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빈 장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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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빈 장씨'''(禧嬪 張氏, [[1659년]]<ref>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9월 28일(임자) 2번째기사</ref> [[음력 9월 19일]]<ref>승정원일기 숙종 15년~19년</ref> ~ [[1701년]] [[음력 10월 10일]])는 조선의 제19대 왕 [[조선 숙종|숙종]]의 [[빈 (지위)|빈(嬪)]]으로, 제20대 왕 [[조선 경종|경종]](景宗)의 어머니이다. [[조선 숙종|숙종]] 임금보다는 2년 연상이다. 본명은 '''장옥정'''(張玉貞)으로 전한다.<ref>[http://221.150.168.57/img/book2/3/JE_A_30613/JE_A_30613_001_000042.gif 단암만록]/[[민진원]] 著</ref> 본관은 [[인동 장씨|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역관 출신인 [[장형 (조선)|장형]](張炯)이며, 어머니는 [[장형 (조선)|장형]]의 후실인 윤씨이다. 역관(驛官) [[장현 (조선)|장현]](張炫)의 종질녀이다. [[조선 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궁녀 출신으로 왕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여인으로서, 흔히 '''장희빈'''(張禧嬪)으로 불린다.
 
산림숭용과 국혼물실을 당의 제1 강령으로 추구했던 [[서인]], 특히 [[인현왕후]] 민씨의 배경 세력이었던 [[노론]]에게 강력한 적으로 규정되었다. [[1701년]](숙종 36년) [[숙빈 최씨]]의 발고로 [[인현왕후]]의 죽음을 기원하는 저주굿을 한 혐의를 받고 [[조선 숙종|숙종]]에게 자진을 명 받아 사망하였다. 그녀의 아들인 [[조선 경종|경종]]이 사망하고 [[숙빈 최씨]]의 아들인 [[조선 영조|영조]]가 즉위하자 [[인현왕후]]의 오빠 [[민진원]]을 위시한 [[노론]]은 [[인현왕후]]의 폐위와 죽음의 범인이자 3대 환국(기사환국, 갑술환국, 신임사화)의 원흉으로 정의하여 비난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집필되어 민간으로 보급된 [[인현왕후전]], [[수문록]] 등의 언문 소설과 야사집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역사 서적과 드라마 등에 중요 사료로 활용되어 최근까지 조선 3대 악녀, 요화로 평가 매도되어 손가락질 받아왔다.