보다도 더 영국 정부의 도덕성에 악영향을 끼친 준군사조직이었다. 얼마 후에는 퇴역한 1,400여 명의 예비역 영국군 장교들이 왔다. BaT가 아일랜드인들을 상대로 수많은 폭력과 테러를 일삼자 아일랜드인들의 반발은 더 심해졌다.
1920년 11월 21일 콜린스의 부대는 [[카이로 갱]]으로 알려져 있는 19명의 영국정보원들을 더블린 인근에서 살해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BaT는 풋볼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이던 [[크로크 공원]]을 향해 트럭을 타고가서 무차별 발포를 했다. 14명의 비무장 민간인들이 사망했고 65명이 부상당했다. 이 날은 [[피의 일요일 (1920년)|피의 일요일]]로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 크로크 공원의 스탠드는 호건 스탠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는 당시 사건 도중 숨진 [[티퍼러리]]팀 소속의 선수를 기리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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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lyingcolumn_westcork-DB668.jpg|300px|thumb|left|션 호건의 플라잉 칼럼]]
[[코르크 카운티]]에서도 더블린에서와 같은 유혈이 낭자하는 싸움이 벌어졌다. 영국군은 IRA의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공화주의자들을 살해하고 민간인들의 집을 방화하고 약탈하는 등의 전술을 사용했다. 1920년 3월, [[신페인당]]원이자 [[코르크 카운티의 지도자]]인 [[토머스 맥 컬틴]]이 그의 집에서 아내가 보는 앞에서 총살을 당했다. 범인은 검은 복면을 하고 있었으며 지역 방위대 병영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컬틴의 후임은 [[티런스 맥스위니]]였다. 그는 런던에서 [[브릭스턴]] 수감자들이 벌인 [[단식 투쟁]] 참가자 중
코르크 카운티에서 처음으로 "플라잉 칼럼"가 등장했다. 이들은 100여 명으로 이뤄진 기동부대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의 지형을 영국군보다 더 잘 아는 이점을 이용해 매복 공격 등의 전략을 펼쳤다. 일부 영국군 연대가 비무장 포로들을 죽였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에식스 연대]]는 이들 중 하나였다. 더블린에서 발생한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1920년 11월 28일, [[탐 베리]]가 이끄는 IRA 소속 서부 코르크 부대는 Kilmicheal에서 영국군 정찰대를 향해 매복공격을 가해 18명을 살해했다. 이 사건은 아일랜드 독립 전쟁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것은 곧 전쟁규모의 확대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서부 코르크 Flying columns는 [[크로스베리]]에서 영국군과 Black and Tans에 맞서 다시 한번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IRA는 단지 3명만이 피해를 입었는데 비해 영국군은 60여 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많은 병사들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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